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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창녕군지명사57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용석리 / 여초리 에 실린 창녕읍 용석리와 여초리의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4. 용석리(龍石里) 용석리(龍石里)는 창녕읍의 남서부 지역으로 본래 창락면이었다. 용석리는 동서간이 아주 긴 형태로 서쪽 작다리에서 동쪽 골용석까지 그 길이가 5.5kIn인데, 서쪽으로 대지면과 유어면 사이를 깊숙이 파고 들어갔는데 이 들을 세거리벌이라 한다ㅣ.. 『호구총수』에는 용석촌과 이교촌(泥橋村)으로 나오는데 1914년 2개 리가 합해지면서 용석리가 되었다. 이때 뒷개, 새말, 어섬, 진다리, 작다리, 학산 등의 자연마을을 포함하여 법정리가 되었다. 산이 용의 형상이라 하여 용덤이라 한 것이 용석리가 되었는데 이것은 용석리의 남부인 골용석, 양용석 두 마을이 있는 일대를 지칭하는 것이다. 또 마을 앞을 흐르는 퇴끼내에 돌이 많은 것이 특색.. 2022. 6. 11.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탐하리 / 신촌리 에 실린 창녕읍 탐하리와 신촌리의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2. 탐하리(呑下里) 본래 창락면 지역인 탐하리(呑下里)는 창녕읍의 남쪽으로 중부고속도로의 남쪽 마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지역은 북으로 읍내까지 미쳐 왕산병원까지 탐하리 구역이다. 빗물이 마을 앞에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므로 동명을 탐하라 하였다고 한다. 「呑」은 그 훈(訓)이 ‘삼킬 탄’이니 「呑下」의 뜻과는 비슷하나 「呑下」를 마을 이름으로 부를 때 ‘탐하’라 하거나 ‘탐마’라 하는 것으로 보아 빗물이 땅속에 스며들었다는 말은 뜻이 좋은 글자에 부회(附會)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呑」자를 이곳 지방에서는 속음으로 「탐」으로 발음하고 있다. 「탐」은 마을보다 작은 몇 집이 모여 사는 곳인 뜸으로 이곳 지방에서는 「담, 땀」이라 하는데 .. 2022. 6. 9.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퇴천리 에 실린 창녕읍 퇴천리의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1. 퇴천리(兎川里) 퇴천리(兎川里)는 본래 창락면이었고 창락면의 소재지가 있었던 곳이었다. 창락면(昌樂面)은 현재 창녕읍의 남부이니 퇴천리를 위시하여 탐하리, 신촌리, 용석리, 여초리, 옥천리 등이었다. 외부리는 본래 어촌면(漁村面)의 내부곡촌(內釜谷村)과 외부곡촌으로 있었다가 1914년 창락면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이 창락면은 1955년 7월 1일, 읍 승격을 앞둔 창녕면에 합하여졌다. 이곳 퇴천리는 『호구총수』에는 본창락촌(本昌樂村)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퇴천리라 개칭되었으니 마을 앞을 흐르는 내의 이름이 퇴끼내이므로 이를 토끼 토(兎), 내 천(川)으로 기사(記寫)하여 「兎川」이 되었으나 이곳 사람들이 토끼를 「이」 첨가 음.. 2022. 6. 9.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하리 에 실린 "창녕읍 하리"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10. 하리(下里) 하리(下里)는 도야리와 함께 본래 고암면(古巖面) 지역으로 역촌(驛村)이라 불리던 마을로 1914년 군면 폐치분합 때 창녕읍에 편입되면서 하리라 개칭하였다. 화왕산과 목마산의 산자락에 있는 도야리의 상동이 동편 윗쪽 높은 지대임에 비해 역촌의 동편 마을이 낮은 지대의 마을이어서 하동(下洞)이라 불리었는데 따라 하리가 되었다. 하리에는 조선 시대에 내야역(內野驛)이 있었으므로 역촌이라 불리어 졌던 것이다. 『동국여지승람』 역원(驛院)란에 내야역이 (창녕)「현의 북쪽 7리에 있다」 하였는데 창녕현의 유일한 역이었다. 內野驛 在縣北七里(新增 東國與地勝寶 卷27 昌寧縣) 이곳을 내야(內野-內也)로 불리었는데 안들이란 뜻이니 「道也」는 디이블로 뒤.. 2022. 6. 7.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조산리 / 도야리 에 실린 창녕읍 조산리와 도야리 지명유래를 올립니다. 8. 조산리(造山里) 창녕읍 시가지에서 바라보면 앞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구마 고속도로 동편에 있다. 『호구총수』에 읍내면 하나로 기록되어 있고 조산리는 기록돼 있지 않다. 풍수설에 의하여 자그만 산을 모았다하여 조산(造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만들었다는 산이 어디인지 분명치 않고, 조산으로 보이는 것은 성씨 재실인 송림재(松林齋)가 있는 산인데 이 산은 천연적인 산으로 보인다. 풍수지리설에 뫼터의 앞쪽에 있는 산을 조산(朝山)이라 하고 혈(六)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산을 조산(祖山)이라 하는데 이곳 마을이 있는 곳의 산은 창녕 읍내의 앞산 격이니 조산(朝山,祖山)이라 불리었으리라 할 수 있으니 「朝山」이 「造山」으로 변한 것이라 추정된다. 이곳.. 2022. 6. 7.
창녕군지명사 / 창녕읍 술정리 / 직교리 에 실린 "창녕읍 술정리와 직교리" 를 올립니다. 6. 술정리(述亭里) 『호구총수』에 술정리란 동명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지명은 조선 후기에 불리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는 교하동의 일부였을 것이다. 창녕 읍내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배설이라 하는데 따라서 화왕산 배바우가 있으며 이곳은 배를 매어 두는 마을이라 하여 계주말(繫舟洞), 지주말리라 하였다고 전해 온다. 배가 뜨려면 물이 있어야하므로 술정 서탑(西搭) 근처에 오래 전에 못을 만들었는데 이 못이 이들못이라 한다. 계주말의 계주(繫舟)는 계류(繫留)와 같은 뜻으로 선박이 안벽(岸壁)같은데 정박(碇泊)한 것을 말한다. 술정리 일대는 신라 때 큰 절이 있었던 절터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 복판 술정리 120번지에 있는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 2022.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