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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현정과 남지의 낙동 8경 모현정과 남지 8경
모현정(慕賢亭)은 대여소 앞의 남지철교 건너에 있는 능가사 절 뒤편 철교산 등산로 초입 옆에 있다. 모현정은 임란이 끝나고 한강 정구선생을 비롯한 35인이 용화산 아래 낙동강에서 선유를 하였다. 이후 함께 선유한 23문중 35인의 후손들이 동범(同泛 모현)계를 조직하여 모현정을 지어 지금까지 매년 35인의 선조들께 향사를 드리며 숭모하고 후손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다. 지난 세월의 풍우로 많이 훼손되었으나 근년에 보수를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400여년전 당대의 내노라 하는 선비들이 낙동강 700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남지의 낙동강 8경을 선유로 즐겼던 경관들을 답사하며 그 시절을 되짚어 보자. 모현정 가는 길 모현정 전경 모현정 현판과 주련 모현정기 도흥루 현판 모현정 복원 헌성록(慕賢亭 復元 獻誠錄) 모현정 중건기 모현정 상량문 모현정 천정의 서까래 모현정 주련 모음 측면에서 본 모현정 7년간(1592-1598)의 왜란이 끝나고 의병장 곽재우는 1602년(선조35) 창녕 우강의 창암정(망우정)을, 두암 조방은 함안 계내에 반구정을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지어 서로 쪽배로 왕래하며 많은 선비와 왜란에 참여한 동지들과 교류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유유자적 할 무렵, 1607년(선조40년) 3월 28일.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이 성주에서 동래온천으로 가는 도중에 남지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선비 간송(澗松)조임도(趙任道)선생의 부친 입암(立巖)조식(趙植)과 숙부 두암(斗巖)조방(趙垹)의 주선으로 용화산 아래 머물며, 한강이 처음 벼슬에 나아간 창녕현감(1580 38세)과 이후 함안현감1586 44세) 재임 때 교류하고 함께 수학한 선비와 왜란에 참여한 동지들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문암(聞巖) 신초(辛礎), 갈촌(葛村) 이숙(李潚), 영모당(永慕堂) 신방집(辛邦楫), 두암(斗巖) 조방(趙垹), 광서(匡西) 박진영(朴震英)을 비롯하여 23문중의 35인이 낙동강 700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용화산(龍華山) 아래서 배를 타고 산수를 즐겼던 큰 행사를 하였다. 선유(船遊)의 순서는 임진란의 의병 첫 승지인 기강나루가 있는 낙동강의 용화산의 서쪽인 용화암(龍華巖-합강정)부터 - 청송사(靑松寺)- 도흥보(道興步)- 내내촌(奈內村)- 경양대(景釀臺)-시우포(是藕浦-伴鷗亭)- 평사면(平沙面)-창암사(滄巖舍-망우정)까지 동범(同泛)하였다. 용화산하동범지도(龍華山下同泛之圖)의 8경의 위치도 이 날의 돈독하고 격조 높은 동범의 의의를 남기고자 한강 정구선생이, 참여한 사람들에게 정구, 곽재우, 박충후, 장현광은 휘·자·호·익(시호)의 순으로 작서에 따라 첫머리에 적고, 이하는 휘·자·호· 연령순으로 적은 후 모임의 날짜를 기록하도록 하였다. 이 책의 제목도 한강 정구선생이 직접 『용화산하동범록』이라 칭하라 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 책은 당시 23세로 처음 정구를 뵙고 참석한 간송당(澗松堂) 조임도(趙任道) 선생이 이후 14년이 지난 1621년(광해군13 년)에 추서하여 중수하면서 남긴 『용화산하동범록추서 龍華山下同泛錄追序 』 책과 당시의 용화산하동범의 선유모습을 8폭 병풍과 두루마리 그림을 제작하여 남겼으나 현존하지 않는다고 하나, 불행 중 다행으로 그 병풍을 모사한 것을 1744년에 박진영의 후손 박상절이 『기락편방(沂洛編芳)』으로 재발간하여 도설(圖說)을 실은 『용화산하동범지도 龍華山下同泛之圖』로 지금까지 전하고 있어 당시와 오늘날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모현정에 있는 용화산하동범록(동범한 35인의 인적 사항) 편액 『용화산하동범지도 龍華山下同泛之圖』의 원래명칭은 『용화산수도 龍華山水圖』이다. 이 자료는 낙동강 7백리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남지읍 용산리 개비리 기강나루에서 용화산 절경과 웃개나루, 망우정의 400년전 옛날 모습을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다.[자료제공 :마산 의신여중 김부열선생] 원래 『용화산수도 龍華山水圖』에는 합강정 그림은 없는 것을 박상절이 『용화산하동범지도 龍華山下同泛之圖』에 삽입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간송의 망모암 일기에 따르면 내내에서 용산리 기강으로 이사(移徙) 한 것이 간송 49세로 그해 가을에 합강정사를 지었다, 간송은 현종5(1664년)년에 향년 80세로 고종(考終)하였으며 간송 서거 80년 후에 『용화산하동범지도 龍華山下同泛之圖』가 판각된 것을 보면 간송을 흠모한 박상정이 삽입한 것으로 추정 한다. ○용화산하동범지도 龍華山下同泛之圖 제1경 -龍- 용화산(현재의 합강정) 용화산(龍華山) 합강정(合江亭) 기강(岐江) 아호(鵝湖)에서 기강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지점의 용산 앞의 강을 기음강(岐音江) 또는 기강 또는 걸음강으로 불리고 있으며, 아호(鵝湖)는 현재의 용산리 아곡(鵝谷 알개실) 마을 앞에 옛날에 있었던 커다란 호수를 말하며, 아곡마을 앞의 호수에 고니(거위. 백조)가 많이 날아와 아곡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고 창녕 지명사와 남지읍지등에 기록으로 나와 있다. 제2경 - 華 - 청송사(현재의 반구정) 제3경 - 山 - 도흥보(도흥나루 .현재의 동호마을 나루) 제4경 -下 - 내내촌(현재의 철교 건너 내내마을과 능가사) 제5 경 -同 - 경양대(지암담. 현재의 제왕담) 제6경 -泛 - 시우포(현재 반구정 유허비) 옛 진동나루 ,웃개나루(上浦津) 제7경 -之 - 평사면(현재 남지 IC 앞 백사장. 계성천 주변) 제8 경-圖- 창암사(현재 망우정) 송강(松江) 현재 송진을 거쳐 망우정 앞으로 흐르는 계성천의 고명(古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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