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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시와 동시

고추잠자리

by 남전 南田 2008. 8. 1.

동화

고추잠자리

김 현 우

 

아버지께서 아침부터 걱정이셨다. 할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거, 큰일 났네. 어디 나가셨나? 새벽부터……. ”

“이웃집에 놀러 가셨겠지요.”

미순이가 걱정하는 아버지를 안심시키려 했다. 할아버지는 곧잘 새벽 일찍 일어나서 논으로 일하러 가시곤 했으니까. 지난여름 방학 때 미순이는 할아버지 집에서 지낸 적이 있어 잘 안다.

“꼭두새벽에 이웃에 놀러 가셔? 그럴 리가 없어. 아침에 이웃에 가시면 폐를 끼친다고 가시지 않았어요.”

“그럼 아침 산보라도 가셨겠지요. 혼자 사시니까 좀 심심하시겠어요? 또 나이 많은 노인이시니까 새벽잠도 없을 테고. 그러니까 일찍 일어 나셔서 들길을 걸어 다니시는지도 몰라요.”

“어허! 쌀쌀한 가을 날씨에 감기라도 드시면 어쩔려구 산보를 나가셔? 아니야!”

아버지와 어머니는 할아버지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고향 마을에 혼자 사신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사셨다. 아들딸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모두 직장을 따라 도시로 다 나가고 늙은 내외분만 시골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할머니께서 돌아 가셨다. 혼자가 되신 할아버지를 아버지는 우리가 사는 집으로 모셔와 함께 살자고 했다.

“아버지, 함께 살아요. 이젠 어머니께서 안계시니 어째요? 혼자서 노인이 밥을 해 먹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사실 수 없을 테니.”

“아니! 나 혼자 살 수 있다.”

아버지의 말에 할아버지는 한마디로 거절해 버리셨다. 어머니도 시골에서 혼자 사실 수 없다고 말하고 작은 아버지 내외도 또 고모 내외도 거들었지만 할아버지의 고집은 막무가내였다.

“아버님 그러셔요. 저희가 고향으로 돌아 와 아버님을 모시고 살 수 없으니 저희들과 가셔서 편안히 사시면 좋지 않겠어요?”

“그냥 이곳 평촌에서 사는 게 백 번 났지. 여기는 친구도 많고 소일꺼리도 많지만 어디 도시에서는 그렇겠냐? 낯선 곳에 가 봐라. 말벗도 없고 하루 종일 뭘 하고 산단 말이냐? 공원에 나가 우두커니 앉아 지나다니는 차들만 구경하란 말이냐? 나는 안 간다.”

“왜 그렇게만 생각하세요? 극장에도 공원에도 가시구, 또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 노인정도 있어요. 아래층에는 할머니들이, 2층에는 할아버지들이 모이는데 참 재미있게들 지내요.”

“나도 그런 얘기는 들었다만……. 그걸 곳에는 돈이 없이는 못 간다하더라. 내기 장기 아니면 바둑을 두거나 화투짝들을 만지는 모양이던데…….”

“저희가 아버지 용돈을 충분히 드릴 테니 용돈 걱정은 아예 마세요.”

“어찌든 내가 태어나서 자라고 칠십 몇 년을 살아 온 이 마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기 싫어.”

할아버지는 고집이 대단했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 큰 기와집에서 혼자 사신다. 혼자서 밥도 해 드시고 빨래도 한다. 유난히 지난여름에는 비가 자주 와서 마당에 풀이 잘도 자랐다. 그래서 미순이도 할아버지를 따라 마당의 풀을 뽑곤 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방도 쓸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집은 쓸쓸하고 조용했다.

“안 되겠다. 미순아 할아버지께 가 보자. 빨리 당신은 반찬 만들어 줘. 노인이 먹을 거니까 야문 것은 안 돼.”

부랴부랴 어머니는 반찬을 장만했다. 할아버지께 드릴 반찬을 만들어 어머니는 시골에 자주 가시곤 했다. 미순이는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 갔다. 할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추나무에서 빨갛게 익은 대추를 따고 계셨다.

“아이구! 미순이 왔구나. 이 맛있는 대추를 보내 주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미순이를 데리고 할머니 산소를 갔다. 들길을 가자니 도랑가로 무언가 날고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아니 여러 수 십 수 백 마리가 파아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빨간 대추가 날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게 뭐예요?”

“아아! 고추잠자리구나. 올해는 유난히 고추잠자리가 많아졌어. 물이 맑아졌기 때문인가?”

할아버지는 그러면서 미순에게 슬쩍 귀띔했다.

“사람이 죽으면 고추잠자리가 된단다. 착한 사람이 죽으면 고추잠자리가 수 천 마리가 태어난다고 하더구나.”

“그럼 우리 할머니도 착한 분이었던가 봐.”

미순이는 할머니의 넋을 바라보듯 무리지어 날고 춤추는 고추잠자리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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