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시와 동시

[스크랩] 김현우 동화/ 토끼 할배의 코

남전 南田 2017. 6. 16. 09:23

 

 

 

김현우 동화작가가

『PEN문학』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발행)

2017. 5·6월호(vol.137)에

동화 <토끼 할배의 코>

를 발표했다.

 

 

동화

토끼 할배의 코

김현우

 

 

 

할아버지?”

으응?”

할아버지를 할머니께서 왜 토끼할배라 불러요?”

으흠!”

저도 할아버지를 토끼할배라 불러도 돼요?”

…….”

할아버지는 눈을 부릅뜨며 무서운 표정으로 만수를 바라봅니다. 만수를 그러는 할아버지가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그냥 재미가 나니까요. 할아버지는 대답이 궁할 때는 흔히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듯했으니까요.

만수는 부릅뜬 할아버지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어요. 그리고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어어? 뭘 올려다 봐?”

아닌데?”

뭐가 아니란 말이냐?”

그림책을 보면 토끼 눈은 빨갛게 그려져 있었는데 할아버지 눈은 빨갛게 보이지 않았거든요.

―― 그럼……. 귀는? 토끼 귀는 기다랗게 위로 솟아올라 있잖아.

만수는 이번에는 할아버지 귀를 유심히 살펴보았지요. 할머니의 말씀처럼 할아버지가 토끼를 닮았다면 귀가 쭝긋 하고 길게 위로 솟아올라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길게 솟아오르지도 않았고 귓불만 조금 길게 아래로 쳐진 것뿐이었어요.

아닌데?”

허어! 만수 이놈. 하루 이틀 할아버지 얼굴을 본 것도 아닌데 뭐가 아니란 말이냐?”

할아버지. 토끼할배라면 할아버지 눈이 빨갛든지 아니면 귀가 길고 쭝긋 솟아야 되지 않아요?”

어허!”

그런데 아니네요?”

눈도 귀도 토끼를 닮지 않았으니 뭐가 닮았을까? 하고 만수는 할아버지 얼굴을 바라봅니다. 눈도 아니고, 그 위 이마도 아니고, 귀도 아니고…… 그럼 코가 아닐까? 입이 닮았나? 수염은 없으니 그것도 아니고. 그런데 만수는 토끼를 자세히 본 적이 없어 토끼의 코나 입이 어떻게 생겼는지 통 알 수가 없었어요. ‘어쩌면 토끼코를 닮아 할머니가 토끼할배라 했는지도 몰라?’ 하고 다시 할아버지 코를 살폈어요.

허어! 만수 너 왜 그러니? 내 코에 뭐가 묻었어? 아침에 세수를 깨끗하게 했어.”

할아버지. 토끼 코는 어떻게 생겼어요? 할아버지 코처럼 뭉텅하게 생겼나요?”

할아버지는 만수의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웃으면서 대답을 했어요.

만수 너 토끼를 키우고 싶은 모양이구나. 갑자기 토끼 타령을 하니. 이번 장날에 읍내에 나가면 토끼를 한 쌍 사 오마. 털이 하얀 게 좋을까 아니면 갈색이 좋을까?”

그게 아니란 말예요. 할머니가 왜 토끼할배라 부르는지 그게 궁금하단 말예요.”

그제야 할아버지는 만수가 왜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면서 물었는지 알았다는 듯 웃었어요.

그건 네 할머니께 가서 물어 봐야지. 내가 어찌 알겠니? 나도 잘 모르겠다.”

여러번 물어도 할아버지가 정답을 말해주시지 않을 듯해서 만수는 쪼르르 할머니에게 달려갔어요. 할머니는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고 계셨어요. 만수가 급하게 방안으로 급히 달려와 넘어질 듯하면서 퍼질러 앉자 깜짝 놀라 쳐다보았어요.

좀 뛰어 다니지 말아요. 사내대장부는 젊잖게, 힘차게 걸어야지. 촐랑촐랑 거리면 안 된단다.”

할머니께 급히 물어볼게 있어서 그래요.”

연속극이 한창 재미나는데 방해하려고 그러지?”

아녜요. 할머니는 왜 할아버지를 토끼할배라 불러요? 할아버지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니까 눈도 토끼처럼 빨갛지 않구요, 귀도 쭝긋 솟지도 않았던데요? 혹시 코가 토끼 닮았나요?”

아니? 얘가 무슨 소리냐? 할아버지 코가 토기코란 말이냐?”

, 귀가 아니면 그 다음은 코 아니에요?”

할머니는 그제야 만수가 왜 그러는지 알았다는 듯 한참이나 웃었어요.

, 별의별 것이 궁금한 모양이구나. 토끼를 키우고 싶어 그러지? 할아버지 더러 요번 장날에 토끼를 사오라고 하자.”

어어! 그게 아니예요. 정말 왜 토끼할배라 부르는지 그게 궁금하단 말예요.”

할머니는 만수가 고개를 흔들어대자 다시 웃다가 얘기를 해 주었어요.

할아버지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아는 노래, 즐겨 부르는 노래가 뭔 줄 알아?”

만수는 고개를 흔들었어요. 할아버지가 노래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없거든요. 생일축하파티 때 촛불을 켜고 케이크를 자르면서 가족들이 모두 생일 축하합니다…….”하고 축하노래를 부를 때 말고는.

네 할아버지는 친구들하고 어디 여행을 가면 버스 안에서 꼭 부르는 노래가 산토끼란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 동요 산토끼 말예요?”

그래. 할아버지 고향이 바로 산토끼를 작사 작곡한 이일래 선생님이 근무했던 이방초등학교 근처이거든.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 노래만 불러요. 고향 노래라고.”

아하! 그런 깊은 뜻이!”

그 바람에 할아버지 친구들이 토끼할배라 그러지. 코와 상관없어요.”

할머니 얘기를 다 듣고는 다시 할아버지 곁으로 달려갔어요. 할아버지는 텃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어요. 만수는 할머니로부터 들은 얘기를 신나게 다 했어요.

할아버지! 왜 토끼할배라 부르는지 이젠 알았어요. 할아버지는 산토끼가 아니라 집토끼여서 그렇게 부른데요. 할머니께서.”

그때 할아버지는 김매던 호미를 놓으면서 웃었어요. 그러면서 엉뚱한 질문을 했어요.

만수 넌 무슨 띠지? 범띠던가? 말띠던가?”

만수는 영문을 몰라 하다가,

전 말띠예요.”

하고 대답했어요.

맞다. 넌 말띠고 난 토끼띠란다. 그래서 토끼할배라 그러지! 산토끼 노래만 부른다고? 산토끼 동요를 좋아하기는 하지. 그렇지만 그게 아니야.”

할아버지의 고집에 만수는 그만 할 말을 잊었어요. 그런데 언뜻 바라보니 할아버지 코에 흙이 한 덩이 묻어 있었어요. 아마 김매던 손으로 코를 만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웃었지요.

허어! 또 내 얼굴을 보냐? 토끼 닮았나 싶어서? 만수야!”

할아버지 코에! 헤에!”

만수는 더욱 크게 웃고 말았어요.

 

며칠 후, 학교에 다녀오니까 앞마당 매실나무 그늘에 전에 못 보던 큰 상자가 놓여있었어요.

만수야! 네가 토끼타령을 하기에 장에 가서 토끼 사 왔다. 얼마나 귀엽고 예쁜지 봐.”

할아버지 말씀에 토끼집을 들여다보니 정말 하얀 털에 빨간 눈을 지닌 토끼 한 쌍이 만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어요.

****

 

* 약력 :김현우

경남 창녕 출생. 1964<학원> 장편소년소설 당선. 동화집 <산 메아리> <할아버지를 위하여> <도깨비동물원> 등 다수, 장편소설 <하늘에 기를 올려라> 소설집 <그늘의 종언> 외 다수. 경남아동문학상, 황우문학상 수상, 한국아동문인학인협회 회원, 경남아동문학회 고문

 

 

 

 

출처 : 창녕문협
글쓴이 : 남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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