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2장 일미사와 신돈(4)
* 비슬산 남쪽 일미사(一味寺)
편조의 은사이자 노스님 진묵(眞默)대사가 옥천사 주지 자리를 청송(淸松)대사에게 물려주고 난 다음 기거했던 암자가 바로 일미암이었다.
스님 편조가 노스님 진묵대사가 옥천사에서 물러나 암자에서 수행하기를 원할 때 선뜻 나서서 조성한 당우가 바로 일미암이었다. 그는 은사를 극진히 시봉(侍奉)했다.
편조 스님의 안내를 받아 진묵대사와 주지 청송대사가 사리에 와서 산세를 보고는,
“여기는 양달이라 원기가 응축돼 왕성한 곳이고 건너편 골짜기는 응달이라 음양의 화합으로 자손의 생산과 풍년이 들 길지임에 틀림없구나.”
하고 진묵대사가 말하자 청송대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올시다. 이곳은 지기(地氣:양기)가 너무 왕성해서 걱정입니다.”
원기란 만물 성장의 근본이 되는 정기를 말한다. 그때 사리에 사는 사람이 불쑥 두 노스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곳에서는 황새처럼 툭 불거진 저 황새등을 우뚝 선 사내 물건 같다고 용개등(龍豈嶝)이라 부르고 골 건너편 응달 골짜기는 옥문(玉門)처럼 생겼다고 십새골(十間谷)라 부르지요.”
그러자 진묵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명지로군. 용개등 십새골이라 불리니 음양의 조화를 이루었어, 청송화상 말 그대로 원기가 왕성한 곳이니 자손도 번성하고 풍년이 들 길지야. 청송! 걱정 마시게. 지맥을 살펴 불미한 일이 없도록 처방하도록 하지.”
암자를 지을 터가 결정되자 땅 주인을 찾아 팔라고 청을 넣었다. 그러나 땅 주인은 편조의 청을 딱 잘라 거절하였다. 편조가 기골이 장대하고 네모진 턱에 눈썹은 꺼멓고 턱수염은 밤송이처럼 빳빳하고 부리부리한 눈이라 험상궂고 겁나 보일 텐데도 땅 주인은 한사코 거절했다. 곱상한 생김새는 아니었지만 옥천사 스님이라니 행패를 부리지 못할 것이라 만만하게 여긴 모양이었다.
여러 말로 설득이 되지 않자 편조는 계성현의 호장(戶長)을 찾아갔다.
고려조에는 지방의 큰 현이나 군에는 중앙에서 내려온 현감이나 현령이 있었지만 계성현 같은 작은 현에는 그 지역의 대지주나 유력문중의 수장이 호장을 맡아 권세를 부리고 있었다.
편조의 이야기를 들은 호장이 당장 신당에 사는 땅 주인을 불러 설득하자 팔기로 허락했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마을에 떠돌았다. 스님이 이상한 술법을 부려 암자를 지을 적지라고 호장을 설득했다는 얘기였다.
옥천사 스님 편조가 콩 한 말을 남몰래 용개등 밭고랑 이곳저곳에 묻어놓고 그것이 발아해 돋아날 때쯤 호장을 찾아가 지세가 좋은 절터가 있는 데 가서 보고 좋으면 땅임자를 설득해 달라 청을 넣었다고 했다. 과연 호장이 황새등 아래 와서 보니 지기가 왕성하여 땅 이곳저곳이 움틀움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호장님이 이 터에 절을 짓도록 해 주면 반드시 발복할 것입니다.”
하고 스님이 말하자 당장 땅임자와 동리 사람들을 불러모아 암자를 짓도록 권하고 주선하였다고 전해온다. 아마 암자가 들어서는 걸 은근히 싫어했던 선비들 사이에 퍼진 이야기라 여겨진다. (창녕군지명사 p706, 계성면 일미사터)
황새등 남쪽 용개등 아래 넓게 터를 닦아 진묵대사가 머물 당우를 짓는 일은 편조의 주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절이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땅임자나 인근의 유생들도 더 군말하지 않았다. 편조가 계성 영산에서 행세를 하는 부자들과 동리 사람들을 자주 만나서 불심으로 살아야 복을 받으리라 보시와 권선했기 때문이었다. 또 자기가 의술을 도암 의승에게 배워서 동리 사람이 병들면 돈도 받지 않고 고쳐주겠노라고 장담을 했다. 큰 덩치에 험악한 인상의 편조의 권선에 사람들이 처음에는 겁내고 멀리했으나 선입견과 달리 온순하고 부드러운 언설에 많은 사람들이 설복당했다. 그래서 처음과는 달리 당우 건립에 소용되는 자재나 곡식과 돈을 시주하는 이가 점점 늘어나 옥천사에서 나오는 경비와 함께 합치니 번듯한 암자를 지을 수 있었다.
규모가 작으나 암자는 갖출 것은 다 갖춘 불당과 진묵대사의 선방과 스님들이나 불자들이 머물 방이 여러 칸짜리 요사채(寮舍寨)와 헛간이나 공양간도 갖추었다. 또 진묵대사의 가르침으로 절터에 충만한 양기를 억누르고 앞으로 있을 불상사를 막기 위해 요지에 탑을 세우고 석등을 배치해서 지기를 눌렀다.
“너도 이제 수도 정진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암자가 다 지어졌으니 이때껏 경을 읽거나 배우는 것을 소홀히 했다만 지금부터 더욱 열심히 마음을 가다듬고 매진해야 할 것이다.”
암자 건립의 모든 일이 이루어져 제자리를 잡자 진묵대사는 편조를 불러 이제는 수도 정진하라고 명했다.
“내가 처음 살폈던 것 마찬가지로 이곳 지기가, 원기가 왕성한지라 네가 이를 잘 받아들여 득도에 힘써야 하느니! 그래서 네가 자리 잡고 수도 정진할 장소를 살폈더니 용개등 바로 아래 약물터가 있잖느냐?”
“예! 청석 아래에 저절로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는데 피부병에 특효라 소문이 났지요. 그래서 환자들이 찾아오곤 했다고 하지요.”
“바로 그곳 너럭바위가 너와 인연이 깊구나. 인시(寅時)에 일어나 그곳 너럭바위 위에 올라가 예불하고 좌선하며 경을 읽고 주위의 원기를 네 마음에 받아들여 충만하게 해라.”
벽송이나 벽계 스님은 행자에서 이제 막 수계를 받아 일미암으로 와 있었다. 편조는 진묵대사의 원기를 움직이는 법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에 들어갔다. 장생술에는 명상법과 호흡법, 도인(안마법), 식이법과 복약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편조가 수련한 것은 복기(腹氣) 조식(調息)으로 호흡을 조절하여 원기를 상승시키는 양생술(養生術)이었다.
“새벽 예불도 벽송이나 벽계에게 맡기고 너는 곧장 너럭바위로 가거라.”
“스승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창녕신문> 2022년 5월 15일자 연재분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3) (0) | 2022.06.20 |
---|---|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2장 일미사와 신돈(5) (0) | 2022.05.27 |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일미사와 신돈(3) (0) | 2022.05.02 |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일미사와 신돈(2) (0) | 2022.04.15 |
제2장 일미사와 신돈(1) (0) | 2022.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