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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시와 동시

동화 / 나는 냐옹이야 // 김현우

by 남전 南田 2015. 3. 15.

 

 

 2015년 3.4월호 <아동문예>에 동화 <나는 냐옹이야>를 발표했다.

 

동화

 

나는 냐옹이야

 

김현우

 

찧고 까불고 할머니 집에는 식구들이 아주 많아요.

할머니의 아들 딸, 며느리와 사위, 손자와 손녀 고양이들이 바글바글 살고 있었어요. 촌수로 따지면 삼촌, 사촌들과 아저씨뻘은 물론 사돈 팔촌까지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셈이었어요. 모두들 행복하게 즐겁게 살고 있었지요.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마당도 아주 넓고 방들이 많아서 많은 식구들이 지내기에 아주 좋았지요. 큰집이었는데 여러 해 사람이 살지 않고 버려져 있었으므로 고양이들의 보금자리가 된 것이에요. 풀밭이 되어버린 마당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몇 그루 자라고 있어 여름이면 그늘이 아주 좋았어요. 그 그늘은 손자손녀들의 놀이터로 딱 알맞아 하루 종일 그곳에서 놀았지요. 뛰고 굴리고 할머니 이름 그대로 엉덩방아 찧고 까불고 그랬지요.

그런데 어느 날 해가 질 무렵 손자 몽몽이가 돌아왔는데 그 뒤에 낯선 강아지가 따라 왔어요. 몸집이 그들하고 비슷하리만치 작고 어려 보였어요.

찧고 까불고 할머니의 손자손녀들, 그러니까 몽몽이의 형제들이 강아지를 빙 둘러 싸며 한마디씩 했어요.

“야, 더러운 강아지구나. 생전 세수도 안하고 사나봐.”

삼삼이가 삐쭉거리며 흉을 보았어요.

“며칠을 굶은 모양이군. 배가 훌쭉해.”

돌돌이도 불상하다면서 한마디 했어요.

“걸음도 겨우 걷는 걸 보면 무슨 병이 든 모양이지?”

“병이 드니까 내다버린 걸 거야.”

솔솔이와 사뿐이는 병이 들었다고 걱정스런 얼굴이 되었어요.

“몰몰아! 어디서 저런 주인을 잃은 강아지를 데려왔어?”

형제들이 떠들고 삼삼이가 물어보니까 성이 난 몽몽이가 큰소리로 말했어요.

“불상해서 데려왔어. 찧고 까불고 할머니께 잘 말해서 함께 살았으면 해.”

“뭐야? 저 더러운 강아지랑 함께 살아? 할머니, 아빠, 엄마가 허락하지 않을걸.”

“그래! 우리가 먹을 것도 부족한데. 뭐어? 강아지에게 밥을 줘?”

돌돌이도 솔솔이도 고개를 내젓자 몽몽이가 여럿이 들어보라고 더 큰소리로 외쳤어요.

“내 밥을 나눠 먹을 거야. 우린 친구하기로 약속을 하고 데려 왔거든.”

삼삼이가 강아지에게 물었어요.

“야야! 고양이와 개는 예전부터 앙숙이란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물고 뜯고 싸움만 하던 사이지. 그래! 네 이름이 뭐냐?”

몽몽이 뒷등에 붙어 서서 여럿이의 눈치만 보던 냐옹이가 얼른 대답을 했어요.

“난 냐옹이야. 냐옹!”

그 소리에 주위에 모였던 몽몽이 형제들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어요.

“야옹이라고? 야옹! 그건 우리가 내는 얘기 소리야!”

“야옹이 아니고 냐옹이라니까! 우리 엄마가 붙여준 이름이다. 엄마의 말에 내가 꼭 너희들처럼 생겼다는 거야. 어쩌면 내가 너희들의 일가친척쯤 되는지도 모르지.”

몽몽이가 옆에서 냐옹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어요.

“그래! 냐옹이는 우리들과 사촌이나 팔촌쯤 되는 지도 모르지. 생김새를 보라구, 다른 강아지에 비해 얼마나 몸이 자그마하게 예쁘고 키도 작지 않아?”

“그래도 더러워서 싫어! 목욕을 안 해서 털이 온통 먼지투성이야.”

그때 찧고 까불고 할머니가 나타났어요.

할머니는 냐옹이를 슬쩍 곁눈질로 살펴보면서,

“누가 저 애를 데려 왔어?” 하고 엄청 나무라는 표정으로 물었어요.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 제가 데려 왔어요.”

할머니는 몽몽이의 대답에 냐옹이를 천천히 살펴보다가 혀를 끌끌 찼어요.

“저런! 주인을 잃었구먼. 어쩌다 주인과 헤어진 거냐? 설마 차에 실어다 이 동네에 갖다 버린 것은 아니겠지?”

“집을 찾아갈 수 없어요. 얼마나 멀리 왔는지 몰라요, 차에 갇혀 있다가 차문을 삐끔 열고 나를 내려놓고는 탁! 문을 닫아 버렸지 뭐예요. 그리고 차가 붕! 하고 달아나 버렸지요. 제가 따라갈 수 없을 만치 빠른 속도였어요.”

“인간이란 다 그렇게 인정사정없지. 병이 들었거나 싫증이 나면 아무리 예쁘다고 쓰다듬고 귀하게 여기던 애완동물이라도 내다 버린다니까!”

“전 엄마에게 귀여움을 받고 지냈어요. 얼마나 저를 귀여워했는데요? 침대에서도 절 꼭 껴안고 함께 자기도 했는걸요.”

“널 버린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할머니는 한숨을 쉬면서 잘라 말했어요. 그렇지만 냐옹이는 그 엄마를 잊을 수가 없었어요.

“넌 죽을병이 든 것도 아닌 듯한데? 왜 널 내다 버렸을까?”

할머니는 고개를 흔들면서 생각에 잠겼어요. 냐옹이도 생각에 잠겼어요. 그러다 말했어요.

“아마……?”

“아마?”

“엄마 아빠 아이들이 먼 나라로 여행을 가나 봐요. 엄마가 저를 어딘가 맡기겠다고 했는데요. 그러자 아빠가 화를 버럭 내던걸요. 헛돈을 쓰게 되었다고요.”

할머니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거렸어요.

“알겠다. 그 인정 없는 인간들이 해외여행을 갔구나. 보름이나 한 달쯤 해외여행을 가면 널 동물병원 같은 곳에 맡기고 가야하는데 그러려면 큰돈이 들거든. 그래서 집으로 찾아갈 수 없을 만큼 멀고도 먼 곳에다 널 버린 거야.”

“설마! 엄마가?”

“그렇게 독한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러면서 할머니는 슬픔에 잠겼어요. 한참 후에 말했어요.

“나도 옛날에 그렇게 당했단다.”

 

찧고 까불고 할머니는 아주 옛날 일이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참 장난을 좋아하는 고양이였어요. 주인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보는 앞이면 뛰고 굴리고 몸을 뒤틀고 까불었어요. 그러다 실수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넘어지기도 했어요. 그러면 주인아주머니가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지요.

“아이고! 요 귀여운 것! 요 놈 이름을 찧고 까불고라 부르자.”

주인아저씨의 말에 할머니 이름이 정해 졌던 거지요. 그렇게 재미있고 귀여움을 받는 집안에 살았는데 슬픈 일이 생겼지 뭐예요. 주인아저씨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서울서 멀리 농촌으로 간다고 했어요, 이사를 하기 하루 전 할머니를 바구니에 담드니 어디론가 데려가서 내려놓고 가 버렸어요. 뚜껑도 열어주지 않고요.

하루인가 이틀인가 갇혀 지냈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발견되어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났어요. 밖으로 나와 보니 바로 이 동네였어요. 그 후 여러 해 동안 길고양이가 되어 수채 구멍이나 음식쓰레기봉지를 뒤져 먹으며 살게 된 것이지요.

 

“냐옹이라 그랬지? 우리와 같이 살려면 너도 야옹이가 돼야지. 재빠르고 어디든지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야 이 동리에서 살 수 있지.”

“절 냐옹이라고 불러줘요.”

할머니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살려면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제일 첫 번째 시험은 좁은 담장 위를 마음대로 걸어 다녀야 해. 저 봐라. 애들이 담 위에서 뛰어다니면서 놀잖니? 떨어지지 않고.”

몽몽이가 냐옹이 대신 대답했어요.

“할머니 제가 훈련을 시켜 볼게요. 담장 위를 다니려면 요령이 좋아야 해요.”

“둘째 시험은 저 담 위를 훌쩍 뛰어 오르거나 마음대로 뛰어 내려야 하는 거야. 우리 애들을 봐라. 아주 쉽게 담 위나 나무 위로 폴짝 뛰어 오르지? 또 아무리 높은 가지위에 올라갔더라도 조금도 겁내지 않고 사뿐 뛰어 내린단다.”

할머니 옆에서 얘기를 듣던 할머니의 손자손녀들이 떠들었어요.

“할머니! 그거 너무 쉬운 시험이에요. 뛰어 오르고 내리는 것 너무 쉬워요.”

“더 어려운 문제를 내세요.”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아니다. 강아지에게는 아주 어렵단다. 세 번째 시험은 쥐를 한 마리 잡아 오너라.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게 수 천년 내려오는 우리들의 전통이란다. 쥐를 잡아와야 진짜 야옹이가 되는 거란다. 5일을 준다. 5일이 지나면 시험을 보겠다.”

몽몽이의 형제들이 할머니의 시험문제에 박수를 보냈어요. 몽몽이와 냐옹이는 너무나 어려운 시험에 크게 걱정이 되었어요. 삼삼이와 그 형제들이 약을 올렸어요.

“그만 다른 동네로 가 봐라. 시험 통과는 어림없어!”

“세 가지 시험 중 한 가지라도 해 내면 돌돌이 이 몸이 먹을 것 다 구해다 바칠게. 헤헤헤!”

“하하하!”

 

몽몽이와 냐옹이는 그 날부터 연습을 시작했어요. 담장을 기어 올라가는 것부터 어려웠어요. 겨우 담 위에 올라가서 걷는 건 더 어려웠지요. 머리가 어질어질, 눈앞이 빙글빙글, 몸뚱이가 비틀비틀, 다리가 삐딱삐딱 막 꼬였어요. 담장 위로 뛰어 오르는 건 더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아주 낮은 곳에서 뛰어 오르고 뛰어 내리는 연습을 했어요. 몽몽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범을 보이고 냐옹이가 따라 하느라 진땀을 뺐어요. 그 주위에는 구경꾼이 잔뜩 모여들어 웃기도 하고 잘난 척 ‘이리 해라, 저리 해!’ 하고 떠들었지요.

냐옹이는 예전에 강아지들도 쥐를 잡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몽몽이에게 걱정 말라고 얘기하기도 하였지요.

“쥐를 잡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아!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도 예전에 쥐를 잡아먹었데. 그땐 쥐들이 아주 많았다고 해. 그래서 쉽게 할아버지도 쥐를 잡았다던데. 그런데 쥐약을 먹은 쥐를 잡아먹기도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친구들이 많이 죽기도 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어.”

“아아! 그럼 쥐 잡는 건 쉽겠구나?”

“아냐! 난 한 번도 쥐를 잡아 본 적이 없어. 아니! 난 아직 쥐를 본 적도 없다니까! 내가 살았던 집에는 쥐가 얼씬거리지도 않았어.”

“허어! 그럼 그것도 쉬운 문제가 아니로구나.”

“먼저 쥐 구경부터 시켜 줘.”

“이 동네는 쥐가 많아. 하수구 안에 그 놈들이 많이 살아. 하지만 우리는 더러운 하수구에 들어가기 싫어해서 아무도 쥐를 잡지 않지. 어쩌다 길에서 만나면 골려 주기만 하고…….”

찧고 까불고 할머니와 약속한 5일 째 되는 날 새벽에 몽몽이와 냐옹이는 쥐부터 먼저 잡기로 하였지요. 쥐들은 중국음식점 골목 하수구에 많이 살았어요. 그 집에서 국수나 요리 찌꺼기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거든요. 썩은 음식물 냄새가 진동하는 하수구에 들어가기 전 작전을 짰어요. 몽몽이는 동쪽 구멍에서 쥐를 쫓고 냐옹이는 서쪽 구멍으로 들어가 쥐잡기를 하기로 했어요. 고양이를 보고 놀란 쥐들이 냐옹이가 있는 쪽으로 몰려 나왔지요, 그때 냐옹이가 앞발로 아주 쉽게 쥐 한 마리를 생포할 수 있었어요.

“허어! 쥐를 잡았구먼.”

냐옹이가 살아있는 쥐를 입에 물고 찧고 까불고 할머니 앞에 가자 할머니는 좋아 했지요.

“좋아! 다른 시험문제는 통과할 수 있을까? 어디 마당으로 가자.”

할머니와 냐옹이가 마당으로 나가자 몽몽이 형제들이 ‘우!’ 따라 나와 구경하기로 했어요.

“어디! 담 위로 뛰어 올라가 봐! 걷거나 뛰기도 하고 나중에 사뿐 뛰어 내리는 거야.”

“예!”

냐옹이는 할머니가 내어 준 숙제를 겨우겨우 해 냈어요. 머리가 어질어질, 몸뚱이가 비틀비틀, 눈앞이 빙글빙글, 다리가 휘청휘청 거렸지만 용기를 내서 해 냈어요.

할머니는 만족하다는 표정으로 냐옹이를 칭찬했습니다.

“됐다, 됐어. 그만하면 널 잡으려는 인간들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요즘 우리를 잡아 병을 고치는 약으로 쓴다면서 길고양이 사냥꾼들이 이 동네에 많이 다닌단다.”

드디어 몽몽이의 형제들과 친구가 된 냐옹이는 만세를 불렀어요.

“나는 냐옹이야!” ****

 

 

<아동문예> 2015. 5,6월호에 이 동화에 대한 평을 임신행 선생이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