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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편소설 / 뒷집 장덕삼씨 ㅣ 김현우

by 남전 南田 2013. 12. 28.

<마산문학> 2013년 제 37집에 실린 김현우의 단편소설 "뒷집 장덕삼씨"를 올린다.

 

단편소설

뒷집 장덕삼씨

김현우

 

앞집 뒷집 이웃에 살았던 장우식과 장덕삼. 동네사람들은 그들을 앞집 장씨, 뒷집 장씨로 구분해 불렀는데 뒷집 장씨를 흔히들 장씨란 성은 생략하고 덕삼씨라 부르기도 했다. 그들의 본관이야 다르지만 같은 성을 지녔고 나이도 환갑을 어제그제 지났는지라 비슷해 친구처럼 지낼 만도 했는데……사사건건 부딪치기를 밥 먹듯 하는 악연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앞집 장우식은 몸이 호리호리하고 키도 덩치도 별로 내세울 것이 없을 보통 인물임에 비해 뒷집 장덕삼씨야말로 우람한 체구에 배가 불룩하고 얼굴은 언제나 불콰해서 술에 취한 듯 보이는 호인 타입이었다. 장우식은 회사 사무직으로 넥타이를 매고 다녔던 인텔리인데 비해 장덕삼씨는 가을에는 배추장사 봄에는 파장사를 했던 채소장수였다. 물론 차떼기 밭떼기 큰 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10여년 전 대판 싸운 이후 같은 동리에 살면서도 길에서 만나면 외면하고 간혹 피치 못할 경우가 있어 동석이라도 하게 되면 서로 못 잡아먹어 죽겠다는 듯 눈총을 쏘며 으르렁거렸다.

 

 

10여년 전 덕삼씨의 앞집에 살았던 장우식이 단층집을 2층으로 증축하려하자.

“야야! 동생! 우째 이라노? 너그 집을 이층 올리면 우리 집은 캄캄구라이(굴) 되능 거를 동생 니는 모르나? 뻔히 알면서 내하고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공사를 할라카나?”

덕삼씨의 이유 있는 항의에 장우식이 고개를 숙인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본관이 어디 장씨인지를 서로 따져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성이 장씨이면 윗대 조상은 한 뿌리라고 서로 생각하였기에 동성동본이라 치부하고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되어 있었다. 덕삼씨는 나이가 한 두어살 많기에 장우식을 곧잘 “동생!”이라 불렀고 앞집 장우식도 그걸 용납하고 친근하게 응대를 하곤 했다.

사실 앞집 장우식은 집을 2층으로 증축할 마음을 먹으면서 맨 먼저 뒷집 덕삼씨를 걱정했던 것이었다. 뒷집 사내는 곧잘 의리를 내세우면서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끝까지 황소고집을 피우는 드센 성질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주택은 6, 70년대 전문으로 집을 지어 팔아먹었던 집장수의 날림집이었다. 집장수가 먼저 큰 덩어리의 논밭을 사서 제 마음대로 집터를 2, 30평씩 바둑판처럼 자잘하게 분할해서 대지로 지목변경을 한 다음 시멘트불록으로 날림 집을 한꺼번에 여러 채 지어 팔아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앞뒷집 사이 마당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좁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앞집의 벽이 바로 뒷집과의 경계선이었고 옆집과도 그 새가 2자가 채 떨어지지 않을 만큼 간격이 좁아 담장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사람 몸이 빠져 나갈 수 없었다. 도둑이 이집 저집 마음대로 뛰어 건널 수 있을 지경으로 이웃집의 옥상과 바싹 붙어있었다. 그들이 집을 사서 들어가 보니 앞뒷집과는 담도 울도 없었다. 앞집에서 안방 뒷벽 창문을 열면 바로 코앞에 뒷집 거실이 환히 바라보였다. 살다가보니 너무 불편해서 덕삼씨가 장우식과 의논해 앞집 뒷집 경계를 어림잡아 블록담장을 쌓았던 것이었다. 담장을 만들고 보니 뒷집 마당은 너무 좁아져 버려 그의 아내는 항상 불만이었다.

“아이고! 우리 집 마당이 너무 좁아서 꽃나무 한포기 심을 수도 없네! 그라고 너무 그늘이 져서 집안이 낮에도 침침하고 답답해!”

앞집 여자 희숙이 엄마를 만나면 곧잘 구시렁거리며 앞집의 마당이 넓다고 샘을 냈다.

사실 앞뒷집 단층주택에 앞집에서 2층을 올리면 뒷집은 보나마나 낮이고 밤이고 어두컴컴할 것은 불을 보듯 빤했다. 집이 푹 꺼지고 캄캄해질 것인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으리라 생각이 든 장우식은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은근슬쩍 아내를 시켜 뒷집 주인여자의 마음을 떠 보기로 했던 것이었다. 뚱뚱한 체구에 호인 타입의 덕삼씨이지만 고집불통이라 제 마음에 들면 “허허!” 그리면서 ‘만사 오케이!’ 였다. 하지만 한번 제 심사에 어그러졌다 하면은 오만 억지를 쓰면서 심통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만패불청!’ 그 심술 역시 감당이 안 되었다.

“우리 희숙이 아빠가 이번에 집을 2층으로 증축을 할라 카는데 형님은 우떻게 생각하능교?”

뒷집 덕삼씨 부인 본동댁은 앞집의 증축에 대해서 우선은 기분 좋은 반응이었다.

“아이고! 돈 벌었능 갑네. 2층을 올릴라 카는 거를 본께네. 2층 올리마 얼매나 좋겠노? 우리도 2층으로 올렸으마 참 좋겠데이.”

“돈은 무슨 돈을 벌어요? 이번에 나이가 많다고 회사에서 퇴직을 안 당했는교? 그래 받은 퇴직금에다 이것저것 푼돈 저축한 것하고, 은행돈 대부도 조금 받아야 될 것 같구마는!”

“우짜든지 형편이 되면 집을 2층으로 올려야제! 우리는 내가 쫓아다니며 벌어야 묵고 살지. 채소 장사한다고 돌아 댕기지만 만사 허깨비놀음이제. 저 영감은 돈만 쪼께 생겼다하문 술만 처먹고 지내니!”

“아무 집이나 다 마찬가지제. 남자가 술을 못 묵으면 그기 오데 남자가? 우리 희숙이 아빠도 그라제.”

뒷집 본동댁을 비위를 슬슬 맞추면서 희숙이 엄마는 집 증축에 관해 양해를 해 달라고 주문을 했고 본동댁은 별 생각 없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화답했다.

덕삼씨도 처음에는 앞집의 증축 얘기를 아내로부터 듣고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보일러 공사를 하러 다니는 영도설비 채사장을 만났더니,

“아이고! 형님은 인심도 좋소! 앞집에서 이층을 올려보이소. 뒷집은 완전히 도둑놈 소굴처럼 컴컴해져서 한낮에도 햇빛 구경을 못할 거요. 그리고 집값도 폭삭 떨어져 버릴 꺼고요. 정말 답답해서 살기 힘들 건데 그냥 조용히 있소?”

하고 은근히 귀띔을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차!” 싶었다. 덕삼씨는 그 길로 앞집을 찾아 갔으나 부부가 다 외출을 했는지 대문이 잠겨 있어 돌아서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앞집 증축공사를 맡았다는 건축업자가 나타나서 양해를 구하는 척 그의 눈치를 살폈다.

“뭐라? 벌써 시청에서 증축허가를 받아 수일 내 공사를 시작한다꼬?”

“아 예! 앞집에서 진작 장씨에게 얘기를 다해 뒀다고 하던데요? 2층을 올리는데 문제없다고 동의도 했다고 해서…….”

“동의는 무슨 동의! 언젠가 슬쩍 지나가는 소문만 들었제. 앞집 동생이 직접 내게 일언번구도 이야기한 적이 없구마는!”

“이런 공사는 이웃 간에 마찰이 일어나기 쉬워서 공사를 맡으면 애를 먹는데요, 이번에는 앞뒷집 사이가 참 좋은가보다 생각이 들었지요. 하여간 며칠 안에 공사를 하게 되면 장씨 집 마당에 우리 일꾼들이 들락날락 하고 공사 자재도 들여 넣었다가 뺐다가 사용해야 하니 씨끄럽고 불편하더라도 편리를 좀 봐 주십시오.”

덕삼씨는 건축업자 박사장의 능청스런 말에 배알이 꼬여버렸다. 앞집 주인 장우식이가 와서 술이나 댓병 사와서 간청을 해도 쉽게 허락할까 말까하는 중대사를 제3자인 건축업자가 와서 시건방지게 요구를 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사실 영도설비 채사장의 충고를 귀담아 듣고 그 길로 장우식과 담판을 지었다면 그리 크게 화를 낼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날벼락 맞듯, 정신없이 차에 받힌 격이 되었으니 더욱 기가 막혔다. 앞집 뒷집 이웃 간에 맛있는 거 생기면 나누어 먹고 자식들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어울려 공부도 하고 놀기도 했으며 부부싸움을 하면 환하게 서로 알게 되니 흉이고 자랑이고 감출 것도 없는 막역한 사이가 아니었던가? 친동기간이나 다름없이 형님 동생하면서 퇴근길에 술 마시고 취해서 어깨동무하고 들어온 적도 부지기수인데. 그런데 이번에는 이실직고도 않고 슬며시 박사장을 보내 공사를 한다고 통보를 하다니!

아까부터 옆에서 박사장을 말을 듣던 본동댁이 그의 안색을 살피더니 한마디 했다.

“앞집 희숙이 엄마가 며칠 전에 시청에서 허가가 나왔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나도 긴가민가했지만 앞집에 이층을 올리면 우리 집은 폭삭 내려앉은 굼턱집이 돼서 큰일아이요? 당신한테 의논도 안했어요?”

“의논이 뭐꼬? 요새 통 만나지 못했는데! ”

“당장 가서 물어 보입시더. 우째된 일인지!”

박사장이 별일 아니란 듯 튕겼다.

“아따! 장씨도 이번에 함께 집을 이층으로 올리쇼. 그라면 앞뒷집이 서로 좋지요.”

“뭐라카노? 이 양반이!”

시퍼런 서슬에 박사장은 슬금슬금 사라져 버렸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앞집으로 달려가니 마침 남자는 없고 여자만 있었다.

“제수씨! 뭐 이층을 올린다꼬요?”

앞집 희숙이 엄마는 낯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따지듯 묻는 덕삼씨의 기세에 당장 한풀 꺾여 말문이 막힌 듯 대답을 못했다. 그는 종주먹질을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을러대며 대들었다.

“제수씨! 아무리 형님 동생하면서 우리가 친하게 지냈다 하더라도 이런 경우는 다르제! 앞집에서 이층을 올려봐라. 그라면 우리 집은 완전히 캄캄구라이(굴속) 인기라요. 알겠소? 제수씨. 아니 다아 알 만한 사람들이 양해를 얻고 공사를 하더라도 해야제. 슬그머니 구렁이 담 넘어가 듯 슬슬하면 그만 일 것 같았능가 몰랐네!”

“아이고! 아재! 제가 진작 동현이 엄마께 양해를 구하는 얘기를 다 했어요. 동현이 엄마도 크게 반대하는 말도 하지 않았구요.”

키도 몸도 자그마하고 예쁘장한 희숙이 엄마를 사실 덕삼씨는 여동생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남의 마누라지만 꼭 끌어안고 뽀뽀도 해보고 가능하다면 연애도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오동통한 그녀의 알몸을 안기만 하면 천당이 따로 없을 듯 상상만 해도 황홀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둘만 있는 기회가 오면 은근 슬쩍 허리나 엉덩이에 손이 가며 지분거렸고, 앞집 여자도 남자의 의중을 알아채고 “엉큼하게!” 하고 핼끔 눈을 예쁘게 흘기고 엉덩이에 온 손을 치우는가 만지는가 어중간하게 반응을 하면서 몸을 비틀곤 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능청을 부리면서 ‘어어! 내가 장가를 잘못 간 기라. 제수씨 같은 사람을 만내야 되는데.’ 하고 노골적으로 진한 애정표현을 하기도 했다.

평소 그런 호감을 지니고 집적대던 여자에게 쌍말을 하면서 고함을 칠 수가 없어 분을 억지로 삭이면서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런데 여자는 평소 덕삼씨의 호감을 믿고 고함을 치든 말든 점점 만만하게 대했다. 그는 더욱 기가 막혀 언성을 높였다.

“허어! 제수씨! 난 우식이 동생한테서 이층 올린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구마는! 날 빼돌려놓고 시청으로 어디로 쫓아다니면서 허가를 받아냈구마는! 자알하는 짓이다! 오데 이층 올리는가 보자!”

“아이 아재! 크게 섭섭한 가보네요. 우리 집 희숙이 아빠 그 양반이 워낙 느리고 물러 터져서 제대로 얘기를 못 드린 걸 양해해 주세요.”

“양해고 목닥이고! 인자 안면몰수하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이층 공사는 못하요!”

“아재, 시청에서 당당하게 허가를 받았는데 왜 못해요?”

“당당하게? 어디 그럼 공사를 해 보시지! 제수씨!”

아내가 변명 겸 몇 마디 편드는 소리를 하자 분위기는 사뭇 험해졌다. 고함치며 다투는 소리가 골목까지 들렸든지 이웃사람 두서넛이 달려 와서 싸움을 말리는 바람에 덕삼씨는 분을 삭이면서 일단 물러났다. 그 길로 친구로 지내는 차판개를 시장골목 포장마차로 불러냈다. 술을 마시면서 앞집 증축이야기를 했다. 차판개는 퇴직경찰로 법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밝은 사람이라 뭔가 그에게 유리한 방안을 제시해 줄 것이라 생각 들었다. 예상대로 차판개는 명료하고도 확실한 조언을 해 주었다.

“증축허가를 시에서 받아 공사를 한다면 그야 당연하지! 하지만 장씨 너희들 집이 집장사 집이제? 아마 자네 집 경계선에다 앞집 벽이 세워져 있을 꺼야. 건축법적으로 집과 집 사이에 1m정도 서로 띄워야 한다는 거 알고 있는가 모르겠다.”

“경계선이 어디 있노? 내가 대충 짐작으로 담을 쌓았제. 앞집 창문이 바로 우리 집 거실 코앞에 있어서……”

“그러니까 대지 측량을 새로 해 보라구. 자네 집 경계에서 앞집 벽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금방 확인이 될 꺼 아니겄어.”

차판개의 말에 뭔가 실마리를 발견한 그는 차판개와 함께 당장 시청 지적계, 지적공사로 찾아가 측량 신청을 했다. 그러고 어둑어둑해져서 집에 돌아와 보니 마루에 사과상자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장우식이 초조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형님! 내가 행동이 느려터져서 그랬소. 진작 얘기를 하고 사전에 형님 허락을 얻어 일을 해야 하는데 그만…… 일이 이리되었으니 형님께서 통 크게 양해해주이소.”

“잔소리 말아라. 내 지금 시청 건설과로, 지적과로, 지적공사로, 동사무소로 마을금고로 빙빙 돌아댕기면서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온데이! 동생 니가 법적으로 해 보든지 우짜든지! 공사는 못 한데이. 날 빼돌리 놓고 어디 공사를 한 번 해 보거라!”

“허어! 형님. 그게 아니고. 성만 버럭버럭 낼 끼 아니고 내 말 좀 들어 보이소. 우리 얼매나 잘 지냈능교? 이 차판에 서로 낮 붉히고 싸워서 되겠능교?”

“니, 말 잘 했다. 시에서 증축허가 먼저 받아 놓고! 내가 성을 버럭버럭 낸다꼬? 우야든지 공사를 하기만 하면 내가 그 공사판 우에 들어 누불 것이니 그리 알아래이.”

더 뭐라고 장우식이 빌고 또 빌었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희숙이 엄마까지 가세해서 뭐라 빌어대는데 본동댁 또한 남편과 마찬가지로 서슬이 살아서 억척스러운 소리만 빽빽 해댔다.

싸움은 몇 달이 지나도 쉽게 끝나지 않았다.

경계 측량을 하니 바로 대지 경계선에 앞집 벽이 서 있었다. 그러니 꼭 이층을 올리자면 뒷집의 양해를 얻어 일층 벽 위에다 새 벽체를 쌓아야 했다. 그런데 뒷집 덕삼씨가 요지부동으로 고집을 부리니 공사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앞집 희숙이 엄마가 덕삼씨와 시시비비를 가리며 울고불고 하더니 드디어 기절해서 병원으로 실려 가고, 장우식은 밤낮없이 그를 따라다니며 무릎걸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동장과 마을금고 이사장, 통장, 반장, 동리 유지란 유지가 다 달려들어 조정안을 내 놓았다. 뒷집이 좀 어두컴컴해 지더라도 덕삼씨가 백보 양보해서 이층을 증축하게 양해를 하고, 또 장우식은 증축하는 벽체 기초를 일층 벽에서 쪽 곧게 올리지 말고 2자쯤 더 안쪽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그러자 건축업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밑에서 바치는 보나 기둥이 없어 아무 힘이 없는 지붕 중간에다 벽을 세우게 되니 하중을 너무 받아 무너질 우려가 있어서 위험천만입니다.”

하면서 그래도 증축을 꼭 하려면 새 집을 짓듯 기존 일층 지붕에다 다시 철근을 깔고 기초공사를 튼튼히 해야 하던지 아니면 안방에다 기둥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면 공사비가 크게 불어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층 옥상에다 다시 철근을 깔아 기초공사를 해서 보와 벽체를 만들되 기존 안방 벽에서 2자를 안으로 들여서 2층 벽과 기둥을 세우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웃 주민들과 유지들이 권한 방법이 일견 타당하다고 생각한 장우식은 공사비가 더 들더라도 어쩌겠느냐고 하면서 동리 사람들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뒷집이 햇볕도 안 들고 캄캄해지겠지만 조금은 이때껏 잘 지내던 이웃끼리 서로서로 양보하라고 사람들이 우격다짐으로 조정안을 내놓으며 덕삼씨를 설득해서 겨우 성사시켰다.

덕삼씨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져 고민을 하다가 유지들의 해결책에 동의했고 앞집 장우식은 당초 설계보다 면적이 훨씬 쪼그라든 이층을 전보다 많은 공사비를 들여서 증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긴 실랑이 끝에 앞집에서 1년여 만에 이층을 올리는 공사를 재개하자 덕삼씨 부부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벽돌을 착착 쌓아 이층 벽이 얼추 올라가니 거실이고 안방이고 어두침침해져서 당초 예상보다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기가 막혔다. 화해를 붙인 동리 유지들을 원망하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절대 증축을 허락해 주지 않는 건데! 그 놈으 통장, 마을금고 이사장, 시의원까지 짜고서 장우식이 편들어서 날 협박하는데 이길 수가 있어야지!”

앞집의 이층을 올리는 공사가 한창일 즈음 덕삼씨에게는 벼락이 하나 떨어졌다. 난데없는 주택을 공매처분을 하겠다는 차압통지서가 법원에서부터 날아든 것이었다. 2년 전인가 창원공단에서 기계부품을 생산하는 회사의 사장인 고등학교 동창 윤달용이 사업자금을 빌리는데 은행 보증을 좀 서달라고 했다. 동창들 사이에 윤사장이 중소기업체이지만 착실하게 경영해서 제법 튼튼한 회사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퍼져 있었으므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냉큼 보증을 서 주었다. 집을 담보로. 그런데 얼마 전 동창의 회사가 어렵다는 둥, 부도 직전이라는 둥 흉흉한 소문이 들렸지만 그는 앞집 이층증축공사 시비로 정신이 없을 때라 미처 대처를 못하고 말았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집이 그만 압류되었다는 소식에 이리저리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러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법원에서 공매처분이 되고 만 것이었다.

“내 재수가 없으려니! 저 놈으 장우식이 바람에 집이 얄궂은 놈의 보증에 날아가 버리다니! 이럴 수가 있나?”

덕삼씨는 집에서 쫓겨났다. 그래서 같은 동리에 사글세방을 얻어 이사를 나가야 했다. 보증을 서준 친구를 원망하기보다 일 년여 아침저녁 이를 갈며 싸웠던 앞집 장가가 더 밉고 분통이 터졌다.

장우식에게도 큰 불상사가 생겼다. 이층을 올리는 공사가 대충 마무리될 즈음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 구급차에 실려 갔으나 너무 늦어버렸다. 심장마비라 했다. 평소 혈압이 높았던 희숙이 엄마가 집 증축공사에 너무 신경을 많이 써 혈압관리에 소홀하였던 모양이었다. 장우식은 아내가 저 세상으로 가 버리고 졸지에 홀아비가 되어버리자 이가 갈렸다.

“저 황소고집 불통 저 등신 뒷집 덕삼이 때문에 집사람이 비명횡사했지! 나쁜 놈! 안팎에서 부부가 작당을 해서 달달 볶아댔으니 집사람이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

그는 아내의 비명횡사가 순전히 뒷집 장덕삼 내외 때문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하소연했고 욕을 퍼 부었다.

“오지 싸지! 빚보증에 집이 날아가? 자알 됐지! 심보를 바르게 써야 복을 받는 거야.”

덕삼씨 자기를 욕한다는 말이 돌고 돌아 그에게 전해지면 그도 또한 철천지원수에게나 할 저주와 욕설을 퍼 부어댔다.

“×할 놈! 아등바등 마느래까지 합세해서 기세등등 쳐 들어와서 할 말 못할 말 다 하면서 온 동네 사람들 앞장세워 우격다짐으로 집을 짓드니만 완공된 2층 안방에 하룻밤도 자 보지도 못하고 골로 갔네! 다아 인과응보라! 죄는 지은대로 가는 법이제!”

 

 

“인자 시근이 드는갑네. 장가를 갈라카는 걸 보니.”

아들 동현이 나이가 마흔이 가까워지는데도 결혼에는 통 관심이 없는 듯 꿈쩍도 않던 놈이 어느 날 정색을 하고 덕삼씨 부부에게 결혼을 해야겠다고 운(韻)을 떼었다. 너무 반가워 아내는 기절할 듯 반겼고 그도 속으로는 크게 기뻤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응대를 했다.

“그래! 어떤 아가씨고? 회사에서 만난 아가씨가? 아니면 오다가다 만나서 연애를 했나? 요새 가서나들 근본을 알 수 없으니 잘 사귀어야 하는데!”

“아따! 뭐가 그리 급해서 처녀애 신분부터 물어 쌓노! 대학교 나오고 우리나라 최고의 조선회사 다니는 놈이 얄궂고 시부적한 가서나를 사귀겠나? 나는 니가 장가갈 가서나를 구하지 못하면 베트남이나 몽골 처녀라도 알아볼라 캤던기라. 우리 동네 최가가 국제결혼상담소를 차리고 있어서 거기다가 한번 물어보나 어쩌나 고민을 했지. 요새는 결혼경비를 천오백은 들여야 베트남 색씨를 데려 올수 있다 카더라.”

“아이! 그라면 우리 동현이는 천오백 벌고 들어가네요. 국산 토종 아가씨 만났으니! 그래 퍼뜩 말해봐라. 우떤 아가씨인고.”

아내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동현은 입을 꾹 다물고 부모의 눈치만 살폈다. 아들은 거제에 있는 국내 굴지의 조선소에 다니고 있어 휴일이 아니면 집에 자주 오지 않았다. 그러니 신변의 얘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아들은 그의 궁금증을 쉽게 풀어주지 않을 듯 고개를 숙인 채 무슨 궁리에 잠겨 있었다. 소증이 난 아내가 채근을 했다.

“거제에다 방을 얻을라면 큰돈이 들어야 할낀데! 누구 얘기를 들으니 원룸 웬만한 건 전세는 통 없고 월세만 80만원이라 카더라. 니가 결혼을 하면 당장 집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모아난 돈도 없으니 우짜면 좋겠노? 너그 애비는 요새 중풍이 들어 돈도 한 푼 벌지도 못하는데!”

아내는 돈 못 벌고 병이든 남편 얼굴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덕삼씨는 셋방으로 쫓겨난 후 너무 한심스러운 일이 자기 앞에 벌어진 것을 감당하지 못해 술로 세월을 보냈다. 담배를 하루 두 갑씩 피워댔다. 그러니 몸이 지탱될 수 없었다. 초겨울이 드는 3년 전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다 쓰러졌다. 병원에서 깨어나 보니 닷새인가 엿새 만에 정신을 차린 것이라고 아내가 그랬다. 그 사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는 전연 기억이 없었다. 신체 절반이 마비되고 말아 저승에 갔다 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완전히 폐물이 된 뒷집늙은이가 된 것이었다.

“아아 가져서…… 하루 빨리 식을 올려야 돼요.”

아들의 뜬금없는 소리에 부부는 더욱 놀랐다.

“허어! 야가 우리 놀래키려고 작심을 했나? 아아가 생겨? 그라면 벌써 임신을 했단 말이네?”

“아이고! 요새는 속도위반은 정상이래요. 요새 애들 연애부터 걸어보고 궁합이 맞으면 하고 아니면 헤어진다꼬 합디다. 그래! 아가씨 나이는 몇 살이고 임신 한지는 얼매나 됐노? 우짜든 참한 손자를 보고 싶데이.”

“허어! 이 성질 급한 여자 봤나? 벌써 손자 타령부터 하네? 조금 전에는 신혼집 걱정을 하더니!”

“손자 보게 되었는데 당신은 반갑지 않아요? 난 당장 쫓아나가 동네방네 외고 싶은데!”

덕삼씨는 속으로는 흐뭇해하면서도 그래도 아비라고 점잔을 뺐다.

“그래, 결혼 날짜를 빨리 잡아야겠네? 요새는 예식장도 영업이 잘 안 된다 카지만 예약이 쉽게 될란가 모르겠네. 급하게 식을 올리려면……”

“식장도 예약해 놨습니다. 회사 아는 사람들도 쉽게 올 수 있게 거제에서 식을 올렸으면 해서요.”

“잘 됐네요. 우리 일가친척들만 거제 가면 되니까. 오데 처녀집이 거제 근처인가? 동현아.”

동현은 우물쭈물 한참 그러다가 드디어 결심이 선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뇨. 우리 동네에 살아요.”

부부는 의외의 말에 눈이 뻔쩍 뜨였다. 조선소가 있는 거제 아가씨가 아니란 소리보다 이 동네 처녀란 소리에 그만 놀란 것이다. 이곳 아가씨라면 누구란 말인가? 동네 처녀들이나 결혼 적령기의 아가씨들을 대충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본동댁이야 말로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그럴 듯한 대상을 찾아보았다. 도대체 이 동리에 아들 마음에 쏙 드는 처녀가 누구란 말인가? 본동댁은 평소 길을 걷거나 시장에서 지나가는 여자들 중 처녀 비슷하면 며느릿감으로 됐나 부족한 가 곧잘 저울질해 보곤 했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보면 ‘저걸 우리 며느리로 삼았으면…….’ 하고 남 모르게 군침을 삼키곤 했다.

“아아! 똑바르게 깨 놔라! 뭐가 아까워서 빙빙 말을 돌리고 있노? 임신도 시키고 이 동네 처녀면 어짤 수가 없제! 멀쩡한 처녀 임신 시켜놓고 도망갈 비겁한 아들은 난 키우지 안 했데이!”

“그래 말이다. 시원하게 털어놔 보래이. 니가 누구 집하고 부모 이름만 대면 우리가 알 만한 사람이 가?”

부모의 독촉에 못 이기겠다는 듯 동현은 입을 열었다.

“희숙이 말입니더.”

“희숙이? 앞집 희숙이…….”

덕삼씨와 본동댁은 커다란 폭탄이 B-29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듯 놀랐다. 아니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두 집이 싸우는 바람에 우리는 애만 태우며 십 몇 년을…….”

 

 

요새 결혼식 분위기는 엄숙하지도 않고 축복을 내리는 조용함도 없었다. 하객들로 북적거려 소란스럽고 예식은 마치 딴따라패들이 굿판을 벌이는 듯 노래하고 떠들고 웃고 농담을 건네고 그러다가 신랑신부 퇴장으로 막을 내렸다.

결혼식이 있던 날까지 사돈이 될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았던 고집쟁이 덕삼씨는 식이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건너편에 앉은 장우식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장우식도 눈을 내리감았다 떴다 하면서 시종 신랑신부와 주례 쪽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폐백 받는 시간이 되었다.

한복으로 바꾸어 입은 며느리 희숙은 얼굴도 참 예쁘고 귀엽고 탐스러웠다. 그녀 어머니를 닮아 몸매가 가늘지 않고 알맞게 통통하고 건강해 보였다. 뱃속의 아이를 순산할 때가 두어 달밖에 남지 않아서 그런지 너무나 복스러워 보였다. 두 집사이의 갈등을 전연 모르는 장우식의 후처만 알랑거리면서 ‘안사돈! 바깥사돈!’ 하면서 그들 사이에 오가면서 혼사를 진행시켜 주었다. 물론 신접살림 준비도 거제를 오가면서 그녀가 열성적으로 돌봐 주었다. 본동댁은 만사 제쳐놓고 좋아라 며느리를 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남편이 우묵하게 무거운 표정이라 내색을 못했다. 드디어 신랑신부 절을 받고 양가 사돈이 마주 앉는 시간이 되었다.

덕삼씨는 만사가 제 뜻대로 되지 않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는 장우식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속으로 “빌어묵을!” 하고 구시렁거렸다.

“우리 눈치 보느라 쟈들이 결혼도 못할 뿐 했제. 우짜것노? 동생! 다아 잊어 뿌리자!”

그 순간 장우식의 가슴에도 만감이 교차했다.

“형님! 그라입시다. 내가 속이 너무 좁았지예?”

***

 

(소설이 실린 "마산문학" 37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