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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전과 함께
동화, 시와 동시

팔 벌려 다리 벌려

by 남전 南田 2009. 12. 31.

(아래 작품은 아동문예 2010년 1 · 2월호에 실린 졸작 동화이다.) 

 

 

동화

팔 벌려 다리 벌려

김 현 우

 

누군가 떠드는 소리에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었던 은행나무가 눈을 살며시 떴어요.

“벌써 봄이 왔나?”

혼자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서둘러 잠이 깬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봉오리를 밀어 올리고 있었어요.

“어? 부지런 하네? 벌써 꽃필 준비를 하다니!”

은행나무의 말에 산수유나무가 조그만 소리 말했어요.

“게으럼뱅이! 넌 이제야 잠이 깼구나. 나와 매실나무는 진작 깨어서 팔도 흔들어보고 발가락도 움직여보고 꽃을 피울 준비를 마쳤어.”

“아항! 넌 참 부지런하구나! 난 너희처럼 이른 봄에 꽃을 피울 일이 없으니 좀 더 자야겠다.”

“아이고! 느림보! 올해는 키가 커야지. 너 또 게으름을 피우면 작년처럼 키가 크지 않아!”

그때 산수유나무 저 편에 서있던 이팝나무가 기지개를 켜며,

“그래! 맞아! 새해에는 키가 좀 커야해. 나도 통 자라지 못했거든. 너희들과 같이 이 미산할배동산에 와서 심겨졌는데 산수유 너랑 살구나무 매실나무는 키가 쑥쑥 자라서 꽃을 피우는데 은행이랑 나랑은 도무지 키도 크지 못하고 꽃도 피우지 못했어.”

하고 힘없이 말했어요.

정말 그래요. 미산할배동산은 미산할배가 나무를 심고 가꾸는 동산이에요. 미산할배는 여러해 전부터 여러 가지 나무들을 이 동산에 심고 가꾸기 시작했거든요. 원래 이 동산은 큰 산줄기의 아래에 톡 불거져 나온 동그랗고 조그만 산이죠. 동그란 똥 무더기처럼 생겼다고 근처 마을 사람들이 똥메라 불러요. 이 똥메에는 수십 년 된 소나무랑 상수리나무, 아카시나무가 꽉 들이찬 숲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해 부근에 큰 산불이 나는 바람에 이곳도 몽땅 타 버렸지요. 그 많았던 소나무랑 상수리나무들이 타거나 말라서 죽어버리고 그만 새까맣고 볼품없는 빈산이 되고 말았지요.

나무가 없는 산이 된지 몇 해가 흘러갔어요. 똥메에는 어쩌다 살아남은 아카시나무가 여기저기 잎을 피우며 터줏대감 노릇을 하려 했어요. 그리고 뿌리가 튼튼해 불에 탔어도 살아남은 칡과 찔레, 청미래 덩굴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지요. 청미래(경상도에서는 망개덩굴이라 한다)나 칡덩굴은 잎이 넓적하고 커서 잘도 자랐지요. 찔레도 질세라 가시가 돋는 넝쿨을 힘차게 뻗으면서 칡덩굴과 청미래 덩굴 위로 기어오르려 했지요. 칡덩굴은 청미래나 찔레보다 더 잘 자라 1년에 그 넝쿨을 10m고 20m나 제 마음대로 뻗어 나갔지요. 아카시나무의 몸을 칭칭 감아 올라가서 아카시나무를 못살게 했으니까요.

이 산에 부모님의 산소가 있는 미산할배가 드디어 성이 났어요. 무덤까지 칡넝쿨이나 청미래 덩굴이 번지고 그 많았던 소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산불로 다 말라 죽어 버렸으니까요.

“어이구! 산소가 엉망이 되었구나. 아카시나무 뿌리가 무덤까지 뻗어오고 칡넝쿨에 망개 덩쿨이 우거졌으니 이래 가지곤 안 되겠다. 여기 계시는 부모님께서 나보고 야단을 치겠는 걸.”

그래서 미산할배는 산을 덮고 있는 칡덩굴과 청미래, 찔레 덤불을 자르고 베어냈어요. 물론 아카시나무도 베어 냈지요. 아카시나무나 칡은 미산할배가 베어내도 또 새싹을 땅위로 내밀었어요, 청미래 덩굴도 마찬가지였죠. 뿌리가 살아있었으므로 자꾸 새싹을 위로 솟아나게 했지요.

“요놈 들! 안되겠다! 힘이 들더라도 뿌리를 캐내야겠다.”

미산할배는 잡초를 죽이는 약도 치고 뿌리도 파내면서 새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어요, 어린 소나무도 심었지만 꽃이 피는 나무들을 심었지요. 왕벚나무, 산수유, 목련, 매실, 살구나무 같은 이른 봄에 꽃이 피는 묘목도 심었고, 가지도 잘 뻗고 키도 잘 크는 느티나무, 이팝나무, 회화나무, 은행, 단풍나무도 여럿 심었어요. 또 무덤 주변에는 키가 낮게 자라며 예쁜 꽃을 피우는 영산홍, 철쭉, 명자나무와 정원에 흔히 심는 사철나무나 황금 측백나무, 광나무 같이 키가 잘 자라지 않으면서도 사시사철 잎이 푸른 나무도 심었어요.

미산할배는 그 다음해에도 나무들을 심었어요. 첫 해에 심은 나무들 중 몇몇 그루가 움도 트지 못하고 말라 죽어 버렸거든요. 사실 똥메는 바위산이라 조금만 파 내려가면 돌멩이나 바위가 있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가물음을 잘 타서 나무들이 견디지 못하고 쉽게 말라 죽어버렸어요. 할아버지는 나무들이 말라 죽지 않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에다 부어 주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어요.

다행스럽게 돌이 많이 없고 지하수가 흐르는 곳에 심어진 살구와 매실나무나 왕벚나무는 첫해에 싹을 틔우고 이내 잎들을 많이 내고 가지를 뻗기 시작했어요. 물론 땅속으로도 많은 잔뿌리를 내려서 수분을 빨아 들였지요. 그렇지만 운이 나쁘게도 은행나무와 이팝나무는 돌멩이가 많은 곳에 심겨졌지요. 뿐만 아니라 지하수가 없는 곳이기도 해서 쨍쨍 뜨거운 햇볕이 내려 쬐는 여름이면 비틀비틀 힘을 쓸 수가 없었어요.

“아휴! 힘들어! 목이 마르니 잎 하나를 내 놓기에도 힘드네!”

은행나무의 말에 이팝나무도,

“정말 힘들어 난 힘이 없어 키가 크지 않아!”

하고 은행나무 말에 맞장구쳤어요. 하지만 미산할배는 무덤가 잔디밭에 난 잡초를 뽑거나 새로 심은 목련이나 영산홍, 명자나무들만 물을 주며 돌보았어요.

사실 은행나무와 이팝나무는 큰 돌이 바로 뿌리 아래에 있으니까 잔뿌리를 뻗기에도 힘들었어요. 온 힘을 다해 돌을 비켜서 뿌리를 뻗어가야 하는데 물기마저 없었으니까 일 년 내내 애를 써 보았지만 이파리 몇 개만 가지에 달고 지냈어요.

“난 정말 하얗고 예쁜 꽃을 피운단다. 마치 쌀밥처럼 꽃이 피거든 그래서 쌀밥 곧 이밥나무라 불렸는데 그게 이팝나무로 변했어. 심은 지 몇 년 만 지내면 꽃을 피우는데!”

“나도 그래. 난 심은 지 4, 5년이 지나면 은행이 주렁주렁 달리게 품종이 개량된 것이라는 장사꾼의 말에 미산할배가 나를 사 와서 심었는걸.”

“그런데 심었을 그때나 4, 5년이 지난 지금이나 키도 그대로고 몸통도 그대로니 이걸 어쩌나?”

그런 얘기를 듣고 있던 왕벚나무가 큰소리로 야단을 쳤어요.

“너희들 게을러서 그래! 열심히 운동을 해 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왕벚나무도 너희들과 똑 같은 해 미산할배가 심었는데 너희들보다 키도 크고 가지도 많지? 올해는 꽃도 작년보다 더 많이 피울 거야.”

“흥! 너는 돌도 없고 물기도 있는 좋은 땅에 심어졌기 때문에 잘 자라는 거야.”

그러자 왕벚나무가 가지들을 흔들며 큰소리로 나무랐어요.

“야, 키 작은 친구들아! 내 발아래에도 돌투성이란다. 그렇지만 쑥쑥 발을 뻗어서 요리조리 돌을 피해서 물기를 빨아 먹고 있어. 너희들도 힘 내!”

그러자 산수유나무가 그랬어요.

“운동을 해! 밤이나 아침에 이슬을 많이 받아먹어! 비가 올 때면 팔을 쫙 벌리고 운동을 해야지. 팔 벌려! 다리 벌려!”

“팔 벌려? 다리 벌려?”

“그래! 온 힘을 다해 팔 벌려, 다리 벌려.”

“그래, 그래.”

“우리도 해 보자.”

은행나무는 있는 힘을 다해 팔을 벌렸지요. 이팝나무는 힘껏 다리를 세차게 벌렸어요.

매실나무가 하얀 매화꽃을 가득 가지에 매달고 자랑을 했어요. 산수유나무가 질세라 노오란 꽃을 달고 봄바람을 맞이했어요. 저 언덕아래 길가 개나리도 노란 꽃을 달고 똥메 나무들에게 손짓을 했어요. 그러자 벚꽃도 피고 살구꽃도 피었지요.

무덤 주위에 있는 영산홍이 빨간 꽃을 피울 5월 쯤, 미산할배가 왔다가 은행나무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 아니! 이거 은행나무가 새싹뿐만 아니라 새 가지도 밀어 올렸구나. 이때껏 노란 얼굴로 힘이 없더니만 올해는 가지를 여러 개 폈네.”

그러다가 이팝나무 곁으로 가서는 너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어요.

“아, 할멈! 이팝나무가 올해는 꽃을 피울 모양이야. 요, 요게 꽃망울이 아니고 뭐요?”

할아버지가 신기해 소리치자 은행나무와 이팝나무는 더욱 신이 나서,

“팔 벌려! 다리 벌려!”

하고 힘차게 운동을 했어요. 사실 미산할배가 지난 해 겨울잠이 든 은행나무와 이팝나무 뿌리 주위를 파고 퇴비를 듬뿍 넣어주었거든요. 그리고 물도 많이 주었거든요. 비실거리며 잘 자라지 못하는 둘을 위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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