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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

쉼 없는 이야기의 원천을 찾다

by 남전 南田 2009. 12. 17.

아래 글은 계간지 "경남문학"(2009.겨울호 89호)에 실린 홍혜미 문학평론가의 <지난 계절의 작품 다시 읽기> 특집 본인의 졸작 단편소설 <이별 없는 날>의 평으로 전재한다.

 

쉼 없는 이야기의 원천을 찾다

 

                                                                                             홍혜미 * 평론가, 경남문학 편집위원

 

 

 

 

김현우의 <이별 없는 날>은 2008년 여름호에 실린 <황혼>에 이은 두 번째 노인들의 이야기다. <이별 없는 날>은 비둘기만 한가롭게 노닐던 역 광장을 무위(無爲)의 군단이 점령한 반나절 동안의 풍경을 풀어낸다. 그 주인공은 할 일도 갈 곳도 먹을 것도 없는 노인들이다.

박영감은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생활하며 장기판과 자전거를 친구삼아 역 광장을 찾는다. 젊은 시절 여성 편력을 자랑하며 너스레를 떠는 최노인은 그의 과거지사를 참고하여 일명 하이에나 최라 불린다. 최주사는 한때 시청과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인텔리다. 그는 공무원이었다는 이력 때문에 무위의 군단을 위해 마련한 무료 급식소조차 찾아가지 못한다. 이들은 비둘기를 밀어낸 역 광장에서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늘어놓거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간을 되뇌면서 현재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존하기 위한 최소의 비용마저 힘에 겨운 이들은 역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점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큰 행운으로 여긴다. 이것은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무료급식소 이용이라는 참담하지만 현실인 노인생활의 단면을 짐작할 수 있다.

하이에나 최는 아직도 여성과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 그의 눈에는 쉰 살 가까운 여성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역 광장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노인들은 성 자체에 관심 없는 것이 아니라 성에 대한 두려움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성적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하이에나 최는 그들 중 가장 경제적 사정이 좋은 신사장에게 불쌍한 여인들을 먹고 살게 한다는 뜻으로 관심을 가져 볼 것을 넌지시 권한다. 이 부분은 은밀하게 감추어진 노인들의 성 문제를 단편적으로 다루고 있다. 노인의 성문제는 사회적 관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살아 있는 존재의 욕망을 드러내는 방법이고 자연스런 생물학적 현상이기 때문에 외면하거나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노인의 날(9월 25일)을 맞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개최한 ‘노인의 성 건강 증진’세미나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노인 성문제와 이성교제에 관한 상담이 68%를 넘어 선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들의 생활은 젊은 날의 화려함도 열정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겹게 부딪쳐야하고 늙은이에 대한 사회의 곱지 않는 시선과도 싸워야한다. 그리고 몸은 늙었지만 젊은 날과 같은 성(性)에 대한 식지 않는 욕망도 있다. 노인들을 둘러싼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와는 달리 이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내일도 오늘과 같은 얼굴로 다시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삶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노인들에게는 비루하지만 힘겨운 상황과 겨루어 살아남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위(無爲)의 군단들은 역 광장을 찾는 노인들 중에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신사장이 마련한 삼겹살 파티에서 “내일, 또 보세!”를 외친다. 내일의 만남을 약속하는 것은 내일까지 건강한 삶을 산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이별 없는 날을 의미한다.

소설의 다양한 특성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물들의 갈등이다. 하지만 <이별 없는 날>은 인물의 심각한 갈등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짧은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조용한 광장에서 서부 활극을 구경할 만한 사건이 생겼다. 그것은 김기사와 공가의 몸싸움이다. 김기사는 개인택시를 하다 성질이 고약해 그만 두고 지금은 아내에게 의탁해 살아가고 있으며, 공가는 식당을 경영하는 아내 덕에 삶을 유지하고 젊은 날의 추억을 허풍 삼아 떠드는 인물이다. 이들은 어제 10원짜리 화투판을 벌리다 빌린 돈 2000원에 대한 시비가 몸싸움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들의 몸싸움은 김기사가 넘어져 병원으로 가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역 광장은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젊은 날의 치기로 몸싸움까지 벌인 이들 역시 과거의 화려함을 잊을 수 없는 늙은이들이다.

서술자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역 광장에 흘러나온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을 뿐이다. 마치 박태원이 마을의 중심에 흐르는 개천 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처럼 갈등은 없다. 이런 글쓰기는 서술자의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으며 몇 인물을 중심으로 집약된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인물 군상을 살펴볼 수 있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보다 강력한 스토리텔링이나 구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긴장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김현우의 <이별 없는 날>은 노인들이 직면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지난 여름호(2008)의 <황혼>에서는 노인의 건강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이별 없는 날>은 노인의 경제적 문제와 성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작가가 하나의 테마를 발견한다는 것은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원류를 찾는 것과 같다. 김현우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살피고 분석해야하는 테마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읽은 것 같다. 앞으로 그가 펼치는 이야기들은 노인들의 문제를 지금보다 깊이 있게 접근하거나 아직 다루지 않은 ‘죽음’에 관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가 이야기에 대한 쉼 없는 열정으로 노인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순간을 기대해 본다. ***

 

필자 소개

 

홍혜미

 

-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 대학강사

 

- 2000년 [경남문학] 평론<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등단

 

- 한국문인협회, 경남문인협회 회원- 진해문인협회 회원

 

- 2000년 [경남문학] 평론부분 신인상 당선

 

- 저서 2005년 [북한 소설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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