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시와 동시

동화 / 배불뚝이 선생님 ㅣ김현우

남전 南田 2014. 3. 30. 19:21

 

 

<월간문학> 2014년 4월호에 발표한 동화 "배불뚝이 선생님"을 올린다.

 

 

동화

배불뚝이 선생님

김현우

 

 

 

 

아침 첫 시간에 배 선생님께서 무슨 신나는 일이라도 생겼다는 듯 큰소리로 말했어요.

“얘들아! 우리 연극할까? 이번 학예회 때 말이야.”

선생님의 말씀에 5학년 1반 아이들이 와그르르 떠들기 시작했지요.

“시시한 연극 보다는 피아노 연주에 합창해요. 우리 반은!”

“합창이 뭐냐? 연극이 좋아요. 어떤 연극을 할 거예요?”

“절 주인공으로 뽑아 주세요. 그러면 일류 탤런트 저리가라! 하고 멋지게 해낼게요.”

“야야! 주인공은 이 미남이 하는 거야. 흐흐흐! 배불뚝이가 나간다.”

뚱보 재춘이의 소리에 아이들이 교실을 떠나가라 웃었지요. 배불뚝이. 배불뚝이는 배 선생님 별명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은 배가 산처럼 불룩하게 솟아 마치 아기를 밴 아줌마 같았거든요.

“으, 으흠! 어르신이 나가는데 뭣들 하느냐?”

반에서 키가 제일 큰 덕구가 여덟팔자걸음을 걸으며 거드름을 피우는 양반 흉내를 내어 또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의 웃음이 잦아들자 정색을 하고서 말했지요.

“연극 제목은 ‘현대판 흥부와 놀부 이야기’다.”

아이들이 또 와그르르 떠들었어요. 시시하다느니, 뻔히 아는 얘기 뭐 하려고 하느냐? 더 신나고 재미있는 얘기도 있는데! 아이들이 만화 제목을 들먹이며 떼를 쓰듯 선생님께 여러 말을 했지요. 그런데 원래 고집 세기로 잘 알려진 배불뚝이 선생님이 결코 물러설 줄 몰랐지요.

“딱! 딱! 딱!” 요즘 다른 선생님들은 절대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회초리로 교단을 몇 번이나 두들겨 아이들을 조용히 하게하고는,

“얘들아! 이번 연극은 우리 반 전부 출연하는 거야. 흥부 놀부 이야기 중에 가장 재미있고 신나는 대목이 뭘까?”

반장 혜숙이가 냉큼 대답했어요.

“그야, 제비가 물어다준 박씨를 키운 박을 흥부 내외가 타는 장면이지요.”

“맞아! 맞아요. 그 박타는 장면이 최고예요. 놀부도 박을 탔는데 쓰레기, 도깨비, 더러운 것들이 쏟아져 나와 혼나지요.”

“제가 흥부 할레요.”

“야야! 흥부는 내 몫이야. 내가 나서야 성공하지. 형님! 배가 고파 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밥을 굶어 다 죽어 갑니다. 쌀도 좋고 밥도 좋고 과자도 빵도 누룽지도 좋아요.”

덕구가 배가 고파 놀부 형님 집에 와서 양식을 달라고 애원하는 흥부의 흉내를 냈어요, 그 바람에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어댔지요.

“우선 이렇게 하자. 남쪽 창가에 앉은 줄은 흥부네 아이들. 가운데 줄은 박속에서 나오는 도깨비들, 복도창가에 앉은 줄은 놀부네 식구들!”

“……”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에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들 바라보며 눈짓만 했지요. 연극 대본을 직접 만들게 한다는 얘기에.

“아아! 이 연극은 너희들이 대본을 직접 쓰는 거야. 의논을 해서! 흥부네 아이들은 박을 타는 부모들 곁에서 뭐라고 소원을 빌었을까? 바로 배부르게 밥도 나오고 좋은 옷도 나오고…….”

“보물도 나와라! 돈도 나와라! 도깨비들이 나와서 집도 뚝딱뚝딱 지어 달라고 하고요.”

“맞아! 맞아! 바로 그거야. 도깨비 팀은 흥부네 식구들에게 무슨 선물을 가져다줄까? 놀부네를 어떤 걸로 혼내줄까? 의논해야 하고, 놀부네 식구들은 모두 욕심꾸러기들이니까 제비도 잡으러 다니고 다들 더 멋진 선물을 달라고 야단해야지?”

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이 좋아라 하면서도 누가 흥부나 놀부 역을 맡을지 궁금해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에 다들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흥부 역은 이강수, 흥부 마누라는 박정덕, 놀부 역은 황재선, 놀부 마누라는 안다례, 마당쇠는 김소찬. 해설자는 반장 고혜숙과 부반장 정해도. 이 역할에 대한 대본은 내가 벌써 준비해 놓았어요.”

아이들은 수군수군 거렸지요. 흥부와 놀부 그리고 마누라 역이나 마당쇠 역을 맡은 아이들 모두 5학년 1반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었거든요. 이강수나 황재선은 국어 책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고 마당쇠를 맡은 김소찬은 셈하기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이였어요, ‘아아! 선생님은 저런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연극을 한단 말이야?’ ‘대사를 줄줄 거침없이 외워도 구경꾼이 많은 무대에 나서면 말이 막혀 제대로 대사를 읊지도 못할 것인데?’ ‘저런 머저리들을 데리고 연극을 한다니?’ 하고 숙덕거렸어요.

5학년 1반에서 “현대판 흥부와 놀부 이야기” 연극을 한다는 소문이 학교 안에 퍼졌어요. 그 반에 제일 못난 꼴찌들이 주인공으로 뽑혔다는 얘기도 함께 알려졌지요. 그러면서 연극이 제대로 될지 말지 큰 의문이라고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그 소리를 들은 학부형들마저 기가 막혀 했지요.

 

“배 선생님. 어디 꼴찌들을 모아 주연 배우로 삼아서야 연극이 제대로 되겠어요?”

“머리 좋고 똑똑한 아이들도 많은데! 어찌 하려고?”

선생님들이 대 놓고 배불뚝이 선생님을 걱정 했어요. 학부모들도 얘기를 듣고는 비웃었어요.

“아니, 우리 해도가 얼마나 머리가 좋은데! 아무리 대본이 길어도 금방 다 외울 걸.”

“글쎄! 국어 책도 제대로 못 읽는 바보들이 주인공이라니!”

“아마 5학년 1반 연극은 엉망진창이 되어 학예발표회 때 망신만 당할 거야.”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뭐라 하건 말건 못 들은 척하며 배 선생님은 흥부네, 도깨비들, 놀부네 식구들 모임이 대본을 스스로 의논해서 쓰게 하고는 둘러 앉아 연습을 하도록 했어요.

“자알 될 거요. 내가 뱃장이 두둑한 걸 모르시오? 난 아이들의 숨은 재능을 믿어요.”

한편 흥부 부부 역 강수와 정덕, 놀부 부부 역 재선과 다례, 그리고 마당쇠 역의 소찬에게는 물론 해설을 맡은 혜숙과 해도에게도 선생님이 직접 쓴 긴 대본을 나누어주며 외워오라고 했어요.

당연히 강수와 재선, 소찬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역시 공부라면 영 형편없는 마누라 역을 맡은 정덕이나 다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선생님께서 방과 후에 주인공을 맡은 다섯 명을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했지요. 떠듬거리며 겨우 대본을 읽어가는 아이들을 결코 야단치지 않고 ‘더 재미있는 말이 뭘까?’ 하고 아이들 의견을 묻곤 했지요. 아이들이 이렇게 저렇게 고치면 외우기 쉽고 재미있겠다고 하면 그렇게 고치기도 했지요. 맨 처음 아이들은 선생님이 시키니까 하는 수 없다는 듯 따라했지만 점점 흥부 놀부 이야기 재미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소찬이와 강수 어머니가 연극 연습을 구경하러 왔어요.

“아이고! 맨날 꼴지만 하는 우리 애들 데리고 무슨 연극을 해요?”

하고 걱정을 했어요. 처음에는 떠듬거리며 겨우 대본을 읽던 강수와 재선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어요. 어머니들 보란 듯 강수와 재선이는 틀리지 않고 대사를 외웠어요. 약간 더듬거리긴 했지만…….

“보십시오. 어머님들. 저렇게 자신 있게 대본을 척척 외우는데요. 큰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모두 열심히들 하고 있거든요.”

신나해 하기는 해설을 맡은 혜숙이와 해도였어요. 외워야 하는 대본도 길었지만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무대를 오르내리며 연극이 잘 진행되도록 해야 했거든요, 주인공을 맡지 못했다고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던 둘은 그만 입이 쑥 들어가고 말았지요. 연극 연습에 열중했을 뿐만 아니라 흥부네, 도깨비 팀, 놀부네 등 세 모임이나 흥부나 놀부 역할을 잘 하도록 도와주려 했어요.

아이들은 대본을 외우기에 열심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갔지요. 하루가 다르게 아이들이 대사를 큰소리로 자신 있게 말하게 되기에는,

“난 절대 틀리지 않는다! 하고 두둑한 뱃장을 가져!”

하고 선생님이 용기를 북돋아 주었기 때문이었어요.

흥부 내외가 박을 탈 때 노래를 부르면 아들딸들이 외치는 대사는,

“금 나와라! 보물 나와라!” 아니라 “냉장고 나와라! 텔레비전 나와라! 스마트폰 나와라!”로 바뀌었어요. 도깨비들도 무섭고 흉한 탈을 벗어버리고 만화 캐릭터들의 가면을 쓰기로 하고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기로 했지요. 가장 재미있는 식구들은 역시 놀부네 식구들이지요. 박 씨를 얻으려고 날아다니는 제비를 잡아 다리를 억지로 부러뜨리는 장면에서 놀부 부부, 마당쇠와 하인들, 그리고 놀부네 욕심쟁이 아이들이 매미채를 들고 무대뿐만 아니라 관중석까지 뛰어 다니며 “제비 잡아라!” 하고 고함치며 법석을 떨기로 했어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학예발표회 날이 되었어요.

“여러분! 현대판 흥부와 놀부 이야기 연극을 시작합니다. 먼저 배꼽이 도망가지 않도록 꼭 잡고 계셔야 합니다.”

해설을 맡은 혜숙과 해도가 익살스런 몸짓으로 개막을 알리자마자 우르르 커다란 박을 여러 개를 굴리며 흥부 내외와 옷이 없어 과일 담는 종이상자에 구멍을 뻥 뚫어 머리만 쏙쏙 내민 흥부네 아이들이 무대에 등장했어요. 아이들은 합창을 하듯 떠들었지요.

“아이고! 배고파! 아버지 어머니 밥 좀 줘.”

“아니면 피자나 햄버거도 좋아!”

아이들의 소리에 구경꾼들이 “와!” 웃었어요. 커다란 톱을 내흔들며 흥부가 말했어요.

“얘들아! 이 박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박을 탈 테니 기다려보렴!”

연극은 흥부네 식구들의 익살스런 연기에 흥이 나기 시작했지요. 박속에서 나온 도깨비들은 흥부네 아이들이 외치는 대로 옷도 밥도 과자도 꺼내 주었어요. 정말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도 나오고 햄버거도 나오고 텔레비전도 냉장고도 나왔어요. 모두 그림이지만요. 아이들은 종이상자 옷을 벗어 던지고 도깨비들이 박속에서 꺼내주는 멋진 옷으로 갈아입었지요.

얼마 후 위기가 왔어요. 아하! 놀부 형이,

“야! 이 도둑놈아! 이 많은 재산을 어디서 훔쳐 와서 부자가 되었냐?”

하고 도둑으로 몰며 닦달하는 장면에서 흥부가 그만 대사를 까먹었는지 멀뚱멀뚱한 눈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어 댔어요. 얼른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키워 그 박속에서 도깨비들이 나와 “금은보화에다 집도 지어주고 어쩌고……” 해야 하는데 말예요.

강수가 대사를 잊고 더듬거리자 해설을 맡은 혜숙이가 얼른 위기를 넘겼어요.

“동생을 도둑으로 모는 놀부 형님 너무 해요! 여러분 흥부가 도둑질 했어요?”

구경을 하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혜숙의 질문에 “아니요!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었어요.” 하고 흥부가 대답할 것을 대신 했어요. 그 바람에 정신을 차린 강수가 놀부에게 부자가 된 내력을 하나도 더듬지 않고 좍 설명했고 관중들이 박수를 쳤어요.

5학년 1반 연극은 큰 박수를 받으며 끝났어요. 아무도 꼴지들이 주인공이라서 연극을 망쳤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지요.

배불뚝이 선생님은 또 큰소리 쳤어요. 위문 공연을 간다고요.

“다음 주엔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이는 노인정에 가서 공연을 할 것이야!”*****

 

 

동화가 실린 <월간문학> 2014. 4월호(5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