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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시와 동시

김현우 동화/ 때죽 할아버지와 사탕

by 남전 南田 2011. 3. 31.

 

때죽나무 꽃(강원도 삼척 개금동굴골짜기에서)

 

 

때죽 할아버지와 사탕

 

 

김 현 우

 

할아버지가 때죽나무 곁 나무의자에 앉아 계시다는 걸 처음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요. 할아버지는 슬슬 공원 이 구석 저 구석을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또 과자봉지나 쓰레기를 줍고 청소도 했어요. 그렇지만 영통 큰마을 공원에 놀러 나오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요? 그런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지요.

새벽부터 달리기에, 체육기구에 매달려 운동하려고 사람들이 나왔어요, 아침때면 출근하는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쏟아져 나오지요. 그들은 바쁘게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는데 모두들 공원 가운데를 거쳐서 갔어요. 조금 지나면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또 나와서 지나가지요.

하루 종일 큰마을 공원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요.

아이들이 다 학교에 가고 나면 아기를 태운 유모차도 나타나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차를 타러 나오지요. 또 아주머니들이 나타나 체육기구들을 붙잡고 운동을 하기도 하지요.

오후에는 학교에 다녀 온 아이들이 많이 와서 놀기 시작하는데 그때쯤이면 때죽나무 근처에 슬그머니 수상한 할아버지가 나타나시곤 하지요. 할아버지가 간혹 공원을 한 바퀴 돌기도 하는데 그러면 구석 나무그늘 속에서 담배를 피며 놀던 청년들이 슬그머니 도망을 치곤했지요.

그렇지만 근처 사람들은 때죽나무 곁에 할아버지가 계신다는 걸 한참동안 몰랐어요.

아니, 딱 한 분이 할아버지를 알아보았어요. 공원 옆에 있는 영통사라는 작은 절의 주지 스님이었어요. 주지 스님은 자주 공원을 나와 산책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의자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고 인사를 나눴지요. 그 후부터는 할아버지께 다가가 뭔가 얘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한동안 주지 스님 말고는 아무도 말을 걸지도 인사도 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수상한 할아버지를 우연히 발견한 것은 축구공 때문이었어요. 공놀이를 하다가 재후가 공을 뻥! 찼는데 그게 그만 하늘 높이 날아오르다가 때죽나무 높은 가지에 걸리고 말았어요. 아이들이 우! 공 있는 곳으로 뛰어 갔는데 키가 크고 얼굴이 검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있었지요.

아이들이 공을 때죽나무 가지에서 내려 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키가 닿지 않았어요. 그때 얼굴이 때죽나무 둥치처럼 꺼먼 할아버지가 부스스 일어나면서

“어! 이놈들! 공을 함부로 차면되나?”

하고 아이들을 보고 히죽 웃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 웃음에 기겁을 했지요. 인상이 험악한데다 웃는 모습이 꼭 도둑이 뭘 훔치기 전에 마음에 드는 목표물을 발견했을 때 그런 것 같았지요.

할아버지는 더 아무 말도 않고 의자 뒤에 세워 놓았던 빗자루를 들더니 때죽나무 가지를 두어 번 두들기고 흔들었어요. 그랬더니 너무나 쉽게 공이 땅으로 굴러 떨어졌지요.

아이들은 얼른 공을 집어 들지 못하고 슬금슬금 할아버지 눈치를 살폈어요.

“뭐 하냐? 공 가져가서 놀지 않고!”

할아버지의 조금 퉁명스러운 말에 아이들은 우르르 공을 집어 들었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호주머니에서 뭔가 꺼내 아이들에게 내밀었어요.

“옛다! 이거 먹어라.”

사탕이었어요. 아이들 손에 하나씩 사탕을 놓아 주었어요.

“할아버지! 고마워요.”

재후도 친구들과 돌아서며 고개를 꾸벅 숙였어요. 다른 아이들도 깜빡 잊었다는 듯 재후를 따라,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하고 고함을 쳤지요. 그리고 다시 공놀이를 시작했어요.

 

 

“야, 영채야. 저 할아버지, 누구야?”

재후가 공놀이를 하면서 물었지요. 영채가 아는 듯 대답했어요.

“누구긴 누구야? 할아버지지. 얼마 전부터 저기 때죽나무 옆 의자에 앉아 계셨어.”

“혹시 네가 아는 할아버지야?”

“아니, 다른 아이들도 그냥 때죽 할아버지라 하던데? 아마 저기 저 아파트에 사시겠지. 재후 넌 몰랐어?”

영채는 근처 아파트를 손으로 가리켰지만 역시 잘 모르는 듯 했어요.

“아냐! 나는 오늘 처음 봤는걸.”

“흐흐흐, 저 때죽 할아버지가 저기 나오는 건 오래 되었어. 아마 봄부터 일걸.”

“때죽 할아버지가 뭐야? 때가 줄줄 흐르나? 때죽나무 곁에 있으니까 때죽 할아버지인가?.”

“글쎄! 때가 많이 묻어 얼굴도 까맣고 옷도 까맣고······ 때죽나무 둥치처럼 까맣잖아? 그래서 그렇게 불릴 거야.”

“그래서 때죽 할아버지인가?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가 목욕도 안 하나봐. 정말 도둑처럼 인상도 안 좋고 얼굴도 안 씻는지 때가 끼어 시꺼멓고······”

“키도 크고 덩치는 좀 크냐? 깡패 같아. 험악한 분위기야. 옆에 가지 말고 조심해.”

요새 어떤 세상인가? 할아버지들도 나쁜 짓을 해서 경찰에 붙잡혔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곤 했는데······. 재후는 때죽 할아버지를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지요.

할아버지가 앉은 나무의자 뒤에는 때죽나무가 여러 그루 모여 큰 키를 자랑하고 있지요. 이제 기다란 잎이 파랗게 반들거리기 시작했는데 조금 있으면 그 잎 사이로 하얀 꽃이 피겠지요. 정말 꽃은 하얀데 나뭇가지는 까맣게 반들거리는 이상한 나무이라서 공원에 와서 자라는가 봐요.

 

 

비가 오는 날, 재후가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보니까 때죽나무 곁 의자에는 할아버지가 서성거리고 있었어요. 검정색 우산을 쓰고 우두커니 서서 지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누군가 먼저 때죽 할아버지께 인사를 했지요.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어어! 이제 집에 오냐?”

아이들은 그냥 그렇게 지나쳤지요. 재후도 아이들 따라 고개만 숙여 아는 척 했어요.

아파트 울타리 계단을 오르며 재후가 영채에게 그랬어요.

“이상하네? 비가 오는데 집에 가만히 계시지 뭐 하려고 나오셨을까?”

“글쎄 말이다. 정신이 좀 이상한 거 아닐까? 공원에 날마다 나와 앉아 있는 걸 보면······ 경로당도 있고 노인들 많이 모여 노는 공원도 있다던데. 때죽 할아버지는 꼭 저기 나와 계신단 말이야.”

“가실 곳이 없거나 놀 곳이 없으면 역 광장에 가시지.”

“그래, 그런 곳에 가시지 뭐 하려고 때죽나무 곁에 지낼까? 까만 때를 줄줄 흘리면서!”

아이들이 재후의 말에 큰소리로 웃었지요.

그 며칠 후에 할아버지가 공원 청소를 하고 있었어요. 마침 운동을 하러 나왔던 할머니들이 할아버지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로 핀잔을 했어요.

“아니, 저 할아버지는! 공원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는데 청소는 왜 해?”

“그래, 체육기구들이 많이 있는데 운동은 않고 왜 온종일 의자에 웅크리고만 있는지 몰라.”

“참, 별일이야. 늙은 영감이 덩치나 작나? 큰 몸집을 보니 왕년에 힘깨나 썼을 분인데······. 봄부터 죽 지켜보았는데 늘 저러고 있는 듯 해.”

“아냐! 간혹 공원을 빙빙 돌기도 하데. 오늘은 청소를 하네.”

“며칠 전에도 청소를 했어. 심심한가 봐요.”

그때 고등학생 같은 청년들이 여러 명 공원에 나타났어요. 그들은 왁자껄 뭐라고 떠들며 몰려오더니 난데없이 의자에 뛰어 오르거나 밀고 그늘집 기둥을 발로 마구 찼어요. 그늘집이 곧 무너질 듯 흔들흔들 했어요. 할머니들이 그걸 보고 혀를 찼어요.

“아니, 그냥 놀다가지, 힘이 넘치니까 시설물을 마구 부수려하네.”

“저 애들은 학교에도 가지 않았나 봐요. 공부할 시간인데 저렇게 돌아다니는 걸보니.”

학생들에게 뭐라 말했다가는 도리어 당할까 봐 할머니들은 체육기구에 매달려 못 본척하고 말았지요. 그때 때죽 할아버지가 빗자루를 든 채 학생들 곁으로 슬슬 다가갔어요. 할아버지는 땅에 떨어진 휴지나 잎을 쓸었어요.

“야야! 재미없다. 뭐 재미있는 거 없어?”

하고 할아버지를 놀리려는 듯 바라보았어요. 그러자 다른 학생들이 덩달아 웃었지요. 그때 할아버지가 말했어요.

“얘들아, 여긴 공원이란다. 조용히 놀아야지!”

“어어! 영감이 우리하고 친구하자 이거야?”

하나가 반말로 그러자 다른 학생들이 웃어 댔지요. 순간 할머니들도 숨을 죽였지요. 할아버지가 학생들에게 해코지 당할 게 뻔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더니 힘 있게 나지막하게 말했어요.

“학생들! 난 이곳 지킴이야. 얌전히 내 말을 들어. 공원은······.”

“어어! 영감이 정신 빠졌네! 우리에게 도전을 해?”

만만치 않은 기세로 학생들이 할아버지를 빙 둘러 쌌어요. 그때 할아버지가 호주머니에서 뭔가 꺼냈어요.

“학생들! 이거......”

그들이 우 할아버지가 내미는 걸 들여다보더니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어요.

“우와! 사탕이잖아? 할아버지 우린 젖먹이 어린애가 아녜요!"

그때 공원 옆 영통사 주지 스님이 나오셨어요. 스님이 다가서며 야단을 치셨어요.

“학생들! 왜 그러나? 할아버지께 그러면 못 쓰지!”

학생들이 주춤 물러서는데 주지 스님이 또 한마디 하셨어요.

“학생들, 할아버지는 이 공원을 지키려고 나오셨어. 요즘 어린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좀 많아? 너희들은 모르지? 할아버지는 유도를 하신 분이야.”

“어어, 스님 무슨 말씀이요. 나, 난 힘 못써요. 얘들아! 이거나 받아!”

때죽 할아버지는 손을 홰홰 내저으며 스님의 말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가 주시는 거 받지 않고 뭐 하노?”

주지 스님의 재촉에 학생들은 사탕을 하나씩 받아들고 고개를 굽실거리면서 도망가 버렸지요. 그때 학교에서 돌아오던 재후나 영채도 그 광경을 보았어요. 학생들이 쩔쩔 매며 달아나는 것을.

할머니들의 입소문으로 공원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그 일을 알게 됐어요.

때죽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는 큰마을 공원은 참 평화로워 졌어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아도 든든하게 지켜주시는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부모들도 안심을 했지요. 영통사 스님도 자주 나와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주셨고요.

 

 

5월이 되니까 보기 싫게 갈라지고 때만 흐르던 때죽나무 가지와 잎 사이에 하얀 꽃이 예쁘게 피었어요. 자그맣게 한꺼번에 꽃송이 여러 개가 무리지어 잎 속에서 얼굴을 내밀며 때죽 할아버지께 인사를 했어요. 재후와 영채도 아래로 쳐진 때죽나무 흰 꽃을 좋아하게 되었지요. ****

 

 

 

 

 

졸작 동화 "때죽 할아버지와 사탕"이 실린 <월간문학> 2011년 4월호 표지와 때죽나무의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