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일미사와 신돈(1회)
<창녕신문>(2022. 3.29)에 김현우의 소설 <편조왕사 신돈> 4번째 이야기가 연재되었다.
* 옥천사에서 자란 신돈
* 옥천사에서 자란 신돈
<고려사> “권132, 열전45,” 신돈에 대해서 첫머리에,
”신돈은……어려서 스님이 되어 이름을 편조(遍照), 자(字)를 요공(耀空)이라 했는데…….
(辛旽,……. 幼爲僧, 名遍照, 字耀空)
이라 기록되어 있다. 진실이 뭔지 한 걸음을 그 진실 속으로 다가가 보자.
옥천사의 진묵 스님은 젊었을 때부터 자주 탁발을 나가곤 했다. 나중에는 옥천사 주지가 되기도 하였는데 권선(勸善)하기에 열성이었던 스님이었다.
산 아래 여러 마을을 권선하며 돌아다녔는데 불교의 진리를 전하기도 하고 부잣집을 만나면 절에 시주하기를 권하기도 했다. 또 그에게는 그것이 깨달음을 얻는 수행(修行)이라 누가 탁발승이라 낮추어 비웃어도 변함이 없었다.
스님이 절을 나가 달포 만에 돌아올 때면 거지로 방황하는 고아나 흉년이나 기근으로 떠돌며 비럭질하는 의지할 곳 없는 여인들을 데리고 오곤 했다. 그렇게 데리고 온 여인들은 절간의 일을 시켜 굶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구제했다. 그러다 혼인을 하게도 하고 보살로 늙거나 비구니로 되기도 했다.
진묵 스님이 어딘가에서 부모와 집을 잃고 떠도는 두, 세 살쯤 되는 어린아이를 데려와 하일(夏日)이라 부르며 동자승으로 키웠는데 그 아이가 바로 편조 스님이었다.
진묵 스님은 데려온 고아들에게 앞으로 스님으로 장성하도록 글도 가르치고 절의 잡일을 시키기며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글공부에 소질이 없어 스님 재목이 되지 못할 아이들은 세상에 나가 자립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치거나 생존훈련을 시켰고 총기가 있고 심성이 바른 아이들은 스님으로 성장하도록 항상 엄하고 모질게 단련하고 훈육하고 있었다.
진묵 스님이 데려온 부녀자나 고아들이 많이 절에 의탁해 살고 있었는데 여인네들이나 아이들은 결코 절의 종이 아니었다. 다만 근거가 불분명하므로 양반들에게는 종이나 천민처럼 취급당하기도 했다.
스님의 가르침으로 옥천사의 동자승으로 자라는 아이들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고아들은 차차 자라서 스님이 되었고 그렇지 않은 자는 절을 떠나기도 하였다. 또 공양간에서 일하는 여인 중 비구니가 되기를 원하면 옥천사의 암자인 극락암으로 보내 여생을 수도하도록 했다.
진묵 스님은 하일에게 다른 아이들처럼 탁발을 나갔다가 어느 날 부모를 잃은 두 살쯤 되는 코흘리개를 길에서 만나 데리고 왔다고만 했지 나이나 사주(四柱)도 모른다 하고 처음 만났던 곳이 어떤 마을이었는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아이를 절에서 돌보라며 박소새라는 여인에게 맡겼는데 그녀도 하일과 같은 날에 절로 데려온 아낙네였다. 요사채 한 방에 여럿이 사는 다른 고아들과 달리 진묵 스님은 방 한 칸을 따로 마련해서 하일과 박소새를 모자간처럼 함께 지내게 한 것이 특별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둘을 같은 날에 같은 동리에서 데려온 인연이라서 그렇다고들 말했다. 하여간 특별한 진묵 스님의 조처여서 이상한 일들이라 숙덕거리기도 했다.
박소새는 하일을 아들처럼 키우라는 진묵 스님의 당부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하일을 제가 낳은 아이라고 말했고 그 바람에 하일도 자라면서 박소새를 어머니라 당연하게 생각했다. 박소새는 하일이 자라서 스님으로 출가하게 되자 그녀도 절을 나가 목수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주위에서 그냥 가만히 하일을 두지 않고 괴롭히거나 조롱하는 일이 종종 있어 조금 나이가 들자 박씨가 친어미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하일이 열 살 전후 어렸을 때, 서불(西火- 영산의 옛 지명)에 있는 절에서 멀고 먼 서역(西域-인도)에서 온 고승 지공(指空) 선사가 반야경 설법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호승(胡僧) 지공 선사께서 2년 전 왕경(개경)에 와서 감로사, 금강산, 숭수사에 머물며 문수사리무생계를 주며 설법을 하시다가 드디어 영축산 보림사에 오셨다는구나. 합포(마산)만호 김륜(金倫)이라는 사람이 보림사에다 반야루(般若樓)를 급히 짓고 반야경을 강론한다니 너희들도 함께 가자꾸나.”
진묵 스님은 옥천사와 관룡사 스님들이 보림사에 간다는 말에 그가 가르치고 있던 동자승과 행자승들을 모두 데리고 서불로 갔다. 그때가 충숙왕 13년(1326) 5월부터 15년 6월 사이였다.
십여 년 후 알게 된 사실인데,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이란 유명한 게송(偈頌) 시의 지은이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공민왕의 스승인 혜근나옹(慧勤懶翁)선사(1320 ~ 1376)도 어려서 그 어머니와 함께 반야루에 와서 지공의 강론을 들었다고 한다.
나옹선사의 아버지 아서구(牙瑞具)의 고향이 경북 영덕이었으나 장가를 영산으로 와서 그 당시 풍습대로 처가살이를 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세금을 내지 못해 관가에 아서구가 끌려가자 만삭의 부인 정씨가 따라가다가 길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바로 그 아이가 나옹이니 아명은 원혜(元惠)이고 승명은 혜근이다.
영산 외가에서 태어나서 자란 혜근이었으니 지공의 설법을 듣고 큰 감동을 하였을 것이다. 훗날 편조와 혜근은 서로 만나서 나이도 비슷하고 영산이 고향임을 알고 나서 그들은 어릴 때 감화를 받은 지공을 찾아 가르침을 받으려고 동행하여 1347년(충목왕 3) 원나라의 연경(북경)으로 간다.
그때 편조도 진묵 스님을 따라가 서역승 지공의 반야경 강론을 들으니 알아듣고 이해하는 부분도 있고 간혹 무슨 뜻인지 모를 설법도 있었지만 지공 선사의 높고 큰 설법에 큰 감동을 받았다. 지공 선사의 사상과 핵심은 반야경과 문수보살의 중시였는데 후일 신돈의 사상과 신앙의 핵심도 그와 같았다. 주) : 학술대회 발표자료집(김창현 교수)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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