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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시와 동시

김현우 동화 / 광려천의 노루 토리

by 남전 南田 2013. 1. 14.

 

 

 

김현우 아동문학가가  2012년 경남아동문학회

 연간집 <날아라 뿔쇠오리>에  동화 "광려천의 노루 토리"를  발표했다.

 

동화

광려천의 노루 토리

김현우

 

 

 

 

 

 

광려천은 감천이란 골짜기에서 물이 흘러내려 저 멀리 낙동강으로 가는 큰 내입니다. 그 중간쯤 되는 곳 양쪽에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마을이 있습니다.

아파트단지 근처 냇가에는 집을 잃은 개와 고양이들이 갈대와 억새가 우거진 곳에 모여 살았습니다. 그들은 낮에는 아파트를 떠돌며 먹을 것을 찾았고 밤이면 냇가 억새밭에 모여들었답니다. 광려천 아파트 주위에 사는 개와 고양이들은 집이 없거나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떠돌이들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길고양이, 도둑고양이, 들개, 길강아지라 부르거나 광견병을 옮기는 미친개라고 멀리 내쫓아 버리려했습니다. 길고양이란 말은 길바닥에서 사는 고양이란 뜻이지요.

들개와 길고양이들이 사는 억새밭에 지난 초가을 새끼노루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세상 구경하느라 감천골짝 집을 나와서 물이 흐르는 내를 따라 왔다고 했습니다.

“아이고! 큰일 났네. 이곳이 얼마나 험하다고! 우리처럼 날쌔고 재빠르게 도망을 쳐야 살 수 있는 세상이야.”

주인을 잃은 진돗개 날개돌이가 한마디 하자 역시 집이 없는 고양이 꺄웅이가 거들었습니다.

“어쩌면 좋아? 네 부모님들이 걱정을 하면서 찾고 있을 텐데! 그만 돌아가!”

이름이 토리라 하는 새끼노루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잃었어! 냇가 양쪽에 높은 축대 때문에 올라 갈 수가 없었어. 그냥 뛰어 오다가보니까…….”

“알았다, 알았어. 우리랑 같아 살자.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고!”

날개돌이가 말하자 꺄웅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외톨이라고 새끼노루를 ‘토리’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

“저것이 뭐야?”

광려천 냇가 밭에서 일하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분명 회색인가 노랑인가 개처럼 큰 물체가 저 앞 억새밭 가운데로 통통 뛰어 가는 걸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상 하네? 웬 노루야? 그러고 보니 배추를 뜯어 먹은 놈이 바로 저 놈이었구먼. 동네복판에 노루가 있을 리가 없는데? 분명 노루 같았는데 개를 잘못 보았나?”

할아버지는 개를 잘못 보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번 이제 하얀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억새밭을 유심히 바라보았지요. 그때 그쪽에서 진돗개처럼 노란 털이 부숭부숭한 개 한 마리가 슬금슬금 기어 나왔습니다.

“허어! 개였구먼. 그럼 그렇지!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노루가 나타날 리가 없지.”

광려천 아파트에 사는 할아버지는 가꾸던 배추밭 고랑에 엎드려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냇가의 빈터를 밭으로 일구어 배추, 무, 고추, 상치 같은 채소를 심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아침저녁 나다니며.

 “야야! 너 어찌하려고 할아버지가 키우는 배추를 뜯어 먹었니?”

“이제 토리 네가 이곳에 산다는 걸 할아버지가 눈치 챌 거야.”

집을 나온 새끼 노루 토리도 고개를 쭉 빼며 변명했습니다.

“글쎄! 어찌나 좋은 냄새가 나기에 맛을 본 것뿐이야. 그게 배추로구나! 참 맛이 좋았어.”

노루 토리의 말에 날개돌이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농사를 망치면 큰일 나! 사람들에게는 총도 있고 독약도 있지. 총을 땅! 하고 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거나 도망을 쳐도 죽는 거야.”

“총보다 무서운 건 올가미야. 우리 친구 하나도 올가미에 걸려 죽었어. 요즘 사람들이 우리 고양이가 신경통에 특효라면서 보이는 족족 잡아가!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광려천으로 피난 온 거야.”

“고양이보다 노루가 신경통에는 최고라고 하던데? 요 앞 아파트 노인들의 쉼터에서 들은 얘기인데! 그러니 만약 여기에 나와 꺄옹이 말고 토리라는 노루가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사람들이 막 몰려 나와 널 잡아먹으려 할 거야.”

그렇게 크게 떠벌리는 바람에 토리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

토리는 십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감천 골짜기에서 아빠 엄마 몰래 세상 구경을 하러 나왔습니다. 사람들 말을 빌리면 가출을 한 셈이지요. 지난여름 태어나서 언니 동생과 함께 감천 골짜기를 마음대로 뛰어 다니며 놀았지요. 그러다 어느 날 세상 구경을 하고 싶었습니다.

“나, 저 아래 마을로 내려가 볼 꺼야. 옛날 그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해 주었다면서? 나무꾼과 선녀 얘기 알지? 사냥꾼을 피하게 노루를 숨겨준 나무꾼에게 선녀와 결혼하게도 해 주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우리 노루 조상님이 명당도 잡아 줘 큰 부자가 되게 해 줬다던데? 아빠가 그런 얘기를 해 줬지 않아?”

“그래서 사람들이 노루 고기를 먹으면 재수가 없다고 우리를 아예 잡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조심하는 게 좋아!”

“암!”

언니와 동생은 걱정을 했지만 골짜기에 안개가 낀 아침, 잠이 든 식구들 모르게 집을 나섰습니다. 동네 어귀에 넓은 개울이 있었습니다. 먼저 그 맑은 냇물을 마시려고 언덕을 내려갔습니다. 그때 바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리에서 사람들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 아아!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고 잡으러 오는 구나! 도망쳐야지!

토리는 엉겁결에 산으로 가는 길 반대편인 아래로 흘러가는 냇물을 따라 도망쳤습니다. 한참동안 도망치다가 우뚝 멈춰 서서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냇가 양쪽에는 아주 높은 축대가 쌓여져 있어 토리 제 힘으로는 올라 갈 수가 없었습니다. 토리는 길을 찾아 더 아래로 달렸습니다. 어디쯤엔가 높은 축대가 없는 곳이 발견되면 그곳으로 올라가면 될 것이니까요. 그런데 토리는 너무 당황해서 골짜기 쪽이 아닌 시내 쪽으로 계속 뛰었으니 점점 감천골짝 집에서 멀어졌지요. 냇가 양쪽에 아파트가 들어선 곳까지 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

산에서 내려온 새끼노루 토리는 곧 억새밭에 사는 개와 고양이들과 친해졌습니다. 토리는 그들과 달리 풀만 뜯어 먹으니까 먹이 때문에 다투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와 고양이들은 밤이고 낮이고 아파트 주위를 돌아다니며 집밖에 내어 놓은 음식쓰레기 봉지를 뒤지거나 아니면 주인 몰래 부엌에 들어가 닥치는 대로 훔쳐 먹기도 하는 걸보고는 흉을 보기도 했지요.

“얘들아! 나처럼 풀을 먹으면 좋아. 얼마나 깨끗하니? 우리 집 근처는 이보다 더 좋은 풀과 잎들이 많았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래서 진돗개 날개돌이가 억새밭에 모여든 개와 고양이들에게 집을 나온 노루 토리의 딱한 사정을 애기했습니다.

“얼마 전에 여기서 농사짓는 할아버지가 토리를 보았는데 얼른 날개돌이가 쓱 나가서 아닌 척 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도 노루가 아니고 개를 잘못 본 것으로 생각 들게 했지요.”

꺄옹이가 그때 있었던 일을 얘기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토리를 발견했으니 곧 사람들이 잡으러 올 거야.”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자아! 우리가 할 일은 토리를 제 집이 있는 감천골짝으로 데려다 주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니 토리가 발견되기 쉬워요. 그러니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어허! 그러니까 토리가 더 이상 우리 동네 억새밭에서 살 수 없다는 거야? 여름에는 억새가 키가 커서 토리가 살기에 딱 알맞고, 겨울이면 억새 숲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한 가 말이야.”

개와 고양이 친구들 중에서 나이가 열 살이라면서 세상 살아온 경험이 으뜸이라고 떠들며 대장 노릇을 하던 점백이가 고개를 끄떡이며 나섰습니다.

“누가 길을 잘 아는가? 길잡이가 있어야 돼! 감천 마을에서 온 녀석이 없어?”

“내가 잘 압니다.”

얼마 전 병이 들자 주인이 자동차에 실어서 감천 마을에 내다버리고 갔다면서 눈물을 흘렸던 꼬마 살살이가 나섰습니다.

“됐구만! 며칠 후 밤에 출발하세! 빈틈없이 준비를 해서! 꺄옹이와 식구들은 살살이를 따라 앞장서서 인도하면서 위험하지 않나 살피며 길을 트고, 특히 올가미가 있나 없나 살피며 나가고! 나와 날개돌이는 토리 호위를 맡지.”

“나머지 친구들은 토리 뒤를 맡아! 조용히 따라와야 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

그믐달이 뜨는 밤. 희끄무레 어둠속으로 개와 고양이 여러 마리가 소리 없이 움직였습니다. 그 중 키가 큰 점백이 옆에는 그 보다 키가 작은 토리가 꼭 붙어 있었습니다. 광려천 물소리조차 잠잠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냇가 언덕을 그냥 두지 않고, 돌을 쌓고 축대를 높게 만들어 우리들을 못 다니게 만들었을까?”

토리는 그게 궁금했습니다. 십리나 되는 길을 가는 동안 양쪽 아파트 불빛이 아주 밝게 비추었으므로 몸을 감추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자자! 모두들 힘 내! 조금만 더 가면 감천 동네 다리가 나온다니까. 거기까지 가면 골짜기로 오르는 길이 있을 거야.”

점백이와 날개돌이는 토리가 지치지 않도록 너무 빨리도 너무 느리게도 가지 않았습니다.

“고마워! 날개돌이.”

“우리가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정말 좋은 친구였지?”

“아니야! 나는 태어난 지 이제 겨우 몇 달이 되지 않았지만 돌이는 나이가 두 살이라면서? 그러니까 언니이지!”

드디어 감천 동네 다리목에 다다랐습니다. 언덕위에 희끄무레한 그림자 둘이 서 있었습니다.

“아빠, 엄마야. 날 가다리고 있었나 봐. 모두 모두 고마워.”

토리는 냇가 언덕을 뛰어 오르며 같이 온 개와 고양이 친구들에게 고함을 쳤습니다.

 

 

 

 김현우

경남 창녕 출생.

1964년 <학원> 장편소설 당선.

동화집 <산메아리> <도깨비동물원> 외, 장편소설 <하늘에 기를 올려라> 소설집 <욱개명물전> <완벽한 실종> 외 다수.

한국문협,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원, 경남문학관 사무국장 역임,

경남문인협회 소설분과위원장(현).

경남아동문학상, 경남도문화상, 황우문학상 등 수상.

 

 

 

 

 

 

 

(경남아동문학회 2012.연간집 "날아라 뿔쇠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