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시와 동시

김현우 동화 / 돌배영감 손자와 누릉이

남전 南田 2019. 3. 20. 09:20

김현우 동화작가가 <아동문예> 2019년 3.4월호에

동화 "돌배영감 손자와 누릉이>를 발표했다.







  동화

 

돌배영감 손자와 누릉이

 

김 현 우

 

야아! 이젠 송아지가 아니라 덩치 큰 소가 되었네? 일 년 사이에.”

같은 마을 이웃에 사는 친구 종호가 정도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주 와서 송아지를 봤으면서 하는 말인데도 정도는 자랑스레 맞장구쳤다.

봐라. 소는 잘 먹이면 잘 크는 거야. 할아버지가 그러셨어. 작년 우시장에서 송아지를 사올 때 여러 마리 중에서 누릉이 얠 고르면서 그러셨어. 사람이나 소나 어릴 때 잘 살펴보면 요놈이 커서 일을 잘 할까? 아니면 잘 먹고 살이 많이 찔까? 요놈이 건강할까? 알 수 있데요.”

정도는 누릉이 뿔과 뿔 사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소는 정도가 하는 대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좋아하는 듯 코를 실룩거렸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골라골라 누릉이를 사 왔단 말이네.”

처음에 난 얘를 누렁이라 불렀어. 온 몸에 짙은 노란 털이 덮였으니까 누렁이인데 할아버지가 꼭 누릉이라 발음을 하기에 그만 나도 따라 부르게 됐어.”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돌배영감이 손자 외로울까봐 송아지를 선물한 거래. 돌아가신 네 어머니 대신 누릉이라며?”

정도는 어깨를 으쓱하며 또 자랑스레 말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소를 많이 키우는 할아버지 손자 아니야? 소 전문가께서 이것저것 가르쳐 주시고 난 열심히 일했으니 우리 누릉이가 이렇게 컸지. 엄마 생각이 나면 누릉이 머리랑 등이랑 쓸어주지. 그러면 어느새 나도 엄마 생각을 않게 돼.”

그래? 손자 사랑은 할아버지가 최고였네.”

지난 해 여름방학 때는 오후가 되면 냇가 풀밭으로 얘를 몰고 나가 먹였어. 또 그 더운 날씨에도 땀을 흘리면서 맛좋은 풀을 손수레 가득 베어오기도 했는걸. 지난겨울에는 소죽도 끓여 먹였다? 내가 바쁘니까 엄마 생각도 자주 않게 됐어.”

역시 돌배영감 손자가 다르구나. 우리 아버지도 돼지를 수 천 마리 키우지만 난 돼지우리 근처에도 가기도 싫어! 냄새가 지독하거든. 멀리까지 냄새가 풍겨. 그런데 넌 소똥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송아지하고 즐겁게 지내다니! 역시 돌배영감 손자답구나.”

! 돌배영감이 뭐고? 우리 할아버지 들으시면 당장 네 다리가 부러질걸.”

흐흐흐! 동네 사람들 다아 돌배영감이라고 부르는데!”

어허!”

정도 할아버지를 마을 사람들은 돌배영감이라 부른다. 어른들이야 돌배영감이라 불러도 괜찮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불렀다간 똑 부러지게 혼이 난다.

할아버지 이름이 동배인데도 돌배란 별명으로 불렸다.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고 몸집이 차돌처럼 생겼다고 흉을 본 것이었다. 돌배영감은 지금 여러 해째 소를 키우고 있었다. 창곡마을에서 뚝 떨어진 배미골이란 골짜기에서. 소 키우는 전문가여서 한두 마리가 아니라 무려 쉰 마리가 넘게, 어떨 때는 백 마리 쯤 먹이기도 하는데 축사도 제법 컸다. 그 이웃에 종호 아버지의 돼지축사도 있었다. 그래서 정도는 이웃집 아이 종호와 친하게 되었다.

 

정도는 지난해 할아버지 집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혼자가 된 아버지는 정도와 여동생 연지를 고향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2학년 아들딸이었지만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생 연지가 수원의 외갓집으로 가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정도 혼자 할아버지 집으로 오게 되어 세 식구가 이리저리 헤어지게 되었다.

아버지와 헤어져 정도가 배미골로 왔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기가 막혔다. 며느리가 갑자기 죽은 것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혼자되고서 손자 손녀와 한 집에서 같이 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으니 너무나 딱하고 걱정되었다.

정도가 전학을 한 초등학교는 배미골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매일 학교의 통학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또 서울 근처에 살다 시골로 왔으니 친한 친구가 있을 턱이 없었다.

새로 친구를 사귀어야 할 텐데…… 친구가 있어야 정도가 마음을 다잡고 지낼 거 아닌가?

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걱정을 했다.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으니 외롭게 된 손자가 풀이 죽어 지낼 것이 틀림없었다. 마침 돌배영감 축사 근처에 돼지를 아주 많이 키우는 황사장의 아들 종호가 정도와 같은 학년이었다. 학교버스를 같이 타고 다니는 아이였다.

얘야. 종호야. 정도하고 잘 지내 거라. 학교에 가거든 친구들과 따돌림인가 뭔가 그런 거 받지 않도록! 알았지?”

우선 종호에게 손자를 부탁한 다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또 의논을 하였다.

학교 갔다 오면 어딘가 정을 붙이고 지낼 수 있게 해야 할 텐데. 뭐 좋은 생각 없어요?”

어미를 잃은 슬픔을 잊게 할 방법 말이죠?”

그래요.”

개나 고양이 같은 거 사 줘요. 저기 축사 지키는 사납고 몸집이 큰 개 말고…… 작고 예쁜 참한 강아지 말예요.”

우리 집에 개가 두 마리나 있는데 또 강아지라니?”

할머니가 강아지를 사 주자고 했지만 돌배영감의 생각은 달랐다. 농촌에 살게 됐으니 이곳과 친해 질 수 있는 뭔가를 손자에게 해주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송아지를 생각해냈다.

옳지! 송아지를 키우게 하자.

돌배영감은 어느 날 트럭에 정도를 태우고 갔다. 소를 사고파는 시장은 창곡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큰 동네에 있었다.

예전에는 가축시장이 가까이 있었지. 그때는 소뿐만 아니라 돼지, 염소, , 토끼, 닭 같은 집에서 키우는 것들은 장날에 다 가져와서 사고팔았지. 요즘은 우리 동네 백리 안에 소를 사고파는 시장이 딱 여기 한 곳뿐이다.”

강아지나 토끼 같은 건 살 수 없어요?”

없지. 어쩌다 강아지는 보이기는 하지만 드물어. 오늘 네게 송아지 한 마리 사 줄까 해.”

할아버지의 말씀에 정도는 깜짝 놀랐다.

송아지요?”

. 너하고 친구가 될 참한 송아지를 사 주려고 해. 네 할머니는 예쁜 강아지를 사 주라고 하지만 강아지 보다는 송아지가 더 좋을 거야. 탈 없이 잘 키워 큰 소가 되면 참 보기도 좋고 큰돈도 만지게 되지.”

아니! 할아버지. 그렇게 큰 송아지를 제가 어떻게 키워요? 할아버지 축사에 소가 많이 있으면서요?”

그 소들은 다 남의 것이란다. 소 임자가 따로 있어. 나는 소를 키워주기만 하고 수고비를 받지. 송아지를 사와서 한 2년 동안 몸무게가 많이 나가도록 살찌게 해서 큰 소로 키우기만 하면 되지.”

그럼, 할아버지 소는 한 마리도 없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우리 손자에게 송아지를 사 주는 거야. 그럼 우리 소가 생기는 게 아닌가. 오랜 만에 우리 소를 정도 네가 키우는 거지. 하하하.”

할아버지 말씀에 정도는 어이가 없었다. 송아지를 키우자면 사료도 제 때 먹여야 하고 마구간 청소도 해야 할 것이다. 또 소와 가까이 지내야 될 듯했다.

할아버지를 도와 일하는 베트남에서 온 밍씨 아저씨를 보면 매일 일하느라 쉴 틈이 없어 보였는데? 그걸 내가 해야 돼? 아무리 송아지 한 마리라 하더라도…….

정도는 처음 고개를 내저었다. 종호를 따라다니며 놀기도 바쁜데 송아지를 키우다니.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할아버지! 송아지 난 싫어요. 차라리 강아지나 토끼 같은 거 사 주세요.”

? 송아지 키우는 것 힘들 거 하나도 없어. 내가 다 가르쳐 줄 테니 넌 부지런히 송아지 털이 더럽지 않도록 쓸어주고 닦아주기만 하면 돼. 민씨에게 말해서 짚이나 사료를 제때 주도록 하고 또 마구간 청소도 민씨가 다 해 줄 거야.”

할아버지는 밍씨를 꼭 민씨라 불렀다. 베트남 성도 한국에서는 한국 성을 따라야 한다면 밍씨를 민씨로 발음하기 편하게 불렀다.

그래도 싫어요. 학교도 가야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송아지를 언제 어떻게 키워요?”

허어! 송아지가 하루하루 무럭무럭 크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아니? 내가 소를 먹이는 것도 다아 그런 재미 때문이란다.”

할아버지는 털이 누런 송아지를 골라 사서 트럭에 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어떻게 송아지를 키울지 여러 가지 가르쳐 주었다. 또 일꾼 밍씨에게 돌봐 줄 것도 부탁했다. 엉겁결에 송아지를 키우게 된 정도는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말씀을 따르게 되었다.

 

1년이 후딱 지나갔다.

누릉이는 성질이 순해서 잘 먹고 늘 우물우물 되새김질도 해서 덩치가 점점 커졌다. 처음에는 밍씨 아저씨가 볏짚과 사료도 가져다주고 바닥에 깔 톱밥이나 왕겨도 챙겨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정도에게 그 일을 미뤄 버렸다. 물론 바닥 청소도 정도에게 하라고도 했다.

난 바빠! 난 바빠!”

밍씨의 어눌한 한국말에 정도는 처음에는 약이 올랐지만 자연히 그 일을 혼자 하게 되었다. 점점 누릉이에게 정이 가니 돌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먹성이 좋은 누릉이가 배가 고플까봐 아침이면 마구간으로 달려가고 학교 갔다 오면 또 볏짚과 사료를 퍼서 갖다 먹였다. 몸에 똥이라도 묻을까 자주 빗질도 하고 바닥 청소도 했다.

잘 해. 잘 해. 소는 많이 먹어야 해.”

밍씨가 그러는 정도를 칭찬했고 할아버지도 흐뭇해했다. 할머니는,

정도가 죽은 제 어미를 잊고 지내는 듯해서 다행이에요.” 하고 안심하기도 했다.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오는 어느 날,

정도 아버지가 동생 연지를 데리고 고향 창곡으로 돌아 왔다. 세 식구가 한 집에 모여 살아야 한다면서.

그래, 잘 됐다. 애미도 없는 애들이 애비까지 떨어져 살아서야 안 되지.”

이제 우리 같이 농사도 짓고 소도 키우며 함께 살자꾸나. 과수원 일도 해야 하고 모심기도 해야 하는데 일손이 늘 부족했는데 얼마나 잘 된 일이냐?”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에 정도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다.

저도 고향에 돌아오면서 아버지를 도와 농사지을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도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자라면 참 좋지요.”

정도는 누릉이 곁에 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속삭였다.

누릉아! 우리 세 식구 함께 살게 되었다. 너도 참 좋지?”****



동화가 실린 아동문예 2019.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