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문학> 2015년 39집에 발표한 단편소설 < 소금쟁이 지게꾼>을 정리해 둔다.
“단편소설”
소금쟁이 지게꾼
김현우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는 12월의 새벽, 키가 크면서도 허리가 굽은 노인이 작은 손수레에 사과상자 같은 박스를 싣고 동사무소 앞에 나타났다.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허리 굽은 노인은 수레에서 종이상자를 들어냈다. 그것을 영산홍이 있는 화단에 올려놓고는 점퍼 호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상자위에 놓고는 근처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어서 눌러 놓았다. 종이에는,
“동장님께.
우리 동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금쟁이”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의 다락방 잡동사니 사이에는 낡은 지게 하나와 퇴색되어 누르퉁퉁한 트렁크가방이 있다. 낡은 가방은 네모가 나고 커다란 것이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들은 그 다락방 중심에 터억 자리 잡고 있은 지 오래 되었고 다른 잡동사니보다 월등한 대접을 받고 있음이 확실했다. 지겟등태나 지게 끈은 천막쪼가리로 만든 것이었는데 색이 바래지고 등과 마찰된 부분은 닳아 얇고 허옇게 곰팡이가 피어났다. 지겟다리에는 덧댄 양철이 녹이 빨갛게 쓸었고 그 옆 지겟작대기는 짜리몽탕하게 생겼으나 단단한 참나무 재질이었다. 지게질할 때 짐을 얹으면 묶는 지게꼬리도 그대로 구불구불하게 지겟가지에 감겨 있어 지금이라도 지게를 지고 나가면 얼마라도 무거운 짐을 너끈하게 질 수 있을 듯 그것은 탄탄해 보였다.
어쩌다 아내나 아들딸들이 다락방의 그 낡은 지게를 보고,
“아니! 저거 갖다 내버리지 무슨 값나가는 고물이라꼬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놨어요?” 하거나
“냄새가 풀풀 나는 것 이젠 내버리세요.”
하고 타박을 주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물건인지 모르지만 이젠 버려도 될 건데!”
아들딸 말에 아내가 대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예전에 너희 아버지가 영도 하꼬방에 살 때 영도다리를 아침저녁 걸어서 건너 댕기면서 광복동 남포동 자갈치시장에 나가서 지게꾼 노릇 했단다. 그때 짐 지고 다니던 걸 저렇게 모셔 놓고 있제.”
그는 아내나 아이들의 말에 전처럼 대답한다.
“야! 이놈들아. 저거 천량짜리 지게다. 아니 내가 천량 빚을 진 거단 말이다. 언제간 갚아야 될 빚 말이다.”
그 일이 생기기는 1960년대가 한창이었던 부산에서였다.
제대를 하고 집에 돌아온 박석호은 얼마간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었다. 그때 부산에서 미장이로 일하며 살던 아버지의 사촌형제 박수갑이 오더니 한마디 했다. 박수갑은 석호보다 열 살 정도 많았으나 아버지보다 나이가 적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뿐만 아니라 박석호가 들어보라고 훈수를 한 것이었다.
“사내대장부가 이런 촌구석에 살아서 뭐 하겠소. 젊은 사내란 무조건 대처에 나가서 날품팔이를 하든 장돌 뺑이 노점상을 하든지 좌충우돌 넓은 세상과 부딪쳐야 장차 출세도 하고 큰돈도 벌제!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면 안 된데이.”
“허어! 부산 가면 무슨 살판나는 일이 있겄나? 농사를 꿍꿍 지으면서 장가도 가고 또 내가 늙으면 전답을 다 물려 받아 고향 지키면서 살아야제!”
“형님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사대 멀쩡하고 또 석호가 학교 댕길 때 공부도 잘했고 군대도 갔다 왔으니 이젠 큰 도시로 나가서 활개 치며 멋지게 살아봐야 할 것 아잉꾜? 병아리 새끼처럼 품고 있지 말고 나 한테 맡기 보소.”
“허어! 멀쩡하게 농사 잘 짓고 일 잘하고 있는 아아에게 헛바람 넣지 말거래이. 밀양 수산 이 동네에서 우리 집안이 종손집안이고 뼈대 있는 집안인데 가문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데이.”
“세상을 좀 멀리 내다보이소.”
수갑 당숙은 아버지의 말에 코를 휭 풀며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으나 더 말이 없었다. 옆에서 아무 소리도 않고 지켜봤던 석호는 마음속으로 당숙을 따라 부산으로 갈 것을 결심했다. 그는 아버지 모르게 따로 만나 부산 영도 당숙의 집 주소와 찾아가는 길을 상세히 물었다.
“지금 보리타작 철이니 당장은 갈수 없고요. 모심기 끝나면 가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부산 간다면 니 아버지가 펄펄 뛸 것이지만 지지 말아라. 석호 니가 부산 오기만 하면 내가 일자리를 책임지고 찾아주께. 니 마음에 들 취직자리가 여러 곳이 있어.”
당숙은 은근히 큰돈을 벌 취직자리가 많이 있다고 석호의 가슴에 기대와 희망이 부풀도록 부추겨 놓고는 부산으로 가버렸다.
석호가 부산으로 가기는 그 후 몇 달이 지나서였다.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서 좀체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합세하여 설득한 끝에 드디어 고향집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석호는 당숙의 집 아랫방에서 같이 살게 되어 숙식문제는 자연히 해결되었고 그저 제 마음에 드는 직장에 취직만 하면 되었다. 영도에는 조선소가 여러 곳 있었는데 당숙모는 조선소 근처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하고 있었다. 당숙은 미장일을 하러 공사판을 전전하고 있었다. 집짓는 일거리가 없을 때는 식당일을 거들며 지내는데 고향에서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부산으로 오니 취직이 문제없다고 큰소리치던 수갑 당숙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와 같이 집짓는 건설 현장을 다니며 미장일을 배우라는 것이었다.
“앞으로 미장공이 건설 현장에 딸릴 것이다. 벽돌, 브록크도 쌓고 미장이가 할 일 양 사방에 널렸다니까! 1, 2년만 날 따라 다니기만 하면 일류 기술자가 돼.”
그러니까 그의 미장일을 따라다니며 거드는 조수로 부려먹을 속셈이었다.
“앞으로 미장이가 어디든 최고 직업이 될 거야. 요즘 여기저기 집을 얼매나 많이 짓는다꼬! 공사판이 이곳저곳 벌어져 있는데 석호 너는 다른 생각 말고 내 따라다니면서 미장 기술만 충실히 배워 일류 기술자만 되어 보라모. 양 사방에서 일하러 오라카지!”
그러나 석호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는 큰 회사나 공장에 취직해서 월급쟁이로 살고 싶었다. 아니면 국제시장 같은 곳의 장사꾼이 좋을 듯도 했다. 그래서 당숙에게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자신의 뜻을 완곡하게 말했다. 당숙은 손을 홰홰 내저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석호 니가 세상을 몰라서 그러는데! 기술자가 돼야 한데이. 지금 이 세상에 기술이 최고란 말이다. 미장 기술 하나만 똑바로 배워놓으면 묵고 사는 것 걱정 없다.”
당숙의 강력한 권고에 하는 수 없이 공사판으로 따라나서기는 했지만 석호의 마음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한 달 쯤 당숙을 따라 건설 현장에서 집 짓는 일을 했으나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석호는 더 참을 수 없어 당숙의 뜻을 거스르기로 작정했다.
“당숙요, 아무래도 저는 노가다 일하고는 영 취미가 맞지 않습니더. 나는 장사 같은 것 해 보고 싶습니더,”
그 말에 당숙은 성을 버럭 냈다.
“야가! 뭐라카노? 내가 기술을 배워야 한다꼬 그래 말해도 못 알아듣나? 기술을 배워야 된데이.”
“나는 장사를 하고 싶습니더. 노점상이라도 하면 안 되겠습니껴?”
“장사할라면 밑천이 있어야 하는데 당장 무슨 돈이 있노?”
"지금 당장 밑천이 없지만 노력하면 될 껍니더. 아버지께 밑천 좀 달라 카면 안 될까요? 공사판에서 어정거리기보다는 차라리 국제시장이나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당숙은 석호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기가 막히고 질렸다는 듯 화를 버럭 내면서 석호보다 더 엉뚱하고 기발한 소리를 질렀다.
“에이! 빌어 묵을 놈! 그라면 지게나 지고 시장바닥에 나가거라. 지게꾼 노릇 해 봐라. 시장바닥에 굴러 댕길라모 지게꾼만큼 세상 물정 잘 알 수 있는 기 없다. 저게 공사판에 쓰는 지게 하나 얻어 줄 테니!”
당숙은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한 소리였는데 석호 귀에는 그 말이 쏙 들어왔다. 그렇다. 장사를 하려면 시장바닥의 인심도 장사꾼들의 거래도 알아야 하는데 지게라도 지고 그곳에 얼쩡거리면 자연히 장사 비결도 알게 될 것이 뻔했다. 뿐만 아니라 장사꾼이 되려면 어찌하든지 시장바닥에서 뒹굴어야 될 것이 아니가?
“당숙요. 당장 지게나 하나 얻어 주이소. 정말 지게꾼 노릇한 번 해 볼라요.”
“허어! 야가 미쳤나? 정말로 지게꾼 할래?”
일은 급전직하. 성이 난 당숙은 ‘오냐! 네 마음대로 고생 한 번 실컷 해봐라!’ 하는 심정으로 공사판에 굴러다니는 지게 하나를 얻어 석호의 어깨에 지워주었다.
“망할 놈! 내 말을 그렇게 안 들어?”
당숙은 씩씩거리며 집에 와서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술을 마시더니 석호에게 욕설을 퍼 부으며 야단을 쳤다.
“아이고! 미장일 배우지 않겠다는 조카를 지게꾼으로 만들어요? 우리 식당에 자주 오는 조선소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조선소에 취직이나 시켜 주지! 내가 조선소에 일자리 있는가 알아볼 테니 지게꾼은 그만 둬라. 석호야.”
식당 일을 하던 당숙모도 조선소에 취직자리를 알아보겠다면서 극구 말렸으나 석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석호는 공사판에서 얻은 낡은 지게를 지고 이튿날 국제시장으로 나갔다. 길거리 초입에 지게꾼들이 지게를 누여놓고 짐을 지고 갈 손님을 기다리는 곳을 찾았다. 먼저 나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신출내기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새로운 경쟁자 하나가 더 생겼다는 적대감으로 빈 지게를 내려놓지도 못하게 야료를 부렸다.
“뭐야? 젊은 놈이 뭣 하러 와? 노가다 판에나 가지!”
“아저씨들! 좀 같이 벌어먹고 사입시더. 내 형편이 딱해서 말이 아입니더. 촌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지게질 하나는 잘 하거든 예.”
“허! 사람이 넉살 하나는 좋네? 꼭 여기서 일하고 싶으면 저어기 저쪽에 가! 빌어 묵을 놈!”
고참 지게꾼들의 등살에 밀려 석호는 그곳에 있지 못하고 밀려 났다. 그 이후 석호는 남포동으로 자갈치어시장으로 국제시장으로 광복동으로 건정건정 돌아다녀야 했다. 빈 지게로 돌아다니다보면 짐을 지게 하는 손님이 얻어 걸리는 것이었다. 큰 키에 마른 편이라 동료 지게꾼들이 그를 물위를 다니는 소금쟁이라 부르며 비웃었다.
“저, 저 놈. 소금쟁이가 가네! 날마다 빈 지게만 지고 다니는데 언제 철이 들어 제 밥벌이를 하겠노?”
물론 점심밥값 제하고 나면 빈손으로 돌아오기 보통이라 당숙이나 당숙모는 기가 찰 일이라면서 석호를 구박했다. 그렇지만 그는 한번 마음먹은 일을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 둬서야 되겠나 싶어 버티었다. 그러기를 한 달 쯤 지났을까?
천량빚을 지는 날이 왔었다. 소금쟁이 지게꾼의 빈 지게에.
그날 아침도 전날과 다름없이 일찍 당숙의 집 영도에서 걸어서 영도다리를 건너고 자갈치시장을 한 바퀴 돌아 국제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때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바로 여관 앞에서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그에게 손을 흔들어 부르고 있었다. 석호는 얼른 달려갔다.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신사는,
“이거 부산역까지 지고 가소.”
하며 돈부터 내밀었다. 그는 돈을 받으며 지게를 내려서 지겟작대기를 받혀놓고 보니 여관 입구에 소가죽으로 만들었을 누런빛 트렁크가 보였다. 네모난 가방은 석자가 넘어 보이는 제법 크고 두터우며 단단한 것이었다. 두 줄의 두꺼운 혁대가 가방 전체를 두르고도 금빛 나는 잠금장치가 있어 고급제품으로 값나가는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거 지고 부산역으로 오소. 역전에 오면 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아! 예?”
“난 택시 타고 먼저 가 있을 거요.”
“네에? 같이 안 가시고요?”
“급히 먼저 가서 볼일이 하나 있어서 그래요. 빨리 오시오.”
신사는 더 긴말하지 않고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더니 급히 떠났다. 아마 누군가 만날 약속시간이 촉박했던 모양이었다. 신사를 태운 택시는 광복동 쪽 큰길로 갔지만 석호는 걸어서 역까지 최단거리인 소로(小路)를 택해서 가방을 지고 용두산공원 옆길 고개를 넘어 부산역으로 갔다. 짐은 제법 묵직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맞은 손님이라 그저 가볍게 느껴졌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부산역에 도착하고 보니 그 신사가 보이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갔으니 당연히 지게꾼보다 먼저 와서 역전에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석호는 지게를 역전 광장 한 구석에 세우고는 둘레둘레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 짐을 맡긴 신사를 한참이나 찾았다. 그러나 찾지 못했다. 소금쟁이 지게꾼이란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그는 짐을 지고서 역사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혹시 그곳에 신사가 있나 하여……. 역시 허탕이었다.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쏘다녔다. 어깨가 묵직해져서야 대합실을 나섰다. 대합실 앞 입구에 지게를 받혀놓고 지게 그늘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며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 신사가 급히 볼일이 있다고 하였으니 아직 볼일이 끝나지 않아서 부산역에 도착하지 않았으리란 짐작이 갔다.
시간이 흘렀다.
배가 고파왔다.
해가 삥 돌아가니 지게 그늘도 돌아갔다. 끝내 그 신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해가 꼴깍 넘어가버렸다.
역 건물에 달린 시계가 밤 11시를 가리켰다.
석호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점심 때 빵 하나 먹고 저녁을 굶으면서 기다린 보람도 없이 짐을 맡긴 신사는 오지 않았다. 그는 트렁크를 진 채 영도 집으로 돌아갔다. 방구석에 트렁크를 들여 놓고 잤다. 손님이 그에게 짐을 맡겼으니 잘 보관했다가 꼭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튿날 석호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지게에다 트렁크를 얹고 집을 나섰다. 당숙모가 ‘아침밥도 안 먹고 벌써 나가느냐?’ 하고 물었으나 대꾸도 않았다. 가방을 맡긴 신사가 부산역에 나와서 그를 눈이 빠지게 기다릴 듯해서 였다. 바쁘게 걸어서 영도다리를 건너고는 역까지 거의 뛰다시피 달렸다. 등에서 땀이 흘렸다. 역 광장에 도착하자 휙 한 바퀴 고개를 돌리면서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 신사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지게를 지고 대합실 안을 들어가 한 바퀴 휘휘 돌았으나 신사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어제처럼 대합실 입구에 지게를 내려놓고 그 아래 퍼져 앉아 들고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 택시에서 내릴까? 버스에서 내릴까? 하고 차가 저쪽에 멈추어 서면 눈이 빠지라고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렀다.
배가 고파왔다.
역 광장에는 어제처럼 뜨거운 한여름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해가 삥 돌아가니 지게 그늘도 돌아갔다.
밤 11시에 석호는 다시 지게를 지고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와 트렁크를 방 안에다 들여 놓고 어떻게 하면 가방 주인을 만나 돌려 줄 수 있을까 궁냥(;局量)을 하다가 잠들었다.
꼭두새벽에 또 눈이 떠졌다.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대문을 나서는데 당숙이 내다 봤다.
“뭐 할라꼬 새벽에 나가노? 짐 맡길 사람도 없을 낀데?”
“아! 갖다줘야할 짐이 있어서요!”
“어느 놈이 그렇게 짐을 맡겨 놓고 안 찾아 가노? 퍼떡 제 물건 찾아 가야제. 골치 아프게!”
“그러게 말입니더. 오늘은 찾아 가겠지요.”
석호는 더 설명을 않고 집을 나섰다. 그는 어제처럼 역 광장에 도착하자 독수리처럼 눈을 최대한 부라리고 찬찬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제 본 신사의 그 형체가 이제는 가물가물해지면서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모두 그 사람 같아 보이면서 헷갈리기 시작했다.
— 허허.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인자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지경이 되 삐맀나?
지게를 지고 역 광장을 두어 바퀴 돌고 대합실에 들어가 두어 바퀴 돌고…….
지게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해가 꼴깍 넘어 가고 밤 11시가 되고……. 또 하루가 후딱 지나가 버렸다.
닷새째 되던 저녁에 석호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당숙이 그의 방에 들이 닥쳤다. 당숙은 방에 들어와 앉자마자 트렁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뭐꼬?”
석호는 한참 머뭇거렸다.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서. 잘못 얘기를 했다간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도둑으로 몰릴 것이 겁났다.
“야가? 저기 뭐냐꼬 물었다. 가만히 보니 석호 니가 저걸 지고 사흘인가 나흘인가 댕기던데 무슨 사달이 난 기라. 바른 말 해라. 무슨 일이고?”
“저어…… 짐을 찾아가지 않네요.”
“뭐라꼬? 짐을 안 찾아가?”
석호는 그제야 그 동안 일어났던 일을 시시콜콜 털어 놓았다. 절대 도둑질 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고, 주인을 찾아 주려고 닷새를 역에 나가 버티고 있었음을 강조했다. 당숙은 그의 얘기를 다 듣고서는 한참이나 속으로 궁리를 하는 듯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결심을 한 듯 방구석에 있는 가방을 끌어 당겼다.
“우짤라고예?”
“우짜기는 우째! 뭐가 들었는지 봐야제. 이 속에 혹시 어린애 시체 같은 거 들었으면 우짤래? 요새 세상이 하도 험악해서 애가 죽으면 가방에 넣어 아무데나 버린다 카더라.”
“예에?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겨?”
“야야! 설마가 사람 잡는다 카더라! 당장 열어 봐야겠다.”
당숙의 말에 석호는 주인을 꼭 찾아 돌려줘야 할 물건이니 가방을 열어서 속을 들여다보면 안 된다고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당숙의 우격다짐에 이길 수가 없었다.
“허! 이놈의 가방 안에 무슨 보물이 들었나? 정말 튼튼하고 쇳대도 여물게 잠가 놓았군. 열쇠가 없으니 망치로 두들겨 부숴야겠는데?”
“아이고! 주인이 알면 우리는 죽습니더.”
“인자는 이판사판이다. 이 가방 안에 헌옷이나 시체가 들었다면 남모르게 갖다 내버리면 된데이.”
“좀 무거운 거를 보면 책 같은 것이 들었을 겁니다.”
“책이나 뭐 그런 거 들었어도 우리한테는 별 쓸모가 없으니 쓰레기통에 내삐리만 된다. 인자 이리된 이상 주인을 찾아 가방을 돌려주기는 틀렸고 말이다. 우짜든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 열어보자!”
당숙은 망치와 벤치를 가져와 두드리고 비틀어 열쇠뭉치를 박살내고야 가방을 열었다.
“어?”
가방이 열리자 안을 들여다봤다. 안에는 옷가지 외에 책이나 종이뭉치로 보이는 것이 보자기에 싸인 채 들어있었다. 우선 아이 시체가 아니어서 가슴을 쓸어 내렸다. 보자기 속을 뒤지던 당숙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도, 돈이다!”
당숙은 부들부들 손을 떨며 물건을 싼 보자기를 푸는데 석호는 고개를 빼고 들여다봤다. 지폐 다발이 분명했다. 둘은 너무나 놀라 한참이나 말을 잃었다.
“딸라다. 미국 돈 말이다.”
“아! 예…….”
석호도 겁에 질리고 온 몸이 떨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가방 안에는 흰색 얇은 보자기로 싼 달러가 그득 들어 있었다. 둘은 한동안 멍청하게 있었다.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표정으로 둘은 서로 가방과 상대 얼굴을 번갈아 바라만 보았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그래도 조금 빨리 진정이 되었는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일확천금 횡재는 죽을 운수데이. 횡재가 아니라 비명횡사(非命橫死)할 운수란 말이다.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 카더니 이걸 우짜면 좋을꼬?”
석호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이제 가방을 열었으니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도 안 되는 일이요, 돈뭉치를 내 것으로 하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한 거금이라 어찌해야할지 그저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에 진땀이 솟았다. 석호는 당숙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경찰서에 갖다 줘야 되는 거 아입니껴?”
“야가? 지금 정신이 있나 없나? 경찰서에 가져 갈라문 진작 그날 해 지기 전에 부산역에서 곧바로 통째로 갖다 바쳤어야제! 그동안 날짜가 며칠이나 흘렀노? 사 나흘을 미적거리다가 뒤늦게 가져 가 봐라. 당장 네 놈부터 도둑으로 몰려 감빵 갈 끼다!”
당숙은 얼토당토않을 소리 말라고 호통을 치고는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모로 꼬며 무릎에 손깍지를 끼고 ‘이거를 우짜면 좋을꼬?’ 하고 여러 번 중얼거리기만 할 뿐 한 식경이나 말이 없었다. 드디어 당숙은 결심이 섰는지 조용히 말했다.
“우짜면 이거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는 천시(天時)인지도 모르겄다. 이거는 니 돈도 아니고 내 돈도 아니다. 동시에 이거는 니 돈이고 곧 내 돈이기도 하다. 대문 안에 들어온 복을 내치는 법이 없다. 예전부터. 석호야. 헛간에 가서 시멘트 푸대 두어 개 가져와라.”
석호는 당숙이 시키는 대로 헛간에 가서 공사판에서 가져다 둔 시멘트 빈 포대를 들고 왔다.
“이 일은 니만 알고 나만 알고 너그 숙모도 몰라야 한데이. 여자들 입이 가볍단 말이다.”
“예.”
당숙은 그가 가져온 시멘트 빈 포대에 돈을 옮겨 담았다. 석호는 손이 떨려 거들려고도 못했다. “내일 당장 지게는 도끼로 부숴서 아궁이에 처넣고 때버려! 가방도 불에 태우고! 그라고 이 푸대는 저 안에, 벽장 안에 넣어놓고 니 헌옷으로 잘 덮어둬라. 절대 니 숙모 눈에 띄면 안된데이.”
신신당부하는데 그는 고개를 끄떡거려 알았다고 다짐했다.
“그라고 니는 오늘부터 외출금지다. 내 영도안에서 일할 자리를 찾아 줄께. 답답하고 소증이 나더라도 참아야 한데이. 절대 영도다리를 넘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데이. 광복동이고 자갈치고 국제시장이고 남포동이고 한 1년은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한다. 상놈이 갓을 쓰면 갓끈이 떨어진다 카더라. 그라니 욕심은 금물이고 만사를 조심하고 허랑방탕할 생각도 말아야제! 이 돈도 1년은 묵혀 둘 끼다. 잊어뿌리고 살아야제.”
“예……. 그런데 이기 무슨 돈일까요?”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도둑넘 돈임에 틀림없다. 깡패나 어깨들이 부자들한테서 강탈한 돈 말이다.”
“깡패나 어깨들이라니…….”
“아니면 밀수꾼들 자금일지도 몰라. 이렇게 딸라를 바꾸어 가졌다면 일본으로 밀수하러갈 돈일는지도 몰라. 그라니 이걸 들고 경찰서로 가 봐라. 너도 나도 그만 함께 밀수꾼으로 옭아매면 꼼짝 못하고 감빵살이 할지도 모른데이.”
나름대로 어떤 돈일지 당숙은 한참이나 얘기를 했다. 틀림없이 밀수꾼이 석호에게 짐을 부산역으로 가져오라 하고서 택시를 타고 가다가 큰 사고를 만나 죽었든지 아니면 밀수단속을 하는 경찰이나 수사기관원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이 돈뭉치는 활인적덕(活人積德) 죽을 운수인 우리를 살리는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영도에는 조선소가 많았다. 당숙모가 조선소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식당일을 거들기도 하는 당숙은 조선소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당숙은 그를 영도에 있는 조선소에 취직을 시켜 주었다. 조선소 일은 기술이나 경험이 통 없었으므로 처음에는 잡역부 일이라 힘에 부쳤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조작 부서 보조로 자리 잡게 되었고 점차 기술을 익히자 기술자 대접을 받게 되어 정식 사원이 되었다.
그는 당숙의 엄한 당부대로 1년간 영도다리를 건너가지 않았다. 물론 비밀엄수를 위해 고향에도 가지 않았다. 휴일이면 봉래산에 오르거나 태종대를 찾거나 바닷가에 가서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처음에는 지루하고 괴로웠으나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일 년이 지나고나니 당숙이 조용히 그를 부르더니 속삭였다.
“그 사이 고민도 많이 하고 알아볼 만치 알아보았다. 역시 땅이 최고다. 돈을 땅에다 묻는 것이 장땡이란 말이다. 서면 쪽으로 나가보면 앞으로 개발이 될 만한 땅이 쌔비맀다.”
“당숙이 알아서 하이소. 내야 뭐 알아야지요.”
“그래! 내 절대 내 욕심이나 내 속만 채리고 널 속이는 일은 눈꼽만치도 안할 것이다. 알겄나? 이 돈이 어떤 돈이고? 하늘님이 활인적덕하라꼬 내려주신 천금이란 말이다. 우리는 천량 빚을 진 사람들이란 말이데이. 우리가 잘 치리(治理)해야 홍두깨에 꽃이 피었단 소리를 듣는데이.”
석호는 활인적덕에 천량 빚을 진 사람이란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낭비를 하거나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지게의 트렁크 돈을 활용하여 먹고살면서 좋은 일에도 써야 한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이제 이웃이나 친척 친구들에게 절대 표 나지 않게 슬슬 딸라를 광복동이나 국제시장 암달라 상인한테 가서 우리 돈으로 바꿀 거야.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부자행세를 하게 되면 사달이 나거든. 그러니 천천히 슬금슬금 남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땅도 사고 집도 사서 팔고 그러는 거야. 부동산 장사를 하는 거지. 소문나지 않도록…….”
5, 60년 세월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늙어 허리 구부정한 80노인이 된 석호는 친척 친구들 사이에는 부동산 부자로 소문이 났다. 부산 요지에 큰 빌딩이 서너 채 된다는 소문이지만 그는 부정도 긍정도 않고 살았다. 누가 어떻게 돈을 벌어 부동산 부자가 되었느냐고,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수갑 당숙을 들먹였다.
“다 수갑 당숙 덕분 아이겄소? 당숙이 손에 돈이 들어오면 꽉 움켜쥐고 절대 놓지 말라고 했지요. 당숙 시키는 대로 사니까 고생을 덜하고 요만큼 먹고 살았지요. 내 별명이 소금쟁이 아이요?”
텔레비전 뉴스에 동사무소 뜰이 보이고 허름한 사과박스가 화면에 나타났다. 동사무소 직원이란 사람이 몇 마디 했다.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입니다. 새벽에 몰래 가져다 놓았는데요, 우리 동리 가난한 분들에게 전해달라는 쪽지가 있었을 뿐입니다. 소금쟁이가 누군지, 어느 분이 보냈는지 전연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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