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다녀간 흔적
김현우
올 여름 들어서 자주 나가 소일하는 곳이 느티나무 아래그늘에서 철도교량 아래그늘로 바뀌었다.
느티나무가 병이 들어 잎이 무성하지 않은데다 해충들이 성해서 옷위로 떨어지고 모기에 물려 가려움으로 고생하는 일이 흔해져서 늙은이들이 기피하면서 철도 교량 아래 그늘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철도교량 아래 그늘은 정말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쉼터로서는 안성마춤이었다.
한참동안 사람들은 그곳에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있는 것에 대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공사를 하던 회사가 버려두고 갔겠거니 여겼다. 앞으로 이곳에 조경공사가 시작되면 사무실로 쓰려고 가져 가지 않은 걸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누군가 컨테이너 문의 자물쇠가 파손된 것을 발견했고 그 문을 열어보고나서 어찌하여 그것이 그곳에 와서 있게 되었는지 그 내력을 알게 되었다.
그 컨테이너는 공사장 인부들이 드나들던 그런 사무실용이 아니었다.
그곳에 80이 넘은 노인이 살았다고 한다.
철도부지에 있었던 그 노인의 집은 철거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사를 갈 곳이 없다고 버티니 공사에 큰 지장이 되었다. 결국 공사가 지지부진해지면서 골치를 앓게된 회사에서는 하는 수 없이 노인에게 임시로 기거하라며 컨테이너를 제공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살지도 못하고 어느날 엔가 노인이 죽은 모양이었다. 노인이 저 세상으로 가자 컨테이너를 갖다둘 장소가 마땅치 않자 철로교량 아래로 옮겨 방치해 버린 것 같았다.
장례를 누가 치뤄 주었는지 모르지만 그 노인이 살았던 가재도구가 고스란이 컨테이너 안에 남겨져 있었다.
사람이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으면 그 흔적도 어찌됐든 정리되어서 사라져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입던 옷이나 모자는 벽에 걸려있고 덥고 자던 이불은 구석에 펼쳐져 있고 짚고 다니던 지팡이는 문앞에 기대져 있고 그림도 벽시계도 걸려 있었다.
어찌하여 작은 옷장과 씽크대 냉장고 텔레비전은 온전히 생전 그대로 자리잡고 있단 말인가.
한 인생의 쓸쓸한 최후를 바라보는 노인네들의 느낌은 착잡함을 너머 무심 그것이었다.
그 흔적들은 슬픔일까?
아니면 아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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