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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창녕군지명사61

이야기- 창녕인물비사(2) 신초, 공호겸을 잡다 이야기 - 창녕인물비사(2) 천성만호 신초, 경상감사 행세하던 공호겸을 지략으로 잡다 낙동강 변 멸포나루터에 말을 세운 영산현 원천(지금의 도천)사람 천성만호 지수 신초支叟辛礎(1548~1637), 함안사람 제포만호 이숙과 그의 생질 박진영 세 사람은 어제 그제 내린 비 때문에 도도하게 넘쳐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초의 아우 신갑辛𥑐이 박진영의 누이동생과 결혼했으니 역시 세 사람의 인연은 끈끈했다. 멸포나루는 창원에서 영산 오호리로 통하는 나루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나룻배가 보이지 않았다. “여봐라! 사공!”만호 신초가 강 건너 오가리의 나룻배 사공이 사는 초막을 향해 고함을 쳤다. 여러 번 고함을 쳐 불러도 사공이나 배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공을 찾다가 단념한 신초는 큰 결심을 한 듯 소리쳤.. 2025. 3. 28.
이야기 창녕인물비사(1) 명환 한강 정구 창녕현감 이야기 창녕인물비사(1)八서당 건립, 창산지 편찬한 명환 한강 정구 창녕현감 『창녕군지』 창녕현의 환적宦績>을 살펴보면 조선조 때 창녕현감에 금유琴柔, 박한주朴漢柱, 다음에 정구鄭逑 등 세 분의 성명이 올라 있으니 이들이 명환名宦이라 알려졌다. 사실 그 이전에도 여러 현감이 다녀갔겠지만 선조16년(1583. 계미)에 도임한 이효남李孝南 이전의 고을 수령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단종 때(1453년) 창녕현감으로 재직하다 단종 폐위에 사직하고 옥야 내동에 은거한 하척河滌(고려 우왕 1384~세조 1458년)과 성종 25년(1494)에 옥천사 재건을 하려다 신돈의 일로 물의가 일어 중도 포기한 이기담李基聃 현감이 밝혀져 있을 뿐이다. 금유는 동국여지승람에 창녕현의 명환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대구도호부사, 강.. 2025. 3. 15.
남지 구진산성/ 비화가야시대 산성이다 = 창녕신문 보도 창녕군 남지 고곡리에 있는 구진산성이 비화가야 시대의 산성 -- 창녕신문 보도구진산성은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장이 영산성의 왜군과 싸워 승리한 산성이다. 2024. 11. 30.
6.25 영산지구전투 동영상 / 신재욱 6.25 엉산지구전투 동영살을 보다가 신재욱 카페에 올라온 것을 복사해서 올립니다. 1950년 8월경 사진인데 창녕군 영산면 도천면 남지 일대입니다. 낙동강 방어전투가 1개월여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지역입니다. 여기 보이는 능선은 영축산 서편 자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곳에서 자란 분이면 지명을 아실 듯해서 올립니다 워커 사령관 명령으로 주민들이 도하작전에 동원되었다는데 어느 강 양수장 일까요?밀양 방면으로 가는 피난민 행렬... 아마 임해진 쪽?남지철교 공원의 홍포서원 유허비가 보이네요. 홍포서원은 칠원윤씨 재실인데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유허비가 서있었습니다. 이곳에 미군이 주둔하며 낙동강 방어전 전개했습니다. 바로 낙동강 남지철교 바로 서쪽. 용화산 올라가는 곳인데.. 2024. 11. 16.
낙동강과 용화산 낙동강과 용화산 창녕 남지와 함안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 예전에 함안, 영산, 창녕 선비들과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분들이 낙동강의 도흥나루(道興津)에 모여 사우회를 갖고 배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며 뱃놀이를 하니 그 아름다운 정경이 남아있다. 그 일을 기려 후손들이 함안 칠서 계내리에 모현정이란 정자를 지었다. 그곳도 답사하니 한강 정구, 망우당 곽재우, 광서 박진영, 간송당 조임도 등등 참여자 들이 적힌 명판이 보인다. 왼쪽 벼랑은 용화산의 상봉대(흔히 남지철교산이라 부른다)와 멀리 도흥나루(도흥진)에서 낙강선유를 위해 모이다. 남지 용산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장암리 쪽 용화산, 바로 앞은 낙동강이 흐른다. 낙강선유를 했던 35명 참석한 분들의 후손이 지은 모현정(함안 칠서면 계내리) * 모현정에 걸린 35명.. 2023. 3. 21.
역사가 가득한 창녕의 진산 화왕산성 창녕의 화왕산성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창녕현의 진산이다. 아홉군데 샘과 세 곳의 못이 있었다는 구천삼지는 창녕조曺씨 득성 유래가 전해오는 유서깊은 곳이며 가야시대의 산성인 화왕산성은 정유재란 때 천강홍의장군 곽재우 방어사가 천여 명 군사들로 3만여 왜적과 싸워 이기고 성을 지켜낸 승전의 역사가 창연히 남아있다. 화왕산 관룡사 대웅전 2023.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