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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시와 동시

고장난 로봇 느림보 로봇

by 남전 南田 2010. 12. 26.

 

 

 

동화

 

고장난 로봇 느림보 로봇

 

김 현 우

 

ㄱ ㄴ아파트 505동 1003호에는 로봇이 둘이나 있습니다.

하나는 고장 난 로봇, 하나는 느림보 로봇입니다.

욱이와 혁이가 어찌나 어머니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든지 그걸 보다 못한 할아버지가 붙여준 별명이랍니다.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면 그것만 해도 창피한 줄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1003호 아이들은 아버지 어머니 말을 잘 들었더라면 로봇이란 말을 듣지도 않았을 겁니다. 로봇은 주인이 입력하는 명령을 그대로 따르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기계이니까 말예요.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올 때 주인의 말을 잘 듣게 제작되어 있는 게 로봇인데 욱이와 혁이는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욱이의 별명은 고장 난 로봇이라니! 부모님의 말을 통 듣지 않았으니까 그냥 로봇이 아니라 고장이 나서 내다 버려야 하거나 고쳐 써야 할 지경이 된 것이라니. 정말 기가 막히죠?

동생 혁이의 별명은 느림보 로봇이라니! 부모님 말을 듣기는 듣는데 여러 번 반복하고 재촉해야 겨우 느릿느릿 움직이기 때문일 거예요.

“너희들 업그레이드를 하든지 아니면 시스템을 점검해서 확 뜯어 고쳐야겠다.”

어느 날 아침 할아버지께서 그랬습니다. 욱이가 냉큼 나서서 물었지요.

“왜요? 할아버지. 업그레이드라니요? 우리가 뭐 고장 난 컴퓨터인가요?”

“너희들은 컴퓨터보다 더 못한 고장 난 로봇이지. 어머니 아버지가 시키기 전에 공부도 하고 학교 갈 준비도 스스로 했다면 모두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이 아니겠니? 그런데 누가 시켜야 겨우 뭘 하니 그건 사람이 아니라 기계이지. 바로 로봇 말이다.”

“헤헤헤! 난 고장 난 로봇이야.”

할아버지 얘기에 욱이는 재미가 있어 웃었습니다. 혁이도 할아버지에게 달려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난 뭐예요? 형은 고장 난 로봇인데 난 사람이죠?”

“혁이는 어머니 말을 형보다는 조금 잘 듣는 편이니까……. 느림보 로봇이지. 어머니가 밥을 차려 놓고 ‘아침 먹어라!’ 하면 욱이는 들은 체 만 체 책을 보는데 혁이는 어머니가 서너 번 고함을 치면 그제야 식탁으로 오니까 느림보이지.”

“하하하! 난 느림보 로봇이야.”

“야, 이놈들아! 로봇이 뭐가 재미나니? 사람이 돼야지!”

옆에서 듣고 있던 아버지가 눈총을 보냈지만 욱이와 혁이는 할아버지가 붙여준 별명이 너무나 재미납니다.

여름방학이 되기 전, 욱이와 혁이가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올 여름에는 어디로 놀러가요? 제주도로 갈 거예요?”

“아니면 강원도 강릉으로 가요. 나는 바다가 좋아요.”

“그, 글쎄……. 어디로 가면 좋을까?”

아버지는 웃음을 띠며 고개를 살랑살랑 젓기만 했습니다. 눈치가 빠른 욱이가 얼른 말했어요.

“벌써 갈 곳을 작정했군요? 산이에요?”

“난 바다!”

혁이는 형에게 지지 않고 바다를 외쳤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불쑥 나서며,

“아직 발표할 때가 아니잖아요? 가는 날 까지 비밀을 지켜요.”

하고 주의를 주는 바람에 아버지는 하려던 말을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디예요? 어디?”

욱이의 말에 혁이가 고함쳤지요.

“아빠! 힌트 하나만!”

“힌트라? 그래 딱 한 마디만 하마. 너희들 업그레이드를 시킬 작정이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면 치료도 해야 하고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면 고쳐야하는 것처럼.”

“업그레이드요?”

“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나요?”

“잊었니? 욱이는 고장 난 로봇이고 혁이는 느림보 로봇인걸.”

끝내 아버지는 더 이상 힌트를 주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여름방학이 되었습니다. 둘은 휴가를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해 졌습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돌아온 저녁에 여름방학 계획을 털어 놓았습니다.

“너희들은 산골서당엘 간단다.”

“산골서당이라니요? 거기 뭐하는 곳인데요?”

“뭐하긴 뭐해? 할아버지 친구 분이 운영하는 곳인데 말이야. 너희들 같은 로봇을 교육시켜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란다.”

둘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쩌고요? 같이 안 가세요?”

“우리 둘은 너희들이 돌아 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려야지. 거긴 교통이 아주 불편한 산골 마을인데 주위 환경이 아름답고 공기도 맑고, 특히 아토피 피부병 같은 건 아주 효험이 있다더구나.”

“정말 우리 둘만 가요?”

“너희들 씩씩한 로봇 아니야? 조금 고장이 나고 탈이 났지만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이니까 아버지 어머니 의지할 나이는 아니지?”

아버지의 말씀에 욱이와 혁이는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나서서 좀 더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친구 분이 운영하는 산골서당에는 아이들에게 한자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농사일도 함께 하면서 예절도 가르치고 뒷산에도 오르고 산길을 달리게도 하면서 건강한 어린이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가 직접 키우고 뜯은 나물과 채소로 반찬을 만들어 먹이고 산골짜기에 흐르는 개울에 가서는 멱도 감게 한다니 그렇게 좋은 피서가 어디 있니? 무더운 여름, 일주일을 시원하게 보내다 오너라.”

드디어 산골서당으로 출발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둘은 아버지가 모는 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욱이와 혁이는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어머니도 함께 갔으므로 안심이 되기도 했지요. 차는 고속도로를 달려 몇 시간을 가더니 이번에는 지방도로로 빠지고 그러고는 좁은 길을 한참 달렸습니다.

“일주일 후에 만나자.”

아버지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말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집을 떠나서 생활하는 거야. 처음으로 집을 떠나 살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절대 집에다, 엄마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어, 우리도 꾹 참고 너희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지 않을 거야.”

“정말? 그, 그러면 일주일 동안 우리만 떨어져 지내야 하는 거야?”

혁이가 울상이 되어 말했지요. 욱이는 조금 태연해 져서 단단히 다짐을 했습니다.

“즐겁게 지내는 거야. 산골 생활이 참 재미있을 걸.”

“할아버지가 그랬지? 고장 난 로봇은 부속품을 갈 수 없으니 하드디스크는 그냥 두더라도 운영프로그램은 싹 고쳐야 되고, 느림보 로봇은 속도가 빨라지게 바이러스를 잡고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말씀!”

욱이는 그 말에 즐거워집니다. 울상인 혁이를 보고 씩씩하게 가자고 했지요.

“야야! 산골서당에 얼마나 재미난 일이 많다고! 힘 내!”

그들은 차에 내려 산골서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산골서당은 나무가 우거진 마당 가운데 있는 큰 기와집이었는데 그 뒤로 대나무 밭이 짙푸르게 우거져 있었습니다. 산골서당 선생님은 허연 수염에 대머리 할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도 90도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오오! 너는 고장 난 로봇이고, 넌 느림보 로봇이로구나. 반갑다, 반가워.”

“새 로봇으로 바꿀 수 없으니 어쩌면 좋아요? 그래서 산골서당으로 데려 왔어요.”

어머니 말에 아이들도 지지 않으려고 외쳤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린 억울해요.”

“그래, 너희 할아버지로부터 얘기를 잘 들었다. 우리 일주일동안 잘 지내보자?”

아버지가 불쑥 크게 절을 하면서 말했어요.

“꼭 고쳐 주십시오. 사람을 만들어 주세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무정했습니다. 아이들을 문간에 딱 떼어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타고 떠나 버렸습니다.

“으아! 엄마가 진짜 가 버렸어!”

혁이가 울상이 되었습니다. 욱이가 큰소리로 동생을 안심시켰습니다.

“봐라, 우리 말고도 아이들이 여러 명 왔어. 저기 봐. 저 애는 너와 나이가 비슷할 거야.”

둘은 서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손짓으로 오라고 할 때까지 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과연 일주일 후에는 고장 난 로봇이나 느림보 로봇이 제대로 작동하는 로봇이 되거나 아니면 진짜 사람으로 탈바꿈 되었을까요?

꼭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

 

(경남아동문학회 2010년 연간집 <세계는 한지붕>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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