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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크랩] 김현우 단편소설 / 력셔리하게

by 남전 南田 2013. 6. 25.

 

 

이번 6월에 발간된 <경남문학> 2013년 여름호(통권 103호)에

김현우 소설가가 단편소설 "럭셔리하게 - 당신의 행복을 리모델링해 드립니다"를 발표하였다.

 

 

 

 

단편소설

력셔리하게

-당신의 행복을 리모델링해 드립니다.

 

김현우

 

 

“저, 저게 무슨 소리고? 럭셔리하게? 행복을 리모델링 한다꼬?”

“야! 그냥 토 달지 말고! 큰 글자만 보라모! 돌말타운 재개발사업 추진위원회 발족! 앞뒤 빨간 글자 안 뵈이나? 경! 축!”

“아따! 내가 묻는 거는 럭셔리는 뭐꼬, 당신의 행복은 뭐꼬? 그냥 돌말 너절한 하꼬방 주택 재개발사업을 추진한다꼬 쉬운 말로 하면 어디 덧나나? 프랑카드 내 걸면서 꼭 영어 몇 자 양념해야 되느냔 말이다. 우리 겉이 무식한 놈이나 노인네들은 어디 알아먹겠어?”

“박 씨! 모로 가거나 우짜거나 저걸 보는 사람이 알아 묵으면 되는 거라! 시비를 걸 일이 어데 한 두가지이겄나? 세상만사! 그냥 모르고도 지나가고 알고도 지나가고…….”

철물점 정학도가 핀잔을 하자 쌀집 박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랄 염병하네! 사기 당하는 거 멀쩡하게 알면서 눈 뜨고 당하란 말이가? 당하더라도 알고 당해야제! 돌말 재개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여.”

“이제 출발아이가? 이 돌말이 재개발이 된다면 주민들 모두 돈방석에 올라앉고 로또 복권 1등 당첨 쯤 된다고 다들 들떠있는데 초치는 소리를 하면 박씨는 맞아 죽는다?”

두 사람의 입씨름은 이쯤에서 각설하고…… “럭셔리하게!” 어쩌고 하며 플랜카드가 돌말:石里 길거리 여기저기 나부끼기 시작할 5, 6년 전 그 무렵엔 주민들은 정말 크고 널찍하고 멋진 아파트가 그냥 굴러와 살판이 날 세상이 곧 오나보다 하고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해피! 행복=넓고 큰 아파트. 그런 등식을 모두들 꿈꾸기 시작한 것이었다.

 

누군들 널찍하고 큰 고급스런 아파트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돌말 토박이로 큰 한식집을 하며 시의원도 지내고 이곳저곳 사회단체 감투를 서너 개 쓰고 있는 황용달 회장과 역시 시의원, 마을금고 이사장, 돌말개발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개발위원 서너 명 등등등. 돌말에서 힘깨나 쓰고 말께나 한다는 유지들께서 둘둘 뭉쳐서 궁리 끝에 짜낸 발전계획이 바로 재개발사업이었던 것이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좁고 좁은 골목에 너무나 다닥다닥 붙은 낡고 찌그러지고 볼품없는 집들을 깡그리 밀어버리고 30층짜리 초고층 고급아파트를 짓겠다는 제안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고도 거의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사실 돌말은 남쪽 한 도시의 급조된 마을에 불과했다. 해방 직후만 해도 여름이면 마을을 휩쓸며 급류가 흘러가는 냇가 회화나무 서낭을 중심으로 집이 여남은 채 있었던 작은 마을이었다. 주민은 밭농사를 하는 농가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1960~70년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같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는 삽시간에 판잣집이나 다름없는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었다. 셋방이 불티나게 나가는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공장에 다니는 여공들에게 세를 놓기 위해 건축법은 아랑곳 않고 닥치는 대로 건물을 지을 땅만 있다하면 막 지어댄 마을이었다. 도시계획 같은 거는 아예 없었으니 거미줄처럼 엉킨 골목은 구불구불하고 행인 두 명이 지나가려면 어깨가 부딪칠 정도로 비좁았다. 자연히 넓은 밭을 소유했던 황 회장을 비롯해서 토박이 농가들이 비싸게 농토를 팔아먹어 부자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도 그 바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도 합세하여 코딱지만 한 방을 대여섯 개, 아니면 열 개쯤을 다닥다닥 넣은 시멘트블록 집들을 하루아침에 몇 채씩 지어서 팔아먹었다. 부동산업자가 되어 돈 벌이에 혈안이 되고 보니 무허가고 유허가고 그들에게는 상관없었다. 그저 집이란 지붕 있고 벽 있으면 되었고 이내 콧구멍 같은 비좁은 방에는 인근 농촌에서 마악 올라온 처녀들을 서너 명씩 채워 넣었고 방세를 챙겼다. 토박이 황 회장이나 정 이사장, 개발위원장 박성배 같은 이들도 다들 그렇게 재미를 보고 한 재산 모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드디어 의기투합 합작해 시작한 사업이 ‘돌말타운 재개발사업 추진’이란 거창하고도 생색이 나는 사업이었다. 일이 잘만 풀리게 된다면 예전의 부동산 재미를 또 볼 수 있으리란 꿍꿍이를 하고서.

 

처음 재개발사업이 발단되고서 온 마을을 재개발용역회사에서 고용한 여자들이 들쑤시고 다니며 재개발사업에 찬성한다는 도장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철물점 정학도는 절대 반란군이나 훼방꾼이 아니었다. 적극적인 지지자고 전폭적인 찬성론자였다. 재개발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황용달 회장이나 이사나 감사 등 요직을 맡게 되는 시의원, 마을금고 이사장 등등과 한패나 다름없었다. 돌말에서 철물점을 개업한지 30여년이 넘었으니 토박이나 다름없었고 황 회장과는 형님 동생 호형호제하는 흉허물 없는 사이였으니 적극 가담하는 입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몇 년 전 시의원선거 때 정학도가 선거운동을 제 돈 써가며 해 주었기에 그들 사이에 친밀도가 한층 높았다.

재개발사업 추진의 첫 단계는 관내 주민들의 의견을 한데 모으는 “재개발추진”을 찬성한다는 동의서에 주민들의 인감 날인을 받아내는 일이었다. 그 일은 황 회장 그룹이 직접 다니면서 주민을 면담하여 할 수 없었으므로 그걸 전문으로 하는 용역업체에 맡겼고 용역업체에서 고용한 여자들이 500여 세대 주민을 상대로 찬성 도장을 날인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마을은 시끌벅적해 졌다. 주민들의 동의가 60%는 넘어야 추진위원회인가 재개발사업조합인가를 구성할 수 있고 그때서야 재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으며 시청의 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인자 모두 부자된다꼬! 재개발 아파트 분양권만 받아 쥐어 보라모! 당당 수천만 원씩 푸레미엄이 붙어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아파트 떨어지제, 돈 벌제!”

정학도는 황 회장에게서 들었던 풍월을 그대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떠들어댔다. 아니 찬성 도장을 받으러 다니는 용역회사 여자들에게서 들은 얘기이기도 했다. 여자들은 인감증명 열 장을 요구하면서 찬성 날인할 서류를 내밀면서 주민들에게 그랬다.

“요게 도장만 콱 찍으면 아파트가 그냥 한 채 생겨요. 소문 못 들으셨어요? 재개발 분양권만 받아 놓아도 수 천 만원 프리미엄이 붙어서 부자 된다는 거 말예요.”

여자들의 얘기에 귀가 솔깃해지기는 정학도 뿐만 아니라 쌀집 박 씨나 설비 조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칼국수 집 커피자판기 앞에 모이는 길다방 그룹들 모두 기대에 부푼 얘기들을 나누었다. 다만 선생으로 지내다 정년퇴직한 김선생만이 조금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역시 그도 찬성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찬성파나 중도파 외에 재개발을 아예 반대하는 주민도 많았다. 그 중 집터도 좁고 평수도 적은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문씨가 적극적으로 떠들었다. 나중에 재산 평가를 하게 되면 20평짜리 아파트도 수천만 원을 더 보태야 분양받을 수 있을 것이고, 아파트 분양을 못 받게 될 형편인 주민들은 남의 집 셋방에 살아야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설파했다.

“내 집 내 땅에서 살기 어렵데이! 재개발이 되면! 내 겉이 쪼그만 집 가지고 있는 늙은이들은 제 집에서 쫓겨나 자기 명의로 된 아파트는 고사하고 셋방살이로 전락할 게 뻔한데 뭣 때문에 재개발에 동의할 것이고? 나는 절대 반대다.”

정학도는 동의서에 쉽게 날인을 하지 않았다. 용역회사 여직원과 주고받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철물점에 오는 담당 여직원은 미혼인지 유부녀인지 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요새 여자들이 하도 잘 꾸미고 다니니까. 왕년에 치마 두른 여자라면 뚱보든 곰보든 마다않았던 전력이 있는 사내라 변학도란 별명이 붙어있었으니 절대 여자를 그냥 지나칠 리 만무했다. 호시탐탐 치마를 들치고 일을 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아아, 내가 요즘 바빠서 동사무소에 갈 시간이 없었어. 인감증명을 열통이나 떼 와야 한다니! 그거 보통일인가? 대사지 대사야!”

“아이, 사장님도! 오토바이 타고 쪼르르 가시면 금방 인감증명 떼 오실 건데…….”

“허어! 사업하는 사람이! 점방 지켜야제, 단골 업자가 설비자재를 주문하면 배달해야 되제. 통 시간이 나지 않구먼. 그래! 담당하는 구역의 찬성 도장은 다 받아 가는가? 애 먹이는 놈 있으면 내한테 얘기해! 내가 설득해서 동의서 받아 주께.”

“아이, 사장님도 얼른 도장 안 찍어주는데 누가 쉽게 동의서 만들어줘요? 그리고 낮에 찾아가면 통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니까요. 저녁이 돼야 퇴근들 하시니까 여러 번 찾아가게 되죠.”

“그렇기도 하구먼. 낮에 집에 처 박혀 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노? 요새! 남자는 돈 벌러 가고 여자는 제비를 키우거나 바람 피러가고!”

“참 사람 만나기 힘들어요.”

“알았어! 내 오늘 내일 틈내어 인감증명을 해 오지!”

그래 놓고도 정학도는 선뜻 동의서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 토끼를 잘 잡아먹으려면 벼르고 으르고 그러다 멋진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런 날이 왔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저녁 늦게 옷이 푹 젖은 여직원이 새치름해져서 상점에 들렀다. 그는 두 말도 않고 상점 뒷방에 여자를 끌어들였다.

“이렇게 비오는 날 고생이 많구먼. 술 한 잔 하제? 마침 나도 술 생각이 났는데…….”

그는 옆집 북경반점에 탕수육을 시키고 진작 사다놓았던 소주병을 꺼냈다. 여자도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돌아다닌 뒤라 몹시 피곤하고 힘들었든지 그의 요구대로 방에 들어와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오늘은 인감증명 떼 놨어요? 사장님?”

“아아! 떼다 놓았지. 오늘 마음 턱 놓고 한 잔 하자꾸. 걱정거리 싹 잊어버려.”

왕년의 바람둥이가 여자의 치마를 벗기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여자 쪽에서도 그의 음흉함을 진작 눈치 챘다면서 스스럼없이 들어 누었다. 정학도는 그녀를 안고 뒹굴면서 큰소리쳤다.

“내 말만 들으면 돼! 내가 나서서 최소한 스무 집쯤 동의서를 받아 주께.”

그런데 정학도 입이 문제였다. 용역회사 여직원과 재미를 봤으면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지나갔으면 될 것을 매일 아침이면 커피자판기 앞에 모이는 사내들에게 자랑삼아 떠들었고 또 재미 본 여직원과 함께 다니며 주민 동의서를 받아내는데 일조를 했다.

그것이 그가 재개발추진위원회 이사가 되는데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말았다. 그는 황 회장에게 이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어! 동생은 대의원 명단에 진작 올려놓았어. 이사는 모두 30명인데 그건 벌써 정해졌어.”

하고 30명이나 되는 이사에는 끼지도 못하고 대의원을 하란 얘기에 두 말도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황 회장은 토를 달았다.

“여직원과 재미 봤단 소문이 온 동네에 쫘악- 이더구먼. 재개발조합 이사야말로 인품도 좋고 신뢰도 있어야 하고 재력도 겸비해야 되거든.”

그러고 보니 여자와 재미를 봤다고 이사는 안 되고 겨우 대의원이라도 해 먹으라는 얘기였다. 사실 이사는 회의 한 번 참석하면 10만원의 회의비인가 수당인가를 받는데 대의원은 수당 3만원에 커피 대접이 고작이라니 거기서부터 속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정학도의 속이 비틀어지든 말든 돌말에는 아지랑이 같은 봄바람이 골목골목에 소리 소문 없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날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고 몇 달을 기다려도 임자가 없던 집들이 하나 둘 팔린다고 했다. 3, 4천만 원에도 매입자가 없던 가옥이 5천만 원에 팔렸고 1억을 받을 수도 없었던 상가 건물이 그보다 훨씬 비싼 값을 받았다는 얘기가 돌말에 퍼졌다. 믿거나 말거나 서너 달이 지나니 약삭빠른 사람들은 집을 팔고 이사를 가는 일이 여러 건 생겼다. 재개발을 한다니 아파트 입주권을 노리고 부산의 투기꾼들이 달려들어 주민들 알게 모르게 10평도 채 안 되는 허름하고 낡은 슬레이트 불록 집들을 여러 채 사 모은다는 소문도 퍼졌다.

 

 

원래 친할수록 서운한 일이 쉽게 생기고 옹졸한 마음을 먹기 마련인가? 주요임원이 아니라 30명이나 되는 이사회 진용에 끼지도 못한 정학도는 황 회장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슬슬 원망으로 변하고 그러다 보니 불평이 늘어났다. 그런데 대의원이라도 시켜주겠다던 황 회장의 말은 끝내 뻥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는 몹시 서운했지만 항의 할 수도 어쩔 수도 없어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고만 있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황 회장과 등을 돌리게 된 것은 황금당 최 사장의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되었다.

“뭐라꼬? 길가 상인들은 아파트 한 채만 달랑 준다꼬?”

“아! 그렇다더군. 본격적으로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면 보상을 해 주니, 철거작업을 하니 하면 세월이 걸리고 또 아파트를 신축하는데 만도 3, 4년은 족히 걸리는데 그 사이 우리 상인들은 우째 벌어먹고 살란 말이고? 안 그래? 정 사장!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우린 상점 문 닫고 폐업해야한단 말이요. 그라면 누가 손해 본 걸 보상해 줄 껀지 오리무중이지!”

금은방·시계점을 하는 최 사장 이야기에 정학도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파트 한 채 분양 받을 생각만 했지 앞으로 먹고 살 장사는 어떻게 될 건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의 우매함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맞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아파트 생각만 했지 내가 여기서 장사를 못하고 폐업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점방을 구해 이사를 가서 영업을 계속해야 하는데!”

“허어! 정 사장도 답답하요. 장사꾼이 다른 사람들보다 한 서너 수는 앞서 봐야지! 그라고 우리들이야 내 건물이지만 재개발 구역 내 대부분 음식점들이나 상점들이 세 들어 있지 않아? 그 사람들 여기서 나가면 어디 가서 이렇게 싼 집을 얻어 장사를 하겠어? 낭패지 낭패야.”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우리 상인들도 대책을 세워야지! 힘을 모아야지! 장사를 4, 5년 못하거나 억지로 장소를 옮겨야 하니 당연히 손해가 막심할 것이니 그냥 재개발위원회에서 해 주는 처분대로 체면만 차리고 순리를 따지다간 죽도 밥도 안 되지 않겠어?”

최 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옳은 주장이었다. 진작 그걸 깨닫지 못한 자신의 우매함에 화가 났다. 최 사장은 재개발지구에 들어가는 지역의 상인들이 뭉쳐 대책을 강구해 주기를 요구해야한다고 강조를 하면서 벌써 그런 움직임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강제 폐업에 따른 피해보상은 물론 향후 아파트촌에 들어설 상가건물에 현재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들에게 분양권을 우선 배정해야 하며 4, 5년간 장사를 못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피해보상도 받아야겠다는 요구사항들을 정리하여 대책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아! 최 사장! 나도 상인인데 왜 날 돌려세워놓고 저희들끼리 궁냥을 해? 나만 까맣게 모르고 있었네! 쌀집 박씨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고 매일 아침이면 만나는 길다방 멤버들도 깜깜하던데?”

“허어! 정 사장은 황회장 그룹아이가? 세상이 다아 그쪽 편이란 걸 알고 있는데 누가 발설을 할 끼고? 내라서 정 사장에게 이실직고 하는 기지! 만약 우리 얘기가 새 나갔다가는 추진위원회 쪽에서 와해 공작이 들어오면 상인들 대책위원회도 구성도 못하고 무너질 것인데!”

“허어! 사람 잘못 보았네! 내가 황회장 편이라꼬? 난 말이야 언제나 옳은 일에 찬성하는 정의파야! 왜 그래?”

정학도는 게거품을 물고 황회장과는 진작 형 아우 사이는 금이 가고 깨어졌고 이제는 정도 뚝 떨어졌다고 불화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인들이 만들려고 하는 대책위원회에 꼭 참여해서 상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힘껏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보상이나 이주대책 등을 요구하는 ‘돌말상인연합회’라는 게 만들어지면서 정학도는 그 단체 말석 간부나 위원 자리 하나도 꿰차지 못했다. 이유야 간단명료했다. 뼛속까지 황 회장 패거리이며 만약 간부로 참여하도록 했다가는 이쪽의 정보를 속속들이 빼내어 저쪽에다 넘겨줄 위인이라는 것이었다. 동의서를 받으러 여자와 돌아다닌 걸 모르는 상인들이 없으니 당연히 정학도를 프락치로 여길 밖에.

속을 끙끙 앓고 있는데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이 생겼다. 시의원 김동주가 철물점 앞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서 한 마디 했다.

“뭐? 정 사장은 인자 황조합장하고 인연을 끊고 상인연합회를 적극지지 찬성한다면서요? 사람 인심이 조석으로 변해서야 어디 쓰겠소? 나이도 환갑 진갑 다 지내고 옳고 그른 사리판단을 잘할 분이 우째 그렇소? 재개발조합 일에 사사건건 방해를 노는 훼방꾼 노릇을 하다니!”

“뭐라꼬요? 인심이 조석으로 변한다꼬요? 내가 장사를 하니 상인연합회 인가 뭔가 들었제!”

“아따! 황조합장하고 형님 아우하면서 지낸 거 하루 이틀이요? 조합장님이 그런 소문을 듣고 아주 섭섭해 합디다. 앞으로 공사가 시작되면 공사자재 공급 한 몫을 정 사장에게 납품하도록 알선해 주려고 했었는데 그만 둬야겠다고 합디다.”

“어허! 뭐라 카노? 내사 상인연합회 가입을 한 거는 하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권하기에 그리 된 건데…….”

공사자재 납품 알선 얘기가 나오자 그는 일이 그리 된 게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면서 변명을 늘어놓았건만 김 의원은 비웃음을 흘리면서 가버렸다.

정학도는 그만 상점 안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맥이 빠져 버렸다.

— 빌어 묵을! 재수 없는 넘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부러진다더니……. 내 이것들을! 우째 원수를 갚노!

 

재개발정비 사업조합이란 간판도 걸리고 또 그 근처 공터에 조립식 건물을 지어 상인연합회라는 간판도 걸리고 그 사무실에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정학도는 이곳도 저곳도 가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재개발사업은 착착 진행이 되는지 총회를 열고서 시공자 및 주요 협력업체를 선정하기 시작했다. 정비사업 전문 관리 업체도 공사 설계회사도 모 건축사무소와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얘기도 들렸다. 뿐만 아니라 공사를 할 업체도 국내에서 몇 번째 손꼽히는 재벌계열 건설회사인 ‘abc건설’이 시공을 맡게 되었다는 플랜카드가 골목골목에 내 걸렸다. 중대형을 위주한 아파트 신축 계획을 세워 시에서 정식으로 조합 허가를 받아 냈고, 교통영향평가니 사업시행인가니 하는 절차도 속도를 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철거를 위한 자산평가를 해서 보상금을 산정하게 될 것이라면서 토지평가사들이 집집마다 다닐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졌다. 곧 철거도 시작될 것이란 말도 들렸다.

정말 일사천리로 순조롭게 일이 너무나 쉽게 진행되고 있었다. 순풍에 돛단 듯…….

그런 어느 날 아침, 정학도는 정신이 번쩍 들 얘기를 듣게 되었다. 조합장을 맡은 황 회장이 매월 수백만 원의 월급을 받아먹고 있으면서 시공사와 협력업체들로부터 뭉텅이 뒷돈을 받아 챙겼다는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가? 박씨!”

“어허! 정사장은 까막눈에 귀머거리가? 온 동네에 소문이 쫙 나서 동민들이 숙덕거리고 있는데 그거를 못 들었나?”

쌀집 박씨의 얘기에 정학도는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 옳거니! 인자 형님이고 목탁이고 안면몰수하고 황용달이 요놈을 유치장에 잡아 처넣어야지!

“어이, 박씨!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더노? 아무리 욕심 많은 황용달이라도 지 죽을 짓을 하겠나? 얼마 전에 서울인가 경기도인가 아파트 재개발위원장이란 사람이 돈을 받아먹고 구속되었다는 거 텔레비에 났던데?”

정학도는 짐짓 황 조합장 비리를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박씨의 말을 반박했다. 그러자 박씨가 거침없이 그가 들었다는 소문을 근거를 대가며 얘기했다.

“정 사장은 황용달이 편이라더만 내 말을 통 믿지를 못하는 모양이구만. 그 비밀을 캐낸 사람이 바로 부조합장 최사장이라! 최 사장이 바로 누고? 대형건물도 짓는 건설업자 아이가. 그라고 조합 설립 때부터 황용달이 옆에서 보조를 맞추어 온 인물이고. 그 사람이 황용달이 비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인기라.”

“대창건설 최사장이야 내가 잘 알제. 우리 철물점하고…… 거래를 많이 해 왔으니! 그래도 황용달이가 그럴 리가 있나? 동네 발전을 위해, 우리 조합원들의 재산증식이란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사람이!”

“정말 지금까지 일이 얼매나 순조롭게 추진되어 왔노? 아무도 반대하거나 티 뜯는 사람도 없었고! 그라니 자연히 조합장이 간이 커지고 배가 밖으로 나온 거지. 제멋대로 제 마음대로 일처리를 하면서 협력업체인가 시공사인가 뒷돈 많이 받을 업체를 선정했던 거 아이가! 그 뿐만이 아니라 결정적인 일은…….”

“그래 결정적인 인이 뭔데?”

“아직 토지나 건물 평가절차도 다 마치지 않은 마당에 벌써 건물 철거를 할 업체를 선정했다는 거야.”

“스피드가 꽤 잘나가는구먼. 황용달이 제 마음대로 하니까 업체 선정도 척척 했겠지?”

“바로 그거야! 사실 건물철거나 부지 정리를 하자면 앞으로 1년 쯤 지나서야. 먼저 조합원들의 재산을 평가하고 나서 진행되어야 할 사안이란거야. 시에서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먼저 받기도 해야 되고…… 그런데 철거업체부터 일찌감치 결정한다는 거 뭐가 수상하지 않아?”

“그렇군!”

“바로 대창건설 최사장이 황조합장 욕심을 폭로한 거지. 철거업체 선정을 일찍 내정한 것은 바로 철거를 빌미로 큰 거를 챙기려고 하는 음모다!”

“흠!”

“조합장이 선정한 곳이 바로 자기 집안 동생뻘이 되는 자가 하는 철거업체라는 거야. 철거를 맡기면 그게 엄청난 이권이 따르는 것이 아니겠어? 입찰을 봐서 선정해야할 일을 얼렁뚱땅 제 동생 회사에게 특혜를 준거지.”

박씨에게서 얘기를 들은 정학도는 좀이 쑤셨다. 당장 최사장를 만나러 쫓아갔다. 그는 다짜고짜 고함부터 쳤다.

“그런 일이 생겼으마 진작 내게도 귀띔해 줘야지! 그거 그냥 놔 둘 거요? 당장 조합장을 쫓아내야지!”

“그렇잖아도 조합장 비리에 대한 증거를 확실하게 잡고 불신임안을 낼라꼬 대의원들과 몇 몇 이사들과 대책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이사 대의원들 중 상당수가 뜻을 함께하고 있지요.”

“나도 끼어줘! 황용달이가 제 마음대로 하는 것 두고 볼 수가 없어! 당장 조합장 자리에서 쫓아내야 돼! 그런 비리를 저지른 놈을 그냥 둬? 절대 안 되지!”

 

드디어 정학도가 힘을 팍팍 쓸 일이 생겨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고서 2년여 이쪽에도 저쪽에도 들지 못하고 엉거주춤 살았던 반발심이 폭발해 버렸다. 그는 조합원들의 중구난방 떠드는 얘기를 종합해 조목조목 황용달 조합장의 비리를 간추린 고발장 초안을 만들어서 최사장에게 가져갔다.

“최사장! 내가 고발장 초안을 잡았는데 한번 읽어보고 찬동하는 사람들 도장을 받아 경찰서, 검찰에다 고발을 하자꼬!”

최사장은 그의 글을 유심히 읽더니 좋다고 했다.

“야, 정사장도 글 솜씨가 좋소. 지금 당장 조합장 부정을 파헤쳐 비리를 척결하자는 움직임이 활활 불타고 있으니 여럿이 머리를 맞대 향후 대책을 의논합시더. 당장 재개발사무소를 처 들어가 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허위서류를 압수해 증거를 확실히 잡고서 조합장 해명도 들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고발조치를 할 겁니다.”

“암! 그래야지! 황용달이 해명이야 지 옳다고 할 게 뻔 하겠지만 그것도 우선 기를 확 꺾어 놓기 위해서는 우리 뜻을 함께 하는 조합원들을 모아 쳐 들어가야 돼.”

며칠 지나지 않아 최사장과 정학도가 주동된 주민들 4, 50명의 찬성으로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곧바로 재개발사무실로 황 조합장을 찾아가 당장 조합장 직을 내놓고 부실한 업체를 선정하고 받아먹은 돈도 토하라고 항의했다. 성급한 주민 몇 사람은 책상을 뒤엎고 서류들을 엎지르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당장 조합장은 사과하고 물러나라!”

“얼마를 먹었는지 만천하에 명명백백 밝히고 자진해서 경찰서로 가라!”

“500여 조합원을 기만하고 협잡한 사기꾼은 즉각 물러나라!”

그렇잖아도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 붐이 사라지고 주택경기가 침체되자 지방에서 아파트건설을 꺼려하던 시공사 abc건설이 최근 들어서 속도 조절을 하면서 미적거리는 판이라 속이 타고 있던 황조합장은 며칠간 계속되는 주민들의 항의 데모에 진저리가 났던지 조합장을 그만 두겠다고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조합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20여억 원을 시공사 abc건설로부터 대여금이란 명목으로 받아 사용해 왔던 것인데 만약 재개발사업이 무산되기만 하면 그 돈은 고스란히 조합원이 변제할 채무로 남겨져버릴 것이라고 토를 달기도 했지만 분노한 비상대책위원들이나 일부 조합원들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 즈음 용역을 맡은 회사 하나가 돈만 받아먹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다가 부도처리 끝에 파산하고 말았으니 그 또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사들과 대의원들이 그 사실을 알고서 퍼뜨리니 사태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나쁘게만 확산되었으니 조합장인들 더 배겨낼 재주가 없었던 것이었다.

일이 그렇게 전개되자 애초부터 재개발을 반대했던 문씨를 비롯한 반대파들이,

“내 집에서 쫓겨나면 셋방살이 재산 강탈하는 재개발 당장 중지하라”

하는 플랜카드를 길거리에 내걸고 반대운동에 돌입했다. 애초에 동의서에 도장을 찍지 않고 버티고 있던 주민들이 백여 명 들고 일어나서 <내재산지키미>란 단체를 만들고서 재개발사업을 원천 무효로 처리하고 사업추진을 당장 그만 두라고 압박했다. 역시 그들도 사무실로 쳐들어가 난리를 부렸으니 배짱이 두둑한 황조합장인들 더 배겨날 수가 없었다.

정학도가 초안한 고발장을 수정보완해서 조합원 100여명의 확인 날인을 받아 시청, 경찰서, 검찰에 내기는 시일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황 조합장이 물러나고 그의 심복이 임시 조합장이 되어 수습을 시도했지만 비상대책위원회와의 마찰은 여전했다. 싸움이 격화되자 이에 멀미가 난 주민들 중 몇몇은 시청에다가 인감증명을 붙여 2년 전에 시에 제출한 재개발동의서를 취소한다고 배달증명 등기로 우송하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열 평 남짓 작은 오두막집에 살던 노인네들은 뒤늦게 가세하여 재개발이 되면 아파트에 입주도 못하고 쫓겨날 밖에 없으니 한사코 사업을 중지해야 한다고 떠들어 댔다.

또 시공사인 abc건설에서도 더 이상 대여금 지급할 수 없다면서 사업을 연기하려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사업을 계속 진행하지도 중단하지도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아마 사업을 포기할 요량이란 소문이 주민들 사이에 퍼졌다.

 

고발장에 얽힌 수사나 재판은 2년 여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양측의 공방은 치열해져서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다. 1심,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가서야 비상대책위원회의 고발은 무고로 판정이 났다. 황용달 조합장의 비리는 근거가 없고 집행부의 모든 처리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형사고발을 주동한 최사장, 정학도를 비롯한 비상대책위원 10여 명은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 혐의로 50만원씩 벌금형을 받았다. 물론 민사소송으로도 진행되었는데 민사재판 결과도 역시 황조합장 측에 져 손해배상금을 물어주어야 했다.

“럭셔리하게!”

어쩌고 하며 5년 전 돌말 길거리에 나부꼈던 깃발은 퇴색되어 버렸다. 그 비슷한 시기에 추진되었던 인근의 다른 재개발지구에서는 보아란 듯 고층 아파트가 완공되어 입주를 완료했었는데도.

마을은 휑하니 비어버렸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은 곧 언제 될지 모르지만 재개발이 착수되면 뜯겨야 할 건물이니 수리도 페인트칠도 하지 못해 더 우중충해 졌다. 부산 사람들이 산 집은 주인도 살지 않고 고치지도 않고 방치되어 비가 새니 셋방이 나가지 않아 빈집이 되어버렸다. 밤이면 불이 켜지지 않는 주인 잃은 집들이 늘어났다. 분양권을 받기 위해 대지가 열 평도 안 되는 지붕이 낮고 좁은 허름한 집을 샀던 사람들이 더러 집을 뜯어버렸기 때문에 빈터가 여기저기 꼴사납게 쓰레기와 함께 잡초만 우거진 채 버려졌다. 관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인적이 드문 비좁은 골목에는 뿌연 먼지바람만이 오가고 녹슨 철제 대문, 금이 쩍쩍 갈라진 시커먼 블록 담장이 기울어져 금세 넘어질 듯 했다. 그리고 도시가스 설치공사도 이 구역만은 쏙 빠졌다. 재개발지구로 지정되었으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정화조가 곧바로 하수처리장까지 연결되는 공사도 다른 동리에서는 했는데 돌말은 재개발지구니까 할 수 없다며 시에서 쏙 빼버렸다. 그래서 하수구에서 구린내가 솟아올랐다.

 

후문(後聞) : 그래도 재개발은 계속된다. 잠잠하다가 4, 5년이 지나니 비상대책위원회가 주동이 되어 돌말재개발조합을 다시 정상화한다고 알리는 벽보들이 낡은 담벼락 여러 곳에 나붙었다. 재개발 추진을 위한 총회를 개최한다는 편지도 집집마다 날아왔다. 또 용역회사 여자들이 골목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럭셔리한 아파트가 아니라 중소형 위주의 웰빙 아파트라나? 또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는데……. ****

 

 

 

 

 

 

 

출처 : ♣창녕문인협회
글쓴이 : 남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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