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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현우 / 해무(海霧), 그 속을 아무도 모른다

by 남전 南田 2011. 11. 20.

 

 

 

     경남소설가협회(회장 김동민) 2011년 연간집 『경남소설』(제6호)

   발표한 단편소설을 올립니다.

 

   단편소설

 

   해무(海霧),

     그 속을 아무도 모른다

 

 

   김현우

 

 

 

 

나로도를 얼마 앞두고 그들이 탄 화물선은 파선됐다.

짙은 안개 속에 괴물처럼 나타난 객선(客船)이 뱃머리를 들이 받았던 것이다. 18톤짜리 낡은 목선은 세 동강이 났다. 선장과 선원 조씨는 이물에 있다가 뱃머리가 부서지며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그것과 함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고물 쪽도 커다란 충격에 견디지 못하고 나무 가지가 부러지듯 힘없게 부러져 떨어져 나갔다. 선체는 앞뒤가 다 망가져 버리면서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 짜리몽땅한 몸뚱이만 남아 살찐 돼지와 흡사했는데 이내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짜리몽땅한 선체에는 정해도와 기관장 둘이 있었고 선원 박 씨는 선미 쪽에서 ‘사람 살려라!’하고 고함을 치고 있었다. 정해도는 선창(船廠)에 있다가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을 피해 재빨리 갑판위로 올라갔다. 그러니 선원 다섯 명이 선수(船首)에 2명, 선미(船尾)에 하나, 나머지 둘은 기관실과 선창이 있는 배 중간부분에서 각각 생사를 다투며 뿔뿔이 헤어지는 기막힌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삽시간에.

앞과 뒤가 떨어져 나간 선체는 동력이 그대로 살아남았지만 고물에 있는 키와 스크류가 떨어져 나갔으니 배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구조 신호를 보내려고 무전기를 점검해 보니 안테나가 박살난 상태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의 배를 들이 받은 객선은 나몰라 하고 해무(海霧)속으로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해도야! 깃발 할 것 뭐 찾아내라! 그거라도 달고 구조해 달라해야지!”

기관장의 고함에 정해도는 급히 구난신호를 보낼 때 쓰려고 준비해 두었던 빨간색 헝겊 조각을 찾아내 대나무에 묶었다. 물이 서서히 허리까지 차올랐다.

“배가 금방 갈아 앉아 뿌리겠다.”

“인자 지나가는 배 기다리는 수밖에 없데이. 운수가 좋으면 살 끼고 죽을 운수면 저 세상으로 가겠지.”

“아따! 기관장은 이 처지에 늘어진 소리가 나오나? 무전기나 손 좀 봐라. 우짜든지 수협이나 해경에 연락을 해야 살제......”

“수협이고 해경이고 뭐고 안테나가 박살이 나서 안 된다. 여수로 가는 배들이 지나다니는 목이니 배가 갈아 앉지만 않으면 구조되겠지.”

기관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정해도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탄 화물선은 선어(鮮魚)를 실어 나르는 배로 여수로 고기를 실으러 가는 중이었다. 여수 어판장(魚販場)에서 생선을 사 실으면 통영으로 돌아가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옮겨 실으면 되었다. 그러니까 생선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무역을 하는 회사의 화물선을 그들은 타고 있었다.

짙은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꾸역꾸역 밀려들어온 바닷물은 배에 가득 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생선을 넣어두던 선창의 부력(浮力)으로 짤막해진 배 몸통은 쉽게 갈아 앉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들은 뱃전을 붙들고 물이 차오르는 걸 바라보며 그들을 구해 줄 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물이 점점 정해도의 목에 까지 차올랐다. 그는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났다.

 

해무가 바다와 섬을 싸안고 있던 날에 정해도는 태어났다.

정해도의 어머니 둘래는 그때 정신을 놓고 사는 스무 살이 채 안 된 처녀였다. 애를 갖게 한 사내가 누군지도 몰랐다.

둘래는 중학교를 다녔던 처녀였다. 통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섬의 중학교였다. 키가 자그마했지만 몸집이 통통하고 엉덩이가 딱 바라지기 시작하면서 마을에서는 예쁘장하다는 평을 받았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웃으면 보조개가 살짝 보이기도 해 귀엽기도 했다. 두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릿결이 고왔다. 그녀가 팔짝팔짝 뛰어 갈 때면 갈래머리가 춤을 추었고 덩달아 그런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앞으로 둘래가 크면 사내들 간장을 녹일 거라 수군거렸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이던 여름에 무슨 사단이 났었는지 모르지만 애가 정신이 반쯤 나간 표정으로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잘 다니던 학교도 가지 않았다.

“얼마 전 밤중에 노성벽력이 치고 갑자기 소나기가 안 왔나? 그날 초저녁에 참 더웠제?”

“맞데이. 그날 참 무더웠제. 저녁이 되니 비가 올란가 구름이 바다 끝에 내려오고 안개도 자욱하게 낀 듯했제. 동네 아아들이 모두 바다에 가서 멱을 감고 오고 난리쳤제.”

“맞데이. 그날 저녁에 우리 둘래도 바다 가서 미역을 감고 왔제. 그래도 덥다면서 초저녁부터 마당에서 덩석을 펴고 동생들과 놀다가 안 누워잤나? 그런데 한밤중에 노성벽력이 치고 비가 쏟아졌는데······· 그때 놀란 모양이라······ 마당에서 자다가 뛰어 들어 왔는데 너무 놀래고 그랬는지 무섭다꼬 난리를 치는 기라······.”

“아이고! 그때 둘래가 크게 놀란 모양이데이.”

“하모! 잠을 자다가 천둥 벼락이 치는 바람에 그만 정신을 놓아버린 모양인기라. 이거는 우짜노?”

둘래 어머니가 이웃 아낙네들에게 한 얘기는 삽시간에 마을에 퍼져 나갔다. 우레 소리에,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깊이 잠든 둘래가 혼비백산해 그만 정신이 나간 거라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 정설처럼 굳어져 갔다. 그러나 남의 흉보기를 좋아하고 험담하기를 밥 먹듯 하는 일부 인사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를 못했다.

“무슨 말 못할 사단이 그때 난 게 분명해. 그까짓 번개에 우레 소리에 멀쩡했던 가서나가 정신이 나가? 틀림없이 큰 사고가 있었던 거야.”

“둘래 고것이 나이는 몇 살 안 돼도 벌써 처녀티가 나고 엉덩이가 팡파짐하고 젖이 볼록하게 안 솟았더나? 동네 총각들이 춤(침)을 흘리게 생겨 묵었거든······.”

“허어! 둘래 아부지 정씨한테 맞아 죽을라꼬 그런 소리를 하나?”

“허! 내가 무슨 없는 소리를 지어냈나? 둘래가 나이에 비해 숙성하다는 것이지. 처녀 모색이 나는 걸 동리 사람이면 누구든지 다 인정할 낀데······. 그라고 둘래가 좀 까불었나? 학교 오가면서 머슴아들하고 니내도리 하고, 겁도 없이 장난도 치고 그라데?”

“이 엉큼한 놈이······ 마치 둘래가 머슴아한테 겁탈이라도 당했다는 말투이구만.”

“허어, 내 말을 들어 보라모. 예뿌장한 가서나가 학교를 왔다갔다하면서 빵빵한 엉덩이를 살살 흔들면서 선창이고 골목이고 돌아댕기 봐라. 아무도 어린 가서나로 안 본단 말이다. 숙성한 처녀로 보제. 조 예쁜 걸 붙들고 연애 한 분 딱 해 보고 싶은 기분이 총각들한테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을 하겠어?”

“요새 가서나들이 오데 얌전하게 학교 댕기는 거 보지 못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고삐 풀린 망아지나 다름없지.”

“봐라! 김가 니도 뭔가 집히는 기 있는 듯 말하네? 겁탈? 겁탈이라는 말 김가 니가 먼저 꺼냈다?”

“허어! 박가 이 사람이! 괜한 사람 잡을라 카네? 니가 무슨 겁탈 사건이라도 난 거처럼 떠드니까 내가 주의를 준 것이지!”

그래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고 무슨 말은 누가 듣는다더니 온 동리에는 둘래로 인한 소문으로 술렁거렸다. 한동안 둘래가 천둥 벼락 소리에 놀랐다거나 한밤중에 마당에서 자다가 어떤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살기에 바빴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실성한 둘래가 지나가면 불상하다며 혀를 찰 뿐 그날, 그 소나기 오던 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추궁도, 진실을 캐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마치 해무 속을 아무도 모르듯.

동리에 떠도는 소문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둘래 아버지 정씨도 어머니 고성댁도 말이 없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딸에 대한 얘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누가 지나치다 만나 둘래의 근황을 물으면,

“그 년 요새 집에 들어박혀 지내지 뭐. 학교도 안 갈라캐서 퇴학시키고 말았제.”

하거나 아니면,

“그때 놀라고 난 다음에 통영 나가서 보약을 사 와서 먹이고 비손이나 굿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는 듯 하네······.”하며 한 숨을 쉴 뿐이었다. 아낙네들은 위로삼아,

“아이다. 둘래가 전보다 훨씬 똘똘해 진 듯 하데이.”

“전에는 눈동자가 확 풀린듯했는데 요새는 괜찮더라. 약발을 받는 모양이데이.”

하고 말하면 둘래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이라는 표정이었다.

“집안에만 있도록 잘 붙잡아 두지만도······. 우짜믄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가 돌아댕긴다 아이가.”

둘래 어머니 고성댁 말마따나 둘래는 점점 맑은 정신이 돌아오는 듯 하기도 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군소리 없이 어머니를 도와 살림을 살았다. 그런데 꼭 달이 둥그스름하게 솟아오르는 초열흘에서 보름이면 잠을 자다가도 한밤중에 집을 나가 바닷가로 산으로 돌아다녔다. 그럴 때면 집안 식구들이나 알아보았지, 길에서 만나는 동네 어른이나 이웃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결코 맑은 정신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동리 사람들은 비관적으로 말했다.

 

여름이면 둘래는 머슴애들이 우글거리는 바닷가에 나가 미역을 감곤 했다. 어릴 적부터 해 오던 버릇이었다. 얇은 속옷을 걸쳤지만 물에 젖으면 들어가고 나오고 한 몸매가 속절없이 다 들어났으니 알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부끄러움도 타지 않았고 어른들의 손가락질도 개의치 않았다. 다른 계집애들은 머슴애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미역을 감는데 둘래는 그런 계집애들과 놀지 않고 머슴애들과 함께 물장구치고 뒹굴고 어울리며 놀았다. 아이들 사이에 둘래의 커다란 젖을 만져 보았다거나 탱탱한 엉덩이를 쓰다듬어 보았다는 말이 파다했다. 물속에서 서로 안고 밀고 자맥질하니 자연히 몸을 만지는 것은 당연했다. 어둠이 내린 밤이면 은근슬쩍 나이 든 총각들도 아이들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서는 둘래의 몸을 슬쩍 안아보기도 했다. 그럴 때 둘래는 아는 듯 모르는 듯 큰 반응이 없었다. 싫다는 소리도 좋다는 소리도 않았다. 총각들은 그 재미로 아이들 미역 감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가 얼굴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두워지면 물속으로 숨어들어와 둘래의 몸을 주무르고 어루만지고 안았다.

달이 동산에 떠오르는 밤이면 둘래는 밤이슬이 치맛자락을 적시는데도 아랑곳 않고 마을 언덕을 오르내리거나 고구마 밭고랑을 헤매고 다녔다. 마치 한 마리 들개처럼.

“저 가시나가 상냇개처럼 댕긴데이.”

동리 아주머니들이 걱정을 했다.

 

몇 년인가 흘렀지만 둘래의 병세는 별 차도가 없었다. 평소에는 멀쩡해서 농사일도 하고 부두에 나가 아버지의 뱃일을 거들거나 바다에서 잡은 멸치를 삶아 말리기도 했다. 그녀가 정신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동리 총각들은 점점 통실통실 물이 오르는 그녀의 몸을 욕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훑어보곤 했다.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키도 훌쩍 컸고 얼굴도 반반해 졌고 다리도 쭉 빠져 각선미가 몰라보게 예뻐졌다. 그러니 만약 정신만 온전했다면 그녀를 며느리로 데려가겠다는 집안이 많았으리라.

고구마를 수확해 들이는 시기에 고성댁은 둘래가 홀몸이 아님을 알아냈다.

“야. 이년아! 누고? 어떤 넘 하고 붙어 먹었노?”

고성댁은 딸을 붙들고 추달을 했다. 말이 통 없었던 딸은 고개만 좌우로 흔들어댈 뿐이었다.

“그래! 그때 수상했데이. 고구마 줄거리 이파리, 흙물이 든 옷을 입고 새벽에 기어들어 왔을 때······ 그때 어떤 넘이 덥친거제? 아, 말 좀 해 보거라.”

“·······.”

“와? 생각이 안나나? 대낮 같이 달이 환히 밝은 보름밤이 아이었나? 그날 밤, 니가 당한기라. 어떤 넘이고? 달이 밝았으니까 얼굴을 똑똑히 보았을 끼 아이가? 이년아!”

둘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가로 젓기만 했다. 고성댁도 닦달을 하다가 정신 나간 딸의 서글픈 팔자에 그만 울고 말았다.

“모녀간에 무슨 초상이 났나? 와 울고불고 난리고? 내 진작 저 가서나가 집안 우사(우세)를 시킬 기라고 생각했지만도·······이기 무슨 날벼락인고?”

둘래 아버지 정씨도 담배만 뻑뻑 피우다가 버럭 고함을 치고는 휭 집을 나가 버렸다. 못난 딸년 바람에 집안 우세를 당하게 된 것에 성이 났지만 들어 내놓고 떠들 형편이 아니어서 안으로만 분노를 삭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며 부르짖었다.

-- 어떤 놈인지······ 내 그놈을 붙들어서 모가지를 확 비틀어 버려야지!

그러나 어떤 놈이 딸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몰래 염탐을 해야 하니 더더욱 짚더미에서 바늘 찾기로 어려웠다. 스무 댓집 어촌이라 소문이 쉽게 났다. 아니 아주머니들이 날로 달라지는 둘래의 몸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아주머니들은 우물가에 모였다하면 숙덕거렸다.

“아이구! 저걸 어쩌나? 어떤 미친 넘이 저 불쌍한 거를 건드렸노?”

“누가 그랬는지 알기만 하면 둘래 아부지가 모가지를 비튼다고 비라고 있다지만 오데 범인이 쉽게 잡히겄나?”

“둘래가 정신이 없기는 정말 없는 기라. 지 몸을 헤집고 물건을 박은 넘을 모르다니! 얼매나 싱간을 했는지 그날 새북에 집에 돌아 왔을 때 등드리고 치매고 온통 옷이 고구매 이파리 물이 들어서 시퍼렇게 돼 있었다는 기라.”

“그란께네 고구마 밭에서 고구매 맛을 보았구나.”

여자들은 낯을 붉히는 법 없이 그때의 그 광경을 재구성해서 신나게 떠들며 재미나하기도 했다. 남자들은 과연 범인이 누구일까에 관심을 보이며 애비가 누구인가에 내기를 걸기까지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틀림없이 우리 동네 젊은 놈일끼다. 둘래가 미쳐서 보름달이 뜨면 실성해져 돌아다닌다는 걸 잘 알고 뒤따라 간 게 틀림없으니······.”

“애를 낳아보면 밝혀 질 꺼야. 애가 아비를 닮지 누굴 닮겠어?”

“혹시 우리 동네 사내들이 건드린 것 아니야?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놈들이 우리 동네에 많아! 혹시?”

“어어! 왜 날 쳐다 봐? 난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자넨?”

동리 인심이 갑자기 어수선해지기도 하였다. 서로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앞으로 태어날 애기 얼굴을 보기만 하면 우리 동네 어떤 놈의 씨앗인지 판별이 나리라고들 했다.

이러나저러나 둘래는 열아홉 살이 들던 해 사내아이를 낳았다. 열 달을 다 채운 정상적인 분만이 아니었다. 두 살 아래 둘래의 남동생 덕중이가 누이를 두들겨 팼기 때문이었다. 애비도 모르는 애를 밴 누이가 너무나 부끄럽고 망신살이 뻗어 그냥 살 수가 없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 놀림감이 되었다고 하면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겠다고 다니던 고등학교도 중퇴해 버렸다. 누나가 실성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고구마 밭고랑에서 누군가에게 당해서 애비 모르는 애를 가졌다는 소문이 학교 안에 쫙 퍼졌기 때문이었다.

“야! 이년아! 와 죽어버리지 않고 살아서 지랄하노? 인자 니 죽어봐라!”

“······.”

“내가 니 때문에 학교를 댈깅 수가 없다! 이 조그만 섬 뿐만 아니라 통영 바닥에 까지 소문이 쫙 나서 얼매나 남사스러운지 모르겄다!”

아버지 어머니가 뱃일을 나가고 동생들만 집에 있었던 날 덕중이는 참나무 몽둥이를 들고 배가 남산만치나 부른 누나를 작심하고 두들겨 팼다. 죽여 버리겠다고 펄펄 뛰었다. 둘래는 피할 겨를도 없이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둘래와 동생들의 아우성과 비명에 이웃 사람들이 달려와 말리고 어쩌고 해서 겨우 구타는 멈추었지만 그녀는 머리가 터져 피가 흘렀고 어깨와 다리에도 멍이 들고 피가 흘렀다. 그 바람에 산기가 있더니 애를 낳았다. 조산이었다.

그 애가 바로 정해도이다.

태어나자마자 ‘누굴 닮았는가?’ 하고들 애를 살피느라 야단이 났다. 마을에서 껄렁한 사내들 서너 명이 갓난아기의 아비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모두들 발뺌을 하기에 급급했다. 아비로 지목된 사내 하나는 칼을 들고 나와 소문을 퍼뜨린 늙은이를 죽인다고 난리를 피우기도 하였고 총각 하나는 제 친구와 다투고 삿대질을 해대면서 제일 처음 발설한 자를 대라고 소동을 피웠다. 그러다가 점점 아비 후보가 좁혀 들었는데 최종 후보자는 둘래와 고종 사촌인가 팔촌인가 되는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둘래보다 두어 살 위였는데 고종간이라며 그 집을 풀 방구리 쥐 드나들 듯 했던 총각이었다.

“틀림없데이. 고종 오빠인가 아재라민서 뻔질나게 놀러 댕깄제. 고성댁 그 집 양식도 제법 축을 냈을꺼로.”

“얼굴 형상이 꼭 그 넘아 와 영판 닮았제?”

“하모! 그 넘아 빼다 박았더라.”

그러나 바다 안개 그 속을 아무도 모르듯 끝내 아이의 아비 찾기는 유야무야 세월 속에 파 묻혀 버렸다.

아기의 성이 외갓집을 따라 정씨가 된 것이나 이름이 해도가 되기는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나이가 되어서였다. 그때 둘래 아버지는 딸 때문에 폭주를 하다 결국 간경화로 이미 죽어 마을 이장이 고민 끝에 덕중이 앞으로 호적을 만들어 출생신고를 해 주었던 것이다.

“이름도 성도 없는데 우짤끼고? 아아를 국민학교에라도 보낼라문 호적이 있어야 되는 기라. 니 앞으로 올리자.”

“이때꺼징 정해 논 이름도 없이 일마야 절마야 그랬는데······.”

“이놈으 아가 바다에서 주워 온 아아가 아이겄나? 그러니 바다 해(海)자에 길 도(道)자를 써서 해도라 올리자. 처음에 나는 섬 도(島)짜를 쓰려고 했는데······.”

덕중이는 이장의 말에 고개만 끄떡거렸다. 그래서 해도는 외삼촌의 자식으로 올려 졌던 것이었다.

 

해도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2, 3년 전에 둘래는 시집을 갔다. 마을에서 고기잡이하는 어부로 많이 모자라는 사내였다.

그 사내는 이름도 성도 호적도 없이 떠돌다가 섬에 들어와 어선의 잡역부로 일하게 된 사람이었다. 그를 거두어들인 선주(船主)인 성 서방이 제 아들로 호적에 입적시키면서 성도 얻게 되고 제대로 된 삼보란 한자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는 팔푼이었다. 말도 더듬거렸고 겨우 시키는 일이나 해내는 바보에 가까웠다. 둘래 어머니와 성 서방 부인이 서로 눈치껏 의논해서 둘을 결혼시켰다. 실성한 계집, 거기다 애비 모르는 애까지 낳은 여자를 누가 데려가겠는가? 그러니 성삼보 같은 자가 아니면 아무도 둘래를 받아주지도 않을 것이고 평생내 마누라로 먹여 살리며 거두어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불상한 것이 나이가 들어 늙으면 누가 돌봐 줄 것인지 막막하니 바보이지만 일을 잘해 굶주릴 걱정이 없는 사내 성삼보가 딱 제 격이었다.

성삼보는 예쁜 마누라를 얻었다고 좋아했다. 둘래는 결혼을 하고서도 한동안 정신을 놓고 살았다. 그런데 바보 남편은 사내구실은 충실히 해 냈던 모양으로 결혼을 한 지 2년이 채 안 돼 둘래는 첫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해도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해에 둘째를 낳았다. 이번에도 아들이었다.

정해도에게 사실상 동생이 둘이나 생긴 셈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둘래는 해도에게 아주 무관심했다. 정도 없었다. 길에서 만나도 해도가 제 속에서 나온 아이인지도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반갑다는 말도 없었고 피하는 태도도 없었다. 무관심했다. 해도로서도 눈곱만큼 정이 가지 않았다. 젖먹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으니 어머니란 생각보다는 미친 여자로만 인식되어 있었다. 그러니 길에서 만나더라도 해도가 먼저 피해 달아나곤 했다.

참 이상한 일은 둘래가 둘째 아들을 낳고난 다음이었다. 흐릿하기만 했던 그녀의 눈동자에 반짝하고 빛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눈동자뿐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점점 맑은 기운이 감돌고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동리 사람들이 점점 느끼게 되었다.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데이. 여자가 애를 낳으면 실성하기도하고 우짜믄 제 정신이 돌아 오기도 한다 카드마는······ 우리 할매가 그라더라. 요새 둘래가 새침해 졌다고 말이다.”

“안 그래도 내가 그 말 할라꼬 했능기라. 둘래가 조금 달라졌데이. 아아들 옷을 빨래해 너는데 얼마나 야물딱지게 해 놓는지. 우짜믄 제 정신이 돌아오는가 모르겠다.”

“요새는 보름달이 떠도 새북에 집을 나가서 돌아댕기는 기 뜸 하다민서?”

“아아! 그렇고말고! 성삼보 그 사람이 물건 하나는 좋다카더마는······· 밤이고 낮이고 마느래만 보이몬 치매 들치고 할라 칸다 카더라.”

여자들이 웃어 제쳤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동리 사내들이었다. 은근히 밤낮 구분 않고 그 짓을 하라고 삼보에게 부추겼다.

“삼보야! 새북에 니 마누라가 나가는 것은 바람이 나서 그런 기라. 그라니 새북에 일어나 나갈라 쿠마 잡아 눕히고 조져야 된데이. 상내낸 암캐 알제? 암캐가 상내를 내면 온 들판을 쏘다니며 수캐를 찾는다 아이가?”

그러면 삼보도 히벌쭉 웃으며 대꾸했다.

“안 그라도 나는 새북에는 꼭 마누라 안고 잡니더.”

“그래, 삼보 니 마누라가 싫다 안카나?”

“와 싫다 캅니겨? 내 밑에서 좋다고 해해거리는데예.”

삼보의 대답에 마을 사내들은 기가 막히고 재미가 있어 웃어 댔다. 그러나 삼보는 그를 놀리는 줄도 모르고 아내와 어떻게 밤일에 충실한지 자랑을 해 대는 것이었다.

사고가 터진 것은 셋째 딸을 낳고난 다음이었다. 딸을 낳고 난 후 둘래는 완전히 정상인처럼 보였다. 아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살림도 똑 부러지게 하고 친정나들이를 할 때도 실성한 기색이 없이 행동했다. 점점 제 의사를 확실하고 똑똑하게 말하기도 했다.

“인자 니가 정신을 올바르게 차맀는갑다. 인자 아아들을 잘 키워야 된데이”

고성댁은 마음을 한편 놓으면서도 불안하여 둘래를 붙들고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둘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난 날 어떻게 지냈는지 알게 된 듯 몸서리 치기도하고 두 손을 꼭 쥐며 눈을 반짝거렸다. 그러다가 한 마디 했다.

“엄마! 날 왜 그 반푼이에게 시집보냈어?”

고성댁은 화들짝 놀라 눈이 화등잔만 해 졌다.

“그기 무슨 소리고? 성 서방이 어때서? 니 서방만큼 착하고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사람이 어딨노? 다시는 그런 소리 마레이. 벼락 맞는다!”

“·······.”

둘래는 고개를 모로 꼬기만 하고 말이 없었다. 사단은 벌써 그 무렵에 생겼던 것이었다. 성삼보 집 뒤에 사는 상처한 홀아비 박가가 둘래를 꼬드기고 있었다. 아니 둘래가 먼저 신수가 훤하고 돈을 잘 쓰는 박가에게 눈짓을 보냈는지도 몰랐다. 남편이 고기잡이를 하러 배를 타고 나가고 나면 뒷집 사내가 슬슬 동리 사람들 눈치를 보며 접근해 왔다. 통영장에서 사 왔다면서 색깔도 곱고 무늬도 예쁜 옷도 선물했고, 통닭이나 자장면을 시켜 오기도 하고 양주라면서 소주도 막걸리도 아닌 생전 처음 맛보는 달짝지근한 술을 들고 와서 마시게 했다. 독한 술에 취해 둘래가 정신이 혼미해지면 박가는 어김없이 그녀의 치마를 들치고 달려들었다. 사내는 환갑을 넘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니, 뭐 할라꼬 바보 팔푼이와 사노? 당장 우리 부산으로 내빼자. 내 부산 가서 큰 회사에 취직을 하면 묵고 사는 거는 걱정이 없데이.”

사내의 꼬드김에 여자는 얼마를 버티지 못했다. 둘래는 아무도 모르게 보따리를 쌌다. 박가와 통영으로 가는 배를 몰래 탔다.

 

세월이 흘렀다.

부산으로 간 둘래는 또 박가의 아이를 둘이나 더 낳고 잘 살고 있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다. 외삼촌 덕중과 함께 어선을 타며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던 청년 정해도도 그 소문을 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시 곰곰 하게 생각해보니 어머니란 여자의 팔자가 너무나 기구하다는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이제 온전한 정신이 돌아 왔을까? 아니면 예전처럼 또 정신이 나가 있을까?

그 소문을 들은 이후 한참동안은 당장 부산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만나 따지고 싶었다. 그러다 조금 세월이 흐르고 나니 남자들에게 얽매여 신세를 망친 어머니가 너무나 불쌍해 손목을 움켜잡고 돌아오고 싶었다. 씨 다른 동생 평국이와 행국이 둘을 간혹 부두나 골목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평국이는 이를 갈았다.

“성님! 내 시퍼렇게 칼을 갈아 품속에 넣고 부산으로 가서 그 연놈을 꼭 죽여뿌리고 나도 죽을끼요. 불쌍한 우리 아부지 내삐리고 도망거지 하다니! 우리 삼 남매 울도 담도 없이 컸는데 우째 어미가 돼가지고 자식들을 내삐리고 도망을 가요? 성님은 분하지도 않소?”

그러면서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정해도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속으로,

-- 그래, 그 여자는 내 어머니도 아니다! 죽든 말든 내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고 다짐했다. 외삼촌과 어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다니다 어느 날 훌쩍 통영으로 나와 화물선을 타게 되었다. 미친년의 아들, 애비 모르는 자식, 팔푼이 서방과 셋이나 되는 자식들을 내버리고 간부(間夫)와 도망친 어미······ 그런 소리가 몸서리치게 싫었다. 그래서 섬 생활을 청산하려고 육지로 나온 것이었다. 화물선을 타고서 철따라 잡히는 고기를 사러 부산 자갈치시장에서부터 전라도 목포 어판장까지 돌아다니며 몇 년을 지냈다.

 

갑판에서 목에까지 차오르는 물과 사투를 벌리기를 만 이틀하고도 한 나절.

바다는 짙은 안개로 그들을 집어삼켜 버렸고 지나가던 배들은 그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파선된 배를 발견하면 구조를 하러 달려 와야 하건만 뿌연 안개 속에 몸통만 남은 배를 멀리서 보고는 방향을 틀어 더 멀리 빙 돌아 달아나버리곤 했다. 달아나는 배 이름은 안개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귀찮아서, 아니면 갈 길이 바빠서······. 사실 난파선을 발견하고 구조하고 예인한다면 그 다음이 문제였다. 여수까지 배를 끌고 가야하고, 또 경찰서에 신고도 하고 충돌사고의 책임소재 파악을 위한 조사에 끌려 다녀야 하기 때문이었다.

“씨발 넘들! 사람이 죽을 판인데 우째 이리 무정하노!”

기관장은 못 본 척하며 멀리 달아나버리는 배들을 보고 삿대질을 하고 욕을 해댔다. 그 사이 아마 어선, 화물선 크고 작은 배들이 백 척이나 지나갔을 것이다. 나로도 근해에서 충돌했으니 고흥으로 여수로 다니는 배들이 좀 많은가?

정해도는 온 몸이 퉁퉁 물에 불어 움직이기에도 힘이 들었다. 파선당한 이후 그동안 굶어 허기가 졌지만 그는 어머니란 여자의 일생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제 살아 돌아간다면 부산으로 가서 어머니란 여자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도 하다가,

-- 지랄하네! 내가 왜 그 여자를 만나? 내게 어미도 애비도 없지! 없어!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리며 그는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했다.

이틀하고도 한 나절, 다행스럽게 완도 쪽에서 조업을 마치고 여수로 가던 어선이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와 밧줄을 던져주었다. 그러고 보니 파선한 곳에서 그들은 더 먼 바다로 정처 없이 떠내려 가 있었다.

기진맥진한 그들이 병원에 입원하고서야 다른 동료들의 소식을 들었다. 선장과 선원 조씨가 매달렸던 이물 뱃머리는 천만 다행스럽게도 나로도 쪽으로 밀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절로 육지에 닿아 구조되었고, 부서져 나간 고물을 부여잡은 박씨는 한 나절 만에 지나가는 어선에 구조되었다고 했다. 이내 통영 무역회사 사무실에 연락을 해서 하루 뒤에 구조선이 와서 수색을 했건만 짙은 해무 때문에 선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죽은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통영에서 아내가 아들놈 둘을 하나는 업고 하나는 걸리고 병원으로 와서 다시는 배를 타지 말라고 애원했다.

며칠이 지나 원기를 회복해 퇴원을 했지만 정해도의 열개의 손가락, 열 개의 발가락, 그 끝에 달린 손톱 발톱이 바닷물에 퉁퉁 불어 터지듯 빠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어디론가 빠져 달아났다. 아마 그 짙은 해무 속으로 갔으리라. ****

 

 

 

 

단편소설이 실린

<경남소설> (2011. 6호)

* 펴낸날 : 2011년 10월 30일

* 제작보급처 : 경남인쇄`출판사

* 319면

* 값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