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군지명사/남지읍

[스크랩] 용화산하 동범록(龍華山下同泛錄)

남전 南田 2019. 1. 2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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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05/21 김인교 기자

 

 

 

  함안의 절경 반구정에는
임진왜란의 의병정신이 살아있다

`용화산하동범지도`… 의병장들 모여 뱃놀이 즐긴 사연 간직
 

 
   
 

 

 
 
낙동강과 남강이 합쳐서 용화산의 산뿌리를 휘감아 돌아가는 곳에 정자가 둘 있으니 하나는 합강정이요, 하나는 반구정이다.
 

반구정은 대산면 장암리 333번지에 소재하는 정자로 한여름 강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아름다워 악양루의 석양과 함께 함안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꼽힌다.
 

1557년 8월 11일 가야읍 검암리에서 태어나 의병장으로 활약한 두암(斗巖) 조방이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낙동강가의 웃개나루(上浦)에 있었는데 허물어져 1866년 현 위치로 옮겼으며 문장으로 유명한 성재 허전이 기문을 지었다.
 

조방은 형 조탄과 함께 1592년 4월 22일 곽재우 장군과 창의했으며 정암나루와 남강과 낙동강이 합치는 기강 등지에서 수많은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는 금오산성의 적을 격퇴하고 화왕산성을 지킨 인물이다.
 

용화산의 중턱으로 옛날 청송사가 있던 곳에 자리한 반구정은 확 트인 시야로 남지들판과 낙동강의 굽이치는 절경을 조망할 수 있어 항상 사진작가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이 반구정에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사회가 안정을 찾을 무렵 옛날 의병장으로 활약한 사람들이 모여서 뱃놀이를 즐긴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데 바로 용화산하동범록(龍華山下同泛錄)과 용화산하동범지도(龍華山下同泛之圖)이다.
 

1586년부터 1588년까지 함안군수를 지내며 함주지를 지은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는 1607년 정월에 함안군 대산면에서 남지로 건너가는 도흥나루에 내려온다.
 

군수로 지낼 때 돌을 구해 옮기던 중 강가에 뒀는데 잃어버려서 잠수부를 불러 그 돌을 찾고자 한 것이다.
 

정구가 내려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과 함께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1552~1617)의 창암정에서 하루 밤을 자고 배를 타고 도흥나루로 오는데 함안군수였던 박충후(朴忠後, 1605~1607년 재임, 선정비를 세웠음, 함주지 기록)도 마중을 나왔다.
 

또 합강정에서 이 소식을 들은 입암(立) 조식(趙埴)이 금라전신록을 지은 아들 간송당(澗松堂) 조임도(趙任道)에게 연락해 조임도가 장춘사에서 책을 읽다가 길을 나서 아버지와 함께 삼촌 두암(斗巖) 조방이 지내는 반구정에서 자고 다음날인 정월 28일 술과 안주거리를 마련한 세 사람이 배를 타고 도흥나루로 정구를 찾아간다.
 

이날 의병장 신초를 비롯해 남명 조식의 문하로 곽재우와 함께 의병에 참여한 함안의 이명호, 박진영, 이명경과 따로 의병활동을 한 이길, 이숙, 이명념, 이명각, 이명여 등 함안사람 14인, 영산 10인, 창녕 1인 등 총 35명이 모였기에 배를 타고 우포를 향해 십리 길의 뱃놀이를 즐기는데 조식, 조장, 조임도가 편주에 술과 안주를 싣고 뒤따랐다.
 

자리가 익었을 때 정구가 이를 기록해 두자고 제안해 이명호가 붓을 들고 먼저 정구, 곽재우, 박충후, 장현광 네 명의 이름과 자(字), 호(號), 생년, 거주지, 본관 등을 차례대로 적고는 다른 사람은 나이순대로 35명의 이름을 적었다.
 

정구가 직접 시켜 용화산하동범록이라고 제목을 적었는데 한 부는 정구가 가져가고 처음에 만든 초안을 안정(安)이 가져갔는데 14년 후에 조임도가 이를 보고 싶어 하자 안정이 엮어 둔 것을 줬다. 조임도가 감격해 동범록이 만들어진 사연과 경과를 적고 또 나중에 동범록을 보면서 느낀 점 등을 추가했다.
 

140여년 후 박진영 장군의 증손자인 박상절(朴尙節)이 조임도의 고손자인 조홍엽을 방문했을 때 이를 보여줌에 다시 그 감회를 적고 당시의 일과 그 일대의 장관을 그린 용화산하동범지도의 여덟 그림을 그리고 각 그림마다 시를 붙여 추록했다.
 

처음에는 단지 35명의 이름밖에 없었지만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거치며 나라를 구한 당대의 의병장이자 학자들이 모여 뱃놀이를 한 뜻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하니 실로 아름다운 일이라 하겠다.
 

결국 돌은 찾지 못했지만 용화산하동범록과 동범지도가 남겨진 것이 돌을 찾은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용화산하동범지도(龍華山下同泛之圖)`






詩曰 시 왈
第一龍華獄 첫째는 용화산이라
枕碧流 푸르디 푸른 낙동강물
흘러
歟師友會 아! 빛났던 사우회여
吾祖昔同遊 나의 선조 옛날에
함께 했네
右(그림 설명)龍華勝集
용화산 아래 뱃놀이하러 모인 모습


第二靑松寺 둘째는 청송사라
鍾聲薄暮廻 이른 저녁 종소리
울리네
收心一妙法 한 구절 불경소리     

에 마음을 거두고
傳得紫陽來 전설 속의 신선이
      되도다.
右 靑松暮磬

청송사의 저녁 종소리




第三道興步 셋째는 도흥 나루라
嘉號待賢 선생의 하명을 군현
     이 기다리네
可惜琬琰石 아깝도다 옥돌이여
深藏何處邊 어느 곳에 깊이 묻
      혔는가
右 道興搜石

도흥나루에서 돌을 찾는 모습




第四奈內忖 넷째는 내내촌이라
淸幽多佳賞 맑고 그윽한 경치
      즐거이 바라보네
維舟翔鳳下 상봉대 아래 배 매
      어두고
列坐高臺上 높은 대에 앉아 바
      라보네
右 奈內淸賞

내내의 맑은 경치를 바라보는 모습






第五景釀臺 다섯째는 경양대라
天然錦屛開 비단병풍처럼 경
      치 펼쳐져
且可留心者 다시 마음에 쏠리어
長年莫催 어르신들 소홀하지     

않았도다
右 景釀奇

경양대의 기묘함을주시하는 모습




第六是藕浦 여섯째는 우포라
僊舟瞥過津 배가 춤추며 잠깐
      사이 나루를 지나고
催帆呼隔手 서로 멀어짐에 손
      짓과 소리로 부르니
江上伴鷗人

사람이 강 위에서 기러기 쌍이 되었네




第七平沙西 일곱째는 강 서쪽
      의 넓은 모래밭이라
行行雁字斜 기러기 비스듬히
      줄지어 날아가니
伊川看兎理 정이천이 달에 토
      끼가 산다고 했는데
理會此間過 달이 떠오르는 바
      로 그 시간이 지나
      가네
右平沙落雁

모래밭에 기러기가 흩어지는 모습




第八滄巖舍 여덟째는 창암사라
德星耀此中 무리 중 한강, 여
      헌이 큰 별처럼 빛
      나니
蘭舟將欲發 아름다운 배가 곧
      출발하려 하므로
携手主人翁 망우당이 손을 이
      끌었네
右滄巖同舟

창암사에서 함께 배를 타는 모습


(창원일보 에서 복사해옴)





출처 : 비화가야 사람들
글쓴이 : 남전南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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