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016년 7월호에 발표한 동화 <너와 나는 짝꿍>을 올립니다.
동화
너와 나는 짝꿍
김현우
봄입니다. 유채 밭에 노란 꽃물결이 넘실거립니다. 낙동강가의 넓디넓은 들판에 온통 유채꽃이 가득합니다.
유채꽃 공원에 노랑꽃이 피면 우리들은 더욱 바빠집니다. 바로 나와 천산비호가 말입니다.
나야 나이만 먹었지 서울 구경 한번 한 적이 없는 도시에서 뚝 떨어진 마을의 늙은 개이지만 천산비호는 전연 다르답니다. 서울에서 젊었을 때 이름을 드날렸다고 사람들에게 할아버지가 늘 자랑하는 말입니다.
“천산비호는 호랑이처럼 아주 날랜 경주마였어요. 경마장에서 달렸다하면 언제나 1등이었지요. 타 보면 알겠지만 정말 잘 훈련된 말이랍니다.”
유채꽃 공원에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할아버지는 큰소리로 말을 타는 체험을 하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승마 체험장에서 할아버지의 자랑처럼 얼마나 좋은 말인가 둘러보고 물어보곤 하지요. 그리곤 한 번씩 천산비호의 등에 올라 타 봅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또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이 말이 어떤 말인지 아십니까? 서울경마장에서 뛰었다 하면 1등만 하던 천산비호랍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말을 타보라고 권하고 관광객이 말을 타면 노랑 유채꽃밭을 한 바퀴 돌아주었습니다. 물론 말고삐를 할아버지가 쥐고 천천히 갑니다. 말을 탄 손님이 아이들이라면 더욱 조심스럽게 몰지요.
그래서 나도 믿습니다. 천산비호란 이름을 얻을 만큼 아주 빠르게 달렸던 말이란 걸요. 할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시고 간혹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하곤 하지만 거짓말하는 분이 아니거든요.
“정말이지요? 이름 그대로 빠르기가 말이 아니라 호랑이처럼요?”
“암요! 호랑이처럼 빨랐지요. 지금이야 늙어서 빠르게 달리지 않습니다. 빠르게 달리면 말을 처음 타보는 사람들이 겁을 내거든요.”
“정말 할아버지 말씀대로 천천히 가면 겁이 안나 기분이 참 좋겠습니다.”
“승마 체험장이 그래서 인기가 있지요.”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고삐를 잡고 강변을 따라 유채꽃이 노랗게 핀 길을 천천히 한 바퀴 돕니다. 물론 아이들도 겁을 내면서도 말을 탑니다. 그럴 때는 천산비호는 더 조심스럽게 걸어갑니다. 그 뒤를 나는 촐랑촐랑 따르면서 아이들이 겁먹지 않게 조심하라고 천산비호에게 말하곤 하지요. 그러면서 칭찬하는 소리도 하지요.
“아이들이 말을 타도 떨어뜨리지 않으니! 넌 정말 훈련을 잘 받은 말임에 틀림없어.”
천산비호는 조금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 검붉은 갈기를 흔들면서 대답은 시큰둥합니다.
“허허허, 다 지난 일이라 난 잊어버렸구먼.”
“하도 빨리 달리는 말이니까 천산비호라 불리었던 거야. 지금이라도 신나게 마음껏 빠르게 달려보고 싶지 않아?”
“다 지나간 과거이니 자랑할 게 없어.”
“허! 그러면 그렇고 아니면 아니지. 똑 부러지게 얘기해 봐.”
“얘기할 게 뭐 있어야지. 서울서 살아보니까 너무나 힘들었어. 매일 죽어라고 뛰는 연습에다 또 경주에 출전하면 죽을힘을 다해 뛰었어. 그 뿐이야.”
“할아버지 얘기 들으니까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고 네가 출전하면 인기가 대단했다던데?”
“…….”
“그런데 할아버지는 왜 안 나오실까?”
천산비호는 발로 땅을 차면서 흥흥 거렸다.
“구경꾼들이 몰려 올 시간인데 말야.”
“그래, 곧 공원에 사람들이 오면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아마 할아버지는 지난밤에도 술을 많이 마셨나 봐요. 술을 마신 날에는 좀 늦게 나오거든요. 강변 유채공원에 점점 구경꾼들이 오기 시작하는데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승마 체험장에 와서 천산비호를 바라봅니다.
<승마체험 멋진 추억을 만드세요!>
<신나는 말 타기. 안전합니다.>
체험장 앞에 세워놓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입니다.
“흰둥아! 너 할아버지께 가 봐! 늦잠을 자는가보다.”
천산비호의 말에 나는 “곧 나오시겠지.” 하고 큰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그때 사진사 아저씨가 왔어요. 아저씨는 사람들이 말에 올라 멋진 자세를 잡으면 기념사진을 찍어 주곤 했습니다.
“허어! 영감님이 아직 안 나오셨군! 구경꾼들이 오는데 늑장을 부리다니! 안되겠다. 흰둥아! 영감님이 왜 어정거리나 집에 퍼뜩 가 봐라!”
사진사 아저씨의 말에 천산비호도 그게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금방 가서 할아버지 모셔 올께.”
나는 대답을 하자마자 빠르게 집으로 달려갔지요.
“얼른 가! 혹시 영감님이 갑자기 편찮은가 모르겠다.”
사진사 아저씨가 내가 알아들으라고 뒤에서 고함쳤습니다.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이면 천산비호를 타고서 푸른 강물이 흐르는 강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공원을 한 바퀴 돌기도 하지요. 그러면 나도 즐겁게 뛰어 다니거나 졸졸 할아버지 뒤를 따라 걸었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산책도 않고 방에서 나오시지 않았지요. 지난밤에 술을 마셨거든요. 혼자 사니까 외로운가 봐요.
집으로 달려갔더니 그제야 방에서 나오시고 있었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주위를 맴돌면서 어서 가야 한다고 신호를 보냈어요.
“알았다. 알았어. 손님들이 많이 기다리는 모양이구나. 흰둥아?”
나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렇다고 했지요.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런지 몸이 좀 찌뿌등등 하구먼.”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럴 거라고 나는 멍멍 짖어댔지요.
“알았다. 알았어. 그런데 오늘은 영 힘이 없어서 천산비호를 이끌고 다닐 수가 없을 듯 하구먼.”
할아버지는 승마장에 나왔지만 정말 움직일 기운이 없었던지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허어! 영감님! 말 탈 사람이 기다리는데 어쩝니까? 말을 타야 나도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벌지요.”
“그, 글쎄 말이야…… 영 힘이 없구먼.”
그때 내가 얼른 천산비호에게 속삭였습니다.
“우리가 한 번 해 보면 어떨까? 내가 앞장서고 넌 사람이 타면 슬슬 걸으면 돼.”
천산비호도 그게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 둘이서 한 번 해 보자. 할아버지가 고삐를 잡고 앞장서지 않아도 돼. 내가 고삐를 물고 걸으면 되거든.”
그때 사진사 아저씨가 나섰어요.
“영감님! 내가 천산비호를 끌면 안 될까요? 영감님이 기운을 차릴 동안에!”
할아버지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찬성했어요.
“황 기사! 그러시오. 흰둥이가 고삐를 물고 천산비호 앞에 서서 가면 될 거요. 황 기사는 옆에서 따라 걸으면서 사진을 찍어주면서 돌봐 주구려.”
“아아! 그게 좋겠군요.”
나는 할아버지 말에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자신 있다고 멍멍 짖었지요.
“알았다. 알았어. 흰둥아! 천산비호 너도 손님들을 태우고 천천히 가거라. 너희들은 사이좋은 짝꿍이 아니더냐?”
할아버지는 천산비호의 등을 두드려주고 머리와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천산비호도 할아버지 말에 기분이 좋아서 흥흥 거렸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먼저 왔어요.”
말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던 아이가 성큼 나섰습니다.
“야아! 용감한 어린이로군! 개도 말도 늙었지만 다 영리하니 겁내지 말고 타면 된다. 사진사 아저씨가 따라가니까 안심하고.”
아이가 의자에 올라가서 말 등에 쉽게 오르도록 할아버지가 도와주었습니다. 아이는 겁 없이 말위에 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천산비호 등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려 주었지요.
“좋았어!. 자! 천산비호와 흰둥아. 한 바퀴 돌아오너라.”
나는 천산비호 앞서서 천천히 걸었지요. 말고삐를 입에 물고서. 천산비호는 유채꽃 냄새가 너무 향기롭다면서 기분이 좋게 발걸음을 옮겼지요. 사진사 아저씨가 내 옆에서 걸으며 말위의 아이 사진을 찍었지요. 유채 밭을 한 바퀴 돌아오니 사람들이 박수를 쳐 주었지요.
“그거 용하네. 말이 날뛰지 않고 점잖게 아이를 태우고 다니니!”
“거 멋진 한 팀이구려. 개와 말이…….”
할아버지가 구경꾼들의 칭찬에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늙으면 다 순해지는 법이지요. 또 나이가 많아지면 지혜롭게 살게 되는 게 세상이치라오.”
천산비호와 나는 할아버지 말씀에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지요. 할아버지는 언제나 승마 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에 하시던 자랑을 또 했습니다.
“천산비호가 늙어서 이리로 오고 말았지만 예전에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오. 서울 경마장에서 제일 잘 생긴 말이라 인기가 대단했었지요. 그냥 인기라 아니라 경마장에 나가 경주를 하면 번번이 일등을 했기에 최고 경주마로 이름을 날렸지요. 사람으로 치면 깃발 날리던 시절이었다오.”
“그러니까 늙고 병들면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듯 천산비호도 경마장에서 퇴역을 했구먼.”
“아아! 그런 셈이지요. 자자, 겁내지 마시고 말을 타 보세요. 아주 순한 말이니까! 경주마로 십 몇 년을 지냈는데도 한 번도 기수를 떨어뜨린 적이 없었답니다. 순하기로 따지면 이 늙은이나 저 늙은 똥개보다 더 순하지요. 그러니 안심하고 타세요.”
우리는 다음 손님으로 신혼여행을 온 신랑을, 또 신부를 태워주었어요. 앞으로도 우리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니는 짝꿍이 될 것입니다.
그날 밤입니다.
내가 턱을 고이고 둥근 달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천산비호가 조용히 말했어요.
“우리 둘만 강변 모래밭을 즐겁게 달려보고 싶어. 흰둥아, 그러지 않을래? 조금도 겁내지 말고 내 등에 타.”
“뭐어? 우리 둘이서만 강가를 달려? 그거 좋구먼. 좋아!”
“너와 난 짝꿍이라며?”
“아암! 우린 짝꿍이지.”
나는 성큼 천산비호 등에 올라탔습니다. 그러고는 떨어지지 않게 등덜미를 꽉 움켜쥐었지요. 우리는 달빛이 강물에 부서져 반짝거리는 강가로 나갔어요. 천산비호는 모래밭을 처음에는 천천히, 조금 후에는 빠르게, 조금 후에는 더 빠르게……. 나중에는 힘껏 달렸지요. 모래가 유채 꽃잎처럼 바람에 날렸어요. 하늘의 달이 우리를 따라오며 웃어 주었지요. 또 달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듯 푸른 빛 잎들을 뿌려주었어요. *
* 1964년 <학원> 장편소설로 등단, 동화집 <산 메아리> <도깨비동물원>,
경남아동문학상 황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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