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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시와 동시

동화 / 나나우유바의 풍차 ㅣ 김현우

by 남전 南田 2013. 9. 13.

 

 

<아동문예> 2013년 '9~10월호'에 발표한 창작동화 "나나우유바의 풍차"를 올립니다.

 

동화

나나우유바의 풍차

김현우

 

 

 

 

 

 

 

낙동강 강가 넓은 들판에는 봄이면 노랗게 유채꽃이 피어나지요.

너무나 아름답고 장관인 유채꽃 구경을 하러 사람들이 욱개둑 들판으로 모여들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해마다 꽃밭이 자꾸자꾸 늘어났답니다. 몇 해가 지나자 넓은 유채꽃 밭이 강을 따라 십리가 넘게 퍼져나갔지요.

 

 

원래 이 들판은 밀과 보리, 여름이면 땅콩이나 고구마를 심던 기름진 밭이었어요. 서쪽 거름강 들판에서 시작하여 날물, 주러리, 욱개둑, 시나리들…… 이름도 예쁜 들판이 동쪽 편으로 20리나 되었어요. 최근에는 오이 고추 수박 비닐하우스 온실들이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지요. 그런데 큰비가 내리면 홍수 때문에 농작물들은 진흙탕 강물 속으로 들어가 버려서 농사를 망치기 일 수였어요. 그래서 10여 년 전 강변개발을 서둘러 넘쳐나는 강물을 막아주는 제방을 쌓는 규모가 큰 공사를 했어요. 그 때문에 들판에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고 말았어요. 들판이 텅 비어버렸어요. 욱개나루터 근처에는 오래된 마을이 있었는데 그마저 절반 넘게 집이 사라져 버렸지요. 역시 그 자리에는 높은 제방이 들어서고요.

욱개사람들은 해마다 홍수피해로 고생을 많이 해 왔기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고 잘하는 일이라고 찬성하는 쪽이 많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수 백 년 살아오던 강마을의 집들이 뜯겨 나가고 농사를 짓던 밭들이 풀밭으로 변하고보니 마음이 모두 언짢아 졌지요. 그래서 늦가을에 유채를 심어 봄에 노랑꽃이 피면 유채꽃 축제를 열자고 했어요. 그러면 예전 농사를 지어오던 들판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을 듯 했지요.

축구장이 2개나 들어선 체육공원, 아주 넓은 잔디밭과 주차장도 만들어 졌어요. 유치원과 어린이집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구경 오는 공원이 된 거죠.

 

 

유채밭에는 노랗게 꽃만 피어있는 게 아니지요. 중간중간에 따오기도 있고 산토끼도 있고 누렁소와 송아지 모형도 있었어요. 또 올해는 나비가 가득 찬 온실도 지어져 해마다 구경꺼리가 하나씩 늘어났지요. 물론 유채꽃밭 꼬불꼬불한 들길을 누비고 다니는 미니열차도 생겼고요.

유채밭 중간쯤에는 우리나라 한반도 모형을 만들어 보리를 심고 그 둘레에 여러 색깔로 꽃피는 튤립을 아기자기하게 심어 놓았지요. 그곳은 가족들이 많이 몰려들어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지요. 아하! 빠진 구경거리가 하나 더 있네요.

그곳에는 튤립꽃밭만 있는 게 아니고 키가 7, 8m는 될 풍차가 버티고 서 있어요. 시원한 강바람을 쏘이면서요.

풍차는 빨강 지붕에 하얀색 날개를 4개 펼치고 있지요. 초콜릿색의 네모난 몸에는 출입문이 2개 창문이 2개, 조금 높은 중간에도 창문이 달렸는데 모두 하얗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풍차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날개가 돌아가지 않는 조형물이었어요.

풍차 안은 텅 비어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 들쥐들의 보금자리로 변하고 말았지요. 들쥐들이 아래쪽에 작은 구멍을 서너 개나 뚫고 드나들었어요. 풍차날개에는 강가 갯버들 숲에서 살던 참새와 까마귀들이 날아와 쉬는 쉼터가 되었지요. 어쩌다 들쥐를 잡아먹으려 너구리나 족제비가 나타나곤 했죠. 그렇지만 들쥐들이 드나드는 쥐구멍이 너무나 작아 풍차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었어요.

들쥐나 참새들 말고 풍차를 자주 찾는 단골손님이 꼭 한 명 더 있었어요.

그는 제방 너머 마을에 사는 화가였는데 다리가 불편한지 절뚝거리면서 느릿느릿 나타나곤 했어요. 화가는 이젤을 펼치고 큰 종이 한 장 놓고는 멍청하게 풍차를 바라보는 거예요. 그림 그릴 생각은 않고요. 어쩌다 그림을 그려도 왼손으로 느리게 움직였지요.

들쥐들이 그래서 저희들 끼리 구시렁거렸지요.

“또 와서 저러고 있네? 그림은 안 그리고 게으름만 피워.”

“마을 사람들 얘길 들으니까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화가는 아니래.”

“큰 병이 걸려 팔다리가 불편한가봐. 오른손을 통 못쓴다나?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는 왼손을 사용한다는데?”

“그러니까 그림을 못 그리고 저러고 있지. 아이고! 답답해!”

풍차 날개에 앉아있던 까마귀와 참새들이 일제히 한마디씩 했지요.

“신경 꺼! 신경 꺼!”

“동정하지 마!”

“돌팔매질도 못 할 테니 마음 놓고 놀자!”

풍차는 너무나 소란스러워 몸을 흔들어 보지만 꼼짝도 않지요. 날개라도 휙휙 돌려 까마귀와 참새를 날려버리고 싶지만 그것도 안돼요. 그래서 풍차는 한숨을 쉬며 말했지요.

“허어! 왜 날 모형으로만 만들어 놓았을까? 빙글빙글 바람에 돌도록 만들어주었어야지!”

풍차의 굵은 목소리를 들은 까마귀들이 일제히 ‘까까까!’ 비웃어 댔습니다. 참새들이 ‘째째째!’ 웃어대며 폴폴 날았다가 도로 앉았지요. 모두들 풍차가 너무 엉뚱한 생각을 한다고 떠들었어요. 그러나 들쥐들은 조금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래, 속을 이렇게 텅 비어 놓지 말고 기계를 장치해서 돌릴 수도 있을 텐데…….”

“풍차 날개가 빙글빙글 돌아가기만 하면 저 시끄러운 소리도 듣지 않아도 돼.”

그러자 까마귀와 참새가 그랬지요.

“야! 너희들이 뭘 아냐? 족제비나 너구리가 오면 우리가 알려주지 않아? 우리가 없어봐라. 너희들은 며칠 사이에 다 잡혀 먹히고 말걸.”

정말 그렇기도 해요. 너구리가 나타나면 높은데 앉은 까마귀들이 발견하고 “까악까악” 짖어대며 연락을 해 주거든요. 참새들도 “짹짹짹!” 떠들고요.

“요새는 들 고양이도 이 근처 나타나더라고. 아이들이 점심밥을 가져와 먹고는 청소를 잘 하지 않고 버리거든.”

“물론 우리도 음식물찌꺼기를 먹고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쓰레기통에 버린 비닐봉투나 음식쓰레기들을 뒤져 먹고 살기는 새뿐만 아니라 들쥐들도 마찬가지죠. 얼마나 맛이 좋은 데요. 풀씨나 풀뿌리보다는 몇 배 맛이 있거든요.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요. 노랑물이 온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어 그의 그림 속에도 노란색이 가득했지요. 그때 유치원 아이들이 여럿이 몰려 왔어요. 아이들은 화가의 그림도 보고 풍차도 구경하고 그러다 한 아이가 화가에게 물었지요.

“아저씨! 이 풍차 이름이 뭐예요?”

화가는 고개를 들어 질문을 하는 아이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손짓했어요. 아이는 가리키는 쪽을 보았지요. 거기에는 빨간색 글자가 적힌 조그만 문패가 출입문 위에 붙어 있었지요.

“나나우유바의 풍차”

아이가 크게 소리 내 읽었지요.

“아저씨! 이게 무슨 뜻이에요? 나나우유바의 풍차 말예요. 바나나와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 이름 같아요!”

“아아! 그건 내가 지은 풍차 이름이란다. 너희들이 읽기 쉬우라고 밭침을 모두 떼버렸지. 풍차가 있는 이곳이 동강변 지읍 개둑들 채꽃 풍차이거든.”

“하하하. 낙이 나, 남이 나, 욱이 우. 유는 그대로, 밭은 바! 나나우유바!”

아이들이 복습을 하듯이 따라 하면서 재미있어 했지요. 풍차도 그때서야 자신의 이름이 나나우유바의 풍차란 걸 알게 되었지요.

“내가 나나우유바의 풍차라고? 흐음! 이름을 갖게 돼 기분이 좋구먼!”

멋진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저씨. 풍차 날개가 빙빙 돌아야지 딱 멈춰 서 있네요.”

아이 하나가 똑똑한 척 나섰어요. 그러자 화가도 고개를 끄덕였지요.

“나도 그게 싫단다. 풍차 모형이라니! 그래서 군수님께 풍차가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

“풍차는 바람이 불어야 날개가 돌아가!”

다른 아이가 아는 척 떠들었지요. 화가도 고개를 끄덕였지요.

“맞아! 강바람이 불 때 풍차가 빙빙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니? 난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

“바람을 안고 돌아가는 진짜 풍차가 되고 싶어요!”

나나우유바의 풍차도 화가의 말이 정말 당연하다고 고함을 쳤어요. 까마귀와 참새들은 시큰둥했고 들쥐들은 그 말이 백 번 옳다고 박수를 쳤지요.

 

 

유채꽃이 하나둘 떨어지고 들판은 초록으로 감돌면 열매가 익어갑니다. 그때쯤이면 풀 베는 트랙터가 나타나 들판의 유채를 깨끗하게 베어 소먹이가 되도록 둥그런 뭉치로 만들어 가져가 버립니다. 그러면 그곳에 다시 사료용 수수 씨를 뿌립니다. 수수는 가을이면 키가 멀쑥하게 자라고 또 베어져서 소먹이로 실려 가지요. 유채꽃이 없는 들판은 구경 오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져요.

그런데 나나우유바의 풍차는 기운을 차렸답니다. 왜냐고요?

화가의 부탁이 통 했던지 풍차 조형물을 만들었던 회사사람들이 나와서 며칠 간 뚝딱거리더니 날개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지요.

“선생님! 이제 날개가 바람이 불면 핑핑 돌아갈 겁니다. 그냥 도는 게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설비를 함께 설치해 놨어요.”

“발전시설에 조명까지 해 놓았다니 밤이면 멋진 꼬마불이 깜빡깜빡 빛나겠지요?”

“그럼요! 이제 이 풍차는 살아 있는 겁니다.”

“이름이 나나우유바의 풍차랍니다. 내가 지은 겁니다.”

“나나우유바의 풍차라? 이거 바나나 우유로 만든 거 아닌데요? 하하하!”

들쥐들이 공사를 하는 동안 잠시 쫓겨났다가 되돌아 왔어요. 그렇지만 참새와 까마귀들은 날아와 앉지를 못하고 지붕에 잠시 앉았다가 갯버들 숲으로 가고 말았지요. 풍차날개가 쉬지 않고 돌고 있었기 때문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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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가 실린

<아동문예> 2013.9`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