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남전과 함께
세상얘기

[스크랩] 김현우 수필 / 동네 이발관과 목욕탕

by 남전 南田 2012. 2. 23.

 

우리 동네

 

수필

동네 이발관과 목욕탕

김현우

 

 

서울인근 도시에 살고 있는 아들과 딸네에 가면 두 가지 난처한 일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자식들이 살고 있는 그곳은 10여 년 전 개발되어 조성된 대단위 아파트촌인데 양 사방 둘러보면 키가 훌쩍 자란 고층건물들이 사람을 압도하며 서있다. 촌사람이 주눅이 들 정도로 그 높은 건물들은 공중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올려다보고 있는 나 자신이 흔들이는 거 아닌가? 쳐다보는 시야에는 하늘도 빠금하게 있건만 무엇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아파트촌을 조금 벗어나면 꽤 큰 규모의 상가가 있고, 거기엔 슈퍼, 음식점, 카페, 노래방 등등이 손님을 기다리며 문을 열어놓고 성업 중이었다. 호텔 모텔, 나이트클럽, 병원, 전자기기 대리점, “공짜! 공짜!”를 써 붙인 휴대폰 대리점도 줄지어 섰고 종탑이 솟은 교회도 이곳저곳에 번듯하게 섰다.

그런데 내가 찾으려고 하는 게 없다.

바로 이발관과 목욕탕. 그것들이 그 도시에서는 실종되었다.

목욕도 못하고 이발도 하기 어렵게 되어 그만 아파트로 돌아와 며느리에게 물었다.

“아이고! 아버님. 목욕은 보통 집에서 샤워하는 것으로, 이발은 요새 미용실에 가서 커트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친절한 우리 며느리가 시원스레 알려준다.

“미용실에서 거 면도도 해 주냐? 머리도 빡빡 시원하게 씻어주고?”

참 늙으면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다더니 내가 그걸 물어놓고도 머쓱해서 더 대답을 듣지 않고 말았지만 갑자기 나는 내가 사는 우리 동네 골목 이발관과 목욕탕이 그리워졌다.

사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변하고 사라지는 것이 어디 한둘인가? 그 중에 이발관과 목욕탕이 끼여 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당황해진다.

동네 골목 이발관은 우선 가까워서 좋다. 이쪽 골목을 가도 이발관이 있고 저쪽 골목으로 가도 있다. 입맛대로 골라 다닐 수 있다. 요쪽이 솜씨가 좀 그렇다 싶으면 저쪽으로 가면 되니 참 편하다. 단골이면 더더욱 좋다.

집에서 입던 허름한 옷차림 그대로 헌 신발을 구겨 신고 찍찍 끌며 봉두난발 부스스한 머리를 그대로 둔 채 붉고 푸르고 흰색이 그려진 등이 돌고 있는 허름한 점방 문짝을 밀고 들어가면 5, 60대의 이발사는 반갑게 맞아주는 그런 풍경이라야 그게 제 격이다. 낡아서 빤짝빤짝 빛나는 이발 의자에는 벌써 초로의 영감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가위소리에 반쯤 잠이 들었고 이발사는 고개를 숙여 길지 않은 머리를 더 고르게 자르느라 빗과 가위를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그 한쪽 뒤로 젖혀진 의자에는 역시 언덕 윗길에 사는 늙은이가 눈을 감고 처분만 바라고 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면도칼을 쥔 여자가 조금도 서둘지 않고 턱으로 뺨으로 비누칠을 해가면서 면도질을 한다. 늙은이는 면도칼이 목이나 얼굴 위를 쉼 없이 지나다녀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태평이다.

돈 벌어 남 줄 것 없는 세상이라 이발관 주인 내외는 종업원을 두지 않은 채 십여 년을 일해오고 있다. 주인 남자가 긴 머리를 자르고 다듬어 놓으면 주인 여자는 부지런하고 알뜰한 솜씨로 싹싹 얼굴에 난 턱수염이나 콧수염은 물론 뺨의 솜털, 콧구멍에 자라는 코털, 귓구멍에 난 귀털까지 개운한 느낌이 들도록 살뜰하게 베어낸다. 그 내외가 부지런히 일한 보람도 있게 전세로 있다가 그 이웃 점포를 사서 이사를 했고 개업기념으로 타월을 만들어 온 동리에 쫘악 돌리기도 했다.

이발은 머리만 자르고 고르는 게 다가 아니다. 한 달 정도 자란 얼굴의 모든 털을 한꺼번에 청소하고 매끈매끈한 얼굴로 변화시키는 면도에 매력이 있다. 머리만 자르고 면도를 하지 않는다면 이건 똥 누고 밑을 안 닦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미용실 머리 커트만으로는 아무래도 불만이다. 거기다 머리를 내맡기고 세면기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노라면 주인 남자가 박박 비듬이란비듬이란 다 벗겨낼 것처럼 두 손으로 밀어대는 그 쾌감은 한 두 마디로 표현할 길이 없다. 거기다 이발요금을 처억 내밀면 주인 여자가 타다 주는 커피는 또 유별나게 맛있다. 젊은 사람들 즐겨 마시는 원두커피인가 뭔가 보다 백배 났다.

동네 골목 목욕탕은 이웃 남자들을 만나서 좋다. 모두 알몸으로 있어 아무런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으니 더욱 신선하다. 부자도 잘난 놈도 없다. 그저 사나이 대 사내로 아는 사이면 안부를 물으며 인사하고 안면 없는 사람이면 뽀얀 김 속에서 웃으면 그만이다.

“아버지, 목욕탕이라 안 그러고요. 사우나라 불러요. 사우나 간판을 찾아보세요.”

아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빌딩 7층인가 8층 꼭대기에 ‘24시간 사우나 스파랜드’ 하는 간판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골목의 낮게 깔린 인가 속에 높게 우뚝 솟은 굴뚝이 없는 목욕탕은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온천지대에 가면 굴뚝 없는 목욕탕도 더러 있지만.

사실 동네 목욕탕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데는 그 놈의 사우나인가 찜질방인가가 생기고난 다음부터이다. 수백 명이 너끈히 들어갈 수 있다는 대형 사우나인가 찜질방은 여관 겸용인지 낮잠을 자러 가는 곳인지 여관비 아끼러 들리기도 한다니. 대형 판매점들이 들어서면서 인근 동리 작은 상점들을 쓰러트리듯 대형 사우나 그것들도 역시 공룡이다. 그러니 동리 목욕탕이 견디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동네 골목 목욕탕이 알몸으로 만나는 친교의 자리라면 이발관은 동네 소식의 집결지이기도 하다. 이발관 주인 남자는 가위질을 하면서 끊임없이 손님들이 와서 하던 얘기를 재방송하기에 여념이 없다.

아무개는 어디로 가고 누구는 사기를 당하고 김 영감은 상처(喪妻)를 하고, 1월 1일 해돋이 때 갈매산에서는 떡국을 끓여내고 역에서도 어느 봉사단체에서 떡국을 퍼주는 행사를 한다고 들려준다. 인근 집값을 물어도 웬만한 부동산보다 자세하게 들려주기도 하고 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 시장 험담도 다 들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도시에는 이발관도 목욕탕도 없다니......

점점 삭막하고 팍팍해 지는 마음이다. ****

 

 

 

수필이 발표된 계간 <21세기문학>(2012년 봄호, 통권 56호)

(발행일 : 2012년 3월 1일)

 

 

 

출처 : 창녕문협
글쓴이 : 남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