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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편소설 "수장水葬" / 김현우

by 남전 南田 2014. 7. 25.

김현우 소설//

 

 

김현우 소설가가 <경남문학> 2014년 여름호에

단편소설 "수장水葬"을 발표했다.

 

 

단편소설

수장水葬

 

김현우

 

 

꼼쟁이, 노랭이, 고리대금업자, 왜놈, 돈만 아는 놈……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한 오달용 사장이 허옇게 빛바랜 헌 구두를 뜰뜰 끌며 지나가면 돌말 사람들은 그의 뒤통수에 대고 그렇게 욕을 해 댔다. 이제 부자가 됐으니 인심도 쓰고 사람들에게 술도 한 잔 살 만했지만 그는 남에게 얻어먹기는 했어도 동전 한 푼 허투로 쓰는 법이 없었다.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래서 개밥에 도토리 돌듯 마을 사람들에게서 돌리지만 그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었다.

“저 꼼쟁이가 언젠가는 지가 벌어 놓은 돈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 끼다.

“하모! 예식장에, 여관 건물이 두 채, 빌딩상가가 또 있제.

“이번에 창원에 아파트를 지어서 큰 재미를 보았다 카데? 수십억을 벌었다는 거 아이가. 아아! 그 놈의 돈에 눈이 달릿는가? 내한테는 한 푼도 안 붙고 자린고비보다 못한 저 인간에게는 자꾸 달라붙는단 말이다!

오달용은 남들이 욕을 하건 말건 오십 평생을 살아오던 그 방식 그대로 변함없이 돈이면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들었다. 무어든 아끼고 그의 수중에 돈이 몇 푼 들어왔다 하면 발발 떨며 새끼에 새끼를 칠 궁리를 하면서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그는 1960년대 고향 함안에서 마산으로 나와 집을 짓는 목수로 출발해서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어졌다. 70년대 건축업자들이 날림으로 주택을 지어 팔아먹는 바람이 불자 그도 그런 집장사 판에 뛰어들었다. 그러고 2, 30년이 지나자 이제는 어엿한 건설업자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오 사장이라 불리게 되면서 알짜배기 부동산 부자로도 소문이 났다. 그의 아내는 결혼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시장상인들을 상대로 곗돈도 굴리고 일수놀이도 해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게 그의 부수사업이기도 했다.  

오달용 사장에게는 인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가 주로 돈을 벌게 된 것은 아내의 곗돈과 일숫돈놀이에서 발단이 되어 큰돈을 남에게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와 큰돈을 빌려주고 받는 일은 오달용이 직접 맡아 처리했다. 그에게서 돈을 빌려 가면 반드시 담보를 잡혀야 되었고 변제날짜를 하루라도 어기면 가차 없이 담보물을 처분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고리대금업자로도 소문이 나게 되었다.

 

그는 몇 해 전 농사꾼으로 변신을 하기도 했다. 공장을 차리겠다는 함안 사람에게 거금을 빌려주며 담보물로 잡은 만여 평 되는 과수원이 오달용 앞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는 부동산이라면 즐겁게 거두어들이는 버릇 그대로 과수원을 자기 명의로 만들었다. 매실, 복숭아, 단감이 심어진 농장을 직접 가꾸어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그곳에 가서 며칠씩 지내며 일꾼들과 같이 일하곤 했다. 물론 도시사람들의 주말농장쯤으로, 농장의 집을 별장쯤으로 생각하고 여유 있는 노후를 준비하고자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또 다른 꿍꿍이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던 1990년대 어느 해 10월 맑은 날, 돌말에는 난데없이 흉흉한 먹구름 기운이 떠돌기 시작했다. 오달용 사장의 실종이란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농장에 머물고 있었던 오 사장이 온다간다 말도 없이 밤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과수원으로 일을 하러 가면은 곧잘 며칠씩 혼자서 밥을 끓여 먹으며 기거를 하던 농장의 오두막집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맨 먼저 오 사장의 실종을 감지하고 마산 돌말에 사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한 사람은 농장의 머슴 김씨였다. 김 씨는 농장에서 제법 떨어진 산 아래 마을에 살았는데 과수원으로 아침저녁 출퇴근을 했다.

“아침에 가보니 사장님이 보이지 않습디더. 그래서 일찍 사장님이 마산으로 돌아갔나 했지요.  그랬다가 농약대금을 받으러 읍내 농약방 사장이 왔는데 꼭 사장님을 만나야 한다기에 사장님께 연락을 했는데 전화를 통 안 받습니더.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도 불통이라는 김 씨의 말에 오 사장 부인은 톡 쏘았다.

“송백인가 뭔가 거게 그 야시한테 물어보소. 그게 처박혀 있겄제.

“아! 거기도 없다 캅디더. 회사에도 물어 봤고요.

그때서야 이거 무슨 탈이 난 게 아닌가 하고 부인이나 건설회사 사람들이 이곳저곳 수소문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들 보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오 사장의 종적이 오리무중이란 사실이 밤늦게야 굳어졌던 것이었다.

가족들을 비롯해서 농장 일꾼과 아랫마을 사람들이 오 사장을 찾아 2, 3일 농장 인근을 비롯해 산인늪 일대를 쑤시고 다니며 수소문하느라 야단을 쳤다. 4일째 되던 날 저녁 낚시꾼이 늪가 바위에서 오 사장의 신발을 발견하게 되었다. 곧 잠수부가 물속에 들어가 찾은 끝에 결국 시체로 변한 오 사장을 건져냈다. 오 사장의 발목에는 밧줄이 감겨 있었고 그 끝에는 커다란 돌이 묶여 있었다. 쉽게 물 위로 시체가 떠오르지 못하게 하려고 한 짓인 듯했다. 자살일 수도 있고 타살일 수도 있다면서 경찰이 익사체를 검시한 후에도 쉽게 단안을 내리지 못한 듯 가족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돌말에는 아닌 밤에 홍두깨 격으로 형사들이 몰려들었다. 골목골목을 살피고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오 사장과 돈거래에 문제나 다툼이 있었던 사람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었다. 경찰이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면 그 사람은 바로 범인으로, 수사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맨 처음 조사를 받은 사람은 신발가게 최 씨였다. 최 씨는 바로 십여 일 전에 오달용 사장과 멱살잡이 싸움을 벌인 일이 있었으니 당연히 첫 번째로 지목이 된 것이었다. 용의 선상에 떠오르자 최 씨를 형사들이 파출소로 데려가 으름장을 놓았다.

“최상기 씨! 당신 오 사장과 대로에서 대판 싸웠다면서? 똑바로 말해야지 아니면 재미없소!

멱살잡이를 하게 된 원인은 여자 때문이었다.

 

오 사장은 최 씨 신발가게 근처의 송백다방 장 마담과 한창 열애 중이었다. 일수 돈이나 받으러 다니는 마누라보다 젊고 날씬하고 거기다 섹시하기까지 했으므로 오 사장은 최근 흠뻑 장 마담의 치마폭에 빠져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건설회사에 별일이 없다면 다방에 들어앉아 여자를 끼고 하루 종일 시시덕거렸다. 누가 보건 말건 치마 속에 손을 넣어 허벅지나 엉덩이를 주무르거나 저고리 속 젖가슴을 넘나들었다. 장 마담은 조금도 싫은 기색이 없었다. 큰 물주를 물었으니 장단을 맞추며 남자의 기분처럼 자기도 좋은 척 흥흥거렸다. 그가 다방에 있는 동안에 아무도 장 마담에게 농담 한 마디 건넬 수가 없었다. 만약 물색 모르는 자가 장 마담을 불러 옆에 앉히고 커피라도 사주며 손이라도 잡아 보려다가는 오 사장에게 된통 욕을 먹곤 했다. 저녁이면 아가씨에게 아예 영업을 맡기도록 하고 다방 뒷방으로 장 마담을 안고 들어가 둘이서 무슨 지랄을 하는지 간혹 여자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새어 나오곤 했다. 그가 한 며칠 농장으로 일하러 가면 그 사이를 못 참아 장 마담을 농장까지 불렀다. 그러면 장 마담은 점심밥을 싸들고서 택시를 대절해서 산인 농장까지 가곤 했다. 그러면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낮거리를 한바탕 치르고 헤벌쭉해서 여자를 내보내곤 했다.

그런데 신발가게 최 씨가 장 마담에게 눈독을 들이는 것이 포착된 것이었다. 신발을 사러 온 손님도 없는데 자꾸 커피배달을 시키는데 나이 어린 레지 아가씨는 오지 말라고 하고 꼭 장 마담을 오라는 것이었다. 그게 너무 못마땅하고 벨이 꼴렸다. 최 씨가 장 마담에게 욕심이 있어 그러는 것이 틀림없었다.

“야! 죽어도 무덤에 풀이 안 난다는 최가놈아! 니가 내 애인에게 눈독을 들인다꼬 소문이 났대?

또 장 마담에게 커피 두 잔 배달하라고 전화로 부르자 참다 못한 오 사장이 신발가게로 달려가서 야료를 부렸다. 한 동리에 살지만 평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최 씨도 기세등등한 오 사장에게 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봐라! 오 사장. 노류장화가 어디 주인이 있더나? 누구보고 눈독을 들인다꼬? 나는 신사답게 커피나 한 잔하려는 거야!

“뭐라꼬? 장 마담이 내 애인인 거 이 봉오재에서 다 아는데 니가 꼭 내 애인을 꼬실라꼬 하면 안되지! 의리도 없게.

“아따! 의리 찾는 넘 또 있네! 오 사장이 언제 의리 찾아? 돈놀이하면서 남으 재산 인정사정없이 뺏아 놓고! 개가 웃을 일이제!”  

싸움은 요란했다. 시장 사람들이 몰려 나와 구경하고 오 사장이 대 전주錢主로 있는 마을금고 사람들이 나와서 뜯어말리고…….

 

두 번째로 유력한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은 최 씨와 멱살잡이 싸움이 있기 며칠 전에 돈을 빌리러 왔다가 무참하게 거절당한 박 사장이었다. 박 사장은 창원공단에서 재벌 그룹 전자회사의 하청공장을 하는 40대의 사내였는데 부도 일보 직전에 몰려 다급하게 큰돈을 구해야 했으므로 오 사장에게 달려온 것이었다. 전에 몇 번 돈을 차용해 간 적이 있었으므로 박 사장은 쉽게 자금을 빌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온 것이었다. 오달용 사장에게는 철칙이 하나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 주지만 사업이 망할 전망이 보이는 자에게는 매몰차게 거절해 버리는 것이었다.

“부도 직전이라꼬? 내가 사업자금을 융통 안 해주면?

“아! ! 이번에 좀 급하게 되어서…….

박 사장은 어려운 형편을 늘어놓자 오 사장은 손을 홰홰 내두르며,

 

“지금 빌려줄 돈이 없네!” 단번에 거절을 당한 박 사장은 좀 끈질겼다.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조른다면 돈 융통이 되리라 생각한 그는 사흘 밤낮을 계속 쫓아다니면서 오 사장을 졸랐다. 애원했다. 나중에는 산인과수원까지 찾아가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읍소를 했다.

“야! 이 사람아! 자네가 나에게 돈을 맡겨 놓은 것도 아니고! 무작정 돈을 해 내라면 어짜노?

거절하고 또 달라하고 또 거절하고…… 실랑이 끝에 화가 난 오 사장이 버럭 고함을 쳤다.

“이 사람아! 나까지 따라 망하라고 하는데 자네 혼자 망하면 되었지 날 끌고 들어갈 끼 뭐꼬? 돈 못 주네!

애원 읍소하던 박 사장도 나중에 악에 바쳤는지 막말을 퍼부어 댔다.

“우째 그리 독하요? 평생 내 당신 수중에 돈이 있겠소? 얼마 못 가 그 돈 다 날리고 죽을 끼요. 그렇게 독하게 하면요.

“허어! 이 사람이 못 하는 소리가 없네!

“그래! 앞으로 우째 되는지 봅시다! 씨발!

원망과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눈을 부라리며 제 혼잣말로 욕설을 하더니 돌아서 갔다.

형사가 박 사장을 찾아와 꺼낸 첫마디가,

“박동호 씨! 농장 일꾼들이 그날 당신이 한 욕설들 다 얘기해 줍디다. 증인들이 한 목소리로 거절당한 원한을 품고서…….

하고 강력한 용의자이니 바른말하라고 추궁했다.

 

그 다음 용의자 선상에 오른 사람은 오 사장의 연인 장 마담이었다. 장 마담이야말로 돌말에서 오 사장과의 연분이 널리 소문이 나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조사 대상이 된 것이었다. 사실 돌말에서 뜨르르하게 소문이 나 있기로는 장 마담이 오 사장으로부터 큰돈을 후려냈을 거란 얘기였다. 수시로 농장을 들락거렸고 오 사장이 농장에서 부르면 아무리 밤중이라도 택시를 대절해서 갔으니 사고가 나던 그날 밤 혹시 둘이서 늪가로 놀러 갔다가……. 요새 장 마담을 만나러 어떤 사내가 다방을 들락거렸는데 보나마나 예전의 기둥서방쯤 되어 보이더라는 얘기도 함께 떠돌았다. 그 얘기에 덧붙여 돈에 탐이 난 여자가 사내를 시켜 쥐도 새도 모르게 오 사장을 수장시켰으리란 소문도 쉬쉬하면서 숙덕거렸다. 동리 사람들이 숙덕거리는 소리를 못 들을 리 없는 형사들이 그냥 넘기지 않았다.  

형사가 다방으로 찾아가 조사를 하려 들자 그녀는 울음보를 터뜨리며,

“뭐 주고 뺨 맞는다더니 내가 그 꼴이네! 내가 뭐 어쨌다고 형사님이 까꾸랑한 눈으로 날 노려보세요? 억울하고 분하네. 오 사장님과 나, 우리 사이는 그야말로 순수한 로맨스란 말예요. 진정한 사랑 로맨스!

하고 연막부터 쳤다.

“로맨스 타령 들으려고 온 게 아니고! 뭐 참고될 만한 얘기 들으려고 온 거요. 장 마담이야 말로 죽은 오 사장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으니 찾아온 거란 말이요. 수사에 협조해 줘야지, 그렇게 울기만 하면 더욱 의심이 간단 말이요. 시침 떼는 거 눈에 환히 보여요.

“난 억울해요. 뭐 주고 뺨 맞는다더니! 단골손님들이 내가 어떤 사내와 작당해서 돈을 훔쳐내려고 그랬다고 하지 않던가요?! 억울하고 분해요. 사실 난 오 사장님에게 차 사달라고 했어요. 내가 농장에 오가자면 승용차가 없어 아주 불편했거든요. 꼭 택시를 대절해 다녀야 했걸랑요.

“택시 얘기가 아니라 전세 들어있는 다방건물을 장 마담 앞으로 사 달라고 협박했다던데?

 

“누, 누가 그래요?

“오 사장 부인이 그럽디다. 오복 조르듯 막 졸랐다고 하데요? 그래도 오 사장이 말을 듣지 않으니까 예전 애인을 불러들여 협박까지 했다 하던데?”    

“증거! 증거 내 놔요!

여자의 발악에 형사는 한 발 물러서면서 다른 형사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니까 다른 형사가 밖에 나가더니 어떤 사내를 데려왔다. 바로 장 마담의 애인이라는 사내였다. 사내는 다방에 들어서면서 기가 죽은 듯 눈치를 보면서 너스레를 늘어놓았다.

“내 말이 맞지요? 우린 그날 밤 거기 가지 않았어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밤새도록 술 마신 거 아리바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난 저 여자와 헤어진 지 오래됩니다. 우연히 송백다방에 있다는 소문 듣고 꼬라지나 한번 볼까하고 지나가다 들렀을 뿐이고요.

형사들은 “알았어! 둘 다 조심해!” 그러고는 더 말을 않고 장 마담과 사내를 남겨둔 채 나가버렸다.

 

불똥은 가족이라고 피해 가지 않고 튀었다.

경찰들이 수시로 집으로 찾아와 오 사장 부인과 두 아들과 딸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여러 해 전 까마득해서 잊어버린 일들까지 어디서 소문 듣고 알아냈는지 와서 그런 일이 있었지 않았느냐고 시시콜콜 들먹이며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그들은 속내를 들내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장 마담 때문에 걱정이 많았지요? 오 사장이 송백다방 건물도 사서 명의 이전도 해 주려고 했고 또 과수원 복판에 넓게 집터를 닦아서 최고급 가든 식당을 지으려 했다던데요?

형사의 한마디에 부르르 몸서리를 치면서 오 사장 부인이 열을 냈다.

“그 첩년 때문에 내가 피땀 흘려 모은 재산 다 날리게 되었는데 그냥 있어요? 내가 여러 번 다방에 찾아가 좋은 말로 우리 영감에게서 떨어져라 말했지만 그년이 듣지를 않았제. ! 기가 막혀! 그년에게 식당 장사를 시킨다면서 과수원에다 넓게 터를 닦아 큰 건물을 지으려고도 했제. 오데 그거이 지 마음대로 되지는 못했제. 내가 일숫돈 놀이하면서 발에 불이 나도록 마산 천지를 사시사철 추우나 더우나 걸어댕기면서 일숫돈 수금해서 벌어들인 것 밑천해서 건축사업을 하도록 했던 기라.

“아하! 그러니까 지금 수십 억 재산이 모두 아주머니 노력이었다 이거죠?

“암만! 우리 친정 부모가 종잣돈을 대주었제. 촌구석에서 목수일 하려고 어제 아래 온 촌넘이 무슨 수로 목돈을 모아 집장사를 할 끼고? 다아 내가 발품 팔아 벌어들인 돈 갖고…… 인자 말하지만 처음에 집장사를 시작할 때 우리 친정 아부지가 밑천 대주고 이래저래 하라고 코치해 주고 쫓아다니면서 건축자재 업자도 외상으로 거래하도록 알선해 주고 그랬제. 지 혼자서 어림없었제. 그런 거를 세월이 흐르고 나니까 까맣게 잊어뿌리고 다 지 잘난 덕에 성공한 듯 떠벌리지만 말짱 황이제. 그런데 첩을 들여? 첩년에게 재산을 뚝 떼어줄라 카는데 내가 죽은 넘 뭐 맨치로 있어야 되겄소?

“허어!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께서 펄펄 뛸 이유가 있긴 있군요?

“진짜로 농장에 큰 집을 지어 가든인가 목닥인가 고급요식업 장사를 첩년에게 맡기기만 하면 큰 사달을 낼라 했소. 지 죽고 내 죽으면 그만 아니겄소? 아무리 살갑게 지내는 부부라도 돌아누우면 남이라 캅디더! 이 재산 절반 이상은 내 끼고 자식들한테 온전하게 물려줘야 할 낀데 난데없는 년에게 떼어줄라 카다니! 어림 반 푼도 없어요!

 

형사들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도대체 오달용 변사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가족들에게서 찾아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 사장 부인이 부아가 나서 제 속에 담아두었던 사연을 다 쏟아냈지만 정작 그녀나 아들딸들의 행적이 아비의 변사와 아무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지 경찰서에서는 주로 과수원을 중심으로 해서 드나든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뭔가 사건을 해결할 정보나 실마리가 있을 듯해서였다. 무엇보다도 사건의 목격자를 찾아내야 했다. 인근 마을 사람들을 이 잡듯 하며 수소문을 했으나 아무도 오 사장의 외출이나 늪 주변 산책을 본 자가 없었다. 한밤중 외딴집에서 벌어진 일이니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농장 고용인 김씨를 비롯해서 과수원 일을 하러 출입을 했던 동리 사람들이 한참 동안 들볶였다. 물론 농약상이나 괄시 못할 예금주를 만나러 오갔던 농협 직원이나 친분이 있었던 공무원들, 술잔깨나 얻어먹으려고 드나들었던 지방유지들. 나중에는 농장 일꾼들에게 중참으로 먹는 자장면을 오토바이로 배달하던 북경반점 배달꾼까지 호출을 당해 경찰서를 드나들었다.

고용인 김씨로서는 정말 이해가 잘 안 되고 사건의 재구성은 더더욱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는 나름대로 할 말을 쏟아냈다.

“사장님이야 어데 나한테 어디 간다 온다 하고 신고하고 다닙니껴? 우르르 차를 몰고 오셨다가 간다 온다 말도 없이 바쁘게 마산 나가 삐리지요. 워낙 바쁜 분이다보니 어디 나하고 조용히 술 한 잔 할 기회도 없었구먼.

“아, 송백다방 장 마담이 자주 왔다갔다 했잖소? 뭐 수상한 기미가 없었소? 잘 생각해 봐요.

“사모님이 제일 먼저 의심했던 사람이 바로 장 마담이라 카는 그 여자 아입디껴? 그 여자 매구야시입니더. 남자를 홀까서 큰 재산 뽑아내려고 오만 야살을 다 부리고 오만 간사를 다 떠는데 내사 눈 뜨고 못보겠더마는! 사실 나도 가만 생각해 보면요…….

“생각해 보면요?

“이 소리를 해서 될란가 안 될란가 모르지만…….

   “아따! 뜸들이지 말고 퍼뜩 말하소. 수사상 참고가 될 말은 뭐든 좋소.

“아무래도 사장님 물속에 처넣은 넘이 사람은 아닌 것 같소."

"그게 무슨 소리요?"

"처녀귀신 소행이란 소문이 온 동네에 쫙 퍼졌거든요. 일 년 전에 그곳에서 자살한 처녀가 있었거든요……. 그 귀신이 홀려서 잡아 갔다……."

"무슨 엉뚱한 소리!"

 "아니면 여럿이 달려들어 물속에 처넣은 것이라고도 하데요. 아무리 사장님이 키가 작고 몸집이 작더라도 돌을 발목에 달아 물에 처넣으려면 혼자서는 어림도 없지요. 죽지 않으려고 반항하고 몸부림을 쳤을 건데 말입니더. 그라고 사장님이 밤낚시를 간혹 했지만 워낙 바쁜 양반이라 즐기는 편은 아니었고요, 그날은 낚싯대도 가지고 나가지 않았지요. 틀림없이 사장님이 잘 아는 사람과 동행을 해서 거기 바람 쏘이러 나간 것 같은데…… 아니면 어느 놈이 숨었다가 강도질 할라꼬 습격을 한 게 아닌가 합니더. 제 좁은 소견으로는…….

은근히 김 씨는 오밤중에 산책을 같이 나갈 사람은 장 마담이고 그곳에 숨어 있다 범행을 저지른 자는 장 마담의 부탁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겠느냐는 투였다. 사건이 나던 그날 밤 김 씨가 분명히 집으로 돌아왔고 밤늦도록 마을 사람들과 마을회관에서 같이 놀았다는 증언이 있었으니 더 추궁을 하지 못하고 경찰들이 물러났다.

 

한편 수사가 지지부진하던 때 형사들의 눈이 확 뜨일 일이 송백다방 앞길에서 벌어졌다.

술에 만취한 사내 하나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척거리면서,

 

“오 사장 그놈아 자알 죽었제! 내가 안 그래도 쥑이뿌릴라고 했던 기라.

하고 대로에서 만인이 들으라 하고 고함을 쳤던 것이었다.

“저, 저 자슥이! 저 미친갱이가 불속으로 뛰어드는 소리를 하고 나자빠지네!

“아이고! 저 놈이 아직도 죽지 않고…….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하더니 또 술을 처먹고 대낮에 쇼를 하는구먼.

신발집 최 씨, 빵집 이 사장, 석전슈퍼 황 씨, 철물점 박 사장…… 골목 좌우에 있던 상점들의 상인들이 우르르 나와서 한마디씩 하면서도 야료를 부리는 사내를 통 말릴 생각이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최 씨가 그랬다.

“영호 저놈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는 술병 때문이데이. 저그 애비는 얼매나 착하고 순진했는데 말이다. 그라고 오달용이가 저놈 때문에 속을 많이 썩였지. 영호 아버지 박 씨하고 오달용하고 같은 고향 사람으로 형님 동생하면서 지냈제. 박 씨가 먼저 마산 와 가지고 자리 잡고서 오달용을 불러와서 함께 일했다 아이가.

“이 돌말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 오 사장이 집장사로 나설 때 박 씨가 건축 일을 도맡아 했다하데요?

그랬다. 고향에서 마산으로 먼저 나온 사람은 나이 많은 박 씨여서 선배, 형님 대접을 한동안 받았지만 오달용이 여자를 잘 만나 결혼하고 장인어른 덕에 집을 지어 파는 건축 사업을 하고부터는 오달용은 사장행세이고 박 씨는 집을 지어주는 고용된 일꾼으로 역전되었다. 둘의 관계는 오랫동안 친밀하게 지속되었고 오 사장의 건축현장에는 언제나 박 씨가 총감독으로 일했다. 그런데 아파트 공사장 사고로 그만 박 씨가 비명에 가 버렸다. 그것이 1980년대 일로 그 아들 영호가 그때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박 씨가 공사판에서 죽자 그 가족의 뒷바라지는 온전히 오 사장의 몫으로 치부되어졌다. 그는 성의를 다해 최근까지 유족을 돌봐 왔다. 돌말 사람들에게 꼼쟁이, 돈만 아는 뙤놈, 왜놈, 노랭이 등등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박 씨 가족을 돌보기를 친형제에게 대하듯 아낌이 없었다.

“그런데 오해가 생겼지 뭐꼬? 박 씨가 언젠가 오 사장이 아파트를 지으면서 사업자금이 갑자기 모자라 쩔쩔매자 그동안 품삯 받아 모아둔 돈 몇백만 원을 빌려 준 적이 있었던 모양이라.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사고로 박 씨가 죽었제 아, 글쎄 박 씨 아주머니는 그 돈을 돌려받은 적이 없다고 하고 오 사장은 사흘 만에 돈을 갚았다고 하는 거야. 박 씨 아주머니도 시동생 같은 오달용이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믿고 입을 다물고 말았지. 하여간 박 씨가 너무 급작스럽게 죽었으니 그만 그 돈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되어버렸제.

“아따 그 후에 지금까지 음으로 양으로 생활비를 대주고 무엇이든 도와주었다니 십여 년간 그 돈만 모아도 빌렸다는 돈 몇 배는 될 것이구만.

“암! ! 오달용이가 꼼쟁이고 구두쇠지만 돈 계산 하나는 명확한 사람이거든. 그런데 영호가 우째 알았는지 심심하면  오씨 아재가 아버지 돈을 떼먹었다. 고 해. 오달용이도 저놈을 붙들고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오해를 풀어주며 야단을 치면 그 자리서는  아, . 아재 말씀이 옳습니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더. 하고 수긍을 하고서는 술만 처먹으면 또 그러는 거야. 사실 오달용이가 뒷바라지를 하지 않았으면 저놈이 고등학교도 못 나왔을 껄.

“하여간 문제아야! 아니 골칫덩어리야.

 

술김에 고래고래 오 사장 욕을 하며 고함을 치던 영호는 송백다방에서 진을 치고 있던 형사들에게 끌려갔다. 이튿날 영호는 멀끔한 얼굴로 골목에 나타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황과부 포장마차에 가서 술을 마셨다. 형사들에게 끌려가서 어떤 추달推撻을 받았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후 10여 년이 훌쩍 흘러갔다. 그렇지만 오달용 수장水葬사건은 유야무야 세월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돌말 마을 복판 수령 500년은 되었다는 회나무 서낭 그늘에 늙은이들이 모여 앉아 옛날 얘기를 하다가 그 일이 화제로 떠오르면 모두들 쉬쉬하며 말소리를 낮추곤 했다. 지금이라도 엉뚱한 소리를 했다가 경찰 귀에 들어가면 또 어떤 귀찮은 일이 벌어질까보아. 그래도 어제 그제 이 마을에 이사를 와서 사는 사람은 질문한다.

“오밤중에 늪에는 뭐 할라꼬 갔을까? 뭐 남모르는 심각한 고민이 있었던 거 아니요?

“아! 돈 많은 사람이 자살을 했을 리가 만무고! 어떤 놈이 돈 많은 사람 노리고 강도질을 했겄제.

“오 사장이란 사람이 얼매나 야무진 사람이라고? 수중에 갖고 다니는 현금은 고작 몇만 원이고 돈은 전부 은행에 있었제. 강도에게 쉽게 털릴 인간이 아니라니까!

“그도저도 아니면 그때 아무도 믿지 않았던 얘기 말이야. 일 년 전에 그 늪에서 자살한 처녀귀신한테 홀려서 빠져 죽은 거라는 일꾼 김 씨나 동네 사람들 얘기…….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구먼.

“인공위성이 펄펄 날아 댕기는 세상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마이소. 누가 그걸 믿겠소?

노인들은 서낭나무 둥치와 수많은 가지들을 올려다보며 얽히고설킨 세월의 사연을 읽는다.

아마 오달용의 이야기가 좀 더 세월이 흐르고 나면 곁가지치고 새끼 쳐서 전설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