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011 3/15)
완벽한 실종
김 현 우
이창수 영감은 법무사 사무실을 나서며 찬바람이 부는 골목 끝을 한참이나 응시하며 서 있었다. 뭔가 중요한 일 하나를 차질 없이 해 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는 한 번 더 손에 든 서류봉투를 다잡아 들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집은 마누라 앞으로 했으니 하나는 해결이 되었고…….
그러면서 그는 30여년 월급쟁이 생활을 했으면서도 값비싼 부동산 하나를 지니지 못했음을, 조금은 무능했음을 자인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적은 액수라도 연금을 받으니 다행이라 씁쓸하게 자기 자신을 위로해 본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억대 부자요, 알짜배기 부동산을 소유했거나 아니면 대단지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살기라도 하는데 그는 고작 서른 평도 안 되는 저층 아파트였다. 그것도 지은 지 20여년이 되어가는 소규모 빌라로 겨우 6, 7천만 원짜리라니! 그에게는 그게 전 재산이요 평생 말단공무원으로 오금을 펴지 못하고 여유 없이 허겁지겁 살아온 결과이기도 했다. 이제는 옴짝달싹 넉넉함이란 걸 모르고 살아야 될 판이었다.
한 달포 전, 그는 충격을 받았다. 병골로 골골거리며 살았지만 그래도 큰 병은 없으리라 믿었던 것인데······. 죽음은 받아놓은 밥상이란 생각에 함몰되고 말았다. 이젠 산다는 것이 지겹고 더 이상 버티어 낼 힘이 빠져버렸다.
내과의 건강검진을 받기 얼마 전이었을까?
이창수 영감은 눈앞이 침침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오른쪽 눈이 쓰리고 아픈 듯했다. 그래서 골목 안에 사는 박 사장을 보고 눈이 탈난 듯하다고 얘기했다.
“요즘 눈이 안개가 낀 듯 앞이 흐리고 찬바람이 부니 눈이 시리고 아픈 듯하고 거기다 눈꼬리에 눈물이 자꾸 맺혀 안과에 가봐야겠다.”
“아! 이빨이 아프다며 치과에 다니더니 이번에는 눈이요?”
“아이고, 치과에 다니면서 얼매나 괴로웠는지······ 입을 딱 벌리고 참는 거이 얼매나 힘 들었는지·····사는 거이 고해라더니·····. 잘 씹지를 못하니 소화도 안 되는구먼.”
고 하니까 박 사장이 퉁명스럽게,
“다 늙어서 고장이 나는 건데 뭐 할라꼬 병원에 자꾸 깔 끼요? 나이가 칠십 서넛 되고 늙어마 다 그런 거지!”
하고 쓸데없는 걱정에 엄살을 떤다는 투로 일언지하에 그의 말을 틀어 막아버렸던 것이었다. 사실 그는 초등학교 동창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낙담을 하던 때였다. 동창 친구는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인공항문인가 뭔가 주머니를 차고 살았다. 처음에는 수술이 잘 되었으니 걱정 없다고 태평스레 지냈다. 이 영감이나 동창생들은 기대 반 염려 반이었지만 그럴 거라고 곧 정상인이 되리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거 똥주머니 차고 다니는 거 불편은 하지. 글쎄 방귀를 끼면 그 가스도 여기로 나와 주머니가 불룩해진다니까!”
동창 친구는 별 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지만 홀몸과 혹을 달고 다니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겪어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수술 후 1년 반이 조금 넘자 암이 여러 곳으로 전이되어 또다시 병원을 다니고 입원하고 투병을 하다 결국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던 것이다. 동창생들이 장례식 때 모여들어 하나 둘 저 세상으로 가는 판이라 이구동성 다음 차례가 누구일까 하고 모두들 불안한 예감에 휩싸여 절망하고 있었다.
장례식에서 돌아오던 길에 이창수 영감은 안과를 찾아갔고 10여년이나 쓰지 않았던 안경을 다시 쓰게 되었다. 겪고 있는 치통 외에 덤터기로 안경을 써야 하는 고통이 하나 더 늘었던 것이었다.
예전에는 시력검사를 해보면 1.0, 1.2가 나오는 그야말로 정상이었다. 그런데 쉰 서너 살 들던 어느 해 여름, 눈병으로 한 달 여 고생을 하고 나니 오른 쪽 눈의 시력이 0.6으로 뚝 떨어져 버렸다. 물론 일상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는 듯하면서도 양쪽 눈의 시력이 균형을 유지해야 될 형편이라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안경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밥 먹을 때나 신문이나 책을 볼 때 안경을 벗고 보는 것이 편했다. 그러니 안경은 그냥 외출용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책상에 앉으면 안경을 벗어놓고 사무를 봤던 것이다.
여러 해 지나 퇴직을 하고······ 그러다가 환갑이 넘고 나서는 안경이 영 귀찮고 불편해서 그만 벗어던져버리고 말았다. 서류를 들여다보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더더욱 안경이 필요 없었고 신문을 보는 것쯤이야 차라리 안경이 없는 편이 더 똑똑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별 할 일없는 퇴직자 신세가 되니 밤낮 주야로 붙들고 상대하게 되는 것이 텔레비전이었고 곧잘 누어서 시청하는 버릇이 붙게 되었다. 그것이 눈을 피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든지 오른쪽 눈이 자주 아프고 안과에 가면 결석이 생겼다면서 핀셋으로 돌인가 뭔가 하얀 것을 집어내곤 했다. 그러던 끝에 결국 도로 안경을 쓰게 된 것이었다.
사실 침침해 진 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창수 영감에게는 치통 외에 여러 가지 통증의 연속으로 일상생활이 재미없고 힘들고 지쳐 괴로운 형편이었다.
늙으면 다 그렇다는 골목 박 사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란 육체적 기계를 6, 7십년 돌리면 어디엔가 고장이 나고 큰 고장이 아니라 자잘한 잔 고장은 수없이 생길 것이다. 물론 죽을 만큼 중병이 아니더라도 감기 몸살에 복통에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하는 관절염 같은 잔병이 노년에 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고 대게 시달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이창수 영감이 이곳저곳 아프다는 엄살은 하나도 놀랄 일도 새로운 증상도 아닌 일상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게 심각한 것이었고 견디어내기 어려운 고통이기도 했다.
몇 년 전 귀에서 소리가 났다. 어찌 들으면 모기가 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바람소리 같기도 했다. 아니 귀뚜라미가 수 십 마리가 째지게 울어대는 듯 했다. 어쩌면 라디오 잡음 같았다. “찌-찌-” 채널을 돌릴 때 주파수가 잘 안 맞으면 나는 잡음 그것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그 소리는 더 커지곤 했다. 그래서 친구인 황소갑에게 걱정을 했더니 대수롭잖은 일이라며 제대로 응대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엉, 나도 어떨 때는 귀에 소리가 앵-- 하고 나던데 뭘! 그게 뭐가 걱정이야? 나이 들면 다 생기는 거지.”
“허어! 그게 아니야. 소리가 계속 난다니까······ 밤이고 낮이고······ 어떤 미친놈이 내 머릿속에 라디오가 들어있어 소리가 난다더니 바로 그거야. 웅웅 찌익찌익 거려.”
“나도 난다니까! 이 소장. 그렇지만 잊어버리고 살면 또 괜찮아.”
“잊어버려? 내 귓속에서 왕왕 거리는데 잊어?”
“나는 잊고 살아. 이 소장도 너무 걱정 말어. 설마 죽을 병은 아니겠지.”
“그야······ 이 정도 갖고 죽기야 하겠나? 하지만 기가 막히지. 요놈의 귀가 내 것임에 틀림없는데 내 의지로 통제가 되지 않으니 낭패지! 신경쇠약 걸리기 일보직전이라고!”
“허허! 너무 신경을 쓰면 쓸수록 더 심해지는 게 그거라고. 싹 무시해 봐! 이 친구야.”
황소갑은 그의 호소를 조금도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않고 위로 한 마디하지 않았다. 그도 기력이 떨어져서 그렇겠거니 하면서 어느 날인가 저절로 소리가 끝나겠지 하고 막연하게 지냈다. 그러니까 어떨 적에는 소리가 적어져서 깜박 잊고 지내기도 하지만 잠을 청하려고 하면 영락없이 귀에서 윙- 하고 머릿속을 뒤흔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에 잠이 딱 깨는 순간 함께 그 소리도 켜져서 ‘앵앵--’ 거렸다.
그런 정도에서 그쳤으면 다행일 터인데 어느 날 새벽 소변이 마려워서 잠에서 깨 일어나려다 심한 어지러움에 자리에서 고꾸라져 버렸다.
-- 아아! 중풍이로구나!
그는 순간 쓰러지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뭐가 뭔지 모르게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정신을 잃었다가는 죽고 말 것이라는 공포감에 옴 몸이 더욱 긴장되어 숨 쉬기에도 힘들었다. 땅이 빙빙 돌았다. 머리로 피가 몰려올라 가는 듯했다. 아니 천장이, 방바닥이 혼란스럽게 뒤죽박죽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흔들거렸다. 그런데 의식을 또렷했다. 눈을 꼭 감으니 조금 나은 듯 했다. 다시 눈을 뜨니 방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방바닥이 모심기하기 위해 물을 잡은 논바닥처럼 물렁물렁해져서 그의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거렸다. 그래도 꼼짝 않고 누워 조금 시간을 보내니 정신이 차려졌다. 아내가 콜택시를 불렀다. 응급차를 부르기에는 조금 증세가 심각하지 않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온 세상이 빙빙 돌았다.
“아이고! 이거 뇌졸중인가 뇌일혈인가 중풍이나 그런 거 아니요?”
당황해하며 그는 겨우 눈을 뜨고 당직하는 젊은 의사를 붙들고 물었다. 여전히 어질어질 하였지만 의식만은 또렷하고 긴장되었다. 혈압을 재고 어쩌고 간호사들이 부산을 떨었다. 그는 숨을 가쁘게 쉬었다. 피가 들끓어 가슴이 콩닥거리고 머리가 울렁거렸다. 젊은 의사가 그랬다.
“손가락을 코에 가져가 보세요.”
그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몇 번인가 손가락으로 코끝을 가리켰다.
“사진, 사진 찍어봐야 안 합니껴? 혈압이 높지요?”
머릿속 핏줄 어디쯤엔가 터져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을 것인데 의사는 미적거리고만 있어 이창수는 더욱 화가 났다. 이러다가 죽고 말 것이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지만 내색을 하지도 못하고 경황없이 옆에 서서 둥둥거리고만 있는 아내를 다그쳤다.
“뭐 하노? 빨리 치료해 도라캐라! 어정거리지 말고! 사람이 죽을 판인데 뭐 하노?”
그때서야 간호사가 비닐봉지에 담긴 주사약을 가져오고 팔에다 바늘을 찔렀다. 의사가 퉁명스레 한 마디 했다. 그야 의사는 감정을 자제하는 소리로 말했겠지만 그의 귀에는 퉁명스런 소리였던 것이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 심한 건 아닐 겁니다. 뇌하고는 별 상관이 없을 듯하다····· 여하튼 환자분께서 원하니 MRI를 찍어 봅시다. 제가 보기에는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듯합니다.”
— 무슨 소리고? 사람이, 정신이 뱅뱅 돌아 죽을 판인데? 심각 안하다니! 이거 인턴이가? 레지던트인가? 영 뭐 모르는 거 아이가?
그는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그만 표현을 그만 두었다. 구급 조치를 받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에 실린 채 MRI 영상실로 검사하러 갔고 사진을 찍었다. 그 결과는 신경과 전문의가 출근해야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답답한 시간이 한참 흘러갔다. 새벽 4시에 차에 실려와 아침 9시가 되어서야 사진을 판독하였다면서 다른 의사가 나타났다.
“뇌에 어떤 이상이 있는 것 아닙니다. 정상입니다.”
전문의의 말에 이창수는 일시에 마음이 평안해 지면서 어지러움도 잠간 없어지는 듯 했다. 사실 주사를 맞으면서 안정을 너덧 시간을 취하고보니 그때쯤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운 증상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그, 그러면?”
“이비인후과로 가셔야 됩니다. 거기 가시면 다시 검사를 받게 될 겁니다. 어르신. 뇌졸중 같은 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정상이니까요.”
신경과 전문의는 한 번 더 다짐을 하고서 가 버렸다. 그제야 새벽에 만난 젊은 의사가 그랬다.
“제가 아까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뇌에 관해선 크게 걱정할 게 없다고?”
“그, 그러면 뭡니까?”
“귀에 이상이 생긴 겁니다. 이비인후과에 가시면 거기 선생님께서 설명할 거예요.”
침대에서 일어나 휠체어를 타고서 이비인후과에 갔다. 이번에는 검사 기구를 눈에다 갖다 대고 눈을 감지 말고 크게 뜨라면서 여러 검사를 했다. 청력검사라는 것도 했다. 그러더니 듣도 보도 못한 병명을 의사가 말하는 게 아닌가?
“뭐라꼬요? 무슨 탈출이라꼬요? 뭐가 우째됐어요?”
의사가 웃으면서 그랬다.
“이석 탈출증이란 겁니다. 어르신. 귀 구조를 설명 드리자면······”
이창수 영감은 의사가 뭐라 설명을 하는데 최종적으로 종합해서 판단을 하건데 어지럼증이 혈압이나 뇌졸중 증세 때문이 아니라 귀 때문이란 것이었다. 귀속에 균형을 잡는 기관이 있는데 그게 탈이 났으니 약을 먹고 그러면 된다는 얘기였다. 다시 반복해 들을 수가 없었다. 쫓기 듯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나서니 이fms 새벽에 겪은 일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석(耳石)이란 듣도 보도 못한 돌, 아니 모래 같은 것이 귀 속에 있고 그것이 사람의 균형감각을 조절하다니. 서고 앉고 할 때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모래알갱이들이 있을 곳에 있지 않고 딴 데로 흘러나오면 엄청난 어지러움을 유발하다니.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며 난데없는 병명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 눕고 일어날 때 여전히 어지러웠다. 잠결에 몸부림치며 옆으로 누었다간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증세가 계속되어 이래 있다간 안 되겠다 싶어 사흘이 되던 날 집 가까운데 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아 갔다. 의사가 4명이나 있는 곳인데 그곳도 종합병원에서 하던 것처럼 똑같은 검사를 했다. 청력검사도 했다. 돈만 내버린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턱도 없는 병명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역시 이석탈출증이라면서 처방전을 끊어주는데 한 주먹이나 되는 약을 몇 달은 먹어야 되었다. 한 두어 달을 다녔는데 조금 증세가 덜 해졌지만 눕고 일어날 때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심을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어지러운 것이었다.
이창수 영감은 그 후 서울 청담동에 있는 귓병을 잘 본다고 소문이 난 유명한 이비인후과까지 찾아 갔었는데 그때까지 이명(耳鳴)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어지럼증이 좀 덜하다 싶으니 귀에서 “윙-!” 하고 소리가 무섭게 나는 것이었다. 청력도 뚝 떨어져 텔레비전을 볼 때 화면을 쳐다보고 있으면 잘 들리던 것이 눈을 감고 들으면 어떤 말은 알아듣는데 어떤 말은 못 알아들었다. 이것저것 겹쳐 귀도 점점 어두워지고 이명도 갑자기 더 심해졌던 것이었다.
그 이후 여러 해 동안 이명 치료를 위해 이창수 영감은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녔다.
“병원 순례는 그만 해라. 돈만 날리는 것 아니겄나?”
친구 황소갑은 그가 너무 엄살을 떤다고 비아냥거렸다. 이창수 영감이 이명치료에 일가견이 있다고 소문이 난 경기도 어느 한의원도 가보고 청담동 이비인후과, 부산의 이비인후과, 집에서 가까운 한방 양방 다 하는 병원에 가서 침도 맞고 한약도 여러 달 다려 먹는 걸 보고 기가 막혀 하는 소리였다. 그럴 때 그는 더욱 병을 고쳐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뭐라 하노? 니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제. 우짜든지 고칠 수 있다하니까 몸부림을 쳐 봐야지.”
하지만 결국 결론은 ‘안된다’ 였다. 만나는 의사들 마다 머리로 올라가는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그렇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기(氣)가 허약한데 폐의 기가 어떻고 간의 기가 어떻고 하기도 했다. 이명을 줄이는 운동이라며 목운동, 팔운동도 배워 한참동안 열심히 운동도 했다. 그런데 그게 그것이었다. 소리가 조금 줄었다 싶은 것은 자신의 마음뿐이고 자다 보면 또 길을 가다보면 소리는 여전히 왕왕거리는 것이었다. 그는 신경과민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는 친구나 자녀들이나 아내에게 하소연하지도 못했다. 나 혼자 겪어야할 고통이란 절망감뿐이었다. 내가 가는 길 앞에 오르지 못할 험한 절벽이 가로 막아섰다는 낭패감과 외로움이 엄습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참 희한한 병이 또 하나 달라 들었다.
어느 날 배가 가려워 쓱쓱 무심결에 긁었는데 영 시원하지를 않았다. 나이가 들어 늙고 보니 피부에 기름기가 다 빠져나가서인지 몸이 자주 가려웠다. 목욕을 하고서 로션을 온몸에 듬뿍 발라야 일주일 동안 가려움이 없지 그렇지 않으면 가려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배의 가려움은 로션을 듬뿍 발랐는데도 사라지지 않았다. 가려움 타박상에 흔히 바르는 안티푸라민을 또 발랐다. 그것도 잠시 가려움은 여전했다. 거울에 배를 비쳐보니 긁어서 그런지 온통 벌겋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서랍을 뒤져서 가려우면 바르던 연고를 찾아내 또 발랐다. 그래도 가려움은 여전했다. 어쩌면 열도 나고 통증이 오는 듯도 했다.
며칠을 연고도 바르고 안티푸라민도 바르고 지내다 결국 집 가까이 있는 의원을 찾았다. 그곳은 그야말로 만병통치, 내과 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하여간 진료과목이 총망라 되어 있는 듯한 곳이었다. 의사는 두말도 않고 처방전을 내 주었다. 그런데 그곳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점점 가렵고 톡톡 쏘고 따갑고 빨갛게 솟아 오른 곳에서 열이 나면서 진물까지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골목 박 사장이나 황소갑이가 그의 배를 들여다보더니 기겁을 하면서,
“이 소장! 퍼뜩 피부과 가 봐라. 이거 촌사람들이 단(丹)이라 하는 거다. 잘 안 낫는 병이다.”
하고 겁주는 소리를 했다. 단이라는 소리에 그도 겁이 더럭 났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단에 걸려 고생을 여러 차례 하시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무슨 약이 있을 리가 없던 시절이라 가슴이나 등에 부스럼 같은 빨간 화농이 생겨 진물이 나면 잘 낫지 않아 여러 날을 고생하셨다. 산초(山椒)인가 ‘난데’라는 열매의 기름이 특효라 소문나 있어 그걸 먹고 바르고 그랬던 것이었다. 황소갑의 겁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난 이창수 영감은 그 길로 피부과로 달려갔다. 의사가 단번에 병명을 말해 주었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병 이름이었다.
“뭐라꼬요? 무슨 포진요? 대포진지 말입니까?”
이석탈출 때처럼 무슨 포진이라 하는데 포병부대 대포진지는 분명히 아니란 걸 알면서도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의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그를 질책했다.
“이거 간단한 병이 아니란 말입니다. 당장 입원해야할 증세요.”
“입원까지?”
“심각합니다. 이거······ 그냥 어정거리면서 방치했다간 그 후유증이 평생 갑니다. 진작 오셔서 치료를 받아야지! 완치가 잘 안되고 그러면 신경통이 되어 애를 먹입니다.”
그나저나 대상포진(帶狀疱疹)이란 병명을 들은 것은 일평생 초유의 일이었다. 기가 막힌다는 느낌보다는 너무나 엉뚱한 일에 억울하게 휘말려 들었다는 느낌이었다. 치료를 받으러 며칠을 쫓아다녔지만 피부과 전문의의 예고대로 배에 난 종기는 그런대로 아물어 가는데 정말 신경통 같은 통증이 유발되어 더욱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콕콕 쏘고 따갑고 옷이 스치기라도 하면 통증이 유발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떨 적에는 그곳에 열이 나면서 아팠다.
그는 통증에 시달리면서 동시에 귓속에서 나는 귀신 곡하는 소리에도 거의 정신이 함몰될 지경이었다.
부처님께서 예전에 인생 삼고(三苦)를 설파하셨다지만 어찌 살면서 겪게 되는 고통이 겨우 세 가지뿐이겠는가? 늙어서 그냥 편안하게 살다가 자는 잠에 이승을 하직한다면 그게 복이라고 한다지만 그것도 저것도 여의치 않으니 이창수 영감은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을 한단 말인가?
그는 몇 년을 그런 고통 속에서 헤매고 다녀야 했다. 처음에야 이 사람 저사람 붙들고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고 괴롭고 힘든지 하소연했다. 그렇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지 어찌 같은 소리를 반복할 수가 있는가? 자연히 자기 혼자 겪고 자기 혼자 감당하고 자기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황소갑이나 박 사장에게 이제 반쯤 도가 통한 도사처럼 말했다.
“빌어묵을! 세상에 어느 넘이 그랬노? 고통을, 슬픔을 나누어 가지면 반이고 뭐를 나눠 가지면 배가 돼? 다 어림도 없는 헛소리지.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고 어떤 철학자가 설파했다는데 그게 딱 맞는 말이제.”
“와?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내 혼자 질 짐은 항상 따로 있고 나눌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야. 누가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위인도 없고 내 고통을 나눠가질 수도 없다는 걸 황 국장도 알아야 해. 염라대왕 앞에 가는 거 그게 해결책이지······.”
“허어! 사람도 그렇게 저기압이 돼 가지고 우째 사노?”
황소갑의 말마따나 그는 완전히 저기압 상태였다.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식욕도 절반에서 절반으로 확 줄어든 느낌이었다. 아픈 이 때문에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킨 음식물 때문에 체증(滯症)이 계속되었다. 그러니 대변이 제대로 술술 나올 리가 만무였다. 변비였다. 아니 똥이란 것도 주인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속에서 통 나오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변기에 앉아 힘만 쓰다가 일어나는데 시원하게 재채기를 하 듯 쑥쑥 똥이 빠지던 시절이 하도 오래되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아내가 그런 눈치를 채고 병원에 가라고 채근했다.
“설사약을 먹든 아니면 변비약을 먹든····· 사람이 그리 미련하게 참고만 살라카요? 당장 내과 가이소. 치질이 아닌가 모르겠네?”
“내과고 뭐고 난 만사가 싫다! 내가 이곳저곳 아픈 게 어제 오늘 일이가? 이명이 그렇고 대상포진 후유증도 그렇고 절대 죽을병이 아니니 걱정 말아라.”
“우째 걱정이 안돼요? 그렇게 변비가 심한데? 하루 이틀이 아니라 벌써 몇 달 째 고생을 하면서?”
아내의 재촉에 못 이겨 단골로 다니는 내과를 찾아가기는 한 달포 전 일이었다. 의사는 대뜸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내시경을 하는 김에 위도 살펴보고 혈액검사도 해 봅시다."
의사의 권에 마지못해 그러자고 승낙하고 예약하고 내과를 나서면서 이창수는 푹푹 한숨만 쉬었다. 황소갑은 잘 했다고 격려했다.
“이런 기회에 건강검진을 받으면 불안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해소되니 좀 좋아?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진단받아 봐라. 그날로부터 오만가지 걱정에서 해방되는 기라.”
“나도 그래서 검사 받아 보기로 했어······”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검사를 받는 날 따라나서려는 아내를 야단을 쳐서 따돌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별 일 없으리라는 예단(豫斷)으로. 수면내시경을 끝내고서 정신을 차린 그에게 의사의 첫마디가 수상쩍었다.
“왜 아주머니와 함께 오시지 않았어요?”
“·······.”
“좀 큰 병원으로 가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순간 이창수 영감은 심각한 상황임을 눈치 챘다. 의사가 보호자를 찾는 것은 환자에게 밝힐 수 없는 증상이란 걸 명명백백 말하고 있었다. 그는 침착하고 조용하게 물었다.
“내 각오하고 있으니까 솔직하게 얘기해 주십시오. 인명은 재천인데 뭐든 몸부림쳐 봐야지요. 절대 충격을 받지 않을 겁니다. 병을 앓는 본인이 알아야 마음도 다잡는 것 아닙니까?”
의사는 다시 한 번 보호자를 데려오라고 다짐하면서 ‘대장암이니 당장 큰 병원에 가야 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가슴이 떨리고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그는 충격을 억누르며 의사 앞에서 태연하려 애쓰며 병원을 나섰다. 뭔가 인쇄된 처방전을 들고서.
-- 대장암! 내 속에 암이 들었어. 허어!
그는 휘청거리면서 걸었다.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었다. 아침을 굶었으니 힘이 없을 거라며 밥상을 차리면서 아내가 뭐라 물었다. 끄떡없다고, 변비약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치질도 아니라 하더라.’면서 그는 아무 일도 없는 척 했다.
그는 누워 천장을 보며 아무 생각도 않으려 했다. 그런데 눈에서 눈물이 흘러 귀로 들어갔다. 방바닥이 그대로 지하 수 백 미터 아래로 갈아 앉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그는 모든 세상 일이 아득한 저편에 있는 듯했다. 아니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모두 허상이었다.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공허,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신통하게도 배가 쓰리고 쏘고 따갑고 아픈 증세는 여전했다. 귀 속의 초 고음으로 우는 수만 마리 매미도 전과 다름없이 들어 앉아 있어 그 파열음만은 더 컸다.
큰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 물론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대장암이노라 얘기하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 황소갑이나 골목 안 박 사장에게도 아무 내색을 않고 지냈다.
그날 오전, 아내는 점심 먹기 친목계 모임이 있다면서 나갔다.
“미역국은 가스레인지 위에 있으니 그걸 데워 혼자 먹어요.”
“알았어.”
그게 아내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아내가 나가자 그는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따뜻해진 4월 날씨에 조금은 충충해 보일 코르덴바지와 검정 점퍼를 걸치고 어제 저녁 준비해 뒀던 배낭을 등에 멨다. 배낭 안에는 속옷과 바지만 들어 있었다. 한 번 더 텔레비전 위에 놓아둔 법무사 사무실 봉투를 그는 살펴보았다. 휴대폰, 주민등록증, 신용카드······봉투 안 물건들을 확인하고 아내가 잘 볼 수 있을 자리인가 아닌가 다시 살펴보다가 그냥 놓아두었다.
그는 휘적휘적 거리를 걸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역으로 갔다. 황소갑에게 보내는 편지를 역전 우체통에 집어넣었다. 지난밤 집을 떠난다면서 몇 가지를 부탁을 쓴 편지였다.
“······천상병이란 시인이 「歸天」이란 시에서 이승에 소풍을 왔다가 저승으로 간다고 했어.
나도 인자 소풍을 간다. 평소 나는 여행을 겁냈다. 여행 공포증이 있었지.
훌훌 바람처럼 낙엽처럼 갈란다.
찾지도 말고 실종 신고도 하지 말라고 집사람한테 꼭 당부해다오.
어린애 똥보다도 더 적은 연금 내 없다고 받지 못하면 큰일이다.
집과 조금 남은 예금 모두 집사람 앞으로 명의이전을 해 두었다.
친구야, 잘 살아라. 즐겁게 지내라······.”
그는 표 파는 창구 앞에서 동쪽으로 갈까 서쪽으로 갈까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동쪽으로 가는 열차표를 샀다. 그쪽으로 가는 열차가 30여분 빨리 오기 때문이었다.*****
(창녕문학 2011년, 35집에 발표)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김현우 / 황혼 외2 (0) | 2011.11.25 |
---|---|
김현우 / 해무(海霧), 그 속을 아무도 모른다 (0) | 2011.11.20 |
[스크랩] 김현우 단편소설 / <유기(遺棄)> (0) | 2011.03.05 |
단편소설 <검버섯들의 한담> (0) | 2010.12.30 |
단편소설 <며느리 모시기> (0) | 2010.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