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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스크랩] 단편소설 / 앉은뱅이 책상 / 김현우

by 남전 南田 2011. 12. 26.

 

단편소설

앉은뱅이 책상

김현우

이제 일흔이 된 홍갑출의 가슴속 저 밑바닥에는 두 가지 묵직한 돌덩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수십 년간 어획물 운반선 선장으로 일했다. 다른 사람들은 환갑도 되기 전에 선원 생활을 접고 퇴직을 했건만 그는 2년 전에야 배에서 내렸다. 특별한 대우를 받으면서 순조롭게 지내다 탈 없이 직장생활을 마감을 했으니 행운아인 셈이었다. 통영 바다 노대섬을 떠나 부산에서 살아오면서 파란곡절도 많았지만 재산을 착실하게 모아 부동산 부자 소리를 듣지는 못해도 서너 채 건물을 지니고 있어 집세만 받아도 생활에 큰 걱정이 없을 형편이었다. 그런 그에게 멍에처럼 따라 다니는 두 가지 난제가 있었다.

그에게 아들 둘이 있었는데 큰 아들 상재는 그를 닮아 키도 크고 성격도 무던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해 착실하게 제 앞가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아들 영재는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란 장애를 가졌으니 그에게는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해결이 난감한 숙제였다. 또 하나는 마음속 저 깊은 바닥에 완전히 갈아 앉아 있어 평소에는 잊어버리고 살다가 한밤중이면, 낮잠을 한숨 달게 자고난 다음이면 난데없이 불쑥불쑥 솟구치는 ‘후회랄까? 미련이랄까?’ 그런 생각이었다.

― 난 뱃놈이 될 팔자가 아니었어. 상수 할배 밑에서 일해야 했어. 그 일이 내게 꼭 맞는 것이었는데······.

수십 년간 배를 타면서 엄청난 태풍이나 무시무시한 파도를 여러 번 감당해낸 베테랑 선장이었으면서도 홍갑출은 언제나 자신이 타고난 뱃사람이란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배를 버릴 수만 있다면 버리고 당장 육지로 하선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즐겁게 살고 싶었다. 그러한 소망을 그의 마음 저 깊은 바닥에 꿍쳐 놓고 살아왔던 것이다.

― 그게 아니야! 난 타고난 뱃놈이제. 아부지도 동생도 어부고 농사꾼이고. 우리 섬사람들, 우리 친구들 대부분 고기 잡아 묵고 살제. 그러니 나도 뱃놈이제. 배 타고 바다 댕기면서 바닷바람 뱃속에 처넣고 살아 야제.

그렇게 다짐하기도 했지만 그의 의식 저 밑바닥에서 항상 똬리를 틀고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부상하는 것은 ‘나는 이 놈으 뱃일 보다 상수 할배의 일을 배워서 그 길로 나갔어야 했어.’ 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 같은 아쉬움이었다.

퇴직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어느 봄날, 그는 드디어 보따리를 쌌다. 아내보고 별 것 아니란 투로 말했지만 단호하고도 일방적인 선언을 했다.

“인자 나는 내 하고 싶은 일하러 간데이. 영재 앞으로는 2억 예금이 있으니 상재하고 며느리가 잘 보살피고 살 것이니 내 안심 푹 하고 내 하고 싶은 것 하로 갈 작정이데이. 뭐 풍찬노숙하러 가는 기 아이고······ 통영 갈 끼다. 대복이! 강대복이 알제? 상수 할배 손자 말이다. 내 손이 근질거려서 안 되겄다.”

상수 할배는 잔소리를 하기 전에 먼저 손 타령부터 시작하곤 했다.

“손이 굼뜨면 아무 일도 못한데이. 손이란 바로 니 혓바닥하고 같데이. 혀가 어떻노? 엿을 묵으면 달다 하고, 씨분 쑥을 묵으면 씹다카는 기 씻바닥 아이가?”

상수 할배는 그랬다. 손이 바로 입안에 있는 혀와 다름없으니 엿을 먹을 때나 쓴 쑥을 씹을 때 혀가 달거나 쓰거나 금방 알 듯이 나무를 손으로 만져서 젖었는지 말랐는지, 그 결이 부드러운지 단단한지 어떤지, 나무가 소나무인지 참나무인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지가 어언 4, 50년 전이건만 바로 어제인 듯 들려 왔다.

“그래야 농도 만들고 문도 만들고······ 세간 살이 만들려면 먼저 적당한 나무를 골라야 해. 나무를 손으로 만져서 쓰면 됄까 안 됄까 하고 알아야 되는 기라. 알겄나?”

상수 할배의 말이 그 해 열네 살이 되었던 홍갑출에게는 너무나 생소했다. 그래서 눈만 끔뻑거리며 대답을 못했다. 할배의 얘기를 통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어제 그제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로서는······.

“무슨 일이든 마음이 중요하데이. 마음에 없는 것은 바로 눈앞에 있어도 몰라보는 게 이치지. 그러니 니가 물건 하나를 똑 바로 만들려면 먼저 니 마음속에 그 물건이 들어와 있어야 하는 기라. 그래야 니가 만든 그 물건이 사람들에게 아낌을 받고 오래오래 간직되제. 그라니 나무를 만질 때 손이 중요한 기라.”

상수 할배 농방의 흔적을 찾아가는 홍갑출의 걸음은 가벼웠다. 할배의 그 소리를 잔소리로 치부하고 평생을 살아 왔다는 뒤늦은 후회로······. 소문을 듣자니 상수 할배는 오래 전에 돌아가시고 그의 손자 대복이가 여전히 가구점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그랬다. 통영으로 가는 배를 타는 선창에서.

“우짜든지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하능기라. 내 평생 죽어라하고 배 타고 바닥(바다를 아버지는 꼭 바닥이라고 발음했다.)을 댕기면서 게기(고기)를 잡았지만도 그것이 오데 기술이더나? 어미 뱃속부터 섬놈인 이 바닥 사람들이 고기 못 잡는 사람이 어디 있더나? 하지만도 농방 일은 바로 기술인기라. 함이나 농을 만들고 판이나 책상 만들고 경대 만드는 일이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닝기라. 그 기술 하나만 확실하게 배우놓으면 평생 묵고 사는 거는 걱정없데이.”

얼마 전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소년은 욕지도 인근 그 많은 섬들 중 하나인 그저 좁디좁은 노대섬을 벗어나 통영 그 넓은 도시로 나간다는데 넋이 빠져 아버지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했다. 넓은 세상, 번화한 거리,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 내 눈이 바라보이는 온 세상 가득 들이차 있는 크고 작은 집들······이제 나도 그곳에 살게 된다······. 아버지는 통영 강구안 부두에 내려 중앙동에 있는 외삼촌 집에 닿을 때까지 ‘절대 집 생각은 말고 견뎌내라.’고 소년에게서 다짐하고 또 다짐받았다.

“다시 집에 돌아올 생각은 눈꼽만치도 하지 말거라. 농방 일을 하기 싫다고 집으로 뺑소니쳐 오기만 하문 다리몽댕이를 분질러 버릴끼다. 알겄나?”

“예······.”

“아! 대답이 와 시원찮노? 너그 외삼촌이 바로 이웃에서 농방을 하는 상수 영감에게 사정사정해서 니가 일하게 된 거라.”

어부인 갑출이 아버지 말은 그렇지만 사실 식량 축내는 식구 하나 줄여보자는 심산도 들어 있었다. 고기잡이도 시원찮고 밭뙈기 몇 마지기 고구마 농사로는 일곱 식구가 겨울나기가 힘겨웠다. 마침 통영 중앙동에 사는 처남이 이웃에 있는 장롱을 비롯한 각종 가구를 만드는 농방에서 잔심부름이나 할 아이를 구한다기에 갑출을 보내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소년을 농방 주인영감에게 맡기고 돌아서며 주인아주머니에게 그랬다.

“내 1년에 쌀 한 가마니는 갖다 드리겠습니더. 아아를 맽기놓고 보답을 못해서야 되겠습니껴? 이넘이 키만 내 닮아서 멀쑥하게 컸지, 힘도 시근도 아직 생기지 않아서······.”

“허어! 홍 씨! 내가 요놈을 부려 먹으니까 재워주고 먹이고 입혀야지. 오히려 쌀을 갖다 주겠다니! 그럴 필요 없습니더.”

주인 상수 영감이 손을 내저으며 아버지의 말을 가로 막았다.

“아입니더, 기술을 가르쳐주는데 내가 그만한 보답을 해야지요. 고성장에 내가 자주 들락거리니까······· 가을이 되면 고성장에서 쌀 팔아서 꼭 올낍니더.”

아버지는 그러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소년 홍갑출은 그래서 농방, 요새말로하면 가구점에 취직을 한 셈이었다. 먹고 자고 그러면서 주인이 시키는 농방의 자질구레한 일을 하면 되었다. 월급은 한 푼도 없었고 어쩌다 몇 푼 안 되는 용돈이 임금의 전부였다. 주인은 그때 환갑을 넘겼는데 사람들은 상수 영감이라 불렀다. 일을 하거나 말거나 담배를 입에 물고 사는 골초였고 술도 탁주 소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마시는 술고래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농방에 들어오는 주문이 쌓이고 부지런히 물건들을 만들며 일하건만 그는 항상 돈이 궁해서 쩔쩔 맸다. 새 목재나 판재를 사 올 때면 외상으로 들여왔고 빚 독촉에 시달렸다. 아마 술값으로 나가는 돈이 수월찮았던 모양이었다. 상수 영감 농방에 일하는 나이가 서른이 넘은 보조 일꾼이 한 명 있었는데 성이 옥씨로 고향이 거제라 했는데 그 사람도 모주망태로 상수 영감과 어금버금했다. 사람들이 주인을 상수 영감이라 불렀지만 갑출이는 할배라 불렀다. 그 집에는 소년보다 나이가 적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대복이라 불리는 손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복 아버지는 농방 일은 마다하고 건축기술자로 공사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복은 학교에 다녀오면 갑출이와 놀기를 좋아했다.

갑출이가 처음 했던 일은 그야말로 잔심부름이었다. 장이나 농을 만들 나무가 수레에 실려 오면 옥씨와 함께 창고로 옮겨 쌓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늘에 말리고 있는 판자를 뒤집고 옮기고, 그런 동작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해야 했다. 주인 상수 할배나 옥씨 아재는 곧잘 무슨 연장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럴 때는 가져오라는 톱이나 대패를 찾아 득달같이 갖다 바쳐야 했다. 농방의 연장이야말로 구구각색 이름을 다 알기까지도 여러 달이 걸렸으니 갑출은 가져오라는 연장을 제대로 가져 갈 리가 만무했다.

“야, 이놈아! 대가리도 크고 키도 큰 놈이 우째 햇갈리노? 톱이 어디 한 가지 두 가지냐? 실톱도 있고 양날톱도 있고 짧은 것도 긴 것도 있고 거두(큰 톱)도 있제. 내가 무슨 일을 하다가 톱을 찾으면 그것에 맞은 것을 갖다줘야제. 그래 눈치가 없나? 잔손질 많이 하는 우리 소목들은 눈치로 먹고 살아. 대목은 누가 대목인줄 아나?”

상수 할배의 타박이 아닌 가르침에 갑출이는 목을 빼며 대답했다.

“대목을 왜 몰라예? 집 짓는 사람이 대목이지예.”

“맞다. 우리 같이 세간 살이 만드는 목수들을 작은 목수라고 소목이라 카고 집을 짓는 목수는 큰 목수라고 대목이라 카는 기라. 우리는 톱하고 대패가 없으면 일을 못하고 대목은 큰자꾸(대자귀)하고 먹줄통 없으면 일을 못한다는 소리가 있제. 그라니 갑출이 니도 이 일을 잘 배울라문 대패, 톱, 끌 같은 연장을 잘 다루고 간수를 잘 해야 묵고사는 기라. 알겄제?”

“예······.”

대패질을 연습 삼아 해 보기는 댓 달이 지나서였다. 그것도 주인 영감이 없는 틈을 타 옥씨 아저씨가 대패 잡는 법과 당기고 미는 요령을 두어 마디 가르쳐 주면서 해 보라고 했다.

“우리 목수들은 뭐라 뭐라 캐도 대패질을 잘 해야 대접받는데이. 처음에는 살살 당겨야 하제. 대팻밥이 많이 묵으면 힘이 들어 안 되고, 매끄럽게 깎이지도 않는다.”

톱질은 대패질보다 쉬웠다. 쓰다 남은 1치 짜리 각목을 따로 모아뒀다가 그것을 잘랐다. 주인 영감이나 옥씨 아재가 사용하는 톱은 아예 건드리지 못하고 오래 써 버려둔 낡은 톱으로 연습했다. 톱질이란 요령도 있어야 하지만 힘이 좋아야 했다. 밀고 당길 때 힘을 주어야 되지 ‘설렁설렁 톱질’이란 있을 수 없었다. 농방이 어떤 곳인가? 소나무 밤나무 같은 좀 무른 통나무도 있지만 대체로 괴목(홰나무), 느티나무, 참죽나무, 오동나무, 은행나무, 참나무 등등 재질이 단단하고 마르기만 하면 뒤틀리지 않는 목재들로 가구를 만드는 곳이 아닌가? 그러니 단단한 판재나 각목을 톱으로 자르자면 힘이 들었다. 힘차게 당기고 밀면서 미리 그어 놓은 연필 금을 따라 눈곱만큼도 어긋남 없이 잘라야 했다.

갑출은 어린 시절 자주 자새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갑출이가 만든 자새를 보고,

“잘 만들었네. 그런데 니 동생이 만든 자새는 영 아이다. 금방 부싸질 듯한데 니 것은 참 야물게 만들었구마. 손재주가 있구마는.”

하고 칭찬을 해 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갑출은 상수 농방에 온 후 얼마 지나자 농이나 장을 만들고 남은 부스러기들을 모아 자새를 만들어 보았다. 그것이 상수 영감 눈에 띄었다.

“이기 뭐꼬? 연줄 감는 자새가 아이가? 니가 만들었나? 아이문 옥씨 보고 만들어 도라캤나?”

“할배예, 지가 만들었어예.”

상수 할배는 자새를 요리조리 꼼꼼하게 살피더니,

“손재주가 있구마! 우리 같이 이런 일 하는 사람은 손이 보배데이. 손어림이 짐작이라고 손대중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는 기라. 사개짜임이고 쪽짜임이고 아무리 자를 갖다 대고 재고 그리고 하지만도 그보다 먼저 눈대중이고 손대중인기라. 눈으로 한 분 척 쳐다보고 손으로 가늠 잡아 척척 만들어 갖다 끼어 맞추면 단번에 맞아 떨어져야 그기 기술자고 장인(匠人)인기라. 알겄나?”

“할배가 가르쳐 주면 지금이라도 책상 같은 거는 만들겠습니더.”

“허허! 농방 일을 1년도 안 한 넘이 무슨 소리를 하노? 아직 멀었데이. 옥씨 한테 대패질이나 똑똑하게 배우고 끌질이나 확실하게 배워야 하는 기라. 뭐를 배우든지 일이란 밑바닥이 잘 땍기야 되는 기라. 겉멋 같은 바람이 들면 안된데이. ”

“예······.”

“손놀림을 보니 몇 년 안 있으면 옥씨 만큼 될 것 같데이. 꾀부리지 말고 일을 열심히 배워라! 그라면 일류가 되지.”

갑출은 통영 농방에 와서 처음 만들어본 자새를 잘 보관했다가 노대 집으로 가면 동생 을출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작업장에 나와서 놀던 할배의 손자 대복이가 자새를 탐내기에 다시 만들기로 작정하고 선뜻 줘 버렸다.

“정말 나에게 주는 거야? 고맙데이.”

“내야, 또 만들면 안 되나?”

자새를 선물하는 바람에 대복이와 더 가까워졌다. 대복이는 제가 먹을 과자나 빵을 곧잘 갑출에게 내밀곤 했다.

 

3년이 지났을 무렵, 난데없이 배를 타고 다니던 삼촌이 상수 농방에 나타났다. 삼촌은 전진호라는 어물 운반선의 기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삼촌은 농방 안을 한 바퀴 휙 둘러보더니,

“갑출아! 보따리 싸거라. 섬놈이 도방에 나와 이기 무슨 짓이고? 낯이 하얗게 돼 가지고····· 계집애도 아이고 사내가 되어·····.”

하고 뜬금없는 소리부터 먼저 했다. 갑출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대답을 않고 섰는데 삼촌은 농방 주인 할배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더니 갑출이를 데리러 왔다고 말했다.

“나이가 열 일고여덟살이 됐는데 농방 일을 해서야 장래 뭐 하겠소? 나는요·····큰 배를 몰고 다니는 기관장인데 내가 타는 배에 조카를 같이 데리고 있을라 캅니더. 성님하고 의논을 다 했응께. 데불고 갈라꼬 왔심더.”

상수 할배는 삼촌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기가 막혀 미쳐 말을 하지 못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담배부터 피워 물더니 불쑥 말했다.

“델꼬 갈라카마 델꼬 가이소! 장래가 뭐시라? 이 기술도 앞으로 제일로 장인 대접받을 날이 올 것이고만!”

“허어! 영감님도······ 이때껏 데불고 있어준 것 고맙지요. 하지만도 우리 집안은 대대로 배 타고 고기 잡고 살아왔으니 갑출이도 당연히 뱃놈이 되어야 하는 기 아이겄소? 농방일을 배와서 나중에 농방을 차릴깝세 무슨 큰 돈을 벌겠소? 보아하니 영감님 사는 것도 별로 넉넉한 것 같지는 않은데······ 어리버리한 갑출이 대신 차라리 실한 일꾼 한 사람 새로 구하시이소.”

“갑출이가 온지 3년이 되어 제법 제 밥값은 할 만치 일하고 있구만. 대패질도 끌질도 잘하고 이젠 가르쳐 주지 않아도 척척 제 할 일 찾아 일하게 됐는데! 그냥 우리가 데불고 있으면 안 되겄소? 인자 월급도 많이 줄 작정인데······.”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하는 할배 대신 옥씨가 나서서 삼촌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삼촌은 완강했다. 바다 바람에 그을린 시커먼 얼굴이 더욱 고집스럽게 보였고 키가 180cm나 되며 어깨가 떡 벌어진 체구여서 그런 삼촌을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 정도였다. 물론 갑출이 아버지도 삼촌만큼 키가 컸고 갑출이도 이제 삼촌처럼 키가 커졌다. 그런 거구의 삼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때껏 거두어 준 것 고맙다꼬 안 하요? 하지만도 내가 데려가 뱃놈 만들겠다는데 누가 시비를 할라카요?”

우락부락 눈을 부라리며 성난 표정이 되자 옥씨도 뒤로 물러나 앉았다. 상수 할배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부스럭부스럭 연장들을 이것저것 주워 모았다. 그러더니 돛베 가방에 그것을 담아서 갑출에게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거라. 니는 손재주가 좋아서 앞으로 좋은 목수가 될 줄 알았는데······그기 아이구나. 어디를 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심히 해야된데이.”

상수 할배는 더 말도 없더니 갑출이가 옷 보퉁이를 들고 나서기 전에 그 꼴 보기 싫다면서 술집으로 가 버렸다. 상수농방 문을 나서니까 중학교에 다니던 대복이가 부둣가까지 따라 왔다. 할매도 서운해 하고 옥씨도 섭섭하다면서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술 많이 마시는 할배가 못내 걱정이 되어 갑출은 대복에게 주제넘은 말을 했다.

“앞으로 니가 할배 일 거들어 주거라. 너그 아부지가 농방 기술 배우지 말라캐도 니는 할 배 일 배워서 일류 기술자가 되거라. 인자 뱃머리 다 왔으니 그만 집에 가 봐라. 할배 술 많이 잡숫지 못하구로 해레이.”

“알겠데이. 나도 할배하고 일하면 재미있더라. 자주 놀러 오거라. 니는 인자 마도로스가 되면 기분 좋겠다. 마음대로 오대양 육대주를 댕길 수 있으니······.”

선창가까지 따라 나오면서 대복이는 서운해 했다.

 

전진호 기관장 삼촌을 따라 배를 타게 되면서 갑출은 노대섬 집에 자주 들리지 못했다. 전진호가 부산에 회사를 두고 있는 미래해운 소속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살아야 했다. 삼촌이 사는 하숙방에 함께 살면서 전진호에서 일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정말 허드렛일이었다. 갑판을 청소하거나 기관실이나 기계들을 깨끗하게 닦으면 밥도 주고 월급도 주었다. 어물 운반선이란 먼 바다로 나가서 조업하는 미래해운의 배들을 찾아가서 일주일이나 10여 일 그물을 쳐서 잡은 어획물을 옮겨 실고 부산 자갈치 어판장으로 돌아오는 게 주된 일이었다. 그러므로 회사에서 어느 곳으로 가라고 지시가 내리기만 하면 달려가서 어물을 실고 오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배를 부두에 정박해 놓고 기관을 수리하든지 고기상자를 잘 쌓아 놓는다든가 어창(魚艙)을 말끔하게 청소를 하는 등 대기상태로 있어야 했다. 자연히 부두에 정박해 있을 동안은 생활이 자유롭고 여유가 있었다.

“갑출이 너는 그냥 놀아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는 공부를 해야지. 앞으로 배를 계속 타려면 해기사 무슨 면허증이 있어야 하는기라. 해양고등학교 나오면 기관사나 항해사 면허증을 준다 카지만 지금 고등학교 갈 수도 없고······· 그래서 학원에 댕겨야 하는 기라. ”

“학원요?”

“그래, 부두에 배 대 놓고 쉴 때는 학원에 다닐 수 있으니······· 공부 해 보겄나? 주경야독이란 말이 있데이.”

갑출이는 그래서 항해사 면허를 딸 수 있게 가르치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이 스물이 되니 입영을 위한 신체검사통지서가 나와 신체검사를 할 즈음 그는 비록 낮은 등급이었지만 항해사 면허를 받게 되었다. 삼촌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주경야독이었고, 월급을 받으면 저금해야 된다고 다짐했다. 혹시나 게으름을 부릴까 재촉하가를 늦추지 않았고 감시도 엄중했다. 그 덕에 항해사 면허를 따기 위한 노력이 쉽게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사람의 운이란 점치기 어려운 것인가? 신체검사에 갑종 합격을 받았는데도 소집영장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변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이 하나 둘 입영을 하였다가 제대를 하는데도 그에게 입영통지서가 날아오지 않았다. 그게 갑출에게는 행운이었다. 항해사 면허는 6급에서 1급까지 있는데 처음에 6급 항해사 면허의 취득은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5톤 이상 선박에서 선박운항으로 2년 이상 승무한 경력이 있거나 100톤이상 선박을 1년 이상을 승무한 경력이 있을 경우 발급받을 수 있었다. 군대에 가지 않고 계속 배를 탈 수 있었으므로 그 경력이 쌓이니 자연히 착착 상급의 항해사 면허를 딸 수 있었다. 만약 입영을 했더라면 승선할 수 없게 되니 경력이 쌓이지 않았을 것이고 5급이나 4급 면허를 취득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친구들이 제대를 하고 오고 난 몇 해후인 1970년에야 그에게 영장이 나왔는데 그 당시 최초로 시행되었던 방위병 1기로 복무하라는 것이었다. 아마 그 당시 입영할 청년들은 많은데 그가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 섬 지역 청년이었기 때문에 밀리고 밀려서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결국 나이가 많아져 현역복무를 하기에는 적합지 않다고 판정된 것인지 현역에서 제외돼 방위병 소집영장이 나왔는지도 몰랐다. 방위병으로 복무하는 동안 배를 탈 수 없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방위병 근무라는 게 3년 세월을 축 내는 것 외에는 남아나는 것이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상급 항해사 면허 취득을 위한 공부를 계속했는데 세월이 조금 지나자 어린 시절 통영에서 보냈던 농방 일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한번 통영에 나가는 틈이 있어 상수 할배 농방을 찾아가니 손자 대복이가 농방 일을 하고 있었다.

“할배는 인제 나이를 많이 잡수셔서 일을 통 안하시고, 옥씨는 독립을 해서 고성에 농방을 채리고 나갔데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할배 일을 거들었제. 내 머리가 대학교 갈 실력이 되어야지. 아버지도 최근에야 가구점 일을 거드는데 주문이나 받고 배달이나 하시는 편이고 일은 내가 일꾼들을 데리고 하고 있데이. 간혹 할배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잘 됐다. 니가 할배 일 받아서 차고 나간다니 참 기특하다. 내가 할배 밑에서 일을 배웠으면 참 좋았을 낀데 그라지 못해 영 마음이 늘 안 좋았어. 할배는 안 보이네?”

“할배는 요새 술집으로 경로당으로 다니시며 소일하지. 건강이 영 안 좋아서 농방에 자주 안 나오시고······우짜다가 나오시면 내가 만든 물건보고 맨날 잔소리만 하신다. 손놀림이 둔하고 나무 만지는 재주가 빵점이라고······· 하하하.”

“하하하! 여전히 손 타령이구나.”

농방이 이제는 ‘상수 가구점’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다. 한참 기다렸지만 할배는 오시지 않았고 욕지도로 돌아가는 배 시간이 되어 결국 만나보지 못하고 대복과 헤어졌다.

갑출은 노대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통영 부둣가에 버려진 헌 장롱을 발견했다. 지나치려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그것을 어깨에 둘러맸다. 별로 크지 않은 것이었지만 천판(天板)이 느티나무라 제법 무게가 나갔다. 그걸 가지고 배를 타니 사람들이 웃기도하고 궁금해 하기도 했지만 그는 시치미를 뚝 따고 장롱 위에 앉아 멀어지는 강구안에 정박한 배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집으로 그것을 가져오자 조심스럽게 분해하기 시작했다. 낡은 장롱이었지만 목재는 아직 쓸 만하였다.

“그거 뭐 할라꼬 가져 왔노? 길가 내삐리 놓은 거 불쏘시개나 할 꺼로!”

아버지를 따라 고기도 잡고 고구마 농사를 짓는 동생 을출이가 궁금해 했다. 어머니와 누이동생들도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표정들이었다. 갑출은 동생의 질문에 웃음으로 대답했다.

“두고 보라모! 뭐가 되는지!”

“허허! 신나는 모양이네! 손 노락질 장난이나 할라꼬! 똥방위 선다꼬 집 농사일이나 뱃일은 통 안하면서!”

“아! 두고 보라모! 이기 뭐가 되는지! 알겄나?”

아버지도 갑출이의 어이없는 행위에 더 토를 달지는 않았지만 면사무소에 가서 방위 근무를 하고 퇴근해 와서는 밤낮으로 똑딱거리는 망치소리에 못마땅해 하며 혀를 자주 찼다. 면사무소를 가고 오는 사이사이에 길가에 버려진 농이나 판 같은 고물 가구가 있으면 주워 왔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쓸 만한 나무토막이면 소나무든 참나무든 주워 모았다. 면사무소 창고에 있는 소나무 각목도 몇 개 얻어 오기도 했다. 그것을 톱질해서 각재로 다듬기도 했다.

“송신해서 살겄나? 밤낮주야로 똑딱거리니! 저거 무슨 똑딱 귀신이 씨였나? 뱃놈이 할 짓은 안하고……. 배에 가서 발동기나 손 좀 봐 줄 것이지!”

아버지가 그러거나 말거나 갑출은 신경 쓰지 않고 낡은 장롱을 분해한 목재를 열심히 대패로 밀고 톱으로 자르고 끌로 홈을 파고 사포(砂布)질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바다에 해무가 가득한 아침, 갑출이는 며칠을 똑딱거리며 만든 물건을 마당 한가운데 갖다 놓고 동생들을 불렀다.

“한번 와서 봐라! 내가 뭐를 만들었는지!”

동생들이 우 나왔다. 을출이가 물건을 보자마자 김빠지는 소리를 했다.

“이기 뭐꼬? 앉은뱅이 책상 아이가? 아이고! 예전에 농방에 일한 거 푯대 내는 기가?”

“정말! 앉은뱅이 책상이네?”

“어머, 예쁘게 만들었네? 오빠! 내 줄 꺼제?”

여동생들은 신기해했다. 갑출은 우쭐해 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팔아 묵을 끼다. 벌써 살 사람을 찾아 놨다. 면사무소 총무계장이 즈거 아들준다꼬 했지.”

“어어! 누가 이거를 산단 말이고? 형편없는 거를!”

을출이는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고 여동생들은 제게 주지 않는다고 삐치고 비아냥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갑출은 앉은뱅이 책상을 총무계장 집으로 져다주고 책상 값을 받았다, 김 계장은 갑출이가 만든 책상을 보고 칭찬을 아낌없이 했다.

“만들기도 잘 만들었고 칠도 참 곱게 했구만. 이런 손재주를 썩혀서 우짜노? 뱃일보다 가구 만드는 기술자가 되면 큰돈 벌겠는데?”

갑출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삼촌이 저는 뱃놈 묵기랍니더. 키가 크고 몸집도 큰 머스마가 잔작스럽게 톱질하고 대패로 밀고 홈을 파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답니더, 사내는 배 몰고 바다에 나가 오대양 육대주를 누벼야 된다 카는기라요.”

“내가 느거 삼촌 성질을 잘 안다. 그런 뱃놈 기질이 니 삼촌한테 있제. 하지만 책상 만들어 온 걸 보면 니 손재주가 너무 아깝다. 통영 가구가 얼매나 이름이 났노? 자개 칠기도 최고고 통영판도 소문이 났고 말이다. 니가 있었던 상수 영감 농방 농도 전국에서 몇 등째 가는 이름난 물건이라고!”

“그래예? 요새는 그 손자가 일을 배운답니더. 이름이 대복인데예 내보다는 몇 살 아래지예.”

“아마 그 손자가 장인 할배 만치 기술이 좋을란가 모르겠지만도······ 니가 상수 영감 농방에 쭈욱 일하면서 배웠으마 지금쯤은 최고 기술자가 되었을 끼고 장래 이름 날리는 일류 장인이 될 꺼로······.”

갑출은 김 총무계장의 말이 알량한 앉은뱅이 책상 하나를 받고 덕담삼아 하는 칭찬으로 여겼다. 그는 그 후에도 길가에 버려진 장롱이나 판, 상들을 주어서 집으로 가져 오면 어김없이 앉은뱅이 책상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공짜로 주는 법 없이 얼만가의 돈을 받고 이웃에 팔았다. 갑출이의 책상이 욕지도 인근 섬마을에서는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만든 것이란 평판이 널리 퍼졌다. 그 당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버려지는 가구라면 으레 판재와 각재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합판을 사용해 가구를 만드니 세월이 지나 습기가 배고 낡으면 재활용을 할 수 없는데 예전 가구들은 기본적으로 목재였으니 재사용이 가능했다.

 

방위병 복무기간이 끝나자 갑출은 미래해운으로 복직했다. 그는 삼촌의 주선으로 당당하게 선장 다음 가는 자리로 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톤 수가 적은 소형 운반선의 선장이 되었다. 크게 낭패를 본 적도 있었지만 그의 선원생활은 대체적으로 평탄했다.

크게 낭패를 본 적은 일본에서 갓 들여온 새 운반선을 몰고 어물을 받아 실고 돌아오다가 울산 앞에서 암초에 걸려 좌초했을 때였다. 안개 속에서 풍랑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바로 섬 가까이 있는 암초에 걸린 것이었다. 조난 신호를 보내고 선원들을 하선시킨 다음 마지막으로 그도 배를 버렸다. 배는 암초에 걸려 물속으로 갈아 앉았지만 수심이 얕아 그 후 쉽게 인양할 수 있어 회사에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파면이나 다름없는 조치를 받아 선장 일을 하지 못하고 1년여를 쉬기도 했다.

환갑 진갑 지나고도 배를 탔다. 사장이 갑출이가 선장 임무를 잘 해 낸다는 것을 알고 베푼 특별 배려였다. 크고 작은 사고들이 그 많은 세월 사이에 있었지만 파도를 넘고 나면 또 다른 파도가 온다는 걸 깨우친 갑출은 잘 견디어 냈다.

다만 술을 끊지 못했다. 한이 맺히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아들이 둘이었다. 장남 상재는 멀쩡한데 둘째 아들 영재는 뇌성마비였다. 특수학교에 보내기 싫어 성한 아이들이 다니는 일반 초등학교에 보내 차별 없이 자라게 하려 애썼다. 용한 병원이라고 소문이 난 곳이라면 원근을 불문하고 어디든 아이를 데리고 찾아다니며 치료에 힘썼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지능은 영 늘지 않았다. 스물이 넘어도 겨우겨우 한글을 이해할 정도였다. 갑출은 장애아들을 돌보는 기관을 찾아다니며 하소연해 취직을 시켰다. 빵공장이었다. 영재가 배운 것은 빵공장에서 밀가루를 반죽하는 일이었다. 저녁에 퇴근해 오는 아들의 얼굴이나 옷은 온통 하얗게 밀가루 분칠이 되어 있었다. 성한 사람이 월급을 100만원 받는다면 영재는 50만원도 채 안되었다. 그런데도 갑출은 사장에게 찾아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어쩌다 빵공장 근처에 갔다가 사장이나 사원들을 만나면 데리고 있어주어서 고맙다고 절을 했다.

“허어! 우리 공장 사원들 중에 영재와 같은 형편이 여럿 있는데 다들 제 맡은 일은 잘 합니다. 너무 걱정마십쇼.”

“우짜든지 미거한 자식을 데리고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일하도록 해 주십쇼.”

영재는 빵공장에 가기 싫다는 말없이 꾸준히 다녔다. 몇 해를 다녀도 영재는 다른 일을 하지 못했다. 만날 밀가루 반죽하는 일이었다. 갑출은 영재가 받아오는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했다. 한이 맺혔다. 길거리에서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아들 또래의 청년들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어도 어디서 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가슴에 맷돌 하나를 항상 매달고 살아야 했다.

 

“이, 이기, 누고? 갑출이 성님 아잉교?”

대복이는 반색을 했다. 대복이는 상수 할배처럼 머리가 허옇게 되어 있었다. 4, 50년 세월 지나간 일들을 서로 주고받은 후 갑출은 느닷없이 떼를 쓰듯 말했다.

“내 앉은뱅이 책상 만들러 왔데이. 동생 니가 할배한테서 착실하게 배워서 인자는 무슨 문화재 장인이라매? 좀 가르쳐 다오. 아, 아이다! 내 50여 년 배 타고 댕기면서 내 마음속에 그려둔 모양이 있데이. 그거를 만들끼다.”

대복은 그게 무슨 뚱딴지 얘기냐고 되물었다.

“성님! 무슨 소린교? 난데없이 앉은뱅이 책상이라니요? 요새 누가 그거를 씁니까? 으리으리하고 커다란 책상을 쓰지. 의자가 딸린······. 내 보고 만들어 달라꼬 하능기 아이고······ 성님이 직접 만들어예?”

“하모! 내가 만들끼다. 예전에 할배가 내게 주신 연장 하나도 내삐리지 않고 50년을 간수해 왔는데, 이 분에 가져 왔다. 그거를 가지고 만들어 볼끼다. 니 일에 방해 될까봐 날 쫓아 내지만 말아다고.”

대복이는 그제야 갑출의 의도를 알았다는 듯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서열로 따지면 성님이 할배 수제자 아닌교? 이 상수공방이 우째 할배 수제자를 배척하겠습니껴? 내 제자들을 닦달해서 성님 공방 당장 마련해 놓으라고 할께예. 그라고 무슨 연장이든지 이 안에 있는 것이면 마음대로 쓰이소.”

“아이다! 이 뱃놈이 한 길을 걸어온 소목 장인 강대복 선생 제자가 되어 내 하고 싶은 거, 만들고 싶은 거 만들끼다.”

갑출은 대복이의 거리낌 없는 환대에 감격했다. 그는 상수 할배로부터 받았던 연장 돛베가방을 열고 그날 저녁부터 앉은뱅이 책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가 만드는 그것은 매일 밀가루 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영재와 닮았으리라. ****

 

 

 

 

  소설이 실린

 

경남문인협회 계간지

 

   <경남문학>

 

   2011년 겨울호(97호)

 

* 발행일 : 2011년 12월 15일

 

* 제작보급처 : 도서출판 경남

 

* 값 10,000원

 

 

출처 : 창녕문협
글쓴이 : 남전南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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