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시와 동시

동화 / 할아버지와 동전 한 닢 // 김현우

남전 南田 2015. 4. 1. 10:55

 

 

동화

 

할아버지와 동전 한 닢

김현우

 

 

 

 

얼마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 다녀오던 동이 할아버지가 길가에서 ‘빤짝!’ 하고 빛나는 것이 눈에 뜨였어요. 무심코 뭔가 바라보니 5백 원짜리 동전 한 닢이었습니다.

“어? 저기 돈이 떨어졌군.”

혼자서 중얼거리며,

"저걸 떨어뜨린 임자가 곧 나타나 주워가겠지."

하고 지나가려다 잠간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았지요. 그런데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500원 짜리 동전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거나 말거나 통 관심이 없는 듯 했어요. 그냥 바쁘게 걸어가거나 아예 발밑을 내려다보지 않았어요.

동이 할아버지는 정말 주인이 없는 동전이다 싶어 그것을 주웠어요. 할아버지는 동전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먼지를 닦아 외투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생각했지요.

—- 5백 원짜리 한 닢으로 무얼 살 수 있을까? 빨갛고 매운 떡볶이 한 개 사서 동이에게 가져다줄까? 아니야! 어묵 한 꼬지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사탕이나 과자를 사자면 5백 원짜리 한 닢을 더 보내야 할 걸?

하고 할아버지는 즐거운 궁리를 했어요.

5백 원 동전 하나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살 수 있을까?

—- 아하! 며칠 전 역 광장에 갔더니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들렸지? 요걸 거기다 갖다 넣을까?

 

 

그러다 문득 얼마 전에 동이에게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동이야! 길에서 돈이나 물건을 주우면 어떡할래?"

"어쩌기는! 그냥 맛좋은 것 사 먹으면 그만이죠. 뭐."

"아냐! 주인을 찾아 줘야지. 잃은 물건이나 돈을 슬쩍하면 그건 도둑이지."

"누가 흘렸는지 잃어버렸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주인을 찾아 줘요?"

"그야 파출소 경찰 아저씨에게 가져가 신고해야지."

"친구들은 돈을 주우면 재수가 참 좋구나! 하고 마음대로 써도 된다 그러던데요?"

"아니야! 경찰서에 가져다주는 게 맞아!"

돈을 길에서 주우면 꼭 경찰에게 가져가 주인을 찾게 해 줘야 한다고 손자에게 말했었지요.

 

 

그런 할아버지가 주운 돈으로 무엇을 살까? 어떻게 쓸까? 하고 궁리하다니!

할아버지는 동전을 줍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았고 들키지 않았지만 그만 부끄러워졌어요. 만원 자리 지폐 같은 큰돈이거나 값비싼 물건이 아니었지만 동이에게 군것질할 떡볶이를 사다 주겠다니! 할아버지는 스스로 혀를 찼지요.

할아버지는 지하철 입구에 엎드려 있을 거지를 생각했어요. 거지가 이 근처에 있다면 달려가서 동냥 그릇에 던져 넣으면 될 듯했습니다. 그런데 구걸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요.

—- 그래. 겨우 단돈 500원짜리 한 닢이지만 파출소가 가까우니 거기로 가져가 신고하자. 경찰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파출소가 바로 저쪽 골목 모퉁이에 있었거든요.

사실 5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달랑 들고 파출소를 찾아가자니 조금 싱거운 일이다 싶었지요. 그렇지만 손자 동이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으려면 비록 작은 동전 하나이지만 신고해야 될 듯했어요.

파출소로 가는 모퉁이를 돌아 걸어가는데 호주머니 속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어요. 뭔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면서 차차 무거워졌어요. 아니 바람이 불어와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서 불룩하게 만드는 듯 했어요. 정말 무언가 들어차서 아까보다 무거워진 걸 느꼈어요. 할아버지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외투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봤어요.

—- 이거! 웬 일이야?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할아버지는 이상한 느낌이 손에 잡히자 고개를 갸웃 둥했지요. 호주머니 속에는 달랑 500원 동전 한 닢이 있어야 될 텐데 이상하게도 동전 여러 개가 있는 듯 했습니다.

—- 이상하네? 내 호주머니에 동전이 여러 개가 들어 있었나?

손으로 호주머니 안을 주물럭주물럭 뒤졌더니 동전이 아주 많이 잡히지 않겠어요? 묵직했어요.

—- 내게 동전이 이렇게 많이 있을 리가 없는데?

할아버지는 하도 이상해서 손에 잡히는 동전 하나를 꺼내 보았어요. 그러고는 또 깜짝 놀랐습니다. 손에 들린 것이 노랗게 빤짝거리는 게 아닙니까? 5백 원짜리는 하얀 색인데 말예요.

—- 이, 이거 뭐야? 금이 아니야? 분명히 5백 원짜리는 하얀 것인데? 왜 노란 금화가 들었을까?

할아버지는 화들짝 놀라서 호주머니 속의 동전을 여러 개 꺼내보았지요. 신기하게도 모두 노랗게 빛나는 금으로 만든 돈이었지요.

—- 정말 파출소로 가야겠다.

할아버지는 걸음을 빨리해서 파출소 문을 밀고 들어섰지요.

“어서 오세요. 어르신. 뭘 도와 드릴까요?”

경찰 아저씨가 친절하게 맞았어요.

“다름이 아니라 금방 저기 앞길에서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웠거든요. 그런데…….”

“아하! 어르신. 동전 하나 주어서 가져왔어요? 그런 것은 그냥 가지고 계시다가 불상한 사람 만나면 동냥 통에 던져 넣으실 것이지. 하하하.”

“아, 글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지 뭐요? 그래서 온 거라오.”

“이상한 일이라뇨? 5백 원짜리 동전 주인이라도 나타나셨어요?”

“그게 아니라…… 5백 원짜리가 이렇게 변해 버렸단 말이요.”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금화로 변한 5백 원짜리 동전을 꺼내 보였습니다. 경찰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펼쳐 보이는 손바닥을 내려 보다가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어요.

“하, 할아버지! 이게 은행잎 아닙니까?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가지고……. 장난하시는 겁니까? 길가 가로수에 달렸던 은행잎이군요.”

크게 웃으며 하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할아버지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어요.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분명히 금화였는데?”

“아이고! 할아버지 장난치시지 마시고 돌아가세요. 뒤에 또 5백 원짜리 동전을 주우시거든 동냥이나 하세요.”

할아버지는 기가 막혀 외투 호주머니에 든 다른 금화를 몇 개 꺼냈어요. 그런데 꺼내서 경찰아저씨에게 보이자마자 금화는 온데간데없고 모두 은행잎으로 변해버리는 거예요.

—- 허어! 이런 낭패가 있나!

할아버지는 경찰 아저씨에게 더 말도 못하고 되돌아 파출소를 나오고 말았어요. 밖으로 나와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은행잎이 아니라 금화가 손에 잡히는 거 아녜요? 꺼내보니 확실하게 금화였어요.

—- 허어! 내가 치매에 걸렸나?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몇 번이나 금화를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넣었다 했어요. 틀림없이 은행잎이 아니라 금화였어요.

—- 당장 집에 가서 돼지 저금통을 털어서 자선냄비에 갖다 넣어야겠다. 금화와 함께. 설마 거기서는 금화가 은행잎으로 바뀌지 않겠지.

할아버지는 현관에 들어서며 동이를 불렀어요.

“동이야! 할아버지하고 역 광장에 가자! 먼저 할아버지 방에 가서 돼지 저금통 꺼내 오너라.”

“돼지 저금통은 왜요?”

“오늘 그걸 깨서 자선냄비에 넣자.”

“어. 할아버지. 전에 그걸 우리 용돈으로 나중에 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용돈은 따로 주마. 이번에는 불우이웃돕기를 해 보자꾸나. 그 안에 든 동전을 담을 비닐봉지 함께 가져 오너라.”

동이도 신이 났어요. 할아버지와 함께 역 광장으로 나가 ‘딸랑딸랑!’ 종소리가 나는 자선냄비 앞에 가서 돈을 넣을 것을 생각하니 말예요. 할아버지는 돼지 저금통 밑구멍을 열어 신문지 위에 동전을 ‘주르륵!‘ 부었어요. 500원, 100원. 50원, 10원짜리 동전이 아주 많이 쏟아졌어요. 동전만 있는 게 아니라 천 원짜리 종이돈도 여러 장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외투 호주머니에서 뭔가 꺼내서 저금통의 돈 위에 놓았어요. 동이가 보니 노랗게 빛나는 돈이 여러 개였어요.

“할아버지! 이게 뭐예요? 무슨 돈이 노랗죠?”

“이건 금으로 만든 거란다.”

“그럼, 금화네요. 예전 해적들이 탐을 내던 거 말예요. 보물 상자 안에 가득 들었던…….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디서 이런 것 생겼어요?”

“설명하자면 너도 이해 못할 거다. 우리 이걸 저금통 동전과 섞어서 자선냄비에 넣자꾸나.”

“야아! 신나요. 나중에 자선냄비를 열어보고 금화를 발견하면 사람들이 놀랄 거예요.”

“암, 그렇고말고!”

동이와 할아버지는 비닐봉지에 동전과 금화를 뒤섞어서 담았습니다.

그리고는 역 광장으로 나갔어요. “딸랑딸랑!” 군복을 입고 멋진 모자를 쓴 아저씨가 종을 흔들고 있었어요.

“동이 네가 자선냄비에 돈을 넣으렴.”

“예!”

동이는 신이 나서 동전과 금화가 든 비닐봉지를 자선냄비 구멍에다 쏟아 부었어요.

“감사합니다.”

종을 흔들고 있던 아저씨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어요. 동이와 할아버지도,

“추운날 수고 많습니다.”

하고 함께 고개를 숙였어요.

할아버지는 돌아서서 오며 노란 금화들이 은행잎으로 바뀌지 않고 좋은 일에 쓰이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김현우

경남 창녕 출생. 1964년 <학원> 장편소설 당선. 동화집 <산메아리> <도깨비동물원> 외, 장편소설 <하늘에 기를 올려라> 외 다수. 한국문협,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원, 경남문학관 사무국장 역임, 경남아동문학상, 경남도문화상, 황우문학상 등 수상.

 

 

 

동화가 실린 <PEN문학> 2015년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