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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창녕군지명사/창녕읍15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옥천리 에 실린 창녕읍 옥천리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7. 옥천리 [玉泉里] 창녕읍의 가장 넓은 법정리이면서 산이 수려하고, 가야의 고찰 관룡사가 있으며, 해동화엄종(海東華嚴宗)의 초조인 의상(義相)대사가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창건한 “화엄십찰(華嚴十刹)” 중의 하나인 비슬산 옥천사(지금은 폐사되어 그 터만 남아있다)가 있었던 역사 깊은 곳이다. 산 계곡에 옥수가 흘러내리니 옥 같은 물이 샘솟는 옥천(玉泉)보다는 옥천(玉川)이라 할만한 곳이 바로 여기다. 신라 때부터 옥천사가 있었으니 어쩌면 이곳 땅이름도 오래되어서 그에 유래되었을지도 모른다. 옥천리는 본래 창락면의 지역으로 『호구총수』에도 산옥천촌(山玉泉村)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오래된 지명이다. 흔히 이곳은 산옥정이라 하여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2022. 6. 14.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외부리 에 실린 창녕읍 외부리의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5. 외부리(外釜里) 가매실이라 불리었던 외부리는 본래 어촌면(漁村面)의 지역이었다. 어촌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유장면과 합하여져 유어면이 되었는데 이때 이곳은 유어면에 편입되지 않고 창락면의 소속으로 되었다. 예전에 어촌면의 지역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사람들이, "유장가매실" "어울가매실" 이라 부르니, 유장면 쪽에서도 가매실이 있어 지금의 유어면 부곡리(釜谷里)이며, 어울가매실은 바로 이곳을 지칭하고 있다. 어울은 어촌면을 말하니 어촌면에는 내부곡촌(內釜谷村)이 있다고 『호구총수』에 기록되어있다. 가매실이라 지명이 불리기는 대체로 산이 주위를 빙 둘러싸서 분지형을 이룬 지역으로 가마솥과 같이 생긴 지형을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 가매실도 서.. 2022. 6. 12.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용석리 / 여초리 에 실린 창녕읍 용석리와 여초리의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4. 용석리(龍石里) 용석리(龍石里)는 창녕읍의 남서부 지역으로 본래 창락면이었다. 용석리는 동서간이 아주 긴 형태로 서쪽 작다리에서 동쪽 골용석까지 그 길이가 5.5kIn인데, 서쪽으로 대지면과 유어면 사이를 깊숙이 파고 들어갔는데 이 들을 세거리벌이라 한다ㅣ.. 『호구총수』에는 용석촌과 이교촌(泥橋村)으로 나오는데 1914년 2개 리가 합해지면서 용석리가 되었다. 이때 뒷개, 새말, 어섬, 진다리, 작다리, 학산 등의 자연마을을 포함하여 법정리가 되었다. 산이 용의 형상이라 하여 용덤이라 한 것이 용석리가 되었는데 이것은 용석리의 남부인 골용석, 양용석 두 마을이 있는 일대를 지칭하는 것이다. 또 마을 앞을 흐르는 퇴끼내에 돌이 많은 것이 특색.. 2022. 6. 11.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탐하리 / 신촌리 에 실린 창녕읍 탐하리와 신촌리의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2. 탐하리(呑下里) 본래 창락면 지역인 탐하리(呑下里)는 창녕읍의 남쪽으로 중부고속도로의 남쪽 마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지역은 북으로 읍내까지 미쳐 왕산병원까지 탐하리 구역이다. 빗물이 마을 앞에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므로 동명을 탐하라 하였다고 한다. 「呑」은 그 훈(訓)이 ‘삼킬 탄’이니 「呑下」의 뜻과는 비슷하나 「呑下」를 마을 이름으로 부를 때 ‘탐하’라 하거나 ‘탐마’라 하는 것으로 보아 빗물이 땅속에 스며들었다는 말은 뜻이 좋은 글자에 부회(附會)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呑」자를 이곳 지방에서는 속음으로 「탐」으로 발음하고 있다. 「탐」은 마을보다 작은 몇 집이 모여 사는 곳인 뜸으로 이곳 지방에서는 「담, 땀」이라 하는데 .. 2022. 6. 9.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퇴천리 에 실린 창녕읍 퇴천리의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1. 퇴천리(兎川里) 퇴천리(兎川里)는 본래 창락면이었고 창락면의 소재지가 있었던 곳이었다. 창락면(昌樂面)은 현재 창녕읍의 남부이니 퇴천리를 위시하여 탐하리, 신촌리, 용석리, 여초리, 옥천리 등이었다. 외부리는 본래 어촌면(漁村面)의 내부곡촌(內釜谷村)과 외부곡촌으로 있었다가 1914년 창락면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이 창락면은 1955년 7월 1일, 읍 승격을 앞둔 창녕면에 합하여졌다. 이곳 퇴천리는 『호구총수』에는 본창락촌(本昌樂村)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퇴천리라 개칭되었으니 마을 앞을 흐르는 내의 이름이 퇴끼내이므로 이를 토끼 토(兎), 내 천(川)으로 기사(記寫)하여 「兎川」이 되었으나 이곳 사람들이 토끼를 「이」 첨가 음.. 2022. 6. 9.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하리 에 실린 "창녕읍 하리"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0. 하리(下里) 하리(下里)는 도야리와 함께 본래 고암면(古巖面) 지역으로 역촌(驛村)이라 불리던 마을로 1914년 군면 폐치분합 때 창녕읍에 편입되면서 하리라 개칭하였다. 화왕산과 목마산의 산자락에 있는 도야리의 상동이 동편 윗쪽 높은 지대임에 비해 역촌의 동편 마을이 낮은 지대의 마을이어서 하동(下洞)이라 불리었는데 따라 하리가 되었다. 하리에는 조선 시대에 내야역(內野驛)이 있었으므로 역촌이라 불리어 졌던 것이다. 『동국여지승람』 역원(驛院)란에 내야역이 (창녕)「현의 북쪽 7리에 있다」 하였는데 창녕현의 유일한 역이었다. 內野驛 在縣北七里(新增 東國與地勝寶 卷27 昌寧縣) 이곳을 내야(內野-內也)로 불리었는데 안들이란 뜻이니 「道也」는 디이블로 뒤.. 2022.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