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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

6.25전쟁 사진 몇 장

by 남전 南田 2009. 6. 25.

본인에게 온 메일 중에 6.25 참상을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그 중 고향 남지와 현재 거주지 마산 등 관련이 있을 듯한, 또 6월 25일 맞이하여 그 지긋지긋하던 피란생활을 회상하며 사진 몇 장을 올립니다. - 남전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사진들입니다.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 원문을 따랐고,

사진 설명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가다듬었습니다.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자료로 남기를 바랍니다.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필자 주>

 

▲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피아간 큰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2004 NARA

 

 

▲ 1950. 8. 18. 낙동강 전선에서 쌕쌕들이 폭격을 가하고 있다.ⓒ2004 NARA

강 모양을 살펴보니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지점인 남지읍 용산리 창나루 같다. 이곳은 유엔군과 도하하려는 인민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남전)

 

 

▲ 1950. 8. 25. 폭격에 불타고 기총소사에 죽어가다ⓒ2004 NARA

이때 피난을 도천면 쪽으로 간 사람들은 도천 논리 들판에서 이런 참사를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콩밭 이쪽 고랑에 엎드린 사람은 살고 저쪽 고랑에 엎드렸던 사람은 죽었다. 생사의 기로가 콩밭 고랑하나 차이라니! 전쟁은 역시 없어져야 할 것이다.(남전)

 

▲ 1950. 8. 15. 마산 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2004 NARA

 

▲ 1950. 8. 1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마을ⓒ2004 NARA

피란을 갔다가 돌아와보니 우리 집도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그해 겨울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남아 있는 구들장 위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남전)

 

 

 

아래 글은 사진을 수집하고 글을 쓴 필자 박도 씨의 글과 그 분의 프로필입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시고 애독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께 깊이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제가 NARA에 갈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권중희 선생님, 그리고 사진 자료를 입수하는데 도와주신 재미동포 자원봉사자 여러분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 곁에서 원문을 번역해 주신 박유종 선생님, 길잡이가 되신 이도영 박사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스캐너를 빌려준 동포 주태상씨 그리고 이선옥씨, 권헌열씨, 정희수씨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기에 이 자료를 독자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입수한 사진 자료는 모두 480여 매이나 그중에서 중복되거나 비슷한 것, 그리고 사진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제외한 자료를 30회에 걸쳐 모두 공개하였습니다.

박도 기자는 서울에서 33년간의 교단 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강원도 산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민족문학작가회 회원으로 작품집에는 장편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 와 산문집 <샘물 같은 사람> <아버지의 목소리> <일본기행> 항일유적답사기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한국전쟁 사진첩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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