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군지명사57 낙동강과 용화산 낙동강과 용화산 창녕 남지와 함안 사이를 흐르는 낙동강 예전에 함안, 영산, 창녕 선비들과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분들이 낙동강의 도흥나루(道興津)에 모여 사우회를 갖고 배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며 뱃놀이를 하니 그 아름다운 정경이 남아있다. 그 일을 기려 후손들이 함안 칠서 계내리에 모현정이란 정자를 지었다. 그곳도 답사하니 한강 정구, 망우당 곽재우, 광서 박진영, 간송당 조임도 등등 참여자 들이 적힌 명판이 보인다. 왼쪽 벼랑은 용화산의 상봉대(흔히 남지철교산이라 부른다)와 멀리 도흥나루(도흥진)에서 낙강선유를 위해 모이다. 남지 용산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장암리 쪽 용화산, 바로 앞은 낙동강이 흐른다. 낙강선유를 했던 35명 참석한 분들의 후손이 지은 모현정(함안 칠서면 계내리) * 모현정에 걸린 35명.. 2023. 3. 21. 역사가 가득한 창녕의 진산 화왕산성 창녕의 화왕산성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창녕현의 진산이다. 아홉군데 샘과 세 곳의 못이 있었다는 구천삼지는 창녕조曺씨 득성 유래가 전해오는 유서깊은 곳이며 가야시대의 산성인 화왕산성은 정유재란 때 천강홍의장군 곽재우 방어사가 천여 명 군사들로 3만여 왜적과 싸워 이기고 성을 지켜낸 승전의 역사가 창연히 남아있다. 화왕산 관룡사 대웅전 2023. 1. 30. 편조왕사 신돈이 중창한 일미사 절터 - 비슬산 남쪽 편조왕사 신돈이 중창한 계성 사리 일매골 일미사一味寺 절터가 있는 비슬산 남쪽 산줄기 쌍교산双轎山에 이어져 황새등(높이 400m), 용개등(높이 388m) 아래에 신돈이 세웠다고 전해오는 일미사가 있었다. 계성천 일매골 입구에 문암 신초의 문암정이 있는데 예전 일미사의 강원講院이 있었던 터라 전해 온다. * 일미사 강원터라 전해오는 문암聞巖 신초辛礎의 별서 문암정 2023. 1. 27. 역사를 담은 비슬산琵瑟山 역사를 담은 비슬산琵瑟山 화엄십찰華嚴十刹 옥천사玉泉寺가 있었던 비슬산 지금은 그 자취가 사라지고 조선시대 옥천사 복원을 하다 중지한 곳에 라 전해오는데 편조왕사 신돈의 역사가 올바르게 다루어지고 그래서 비슬산 자락에 옥천사도 번듯하게 복원되기를 바란다. 창녕 비슬산 근경. 화엄십찰 옥천사가 있었던 산이다. 2023. 1. 23.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옥천리 에 실린 창녕읍 옥천리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7. 옥천리 [玉泉里] 창녕읍의 가장 넓은 법정리이면서 산이 수려하고, 가야의 고찰 관룡사가 있으며, 해동화엄종(海東華嚴宗)의 초조인 의상(義相)대사가 670년(신라 문무왕 10)에 창건한 “화엄십찰(華嚴十刹)” 중의 하나인 비슬산 옥천사(지금은 폐사되어 그 터만 남아있다)가 있었던 역사 깊은 곳이다. 산 계곡에 옥수가 흘러내리니 옥 같은 물이 샘솟는 옥천(玉泉)보다는 옥천(玉川)이라 할만한 곳이 바로 여기다. 신라 때부터 옥천사가 있었으니 어쩌면 이곳 땅이름도 오래되어서 그에 유래되었을지도 모른다. 옥천리는 본래 창락면의 지역으로 『호구총수』에도 산옥천촌(山玉泉村)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오래된 지명이다. 흔히 이곳은 산옥정이라 하여 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2022. 6. 14.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외부리 에 실린 창녕읍 외부리의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5. 외부리(外釜里) 가매실이라 불리었던 외부리는 본래 어촌면(漁村面)의 지역이었다. 어촌면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유장면과 합하여져 유어면이 되었는데 이때 이곳은 유어면에 편입되지 않고 창락면의 소속으로 되었다. 예전에 어촌면의 지역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사람들이, "유장가매실" "어울가매실" 이라 부르니, 유장면 쪽에서도 가매실이 있어 지금의 유어면 부곡리(釜谷里)이며, 어울가매실은 바로 이곳을 지칭하고 있다. 어울은 어촌면을 말하니 어촌면에는 내부곡촌(內釜谷村)이 있다고 『호구총수』에 기록되어있다. 가매실이라 지명이 불리기는 대체로 산이 주위를 빙 둘러싸서 분지형을 이룬 지역으로 가마솥과 같이 생긴 지형을 가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 가매실도 서.. 2022. 6. 12.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