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창암에 있는 망우정에 가다.
망우정 건물은 6.25때 불에 타 재건했지만 그 뒤에 선
<곽망우당유허비>가 오래된 기념물로 기억될 비석이다.
이 비의 비문은 해고 이광정(李光庭) 선생이 쓴 것으로
"文, 武, 儒, 仙"으로 칭한 것은 과연 정당한 평이라고 하며
곽망우당 선생의 생애를 잘 나타낸 글로 알려져 있다.
오른쪽 비각안에 있는 비가 오래된 유허비다. 왼쪽은 이광정의 옛 비문을 새로 새겨 1991년 세운 비석이다.
충익공망우곽선생 유허비
<축산군지>(1934년 간, 영산현지의 증보판)의 이사(異事)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곽망우당유허비 - 곽망우당의 유허비가 요강원의 대위에 있으니, 수 십년전에는 조각조각 금이 났더니,
이 몇 년에 와서는 점차 그것이 붙어지고 합해져서 완전한 한 몸이 된 흔적이 있으며 그곳은 은도금의 상으로 이어져 있다.
이는 가히 과이한 것이로다. (현 도천면 우강리) (창녕군지,1984년간 p730)
<창녕군지명사>(1992년간, p919) 에는 이 비석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 유허비는 한일합방 뒤에 어느 왜인이 임진란의 치욕을 말살하려 비석을 깨트렸는데 비석이 넘어지자
뇌성벽력이 쳐 왜인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쳐 버렸다. 그 후 그는 혼백이 떠나 죽었다 한다.
여러 동강이가 난 비석을 마을 청년들이 그냥 위에 올려다 놓았는데 여러 해 뒤에 보니 저절로 붙어 있었다 한다."
1602년 곽망우 선생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창녕 남지 용산에 사셨던 선비 간송 조임도 선생이 지은 여현정 기문
곽망우당이 이 정자를 드나들던 이곳 선비 모재 이도순(李道淳)에게 물려 주었는데
이도순은 정한강 문인으로 문장필법이 뛰어 났으며 선생의 외손서이기도 하다.
어진 선비에게 물려 준다는 망우당의 말에 따라 간송 선생이
<여현정>으로 당호를 바꾸라 권한다고 이 기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도순은 후에 남지읍 마산리에 사셨다.
최근 세운 유허비
동쪽에서 바라본 망우정 - 바로 앞에 푸픈 강물이 보인다.
푸른 대밭 사이 언덕에 보이는 기왓집이 망우정이다.
망우정에서 바라본 남지읍 원경
왼편(복서쪽)에 있는 송강(지금은 계성천이라 불린다)이 흐르는 쇠나리(우강과 송진마을 사이)들은
영산을 점령한 왜군을 물리치기 위한 홍의장군의 전초기지로 사용되었는데
망우정 동남쪽 성담산에는 우강산성이 축조되어 있으며
이곳 개펄과 숲이 우거진 들판에서 큰 전투를 벌려 많은 왜병을 몰살하였다고 전해온다.
이곳 북쪽 들판 가운데 장군이 타고 다니던 말이 죽자 묻었다는 "말무덤"이란 독뫼가 전해온다.
(2019. 2. 11 도천면 우강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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