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조왕사 신돈 이야기(3)
제3장 편조, 아버지 신원경을 만나다(1)
* 괴질 유행과 편조
성 부자가 다녀간 지 얼마 지나 않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계성현의 호장과 영산현의 현감이 일미암을 찾아왔다. 호장이 진묵대사를 만나자마자 큰일 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계성 영산 고을에 괴질이 번져 사람들이 막 죽어 나가고 있소. 우리 지금 관룡사와 옥천사를 들러 왔는데 일미암에서도 괴질 병구완을 할 스님을 보내주시오.”
사찰에는 보통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승이라 불리는 의원들이 있었다. 또 그 당시에는 고을에서 유행병이 돌아 사람이 많이 죽는 참사가 일어나면 현감이나 호장은 절에 와서 도와주기를 청하는데 반쯤은 강요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거절을 할 수 없어 현감의 말대로 임미암에서도 스님을 보내야 했다. 스님들은 괴질이 도는 마을을 다니며 나졸들과 함께 전염될 위험을 무릅쓰고 방역에 힘을 써야 했다. 스님들은 의원을 도와 병자에게 약을 먹이거나 병자를 한 곳으로 격리하기 위해 옮겨 병구완하거나 환자가 죽으면 빈소에서 목탁을 두드리고 독경을 하며 명복을 빌고 시체를 매장하기도 했다.
괴질 유행에 대처하기 위해 영산으로 간 일미암의 편조와 벽송은 옥천사와 보림사 스님들과 함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었다. 다들 젊은 스님들이라 힘이 있어 나졸들과 함께 시신을 거적에 둘둘 말아 운구하기도 하고 구덩이를 파고 매장하는 일도 해야 했다.
사체를 만지다 괴질에 전염될까 꺼리는 스님들이 있었으나 편조는 기꺼이 앞장서서 다들 싫어하는 일을 했다. 중생을 구제하고 죽은 이의 천도(薦度)를 빌고자 성심을 다했다. 자연히 헌신적인 편조를 칭찬하였는데 멀찍이 겁을 먹고 떨어져 구경만 하던 양반들은 오히려 그를 천한 일을 하는 매골승(埋骨僧)이라 지칭했다.
뒷날 편조가 공민왕과 함께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였을 때 글깨나 읽은 유생들이,
“편조란 중은 아주 천한 종놈 출신으로 가장 하층의 궂은일을 하던 매골승이었다네.”
하고 깎아내리고 천하디 천한 일을 하던 자라고 흉을 보았다.
이달충이 지은 시 <신돈>에 처음에 매골승이었다고 세주(細註) 형태로 달아 놓았다.(제정집 권1 신돈) 후에 정몽주의 시에도 언급됐다.
이 일은 “신돈이 어렸을 때부터 궂은일에 종사해 온갖 쓴맛을 보며 성장했다고 보인다.”고 연구 논문에 밝혀져 있다. (학술대회 자료집 p2 김창현 고려대 교수)
승려는 출가한 후 수행하면서 병행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절에 다니던 불자가 죽으면 당연히 스님이 상가에 가서 장례 절차를 주도하고 빈소에서 독경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위로하며 명복을 빌었다. 그런 직분을 맡은 스님을 매골승이라 했다. 편조가 매골승이었다고 매도하는 양반들의 편협성을 지적하고 싶다.
영산의 괴질 방역을 위해 떠났던 승려들이 괴질이 잠잠해지자 자기 절로 다들 돌아가자 편조와 벽송도 일미암으로 돌아왔다.
청룡암을 찾으면 편조에게 반야심경의 진수를 가르치며 깨우치기를 바라던 할배 스님이라 부르던 송허선사가 입적하신 겨울, 입춘이 내일모레 앞둔 날 밤새 폭설이 내렸다.
일미암 마당에 무릎이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다.
편조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허벅지까지 쌓인 눈길을 해치고 용개등 너럭바위로 가서 가부좌하고 반야심경부터 독송 예불하기 시작하여 수련에 들어갔다. 전과 다름없이 홑옷 가사를 입었어도 그의 몸에서 번진 열기와 약샘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김으로 너럭바위 주위의 눈이 차츰 녹아 처음에는 조금 추었으나 곧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벽계 스님이 아침 일찍 영산에서 눈길을 걸어 사람이 찾아왔다는 소리를 하며 큰스님께서 오라 한다는 전갈에 편조는 은사의 선방으로 갔다. 선방 밖에는 영산에서 왔다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섰다가 편조를 보고 공손히 합장하였다. 방에 들어가자 진묵 대사가 무겁게 일을 열었다.
“어릴 적에 네가 청룡암 송허 선사에게 도망간 적이 있었지?”
“난데없이 그 일을 왜 꺼냅니까?”
“그때 노스님이 너를 한 이불 속에 재워주고 신돈이라 속성도 이름도 지어주시고 평생 반야심경을 네 불심의 바탕으로 삼아 득도하라고 하셨지?”
진묵대사가 갑자기 송허선사와 어린 편조 사이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그는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학자 한 분을 만나 절을 사배나 올린 적이 있었지?”
“아, 예! 할배 스님이 그렇게 시켜 네 번이나 그 어른께 절을 올린 적이 있지요.”
“그 절의 뜻을 이제 말하노라. 사 배는 곧 네 조상님께 올리는 절이 두 번이요 부친과 너를 낳으신 모친께 올리는 절이었느니라. 그 어른이 네 부친이다.”
펀조는 스승님의 말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 정신이 갑자기 흐려지고 뭐라 할 말을 잊었다.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아버지라니! 충격이 컸다. 청룡암에서 만난 그분이 그의 아버지라는 얘기에.
“영산에서 대감댁 집사가 급한 전갈을 가져왔구나. 네 부친 초재 신원경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하는구나. 너를 보고 싶다니 곧 달려가서 부친을 마지막으로 만나지 않겠느냐? 중이 세속의 인연을 끊었다지만 부모의 임종을 지키는 것이 효도니라. 당장 축담에 서 있는 사람을 따라가거라.”
편조와 벽계는 더 묻지를 못하고 노스님의 말을 경청하고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승이 말을 이었다.
“그렇느니라. 내가 탁발을 나갔다가 영산에서 명문가인 초당(草堂) 신혁(辛革)이란 대감댁에서 어린 너를 만났지. 초당은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찬성사 벼슬을 지낸 분인데 시주를 권하러 그 댁을 찾아갔었지. 마침 대문간에 두어 살 되어 보이는 아이를 만났지 뭐냐?”
<창녕신문> 2022년 6월 14일자 연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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