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군지명사58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술정리 / 직교리 에 실린 "창녕읍 술정리와 직교리" 를 올립니다. 6. 술정리(述亭里) 『호구총수』에 술정리란 동명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지명은 조선 후기에 불리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는 교하동의 일부였을 것이다. 창녕 읍내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배설이라 하는데 따라서 화왕산 배바우가 있으며 이곳은 배를 매어 두는 마을이라 하여 계주말(繫舟洞), 지주말리라 하였다고 전해 온다. 배가 뜨려면 물이 있어야하므로 술정 서탑(西搭) 근처에 오래 전에 못을 만들었는데 이 못이 이들못이라 한다. 계주말의 계주(繫舟)는 계류(繫留)와 같은 뜻으로 선박이 안벽(岸壁)같은데 정박(碇泊)한 것을 말한다. 술정리 일대는 신라 때 큰 절이 있었던 절터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 복판 술정리 120번지에 있는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 2022. 6. 7. 망우당 곽재우가 은둔했던 창암 망우정 망우정은 망우당 곽재우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은둔했던 곳으로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에 창암이라는 덤바위에 있는 강사로 망우당은 이곳에서 은거해 15년을 살다가 별세하였다. 2021. 7. 1. 천강홍의장군 곽재우 의병군의 첫 전승지 기음강 천강홍의장군 곽재우 의병군의 첫 전승지 기음강 곽재우 장군이 의병군 맨처음 왜군과 싸웠던 기음강을 가다. 남지쪽 강변 전망대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니 낙동강과 남강이 합수하는 곳이고 예전 남지와 의령 지정을 연결하던 거룬강 나루터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은둔하였던 돈지 마을이 바로 보인다.(멀리 하얀 건물인근) 2021. 7. 1. 창녕군 남지읍 시남리 경남 창녕군 남지읍 시남리 지명유래를 올립니다.6.25때 인민군의 기습 도하로 최초로 창녕군이 전화에 휘말리게 한 낙동강 나루로 이름난 이이목 나루터. 인민군은 강 건너 의령 땅에서 기습 도하했다. 10. 시남리(詩南里) 시남리(詩南里)는 남지읍의 최북단에 위치한 법정리로 유어면에서 남으로 도도하게 흐르던 낙동강의 큰 물줄기가 산에 부딪치며 서쪽으로 꺾어드는 곳인데 시남리의 북쪽을 흐른다.『호구총수』에 남곡면 청단촌(靑丹村)과 오항촌(烏項村), 신남촌(新南村) 등 3개촌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이 구한 말 동리 폐합 때인 1910년에 하나로 합하여 지면서 시남리가 되었다. 시남은 본래 지명이 신남(新南)이었으므로 곧 옛 동명이 ‘새남’이라 불리었던 것으로 보인다.새(曙, 東)는 「새·시·신」으로 변하.. 2020. 12. 15. 이이목나루 옛날 사진 남지읍 시남리 이이목 나루 옛날 사진 6.25때 인민군의 기습 도하로 최초로 창녕군이 전화에 휘말리게 한 낙동강 나루로 이름난 이이목 나루터. 인민군은 강 건너 의령 땅에서 이 나루로 강을 건너 1950년 8월 6일 새벽 기습 도하했다. ◎ 이이목[烏項] 창녕군 남지읍 시남리에 있는 나루터 귀이목, 이목, 오목으로도 불리는데 시남 북쪽 낙동강가에 있는 나루터 마을로 북향으로 인가가 형성되었다. 이 마을은 조선 중기에는 상당히 컸던 마을이라 『호구총수』에 오항촌(烏項村)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나루터와 옹기굴로 번창하며 10여호 이상이 살았던 마을은 지금은 2, 3호 뿐으로 마을 터는 휑하게 비어버리고 집터만 있을 뿐이다. 오여정(吾與亭)이 동편에 있다. 이이목의 ‘이이’는 까마귀의 축약 변형 또는 와.. 2020. 12. 10. 장마유리 고인돌 외 장마 유리고인돌외 창녕군 내문화재 몇 점.... 예전에(94년 4월) 찍은 것을 스캔했다. 위에서 부터 송현동 고분군, 하씨고가, 장마유리 고인돌, 진흥왕순수비, 그 옆에 있는 고인돌 등 2019. 9. 21. 이전 1 2 3 4 5 6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