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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동화, 시와 동시

아가들아 날아라

by 남전 南田 2009. 12. 24.

* 아래 동화는 경남문협 생명사화집 <사랑빛 생명노래>에 수록된 졸작입니다.

 

동화

아가들아 날아라

김 현 우

 

 

오늘따라 들판은 더 푸릅니다. 멀리 보이는 바다도 산도 역시 푸릅니다. 칠월의 불볕이 내려 퍼붓고 바람 한 점 없어 긴 목을 내휘두르며 배고파할 아가들이 걱정됩니다.

━ 너무 배고파 집을 나가지나 않았을까?

멀리 나가지 말라고 집을 떠나오면서 당부를 했었지만 이제 막 돋아 오르는 짧은 날개를 퍼덕이며 밖으로 나갔는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부터 아가들에게 나르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빠 왜가리는 아가들 앞에서 멋지게 날아 보였습니다.

“자 봐라. 아빠처럼 저렇게 날아라. 아가들아!”

엄마 왜가리는 아가들에게 아빠의 나는 모습을 자랑하며 배우게 했습니다. 아가들은 짧은 날개를 펴서 서투르게 날아봅니다. 처음에는 두어 번 날개 짓을 하다 맙니다. 그러다 차차 가까운 거리를 날았습니다.

오늘도 엄마 아빠는 한 차례 아가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친 다음 먹이를 찾아 나온 길입니다.

왜가리 아빠는 날개를 수평으로 벌리고 공중에서 빙글빙글 들판을 내려다봅니다. 오늘따라 들판에는 먹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흔한 메뚜기나 개구리조차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없어 둥지를 나선지 오래되었지만 아가들에게 갖다 줄 먹이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이제 아빠의 흉내를 내며 겨우 나는 아가들이 엄마 아빠를 찾아 둥지를 떠날 듯해서 마음이 몹시 바쁩니다.

논두렁에 내려 앉아보니 불그스레한 약병이 수 십 개 버려져 있었습니다. 다른 논으로 껑충껑충 앙감질해 갑니다. 거기에는 약봉지들이 누렇게 변한 얼굴로 내팽개쳐 있었습니다. 벼 잎마다 허옇게 분가루를 바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독하고 진한 약냄새가 이곳저곳서 뭉글뭉글 솟고 있었습니다.

━ 아아, 이곳도 농약을 쳤구먼. 농약 때문에 친구들이 매일 죽어 가는데!

왜가리 아빠는 부르르 몸을 떨며 날아오릅니다. 이제 가볼만한 자리는 둑 옆 온 들판의 물이 모여드는 큰 도랑입니다. 큰 도랑으로 가보니 거기에는 시뻘건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동네 옆 공장에서부터 폐수가 이리로 흘러오고 있어 지독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 이곳도 틀렸구먼.

그때 왜가리는 저쪽 풀 더미 속에 뭔가 움직이는 걸 발견했습니다. 왜가리는 단번에 뛰었습니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왜가리의 발톱아래 개구리가 눌렸습니다. 개구리가 비명을 치며 고함쳤습니다.

“아이고! 나 죽네!”

왜가리 아빠는 만족해졌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찌고 몸집이 큰 개구리라 아가들이 참 좋아할 먹이였습니다.

“왜가리 아저씨! 날 좀 놓아줘요.”

“안 돼!”

“난 아저씨가 아니더라도 죽을 목숨이어요.”

“뭐라고?”

“아저씬 모르시죠?”

“뭘 모른단 말이냐?”

“헬리콥터로 이 온 들판에 농약을 쫘악 뿌렸단 말예요. 온통 그 냄새 아녜요?”

“그래서 다아 숨어 버렸군.”

“숨을 구석이 어딨다구요? 없어요. 헬리콥터는 벼논뿐만 아니라 물도랑, 논둑, 제방, 길에도 농약을 막 퍼부었어요. 그래서 우리 친구들은 다 죽어 버렸어요.”

왜가리는 개구리 말이 믿기지 않았어요.

“넌 아직도 기운이 펄펄한 듯한데?”

“나두 마찬가지예요. 지금 내 가슴은 터질 듯해요. 어질어질한 걸 보니 곧 죽을 거예요.”

“난 믿을 수 없어. 온 들판에 농약이 뿌려져 개구리나 메뚜기가 모조리 죽다니! ”

왜가리는 고개를 모로 꼬며 녀석의 앙당그리는 모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겁에 질려 꾀부리는 것이 아니면 농약 중독이 틀림없었는지 녀석은 벌벌 떨며 죽어가는 시늉을 했습니다.

도랑에 많이 살았던 미꾸라지와 송사리들이 지난해 농약과 공장폐수 때문에 죽어버린 일을 왜가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비행기에 농약을 싣고서 들판에 온통 뿌려 모든 생물의 씨를 말릴 작정인 듯합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요. 우리 개구리들이 얼마나 많이 나쁜 벌레들을 잡아먹는 다구요. 차라리 농약을 뿌리지 말고 우리들을 잘 돌봐 줬으면 벼에 병이 없을 거예요.”

“그야 그렇지. 우리 새들도 해충을 많이 잡았으니까. 요새는 조심해서 골라 먹어야 한다고.”

“날 잡아 먹으면 아저씨도 죽어요.”

개구리는 애원하며 고통에 몸을 떨고 버둥거렸습니다. 그러나 왜가리는 개구리가 거짓말하며 엄살을 떤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만에 잡은 먹이라 쉽게 놓아주기가 싫었습니다.

“자, 우리 집으로 가자. 내 귀여운 아가들이 몹시 기다릴 거야.”

왜가리는 농약에 중독됐다고 떠드는 개구리의 대가리를 긴 부리로 꽉 쪼아 주었습니다.

“이 미련한 왜가리야! 너도 죽어라.”

개구리는 악담을 퍼부으며 숨졌습니다. 둥지로 돌아온 왜가리 아빠는 두 마리 아가들이 고스란히 기다리고 있는 게 반가웠습니다. 그 사이 엄마 왜가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고 간 모양이었습니다.

“어이구, 착한 아가들아! 기다리느라 눈알이라도 안 빠졌니? 글쎄, 들판엔 아침녘에 헬리콥터로 농약을 뿌려 먹을 것이 없더라. 까딱 잘못 먹었다가는 농약에 중독돼 죽어요.”

개구리를 몇 조각으로 나눠 아가들에게 고루고루 먹였습니다. 조금 마음이 꺼림칙했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가리는 높이 솟아올라 이번에는 바다로 갑니다. 먹이 사냥으로 배불러졌을 즈음, 이웃 왜가리가 급하게 왔습니다.

“여보게! 속히 가 보게. 자네 집에 난리가 났어.”

그래서 급하게 둥지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나는 것을 배우던 귀여운 아가들이 퍼들어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가느다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아까 그 개구리처럼.

“개구리를 먹였다죠?”

엄마 왜가리가 울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빠 왜가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아가들은 참하게 날아보지도 못하고 그만 숨을 거뒀습니다.

“날아라. 아가들아!”

“날아라. 아가들아!”

아빠와 엄마 왜가리는 통곡하며 외쳤습니다. 그러나 아가들의 몸은 점점 굳어졌습니다. ***

 

김현우

1939년 창녕 출생. 1964년 월간 <학원>에 장편소설 당선.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경남아동문학회 회장, 창녕문협 회장 등 역임. 황우문학상, 경남도문화상(문학부문), 경남아동문학상 수상. 경남문학관 사무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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