동화, 시와 동시

검정꼬리 가족의 새 보금자리

남전 南田 2013. 11. 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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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문학> 2013년 11,12월호에  동화작가 김현우

동화 <검정꼬리 가족의 새 보금자리>를 발표했다.

 

동화

검정꼬 가족의 새 보금자리

김현우

 

 

 

 

철길다리를 뜯어내는 공사가 벌어졌어요. 시멘트로 된 다리기둥을 부수는 기계소리가 우렁우렁 울리자 그곳에 사는 비둘기들이 걱정을 하게 되었지요.

그들이 사는 곳은 열차가 다니는 철길의 다리 아래였지요. 철도를 받치고 있는 시멘트 다리기둥 사이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좁다란 틈이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검정꼬리 비둘기가족의 보금자리였어요.

그곳 철길은 한 가닥 외길이어서 열차가 지나가고 나면 한참 지나야 맞은편의 열차가 오곤 했지요. 그런데 두 가닥으로 된 철로가 새로 생기면서 예전의 철길을 뜯어내게 된 것이지요.

다리가 전부 14개 서 있었는데 철길을 걷어내면서 가장 멀리 있는 기둥부터 부수기 시작했어요.

“야아! 이제 우리도 이사를 가야돼!”

“어디로 간단 말이야? 이곳이 얼마나 안전하고 좋은 보금자리인데!”

하얀머리 비둘기 말에 다들 ‘그렇고말고!’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지요.

이때껏 살았던 그곳은 열매나 벌레, 풀씨가 많은 산도 가까웠고 과자부스러기나 음식쓰레기도 많은 집과 골목이 바로 아래에 있어 참 좋은 보금자리였기 때문에 다들 섭섭해 했어요. 또 다리기둥이 하도 높아 족제비나 뱀, 고양이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해 안전했거든요. 개나 길고양이 몇 마리 마을에 살고 있었지만 그들과 사이가 좋은 편이라 크게 위험하지 않았지요.

비둘기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검정꼬리 비둘기 할아버지가 여럿이 떠드는 소리를 듣다가 분부를 내렸어요.

“그래! 지금 살고 있는 이 철길다리는 곧 뜯겨져 나갈 거야. 그러면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돼. 오늘부터 어디로 가야할지 각자 다니며 알아오도록!”

“이 정든 곳을 두고 떠나다니! 나는 남쪽 공원으로 가 봐야겠어요.”

“나는 서쪽 봉화산으로 가야지. 아무래도 산으로 가면 먹이가 많을 거야.”

분홍죽지 비둘기는 철로 남쪽 공원으로, 하얀머리 비둘기는 산으로 날아갔어요. 잿빛머리 비둘기는 서쪽 마을로, 흰색꽁지 비둘기는 더 멀리 학교 운동장 쪽으로 갔지요. 이사를 갈만한 좋은 장소를 찾아서요.

집이 없어지게 된 비둘기들은 새로 이사 갈 곳을 찾아내야했어요.

우선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도 있고 뱀이나 족제비, 고양이 같은 동물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을 안전한 곳이어야 했어요. 족제비나 뱀은 흔히 잠자는 비둘기들을 공격하곤 했어요. 그러면 피하기가 어려워 다치거나 잡혀 먹히기가 쉬웠지요.

검정꼬리 가족은 좋은 곳이 없을까 하고 정찰비행기처럼 날면서 여러 곳을 빙빙 돌며 살펴보았지요.

그날 저녁 식구들이 다모여 서로 다녀온 곳에 대한 얘기를 했지요.

“봉화산에는 먹이는 많은데 위험한 곳이야. 뱀과 족제비가 많아. 그들은 밤이면 나무를 타고 다니면서 잠자는 참새나 들쥐, 다람쥐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요. 우리도 나뭇가지에서 자야하는데 너무 위험해!”

“남쪽 공원은 나무 열매와 벌레도 있고 풀씨도 있어 좋기는 하지만 역시 쉴 곳은 나무뿐이라 걱정이 돼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피할 곳이 마땅찮거든요.”

분홍죽지와 하얀머리가 다녀 온 곳에 대해 얘기했지요. 흰색꽁지도 잿빛머리도 한마디씩 했지요.

“초등학교는 너무 시끄러워 안 돼. 아이들이 와글와글 떠들면서 운동장에서 노는데 통 먹을 것이 없었어. 또 아이들이 나를 쫓아다니는데 너무 성가시게 굴었어. 그런데 학교 건물 옥상이 우리 집으로 삼기에는 적당했어요.”

“난 서쪽마을을 둘러보았는데 사람들이 버리는 음식물쓰레기가 많아 먹이 걱정은 않아도 될 듯 하지만 높은 건물이 없어서 역시 잠잘 곳이 마땅찮았어요.”

“난 아파트 근처를 가 봤는데 너무 높아! 그리고 의지할 곳도 없었어.”

그때 몸도 머리도 검정인 검댕이 막내가 말했지요.

“철로를 따라 한참 날아 가다보니 새로 지은 역 건물이 있더군요.”

“아, 동쪽 저 끝에 기차가 서는 역이 있지. 검댕이 막내가 멀리까지 갔었구먼. 그래, 거기는 어떻던?”

검정꼬리 할아버지가 검댕이 막내에게 물었지요.

“할아버지! 역 광장이 넓고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옆에 시장이 있어서 먹이들도 많을 듯 했어요. 거기 우리와 같은 비둘기들이 몇몇 날아오긴 했어도 우리 식구들처럼 많지 않았어요.”

“먼저 와 사는 비둘기들이 텃세를 부리지나 않을까?”

“아주 친절하던걸요. 다만 심술궂은 길고양이들이 많데요.”

“원래 고양이들은 고약한 놈들이니까 조심해야 돼. 우리가 지낼만한 장소는 있고?”

“그럼요. 역 건물이 아주 크고 넓었어요. 지붕이 높고 가팔라서 족제비고 뱀이고 올 수 없을 듯 했어요. 한옥처럼 처마가 길게 나오고요, 그 아래 기둥과 들보 사이에 우리가 잠잘만한 곳도 있었어요.”

검댕이 막내 말에 모두들 기쁜 마음이 되었지요.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을 듯 했으니까요.

“됐구나! 우리 모두 내일 역 광장으로 가보자꾸나.”

검정꼬리 할아버지 말에 모두 박수를 쳤어요.

 

이튿날, 검정꼬리 가족은 한참 날아서 역 광장으로 모두 갔어요.

그곳에는 또 다른 비둘기들이 먼저 날아와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를 먹으려고 땅바닥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었지요.

“안녕! 반가워!”

검정꼬리 할아버지가 인사를 하자 먼저 와 있던 친구들도 날개 죽지를 흔들면서 환영했어요.

“와아! 너희들은 어디서 왔니? 낯이 설구나.”

“우린 저 멀리 서쪽 철길다리에서 살았지. 그런데 그걸 뜯어내버리는 공사를 하기 때문에 이곳이 어떨까 하고 온 거란다.”

“아! 여기야 비둘기가 살기에 최고지!”

“우리랑 같이 살자! 다만 길고양이들이 텃세를 부려서 좀 곤란하기도 하지만.”

먼저 온 비둘기들이 그들을 크게 환영했어요.

“길고양이들이라니! 우린 서쪽 마을에서 서로 잘 지냈었는데?”

“여기는 고약한 놈들만 살아! 우리를 보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데 꼭 호랑이처럼 겁을 준단다. 하지만 우리 친구들이 많으면 그들도 기가 죽을 거야.”

“암암! 그렇게 될 거야.”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거렸지요. 식구들은 그들이 잘 수 있다는 역 건물 지붕위로 날아가서 둘러보았어요. 정말 검댕이 막내 말처럼 비바람을 피하기에도 좋고 새 둥지를 틀 곳으로도 안성마춤이었어요. 식구들은 거기서 살기로 작정했어요.

검정꼬리 할아버지랑 분홍죽지, 하얀머리들이 역광장으로 도로 내려오니 소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던 길고양이 두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어요. 심술궂은 얼굴로 수염을 핥으며 폼을 잡았어요.

“너희들이 이리로 이사를 온다면서?”

“누구 맘대로 이사를 온다는 거야? 우리 터줏대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야!”

검정꼬리 할아버지가 검댕이 막내랑 흰색꽁지 형제들에게 조심하라고 눈짓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고양이들에게 말했지요.

“반갑습니다. 우리는 아주 멀리서 왔습니다. 여기가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서요. 특히 야옹님들이 우리 비둘기들에게 인정을 많이 베푼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 해코지에 꼬리가 절반이나 잘린 야옹님의 대장이 크게 웃었어요.

“하하하! 나야 마음씨가 참 좋지! 하지만 먹을거리가 줄어든다고 우리 식구들이 야단들이란 말씀이야! 그러니 다른 곳으로 가버려!”

“우린 과자부스러기나 나무에 붙은 벌레만 먹지요. 야옹님들의 음식에는 절대 입을 대지 않겠습니다.”

비둘기들의 애원에도 야옹님의 대장은 고집을 부렸지요. 그때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떠돌이 개 왕왕이가 비둘기 편을 들어 주었어요.

“야야! 야옹아! 난 새 식구가 생겨서 좋은걸. 비둘기들이 이곳저곳 다니며 새소식을 알아다줄 것이니 좀 좋으냐?”

“안 돼! 먹을 것이 부족하단 말이야. 요샌 쓰레기 분리수거 바람에 먹을 것이 통 없다니까!”

“허어! 너희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성을 낼 테야! 주인을 잃고 빌빌 이 역전에서 산다고 날 괄시하면 안 돼!”

왕왕이가 야단을 치자 검정꼬리 할아버지도 살살 빌었지요.

“야옹님들이야 시장바닥을 다니면 전신만신 먹을거리 아닙니까? 같이 살게 해 주세요.”

야옹님의 대장이 버럭 고함을 쳤어요.

“야, 이놈아! 우리를 도둑질이나 하는 고양이로 보여?”

“그, 그게 아니고…… 먹을 것이 풍부할 거란 얘기지요. 우린 작고도 작은 씨앗 알갱이나 과자부스러기만 먹습니다요.”

“하여간 이 근처에 얼씬거리기만 해봐! 당장 목을 물어 비틀어버릴 테니까!”

길고양이들의 고집을 쉽게 꺾을 수가 없었어요. 왕왕이가 검정꼬리 가족들에게 힘이 돼 주겠다고 큰소리쳤어요.

“허! 고양이들이 욕심이 너무 많구먼. 비둘기들아! 걱정 말고 여기서 살아. 내가 보디가드가 돼 줄게.”

“고맙습니다. 왕왕이님!”

검정꼬리 가족은 역 건물 지붕위로 날아올라서 좋은 수가 없을까 의논을 했지요. 그러다가 좋은 생각을 해 냈지요.

 

이튿날 아침, 길고양이들이 소나무 숲 그늘로 슬슬 모여 들었을 때 검정꼬리 가족이 날아와 뭔가 떨어트렸지요.

“이크! 이게 뭐야? 웬 꽃이 떨어져?”

“조심해! 저 놈들을 여기서 쫓아내려니까 폭탄을 가져와 터트리는 걸 거야.”

“꽃 폭격이다! 다들 조심해!”

비둘기 식구들이 또다시 날아와 입에 물고 있던 꽃들을 아래로 날려 보냈지요. 먼저와 살던 비둘기들도 힘을 합쳤어요. 나팔꽃, 폐추니아, 배롱나무 꽃, 능소화, 채송화, 송엽국…… 빨강 노랑 분홍 꽃잎들이 팔랑팔랑 나부끼며 하늘에서 길고양이들 머리위로 자꾸 떨어졌어요.

드디어 야옹님의 대장이 두 손을 들고 말았어요.

“항복! 항복! 꽃 폭탄을 그만 쏟아 부어!”

“우리 함께 살아도 돼요?”

“그래, 그래! 우리 함께 살자꾸나!”

“잘 됐어. 잘 됐어!”

왕왕이가 큰소리로 축하인사를 했어요.

“고마워요! 야옹님. 왕왕이님. 그리고 도와준 비둘기 친구들아!”

역 광장으로 검정꼬리 가족이 우르르 날아 오르내리면서 축하비행을 멋지게 했어요. 먼저와 살던 비둘기들도 함께 날았지요. 그걸 구경하던 아이들이 박수를 크게 쳤고요. 그러면서 뻥튀기 과자를 공중에 막 던져 보냈지요. ****

 

 

(동화가 실린 <PEN문학> 2013.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