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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시와 동시

[스크랩] 김현우 동화 / 힘내라 순복아

by 남전 南田 2011. 11. 5.

     동화

힘내라! 순복아

김현우

 

순복이가 순복이란 이름을 얻기는 배가 불룩한 할아버지 집에서였다.

배불뚝이 할아버지는 운동부족으로 살이 쪘다면서 매일 아침이면 등산을 했다. 집에서 산으로 가자면 나락이 자라고 있는 들판을 가로지르며 있는 8차선 도로를 건너가야 했다.

비교적 건강한 할아버지는 지팡이도 없이 휘적휘적 빠르게 걸어 다녔다. 순복이는 짧은 다리 때문에 부지런히 달려야 할아버지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어쩌다 논두렁에 팔짝팔짝 뛰어가는 개구리라도 발견해 한 눈을 팔기라도 할 때면 할아버지는 벌써 8차선 도로를 건너려고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곤 했다.

“순복아! 순복아!”

할아버지는 순복이가 뒤따라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고함을 쳐서 순복이를 찾았다. 짧은 다리 작은 키 때문에 나락이 제법 자란 논두렁에 들어간 순복이가 보일 리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순복이는 달아나는 개구리 쫓기를 멈추고 되돌아서기 마련이었다.

“목사리를 풀어 놓으면 날 잘 따라 다녀야지! 이 도로는 차들이 너무 쌩쌩 달려! 횡단보도 앞 신호등이 빨간 불이건 파란 불이건 건너는 사람이 없다 싶으면 차가 막 지나다니거든. 조심 해야지. 이곳을 건넌 땐.”

할아버지는 순복이가 쪼르르 달려와 바짓가랑이 사이를 뛰어다니며 꼬리를 치면 그제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순복이가 순복이란 이름을 얻기 전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할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서너 달 전, 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어! 조 교장. 이거 곤란한 일이 생겼어. 자네가 해결해 주게.”

“왜? 집에 무슨 일이 생겼어?”

“집이 아니고 도서관 일이야.”

“또 도서관에 봉사할 일이 생겼군 그래.”

할아버지는 친구가 일하는 도서관에 자주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사실 봉사라기보다는 친구에게 놀러간 김에 이것저것 도와주었던 것이다. 친구가 부르는데 가만있을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당장 차를 몰고 달려갔다. 그는 부지런하다고 소문났고 난처한 일을 척척 해결해서 친구들 사이에 해결사라고 소문이 났다.

“요, 요것 좀 보게……. 요놈이 어딜 갔나?”

허리가 구부정한 친구는 그를 보자마자 악수를 하면서 누구인가 두리번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친구는 평생을 다니던 직장을 늙어 정년퇴직을 한 후 도서관에 와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뭐야? 커피라도 한 잔 먹여 놓고······ 손님 접대가 영 아니로구먼.”

“따라 와 보면 알거 아냐?”

배불뚝이 할아버지가 뭐라 하건 말건 허리 구부정한 친구는 누군가를 찾아 도서관 마당으로 나갔다. 젊은 여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예쁜 아가씨 소개해 주려 그런답니다. 교장 선생님이 아주 좋아 하실 거예요.”

“에이! 다 늙은 주제에 웬 아가씨요?”

젊은 여직원 말에 우스갯소리로 받아 넘기며 마당으로 나가니 허리 구부정한 친구가 털이 하얗고 몸집이 자그마한 개 한 마리를 부르느라 쭈그리고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작은 몸매의 개는 조심스럽게 친구에게 다가왔다.

“웬 강아지여? 요놈 눈에 까만 점이 있는 걸보니 무슨 종자라더라? 그런 거군.”

“설마 보신탕 감으로 생각지 않겠지?”

“너무 작아서 보신탕 감이야 되겠어?”

“당연히 안 되지! 그래서 고민 끝에 조 교장 집에 이 아가씨를 시집보내기로 했어. 사양하지 말어.”

친구는 어떻게 되어 몸집이 작은 개를 돌보게 되었는지 얘기를 했다.

“한 십일 쯤 됐나? 출근을 하니까 요놈이 현관문 앞에 퍼질고 있다가 인기척에 도망을 치는 거야. 그땐 예사로 여겼지. 이웃 개가 잠시 바람 쐬러 나왔거니 하고 말이야. 그런데 청소를 하다 보니 요게 또 현관문 앞에 쪼그리고 있지 뭐야? 당장 빗자루를 들고 쫓아냈지. 제 집으로 가라고······.”

그런데 한참 후에 보니 또 그 자리에 와서 누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몸이 온통 더럽고 며칠을 굶었는지 배가 짝 달라붙어 있었다. 허리 구부정한 친구는 사무실로 돌아와 먹다 남은 과자를 들고나가 개 앞으로 다가갔다.

“야야! 이거 먹어라. 배가 고픈가 보구나.”

그러나 조금 전 쫓겨났기 때문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친구 할아버지는 신문지를 깔고 비스킷을 놓아두고는 물도 떠다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였지. 집을 나왔거나 개 주인이 요놈을 버렸거나······. 요놈이 갈 곳이 없었던지 가지를 않아. 그만 발 쭉 벋고 이곳을 제 집으로 삼은 거야. 며칠을 대리석 바닥위에 자는 거야. 어쩔 거야? 하는 수 없이 내가 종이박스를 내다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더니 이젠 완전히 주인 행세를 하네? 도서관에 오는 열람자들에게 제법 크게 짖어대니 말일세. 허허허.”

“이런 곳에 개를 키우다니 안되지!”

“바로 그 말이네. 밤이면 사람이 없고, 월요일이면 문을 닫는 곳이 아닌가? 그럴 땐 누가 개밥을 주나? 하루 종일 굶기 마련이지. 쫓아내도 도로 돌아오니 이걸 어쩌나? 옛 말에 짐승이 제 발로 집에 들어오면 그게 복덩이라 하지 않았던가?”

“암! 굴러 들어온 복덩이 누가 내치나? 안 되지.”

“사실 요걸 차에 실어 멀리 갖다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도서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분양하기로 했지.”

“아, 자네가 키우지?”

“난 아파트에 살지 않아? 그러니 곤란하고····· 우리 직원들에게 권해도 다 어렵다 하고.”

“희망자가 없었구먼.”

“결국 자네 생각을 했어. 자네는 들 복판에 있는 마을의 단독주택에 사니 개를 키울만하지 않아?”

그 말에 배불뚝이 할아버지는 작은 개를 다시 내려다 봤다. 눈가에 검은 점이 예뻐 보였다. 품종이 뭔지 알 수 없었으나, 어쩌다 집을 잃어 외롭게 떠돌아다니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친구 곁에 쪼그리고 앉은 것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었다.

“그러지! 친구 좋으면 강남도 간다는데 요놈을 데리고 등산을 다니면 심심치는 않겠어.”

“좋지 좋아! 요놈이 복덩이야. 전에는 뭐라 불렀는지 몰라도 이름을 ‘복’자가 들어가게 지어. 난 임시로 복덩이라 불렀어. 참 순하게 생겼고······”

“그럼 난 복순이? 아니 순복이라 부를 거야.”

순복이는 그렇게 새 이름을 갖게 되었다. 순복이는 배불뚝이 할아버지의 고급 승용차에 실려 십일쯤 머물렀던 도서관과 작별했다. 허리 구부정한 친구와 도서관 직원들 두어 명이 나와서 손도 흔들어주며 짧은 인연을 아쉬워하며 순복이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잘 가거라. 가서 행복하게 살아!”

 

그렇게 시작된 순복이의 행복은 서너 달을 넘기지 못했다.

그날 등산을 나서는 할아버지의 걸음이 빨랐다.

순복이는 그날따라 할아버지 뒤를 쫓아가지 않고 미적거렸다. 꽃밭에 날아드는 나비를 쫓거나 마을 앞 커다란 느티나무 둘레를 빙글빙글 돌면서 딴청을 했다.

“어? 순복아! 빨리 따라와!”

그래도 순복이는 머뭇거렸다.

“등산을 가기 싫은 모양이군. 그럼 나 혼자 간다?”

할아버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바쁘게 걸어갔다. 할아버지가 산에 가는데 따라가지 않을 순복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느렸다. 할아버지는 8차선 도로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 가 섰다. 보통 때면 순복이가 따라 왔나 하고 뒤돌아보는데 그 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길 건너 신호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배불뚝이 할아버지는 신호등 불빛이 바뀌고 달리던 차가 서자 슬슬 걸어 8차선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순복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으레 어디선가 나타나 따라오겠거니 생각했으므로 걱정도 않고 길을 건넜다.

길을 다 건넌 할아버지는 그제야 순복이가 제 뒤를 따라오지 않았음을 알았고 돌아서서 찾았다.

그때 순복이가 길 건너에 서 있었다.

“어? 순복아!”

할아버지가 엉겁결에 불렀는데 그 소리에 순복이는 달리기 시작했다. 깜빡깜빡하던 횡단보도 신호등이 그때 빨간 불로 바뀌고 말았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차들이 부르릉 바쁘게 출발했다.

“아이고! 순복아! 거기 서!”

할아버지가 고함을 쳤으나 그때는 늦었다. 순복이는 달리는 차들 사이에 파묻혀 버렸다. 눈 깜작할 사이였다. 차들은 자그마한 몸집의 개를 미처 보지 못했다. 쏜살같이 씽씽 달리기만 했다. 할아버지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끔찍한 광경을 그냥 바라볼 수가 없었기에.

얼마나 지났을까?

정지 신호가 켜지고 차들이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할아버지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순복이가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아! 순복아!”

할아버지는 길 가운데로 쫓아 나가 순복이를 끌어안았다. 순복이의 다리에 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용하다, 용해!”

할아버지는 너무나 감격해 순복이 머리를 쓰다듬고 피 흐르는 다리를 움켜잡았다. 등산을 가려고 나오던 마을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기적이야! 차가 수 십대 무섭게 달리는 속에서 살아나다니!”

“저 놈이 민첩하게 바퀴와 바퀴 사이 그 아래에 쪼그리고 앉은 거야. 그러니까 차들이 그 위로 지나갔지.”

“어째! 발만 조금 다쳤는가? 아, 아니야, 다리가 몽땅 절딴 났는걸.”

순복이는 많이 다쳤다.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지만 오른쪽 다리가 차바퀴에 약간 깔렸는데도 부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부목을 대고 붕대를 칭칭 감아 맸다.

“절름발이가 되고 말겠군. 그래도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고말고.”

할아버지와 이웃 사람들이 걱정을 하면서 순복이가 건강해 지기를 빌었다.

그런데 순복이에게 더 큰 일이 일어난 것을 알기는 며칠이 지난 후였다. 개밥을 주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할아버지께 말했다.

“순복이가 새끼를 가졌나 봐요.”

“뭐야? 새끼를 가져?”

“잘 보세요. 배가 볼록하지 않아요? 사고로 다리나 엉덩이가 반쪽이 되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새끼를 가진 게 분명해요.”

“그렇다면 축하할 일이로군. 순복이는 복덩이야.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거기다 새끼까지 가졌으니…….”

“사고 때문에 뱃속의 새끼들이 탈이 없어야 할 텐데······.”

할아버지 내외는 기뻐하면서도 한편 걱정을 했다. 할머니는 순복이가 불쌍하다며 갈치 토막도 통째로 주고 사료도 좋은 것을 사와서 먹게 했다.

“어쩌든지 새끼를 잘 낳아라. 너와 똑같이 닮은 새끼를 낳으면 얼마나 좋겠니?”

“어허! 당신은 꼭 무슨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처럼 걱정스러운 표정이구려. 순복이를 봐요. 잘 먹고 편안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잖소? 별일 없을 거요. 사고 후유증도 없이·····.”

순복이는 교통사고를 당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절뚝거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이나 골목까지 나다녔다.

 

그 날은 할아버지 내외가 외출을 했다. 손자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네 집에 갔다가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그동안 순복이만 집을 지켰다. 할아버지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순복이를 찾았다.

“순복아! 할애비 왔다!”

“어디 있노? 순복아. 할매도 왔다.”

다른 때 같으면 대문 열리는 소리만 약간 나도 달려 나와 꼬리를 흔드는 순복이가 기척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불안해 져서 고함을 쳐 순복이를 불렀다. 그러나 순복이는 달려 나오지 않았다.

“어어! 순복이가 담을 넘어 마실 갔나?”

“우리가 없으면 집 잘 지키는 순복이가 마실 갔을 리가 있어요? 사료도 듬뿍 놓아두고 갔으니 굶었을 리도 없는데·····.”

할아버지 내외는 순복이를 찾아 집안으로 쫓아 들어갔다. 그리고 마루 구석에 숨져있는 순복이를 곧 발견했다. 순복이의 몸은 싸늘했다.

“쥐약을 먹었나?”

“요새 쥐약이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는 그때 번쩍 생각이 떠올랐다.

“새끼를 낳으려다 죽었구먼······.”

“아아, 그럴지도 모르죠. 교통사고 바람에 순복이 엉덩이가 부서져서 반쪽이 되어 있었잖아요? 진작 동물병원에 데려가 볼걸.”

할아버지는 순복이를 흰색 셔츠에 둘둘 말아 안고 날마다 다니던 등산로로 갔다. 사람들의 발걸음 흔적이 없는 양지쪽 풀밭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순복아. 네 운명이 그런가 보다. 잘 가거라.” 

 

 

동화가 실린

<아동문예> 2011년 11, 12월호(통권389)

출처 : 경남아동문학회
글쓴이 : 김현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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