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문학 2011 봄호에 나의(김현우) 졸작 단편소설 「며느리모시기」(경남문학 2010 겨울호에 발표)에 대한
윤애경 문학평론가의 계절평이 실렸다.
졸작을 꼼꼼하게 읽고 호평을 해준 윤애경 평론가에 감사를 드리며
그 내용을 복사하여 올려 놓는다.
│지난 계절의 작품 다시 읽기●소설│
며느리 모시기
윤애경●평론가·본지 편집위원
문학은 시대와 사회의 산물이다. 그 이유는 문학이라는 것이 진공상태의 고립된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삶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사회를 반영하면서도 날것으로가 아닌 장르 자체의 형상화 과정을 통해 문학적 진실을 추구하게 된다. 바로 이 점들이 우리가 문학 작품을 대할 때 상기하게 되는 일반론적 특성이다.
지난 호에 실린 단편을 읽으면서 떠올리게 되는 필자의 몇몇 단상들도 문학의 가장 원론적인 관점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김현우의 <며느리 모시기>는 ‘백덕조’라는 한 제빵업을 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아들 장가보내기’에 얽힌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풍자적으로 담아낸 단편이다.
이 작품은 현실세태를 풍자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두 가지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백덕조의 사업 확장의 실패이다. 제법 견실한 제과점을 운영하던 백덕조는 제대로 된 제빵공장을 세우기 위해 식품제조업법에 맞춰 해당 관청의 허가를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 절차나 서류, 구비시설이 너무나 복잡하고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관리들의 뿌리 깊은 타성으로 인해 그의 꿈을 접게 된 것이다. 자연히 그는 무리하게 투자했지만 허가도 받지 못한 빵공장으로 불법영업을 하기에 이른다. 타성에 젖은 관리들의 세상과 터무니없이 높은 법의 문턱 때문에 빚어진 한 평범한 상인의 불법 행각은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 할지라도 독자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백덕조와 같지는 않지만 관공서의 문턱 앞에서 누구나 한두 번쯤 낭패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불법 제빵공장 문을 닫고 큰아들 상태에게 상권 지역에 제과점을 차려준다. 얼마 후 상태는 작은 제과점을 접고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충북의 한 산업공단 근처로 가게를 옮기고 빵집도 요새 인기 좋은 체인점으로 계약해 장사해 보고자 하는 구상을 아버지에게 전하고, 백덕조 역시 큰아들의 구상에 동의한다. 요즘 세상은 체인점이란 간판이 붙어야 제대로 영업이 되는 판인지라 빵 자체의 맛으로 승부를 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빵을 만드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백덕조라는 인물도 요지경 같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의 빵에 이미지라는 허상을 덧입히게 되는 모습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면서도 어쩔 수 없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한다. 그러나 이런 단면들은 백덕조나 그의 아들 상태 개개인의 가치판단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의 한 부분이다. 그것은 대중들이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전도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나아가 이제 상품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후기 산업사회의 전형적인 한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의 노총각 아들의 국제결혼 진행에 관련된 사건들이다. 큰아들의 살림을 내주는 것으로 사업정리가 된 후 백덕조의 고민은 둘째 아들 상호의 결혼 문제로 집중된다. 그러던 차 주변 지인으로부터 국제결혼을 권유받게 되고, 인륜지대사인 혼사는 당사자들의 신중한 만남과 감정의 결실 없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그의 막내 며느리 들이기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그가 국제결혼이라는 말에서 떠올린 불미스러운 소문들을 그대로 겪게 되면서 며느리 들이기는 그야말로 며느리 모시기의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어쨌든 두어 번의 우여곡절 끝에 그는 며느리를 맞게 되고 그가 가슴앓이를 했던 만큼 그 기쁨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온 친지들에게 대단한 자랑을 하며 경사를 알리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될 정도로 국제결혼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이 되었지만 이로 인해 야기되는 병폐들은 적지 않다. 다문화사회를 이루고 살면서도 그러한 가치에 배치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세태들이 백덕조의 007작전과 흡사한 아들 장가보내기에서 풍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며느리 모시기>는 허가를 받지 못해 불법영업을 하고 가까이서 짝을 찾지 못해 국제결혼을 해야 하는 열등한 서민들의 좌충우돌 삶을 코믹하게 담아내고 있다. 고전문학의 대표적 작품인 《춘향전》이 신분제도가 붕괴되고 사회질서가 문란해진 조선 후기 사회의 실상을 실감나게 전해주었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산업화가 진행되는 시기의 사회생활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며느리 모시기》의 백덕조 가족이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삶과 사회의식, 그리고 그것을 규정하는 제반 사회적 조건들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작가의 생활체험을 통해 문학적 진실을 창조하는 기초자료가 되며, 일정한 방법에 의해 조직하고 구성하는 형상화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문학적 진실로 구체화된다. 이 과정에서 인물의 성격 형상화 작업은 아주 중요하다. 소설은 곧 인간의 탐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설에 대한 관심은 작품의 등장인물에 대한 관심이라 할 수 있으며 어떤 소설의 성공 여부는 인물의 성격 창조의 성패 여부로 가늠할 수 있다. 그만큼 소설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우리 현실의 단면을 보면서도 그것이 실상만큼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인물의 형상화에서 그 주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세태의 단면을 단편이라는 장르의 특성에 맞게 가벼운 터치로 날카롭게 제시하는 작가의 태도는 바람직하나 작중에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캐릭터들에게 생동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며느리 모시기>의 긴장감과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소설의 사건은 사건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 구체적인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존재한다. 즉 플롯과 사건은 모두 인물과 결합되어 유기적인 관계로 소설 속에서 작용하고 있다.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작중 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은 거기에서 진실성과 리얼리티를 얻게 된다. 따라서 인물의 핍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물의 행동에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어야 하고, 세부묘사도 마치 실제처럼 자세히 이루어져야 한다. 소설 속의 인물은 개성과 보편성이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백덕조 영감의 사업확장 실패에 얽힌 사연들은 일정 부분 공감을 얻을 만큼 개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특히 중요한 에피소드인 국제결혼의 당사자인 ‘상호’의 성격 형상화 과정을 주목해 보면 개연성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국제결혼 당사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의 열등한 자리에 놓여 있음으로써 그것은 자율적인 선택이 아니라 종용받는 입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저간의 사정들이 거의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호’의 경우, 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 그리 열등한 위치에 놓이는 인물이 아님에도, 아무 이유 없이 노총각으로 있다가 자신의 결혼 문제에 어떠한 입장도 없이 주변의 여세에 휩쓸려 가고 있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백덕조를 초점화자로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상호의 입체감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작품 전반을 종횡무진하는 백덕조의 활약상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혹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씁쓸하게 되새기면서도 그가 끌어가는 사건들에 크게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작품 속의 다양한 인물들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면서, 또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대립하면서 사건을 전개시켜 나간다. 그러한 가운데서 인물의 생동감이 살아나고 그들의 삶이 그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소설이 어떠한 사건으로 전개되어 가든, 어떠한 진실을 말하든 간에 그것은 모두 작중 인물의 몫이다. 그래서 작가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인물을 창조하는 일임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경남문학 2011, 봄호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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