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우리들의 별자리
김현우
“자, 이번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자.”
선생님이 그림을 그리자는 얘기에 아이들이 무슨 뜻인가 몰라 어리둥절했어요. 미술시간이 아니었거든요.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하면 여러분이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 될까하는 상상화지.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돈 많은 부자가 되고 싶다면 그걸 한번 멋지게 그려보는 거야.”
5학년 1반 아이들이 그제야 와글와글 떠들었어요.
“난 대통령을 그려 볼까? 에헴! 임금님이 되었으면 싶지만 우리나라엔 임금이 없으니!”
“임금님이 뭐야? 달나라로 가는 우주비행사가 최고지!”
그때 다시 선생님 말씀이 계속되었어요.
“그림을 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그림을 들고 앞에 나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로 하자. 그러니까 만약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은 청와대를 배경으로 선 나를 먼저 그리는 거야. 그러곤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얘기하는 거다.”
“예! 알았어요.”
아이들은 웃고 떠들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진도는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었어요.
“야, 진도! 왜 그리지 않고 있어? 난 게이머가 될 거거든. 우선 컴퓨터부터 여러 대 그릴거야. 그러곤 게임을 하는 나를 그려야지. 타타타타!”
총소리를 신나게 내면서 옆자리 종호가 진도를 부르며 떠들었어요.
진도가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것은 1년 전이었어요.
할아버지는 소를 수 십 마리 키우지만 농사꾼이기도 해요. 사과나무가 자라는 과수원도 있고 논과 밭농사도 짓거든요.
진도는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어요. 아버지는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에 다녔고 어머니와 동생 연지 네 식구가 잘 살았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어느 날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갑자기 집에 어머니가 없으니 아버지 혼자 살림도 살아야 하고 두 아이를 학교도 보내야 했어요. 아이 둘을 아버지 혼자서 키우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진도와 동생 연지를 고향 창곡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보내기로 했거든요.
“너희들은 창곡 할아버지 집에 가 있어야겠다. 내가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데 너희들은 나보다 늦게 학교에 갈 것이니 도저히 아침밥을 매일 챙겨 먹일 수가 없구나.”
그런데 여동생 연지가 고개를 저었어요.
“난 창곡 할아버지 집에 가기 싫어요. 거기가면 소똥 냄새가 나거든요, 난 외갓집에 갈레요. 수원 할아버지 할머니가 난 좋아요.”
소를 키우는 창곡 할아버지 집에는 소똥 냄새가 나서 가기 싫다고 연지가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그만 이산가족이 되어 버렸지요. 진도는 아버지 고향이기도 한 도시에서 뚝 떨어진 창곡 할아버지 집으로 왔고 연지는 외갓집 수원 할아버지 집으로 뿔뿔이 헤어지게 되었어요.
“자자! 그림을 다 그렸으면 이리로 나와서 얘기를 듣자구나. 누가 먼저 할까?”
선생님이 교실 안을 이리저리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들을 살피다가 말했어요.
언제나 자랑하라면 일등인 순덕이가 그림을 들고 쪼르르 칠판 앞으로 나갔어요. 그리곤 그림을 펼쳐 들었지요. 순덕이의 그림은 비행기가 여러 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었어요.
“나야말로 공군! 하늘을 나는 비행사가 될 거예요.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푸르고 높은 하늘을 마음껏 날아보고 싶어요.”
순덕이의 얘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반장 경수가 그림을 들고 나섰어요.
“비행사도 좋지만 난 민주투사가 될 거야.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시위대 앞장서서 부정부패를 뿌리 뽑자고 외치는 투사! 어때요?”
난데없는 경수의 말에 선생님이 놀라서 물었어요.
“투사가 뭐냐? 뭘 알고 얘기하니?”
“아하! 선생님. 민주투사가 되어야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될 거 아녜요?”
아이들이 와! 하고 웃었어요. 선생님도 경수의 대답에 기가 막혔던지 그만 웃어버렸어요.
“좋지 좋아! 세상을 바로잡는 사람으로 커서 나중에는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겠다? 대단한 일이지!”
경수에 뒤이어 김신원이 나가더니 축구선수가 되어 월드컵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따겠다고 장담을 했다. 그 다음 나간 아이는 축구보다는 야구선수가 최고라 했고 또 다른 아이는 요새 인기가 높은 골프 선수가 되겠다고 했어요. 곤룡포를 입은 임금님을 그린 그림을 보이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또 우주선을 그려서 우주비행사가 되겠다고 우쭐거리는 아이도 있었지요.
“진도야! 넌 뭘 그렸니?”
옆자리 종호가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 아이를 그려 놓고는 진도가 뭘 그렸나 궁금해 했어요. 그림을 넘겨다보던 종호가 어리둥절했어요.
“이거 뭐야? 종이에 점만 찍어 놨네?”
진도가 조용히 대답했어요.
“이건 밤하늘의 별이야.”
“별 좋아하네. 마치 모기 같아.”
종호 차례가 되어 그림을 들고 나가서 앞으로 컴퓨터게임을 잘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열을 올렸어요. 엉거주춤 진도도 일어나 앞으로 나갔어요. 그리고 별이 그려진 그림을 펼쳐 보였어요.
“저게 뭐야?”
아이들이 떠들었어요.
“이거 창곡마을 밤하늘 별들이야. 제가 할아버지 집에 와서 제일 먼저 신기하게 바라본 것이 별이거든요. 제가 살았던 도시의 밤하늘에는 별이 몇 개뿐이었어요.”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겠다던 경수가 멋진 해설을 했어요.
“그러니까 별, 곧 스타 아니야? 인기가 높은 스타가 되겠다는 거네. 노래 잘하는 가수인가 아니면 인기배우일까?”
경수의 말에 아이들이 와아 웃었어요. 진도가 어깨를 움찔하면서 고개를 내저었어요.
“저는 그냥 별이 좋아요. 별이 많이 보이는 곳에 살고 싶을 뿐이야.”
“아마 진도는 농촌에서 살고 싶은 거야. 공기 좋고 물 맑고 경치 좋은 농촌에서 농사지으면서 살겠다? 참 좋은 꿈이지. 요새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선생님이 한마디 거들었기에 진도는 교단에서 기분 좋게 내려 올 수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통학버스 안에서 진도는 동생 연지에게 문자를 날렸어요.
― 연지야 보고 싶어. 연지야 보고 싶어.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어요. 문자를 날리자마자 딩동! 하고 답장이 날아 왔지 뭐예요.
― 오빠 나 창곡에 왔어 아빠랑.
아빠랑 연지가 창곡 할아버지 집에 왔다는 소식에 진도는 너무나 반갑고 기뻤어요.
“야야! 종호야. 우리 아빠랑 연지랑 창곡에 왔데. 버스가 왜 이리 천천히 달려? 빨리 빨리 안 가고.”
종호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종호 아버지는 할아버지 집 근처에서 돼지를 기르고 있었어요. 몇 백 마리인지 셀 수 없을 만치 많은 돼지를 기르는데 크고 넓은 돈사(돼지 집)가 다섯 채나 되었고 베트남에서 온 일꾼을 두 명이나 데리고 있었어요.
“저 돼지들은 모두 서울 사장님꺼야. 우리 아버지는 돼지만 전문적으로 키우는 사람이지. 몇 십kg 이상으로 키우기만 하면 한 마리당 얼마씩 수고비를 받는다고 해. 아마 너희 할아버지도 소를 그런 방법으로 키울 거야.”
종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축사에 있는 소들이 모두 할아버지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지요. 종호와 함께 버스에 내려 집으로 달려가니 연지가 대문간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빠! 우리 아빠와 함께 여기 와서 살기로 했어. 사실 난 오빠하고 한 집에서 살고 싶었거든.”
“흥! 창곡 할아버지 집에는 소똥 냄새가 난다더니!”
하고 진도는 그만 삐친 소리를 내고 말았어요. 한편 몹시 반가웠는데도 말예요.
“오빠! 오늘 와보니 냄새가 나지 않던걸. 할머니가 마구간이 저 멀리 있으니까 바람만 이쪽으로 안 불면 냄새가 안 난데요.”
“이제 알았니? 난 그저 달콤한 풀 향기만 폴폴 나던걸.”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종호가 크게 웃음보를 터뜨렸어요.
“야야! 소똥 돼지똥 썩는 내가 진동을 하는데도 달콤하다니!”
집안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진도를 보자,
“늬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소를 키우겠단다. 이산가족이 되고 보니 섭섭했던가 보다. 너희들을 품에 안고 살아야겠다니.”
하고 좋아했어요.
저녁을 먹고 나서 진도는 연지를 데리고 집 앞 언덕으로 나갔어요.
“저 하늘 봐라. 별이 얼마나 많니? 무지무지하게 많지? 수원에서는 별이 몇 개 밖에 보이지 않았지.”
“정말 그러네. 온 하늘에 별이 가득해.”
“난 내 별자리 하나 정했지.”
“오빠 별자리가 어딘데?”
“바로 저어기 북쪽…… 별이 일곱 개. 북두칠성이라 부르는 별자리야. 할아버지는 저걸 똥바가지래. 똥을 푸는 자루가 긴 바가지란 거야. 웃기지?”
“똥바가지가 뭐야? 국이나 물 떠먹는 국자 같아.”
“바가지 끝에서 조금 떨어져 빛나는 별이 바로 북극성이야.”
“오빠! 나도 같은 별자리로 할래.”
“그래! 우리들의 별자리로 하자. 난 할아버지처럼 소를 키우는 농군이 될 거야. 아버지와 함께.”
진도는 아까 교실에서 친구들 앞에 다 하지 못한 얘기를 연지에게 넌지시 털어놓았어요. ****
김현우 약력
* 1964년 ‘학원’에 장편소설 당선,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원, 경남아동문학회, 마산문인협회 고문, 경남문인협회 이사(역임).
동화집 『산메아리』 『도깨비동물원』 외, 소설집 『욱개명물전』 외 다수.
경남아동문학상, 남명아동문학상, 경남문학상 등 수상
동화가 실린 <PEN문학> 2019년 1.2월호. vol.147
'동화, 시와 동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현우 시화 / 까치밥 (0) | 2019.11.09 |
---|---|
김현우 동화 / 돌배영감 손자와 누릉이 (0) | 2019.03.20 |
[스크랩] 김현우 시/ 빗살무늬 토기 앞에서 (0) | 2018.01.14 |
[스크랩] 80대 할머니들의 진솔한 글 (0) | 2017.11.22 |
[스크랩] 김현우 동화/ 토끼 할배의 코 (0) | 2017.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