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남전과 함께
소설

[스크랩] 김현우 단편소설 / <유기(遺棄)>

by 남전 南田 2011. 3. 5.

단편소설

유기(遺棄)

김 현 우

 

정수동은 별로 춥지도 않은 초겨울인데도 한기가 들어 몸을 부르르 떨며 대문간을 들어섰다. 그가 결행하고자 하는 일 때문에 긴장한 탓이라 생각이 들어 한 번 더 마음을 추스르며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아부지! 아부지?”

안방에 들어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아버지가 들으라고 그는 일부러 보통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아들의 소리에도 기척이 없었고 방문조차 열지 않았다.

“이 노인네가 귀가 멀었나? 아니면 편히 주무시나?”

아버지는 요즘 들어 기력이 확 떨어지고 말소리도 작아졌고 기동도 더욱 불편해졌다. 모두 혼자서 집을 지키며 살기 때문이라고 정수동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의 고향 마을 갑을은 자굴산 자락 골짜기 맨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요즘에는 갑을 골짝에서 가례를 거쳐 의령으로 오가는 버스가 하루에 여섯 번 있을 뿐이어서 그게 없으면 노인네들이 출입하기에도 힘이 들었다. 읍내 택시를 부르면 되지만 돌발 사태나 위급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도 힘들었다. 경제적인 여건도 여유도 없었지만 늙은이들에겐 옛날이나 지금이나 택시 타는 것은 사치이고 고급스런 일이었고 몸에 배지 않은 낭비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아, 사람이 온 기척이 들리문 문이라도 좀 열어 보이소.”

정수동은 성큼 마루에 올라서며 또 한 번 큰소리를 내서 아버지를 찾았다. 그제야 방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 돌아가시지는 않았구먼······.’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는 방문을 열었다. 방문은 찌그덕 소리를 냈다. 돌쩌귀가 닳고 녹이 쓴 모양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창호지가 발린 문짝마저 삐뚜름하게 찌그려져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

“아침이나 자시고 누부계시능교?”

아버지는 누워있었다. 아들이 방에 들어섰음에도 누워있는 그대로 멀뚱하게 쳐다만 보았다.

“방이 와 이리 찹소? 불 좀 활활 때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와 기름 애낀다고 이 고생입니껴? 정말 이번 겨울을 이 골짝에서 어떻게 보내겠습니껴?”

“·······.”

“퍼떡 일어나이소. 오늘 내하고 읍내 나가서 목욕이나 하입시더.”

“목욕은 무신······.”

“아! 퍼떡 일어나라 칸게 네요! 오늘은 아부지 목욕시키고 이발도 시키고 그랄라꼬 내가 왔구마는.”

“니는 좀 어떻노?”

아버지는 도로 자식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정수동은 중풍으로 쓰러진지 2년이 되었다. 집짓는 건축 일 또는 도로 공사판에서 철근 일을 수십 년 해 왔으나 2년 전부터 그 일도 못하고 있었다. 그는 철근 기술자로 공사판의 철근 일을 하청 도급으로 떼어 어떨 적에는 열 명, 아니면 대 여섯 철근공을 데리고 다니며 일했기에 사장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하루 새벽, 어지럽고 몸이 떨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 인근의 작은 병원이었다. 아내가 연락을 했던지 동생 수환이가 급하게 달려오더니,

“큰 병원으로 가입시다. 여기서는 돈만 들고 제대로 진단 받기 힘듭니다.”

하면서 응급조치만 받고 곧바로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큰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여러 가지 검사와 사진을 찍어 대드니 중풍이라 하였다. 3개월간 입원을 해야만 했다. 아프기 전에 맡아 진행하던 공사를 다른 사람에게 부득불 넘겨주어야 했다. 병원에 누워 일을 진행할 수도 없었다. 정신이 흐리멍덩해져서 계산이 되지도 않았고 기억마저 희미해져 받아야 할 공사대금도 얼마를 받았는지 철근 대금을 얼마나 정산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석 달 후에 퇴원을 했지만 오른 팔, 오른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살이 내 살 같지 않았다. 손바닥이나 팔의 감각이 남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철근 일을 계속한다는 것이 힘들겠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몇 전에 그의 밑에서 일했던 인부들이 병문안하러 집에 찾아 와서 다시 일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 젓고 말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정신도 온전치 못하다는 걸 자신이 확연히 알고 있는데 일을 벌인다는 건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퇴원을 했어도 아직 더 조리를 해야 한다는구먼. 다시 일하게 될지 어떨지 나도 모르겠어. 그러니 너희들도 다른 오야지 찾아가서 일하게. 내 팔다리가 움직일 만하면 통지할게. 영 팔이나 다리가 옛날 같지가 않아.”

그는 그 후 다시 공사판 일을 하지 못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장비들도 헐값에 처분해서 치료비에 충당하고 말았다.

그는 공사판을 떠돌며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십 여년 전 친구 빚보증을 잘못서서 일시에 집이고 뭐고 재산을 송두리째 날렸다. 그 이후 돈을 좀 벌었다 싶어도 쓰임새가 많아서였는지 환갑이 지나도록 전셋집만 전전하며 제대로 자기 집을 지녀본 적이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내와 악착같이 벌어 저축해서 집을 장만하기로 부부간에 언약을 하고 절약에 또 절약하면서 집 살 돈을 모으고 있었다. 최근 건설붐으로 하청 받은 철근 공사일도 제법 이익이 남아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래서 모인 돈이 3천만 원 정도 되어 지금 사는 집 전세금을 뽑으면 자그만 단독주택이라도 사리라 꿈을 꾸고 있었다. 간혹 길가에서 ‘교차로’ 같은 정보 광고지를 뽑아 훑어보며 은행에 예금돼 있는 돈과 견주어 보는 것이 최근에 그가 누리던 낙이기도 했다. 그런데 중풍이라니! 그의 꿈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정수동은 낙망 속에 희망을 잃고 살았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관절염으로 고생을 해 왔는데 몇 년 전부터는 거의 기어 다니는 형편으로 병세가 악화되었다. 무릎 수술도 했다. 그러나 호전되지 않았다. 팔순이 넘고 보니 허리까지 쓰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용하다는 소문이 난 신경외과나 정형외과를 여러 곳 찾아다니며 입원 치료를 반복해서 받았지만 병세는 점점 악화돼 결국은 기동을 하지 못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형제들이 어머니를 병원에 장기적으로 입원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은 그가 병원에서 퇴원했던 직후였다. 여동생이 집에 갔더니 살림이 엉망이더라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조석을 끓여먹는 것도 힘들어하고 거기다 정신이 가물가물 오락가락 하더라고 걱정을 했다.

“아무래도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야겠어요. 요새 노인들을 위한 노인요양병원이라는 데가 생겨 입원비도 적다던데······.”

정수동은 여동생의 걱정에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자신이 병중인데 어머니 걱정까지 할 여유가 없었다. 아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는데 여동생은 서운하다며 돌아갔다. 서너 달이 지나서 그가 고향 마을을 찾아 갔을 때 너무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흔 살이 넘은 아버지가 밥을 한다고 부엌에 들락거리고 어머니는 정신마저 놓은 채 시체처럼 안방에 누워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정수동은 정신이 번쩍 났다.

-- 내가 이러고 있다간 부모 봉양을 잘 못하는 불효자가 되겠구나. 이래가지고는 당장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생겼어. 내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그는 그날로 형제들을 불러 모았다. 그가 장남이니 그 아래로 남동생이 둘, 여동생이 셋이나 있었다. 그렇지만 형제들은 걱정을 하면서도 선뜻 입원비를 부담하겠다든지 부모 봉양을 책임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형님! 이대론 안 됩니다.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지요.”

“그러면 이 집에 아버지만 혼자 계시게 되는데 누가 조석을 끓여 드릴끼고?”

“·······.”

“어머니가 조석을 못해 드리면 누가 대신 그 일을 해야 할 낀데 누가 그걸 감당하겠노? 누구라도 반찬을 해 날라야하고 살림도 살아야 한단 말이다. 내가 중풍만 안 들고 건강하면 사흘드리 마산서 갑을꺼징 댕기면서 할 수 있을 낀데 인제는 내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으니 그랄 수도 없고 말이다.”

동생들은 그 말에 대답이 없었다. 각자 자기 생업이 있고 먹고 살기에 바쁘니 전적으로 부모 봉양에 매달릴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정수동은 너무나 답답해서 그동안 떼었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던 것은 그 무렵이었다. 결국 결단은 그가 내려야 하고 병원 입원비나 홀로 처진 아버지 봉양도 그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 확연해 졌다.

“그라면 어머니를 입원시키자. 마산에 노인들을 위한 시립병원이 있다니 그곳에 알아보고······. 아버지는 느거 형수가 반찬을 해다 나르지 뭐. 아버지가 밥은 할 수 있다니까.”

“요새 밥이야 전기밥솥이 있으니까 간단하지요. 우리도 자주 국도 끓여오고 반찬도 해오지요.”

제수들이나 여동생들이 이구동성 그를 안심시키는 소리를 했지만 입에 발린 헛소리 같았고, 한 달에 얼마씩 경비를 부담하겠다는 말은 끝내 동생들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 내가 정신을 차려야지! 빨리 건강을 회복해 돈을 벌어야 해.

어머니를 시립요양병원에 입원시키고 나오면서 그는 각오를 단단히 굳혔지만 제 마음 먹은 대로 건강이 좋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팔과 다리의 마비 증세가 남아있고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으러 다녔지만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그는 절망하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기도 하였지만 한번 기울여진 가세는 회복의 기미가 없었다. 그는 담배를 피워댔다. 어쩌다 소주도 한 잔 마셨다. 아내가 난리를 쳤다.

“병원 의사가 뭐래요? 술 담배는 절대 하지 말라꼬 그랬는데! 우째 이래요?”

“만사가 잘 안 풀리니 그라제. 어머니 병원비가 한 달에 5, 6십만원 들어가는데 요놈의 동생들이 내 몰라라 하니 우째 내 속이 편하겠노?”

“다 제 살림 급한 것만 아니까 그렇지요. 그래도 조금 기다리면 목돈 들고 올지 모르지요.”

“내가 집 살라꼬 모아둔 것 야금야금 축이나니 내가 안달을 안 하게 생겼나? 인자 집 사는 것도 틀맀고 갑을 고향집에나 가서 살까?”

“뭐라카요? 우리가 그 골짝에 가서 살면 누가 생활비를 번단 말이요. 마산서 살아야 큰 애가 회사에 다니고 내가 이곳저곳에 다니며 날일을 해서 품삯이라도 벌지, 촌에 들어가 살아보소. 어디 돈 한 푼 벌수 있능가!”

아내의 반박에 정수동은 할 말이 없었다. 다 제 잘못인 것이다. 내 마음과는 달리 헛노는 손발 때문에 공사판 일도 할 수조차 없으니 누구를 원망한단 말인가?

정수동은 운전을 배우지 않았다. 평생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젊어서부터 오토바이를 멋으로 타고 다녔기에 건설현장에 다니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좀 멀리 공사판에 갈 때는 봉고를 몰고 다니는 인력사무소 황가의 차를 이용했다. 조금도 불편한 것이 없으니 농사꾼들조차 트럭을 타고 다닌다는 이 세상에 운전을 배우지 않고 환갑 진갑을 넘겼고 드디어 중풍으로 쓰러져 손발이 말을 안 들으니 오토바이를 끌고 다닐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러니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교통 불편이 이제는 현실감 있게 닥쳐 들었다. 병원에 가자면 시내버스를 타야하고 그게 제 시간에 오지 않으면 택시를 탔다. 고향에 가자면 역시 버스를 타야하고 출발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불편이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대부분 의령에 내리면 고향 마을까지는 택시를 타기 일쑤니 교통비가 많이 들었다.

― 운전이라도 했으면 이 고생은 덜할걸. 운전대 잡기가 한결 쉬울 텐데. 면허증이라도 따 놨으면 승용차를 몰고 다닐 수 있었을 거야.

뒤늦은 후회였다. 교통비가 많이 드니 혼자 고향마을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 가는 게 쉽지 않아 처음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다니던 것이 점점 뜸해 지기 시작했다. 제 자신마저 중풍으로 불편한데 아버지를 찾아 가고 교통이 불편한 외딴 곳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면회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는 한동안 기력을 못 찾고 더 병이 악화되는 듯했다. 평생을 살아온 집을 등지고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병실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던 것이었다. 집에 돌아가겠다는 의사 표시는 차마 못하지만 온전한 정신이 돌아올 때는 혼자 조석을 끓여 먹을 아버지를 걱정했다.

“느거 아부지는 우째 지내능고? 반찬을 우째 해서 먹는고······. 아이고······내가 먼저 죽으마 안되는데······ 영감쟁이 옷은 누가 씻거서 입히는고?”

정수동은 처음에는 그 말이 눈물겨워 함께 걱정스런 마음으로 들었지만 점점 그런 걱정에 짜증이 났다.

“헤에! 어문이는 어무니이 걱정만 하이소! 잘 치료 받아서 일어날 생각을 해야제, 걱정만 하문 무슨 소용이요!”

퉁명스런 아들의 소리에 어머니는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내 병은 잘 안데이. 내 몸에 실린 이 병이 하루 이틀이가? 평생내 밭 매고 논 매고 일하는 바람에 얻은 골병이제. 그만 콱 죽어버리뿌마 만사가 해결인데······ 우예 안 죽는데이.”

“헤에! 그런 소리 하지 말라 캉게네!”

아들의 소리에 어머니는 입을 다물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줄줄 흘렸다. 눈물을 훔치며 팔순의 노모는 더 말이 없었다.

갑을 고향 마을의 아버지는 점점 쇠약해졌다. 기동을 잘 못하던 어머니가 그래도 옆에 있었던 것이 큰 위안이었다면 이제 홀로 덩그렇게 비어버린 집을 지킨다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느거 오마니는 어떻더노? 회생(回生)할 가망이나 있더나? 아이다. 물어보는 내가 글렀데이. 우째 다시 일어나겠노? 인자 그곳이 북망산천이제. 팔십 늙은이가 살아서 퇴원하겠나?”

아버지의 낙심에 맞장구 칠 수 없는 게 아들이 아닌가?

“걱정마시이소. 어무이는 편안하게 지냅디더. 마음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예. 도리어 아부지 걱정을 해쌓데요. 우짜든지 밥맛이 없더라도 아침저녁 진지 꼭 챙겨 자시고 뭐 먹고 싶으면 앞집 개승댁 아지매께 부탁해 두었으니 뭐든 사 오라해서 자시이소. 알겠습니껴?”

“내가 뭐 묵고 싶은 기이 있나? 없데이.”

“그라고 운동을 하시이소. 방안에만 가만히 계시면 안 됩니더. 아침저녁 동네 한 바퀴 도시고 경로당에 나가셔서 화투라도 치시고······.”

“나는 평생 기박(碁博)은 안 배웠다. 그런데 무슨 화투고!”

“헤에! 그라면 넘으 등 너머 구경이라도 하시이소.”

“구십 넘은 늙은이가 경로당에 나가 앉으면 넘에게 피해만 입힌데이.”

“아따! 염치 차리는 소리 그만하시고 자주 경로당에 나가시면 세상 돌아가는 소리도 듣고 옛날이야기도 하시고……. 그라면 세월이 잘 가능기라예.”

“그래서 나도 경로당에는 자주 나갈라 칸다. 그래야 시간도 잘 가고······점심도 얻어먹을 수 있고. 여럿이 밥 먹으니까 맛이 있더라.”

“담배는 작기 피우이소. 술도 조금만 마시고······.”

“이 보레이. 구십이면 오래 살았는데 이 나이에 절주절연하면 얼매나 더 오래 살겄노? 내가 하고 싶은 데 그런 것 막지 말아 레이. 니나 담배 끊고 술 먹지 말고······그래야 몸이 빨리 회복돼 돈을 벌지.”

아버지는 일주일에 담배 한 보루를 피우고 있었다. 술도 지금은 밥 반주로 드시지만 조금 전까지는 소주 한 병을 한 자리에서 거뜬하게 마셨다. 정수동은 고향집에 다녀오면 더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혀왔다. 그러니 자신의 병도 차도가 없었다. 열심히 병원 처방에 따라 약을 먹었지만 마비된 팔과 다리 신경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를 그대로 혼자 살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꺼낸 것은 대구에 사는 큰 여동생이었다. 전화를 받으니,

“그냥 아버지를 저렇게 버려두실 겁니까? 어제 내가 갑을에 갔다가 울면서 돌아 왔습니더. 아버지가 저리 혼자서 고생하시능 거 보니까 눈물이 절로 나데요. 내가 아들이면 당장 아버지를 모시고 갈 텐데.”

여동생의 말에 정수동은 할 말이 없었다. 지당한 말이었다. 그러나 겨우 방 두 칸 셋방, 그것도 이층이니 아들과 함께 살기에도 옹색한 형편인데······.

“옹색하더라도 어때요? 동식이와 한 방 쓰면 되죠. 아니면 촌의 집과 전답 팔아서라도 마산에 집 한 칸 장만하셔서 아버지 모시고 가세요. 어차피 그 재산 다 오빠 앞으로 될 텐데.”

“뭐라카노? 아버지가 어디 그것들을 팔라고해야지. 어림도 없는 소리 말아라. 그리고 아버지와 재식이가 한 방을 쓴다는 것도 무리이고. 아버지가 담배를 좀 많이 피워야지. 방안이 완전 굴뚝 아이더나?”

“오빠! 그건 핑계 아닙니까? 아버지 모시고 가기 싫으니까 오만 소리를 다하네요.”

“허어! 아들이 내 혼자가? 수환이도 있고 수식이도 자식이데이. 수환이 보고 모시고 가라고 해 봐라. 내 고향, 촌 재산 욕심 안 낼 테니 말이다. 수환이가 싫다면 수식이 보고 그래라.”

“내가 뭐 안 그래 본 줄 알아요? 큰 오빠 형편이 안 좋으니 작은 오빠가 아버지를 모시고 가든지 하라고 했더니······.”

“그래 뭐라든?”

“큰 오빠가 아버지 모시기 싫어서 집을 사지 않는다고 그래요.”

“허어! 그 놈으 새끼가! 내가 형편이 안 되어서 집을 못 사지, 아버지 모시기 싫어서 집을 안사?”

“그런 오해 받기 싫으면 당장 아버지 모시고 가세요.”

대구 큰 여동생의 전화를 받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형제들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다 같은 형제라면 서로 부모를 모시고 가겠다고 해야 마땅하고 또 일 년여 병원에 입원중인 어머니의 병원비라도 보태줘야 자식 된 도리 일 텐데 모두 자기에게만 미뤄놓고 있는 게 너무나 괘씸했다. 당장 동생 수환에게 전화를 했다.

“어째? 니가 그랬다며? 내가 아버지 모시기 싫어서 집을 안 산다꼬?”

동생의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와요? 틀린 말을 했습니까? 형님이 수십 년 공사판 일을 하면서 돈을 적게 벌었어요? 집을 사도 열 채는 사고 남았을 돈을 벌었을 텐데 그깟 보증 때문에 망했다는 핑게로 이때껏 집 한 채 사지 않은 것은 그 속셈이 빤한 것 아닙니까? 모두 은행에 장치를 해 놨든지 집이 아닌 토지만 사서 우리 형제 모르게 숨겨 놨는지 알 수가 없지요.”

“아! 이 자식아! 내가 집을 열 채나 살 돈을 벌어?”

“형수님 얘기를 들어보면 다 아요. 공사판 일을 한번 잘 하면 수 백만원이 벌린다면서요? 술도 매일 마셨다면서요? 경기가 안 좋았으면 형님이 어디 술을 퍼 마셨겠소?”

“허어! 내가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게 그리 부럽더나? 야, 이 자식아! 너 이놈! 아버지 니가 모시라 하지 않을 테니 택도 없는 말 지어내지 말아라!”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분이 풀리지 않았다. 욕설을 더 끌어 부을 걸 하고 어금니를 부뜨득 갈다가 막내 동생 수식이에게 전화를 했다. 수식이는 형제들보다 공부를 많이 해서 번듯한 회사에 다니며 서른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방도 4개나 있다.

“뭐라요? 형님! 내가 아버지 모시라니요? 꼭 대구 누나 말하고 같네요? 둘이서 의논했어요? 내가 모실 형편이 어디 됩니까? 가서나라고 방 하나 차지했지요. 고3이라고 방 하나 차지했지요. 또 방 하나는 창고입니다. 허접 쓰레기는 다 그 방에다 넣어두고 있으니 여유가 통 없습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큰 형님이 아버지 모시기 어렵다면 둘째 형이 모셔야죠. 둘째 형은 큰 부자 아닙니까? 장사를 해서 큰돈도 벌고 집도 넓은데다 식구도 단출하니 말입니다.”

“야, 이놈아! 수환이가 모시겠다면 내가 뭐 할라꼬 니 한테 전화질을 하겠노? 그 자석이 펄펄 뛰면서 생파리 좃 빠는 소리를 하니 하도 기가 막혀 그라능 기지.”

“여하튼 형님이 해결하이소. 나는 모릅니더. 내가 뭐 아버지 재산 밭 한 뙈기도 타 나오지 못했으니까······.”

“그럼, 난 타 나왔냐? 내가 중년에 실패를 하지 않았다면 나도 집도 있을 것이고 돈도 있을 것이야.”

정수동은 중년에 친구 보증을 잘못 서서 집도 뭣도 다 날린 것이 한이 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이었다. 집이 경매처분 되고 그래도 돈이 모자라 여러 해를 빚을 떠안고 살아야 했다. 그 일은 큰 상처가 되었고 끝내 환갑이 지났으면서도 남의 집으로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아, 고향집하고 논밭 모두 형님 것 아닙니까? 앞으로.”

“이것들이! 벌써 재산 가지고 시비를 할라카네?”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난 그 재산 아무리 많아도 탐을 안 낼 테니 아버지는 형이 책임지시이소.”

“·······.”

동생들과 대판 싸우고 나서도 한동안 분이 풀리지 않았다. 동생들은 아예 형에게 전화는커녕 아버지에게도 발길을 딱 끊어버렸다. 특히 제수들이 반찬이라도 해서 드나들었는데 그것마저 뚝 끊어져 버렸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작은 아들과 같이 살자며 따라 나설까 겁도 나고 그런 덤터기를 쓸까 잔뜩 겁이 났는지도 몰랐다. 드나드는 사람은 그들 내외와 여동생들뿐이었다. 동생들의 외면에 분통이 터졌지만 꾹 눌러 참았다. 명절이 되어도 동생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 병실에라도 동생이 나타나면 좋으련만 그것마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는 여동생들에게 그들의 불효를 성토했다.

“아, 불똥이 저들에게 뛸까봐 추석인데도 고향에 나타나지 않으니 이걸 어쩌노? 망할 놈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 하더라도 부모는 부모 아잉가? 예전처럼 효도는 못하더라도, 아니! 내가 욕설을 퍼부었으니 날 미워하더라도 참겠는데 아버지 어머니를 외면하다니, 그게 자식 된 놈의 도리가 아니지! 그게 될 일이냔 말이다.”

“오빠! 내가 수시로 전화질을 해 대고 있는데, 영 돌아서지 않네요. 오빠들이야 우리 핏줄이니 좀 그렇지만 글쎄, 올케들이 한 술 더 떠 지랄 발광을 하니 나도 미치겠습니더.”

“좀 더 기다려 보았다가 결판을 낼 끼다. 아버지를 우짜든지 내가 책임지고 모실 끼다.”

대구 여동생이 어느 날 전화로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오빠가 직접 모시기 힘들면 요양병원 같은데 입원시키면 안돼요? 좀 안됐지만 홀로 계시는 것보다야 좋지 않아요?”

정수동도 생각해 보지 않은 방책이 아니었으므로 긍정적인 대답이 쉽게 나왔다.

“병원비용이야 어짜든지 간에 아버지가 어디 병원에 가셔서 지낼라 카겠나? 아버지가 구십이 넘어서 기력이 조금 없고 쇠약해져서 하루 종일 누워 지내시지만도 다른 데는 이상이 없고 건강한데 말이다. 정신도 다른 노인네들에 비하면 멀쩡하데이. 그런데 노인이 평생내 살던 곳에서 살다가 죽을라 카지. 안 그렇나?”

“그래도 한번 슬쩍 물어나 보세요.”

“내가 벌써 그래 봤다. 어림없는 소리라고 들은 척도 않더라.”

그는 여동생에게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방법밖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설득을 해서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아버지를 고향집에 혼자 지내게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버지는 허연 눈으로 아들을 건너다보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부지요, 담배는 밖에 나가서 피우이소. 가래가 끓는데 자꾸 담배를 많이 피우면 안 좋습니더.”

“걱정도 팔자다. 내 나이가 구십하고도 한 살이다. 고만 자는 잠에 죽어야 할 낀데·····.”

아버지의 한숨에 정수동은 마음을 가다듬고 결행할 일의 순서를 다시 따져보았다. 그리고는 결심을 굳히며 말을 꺼냈다.

“아부지! 일어나이소. 오늘은 저하고 목욕하러 의령 가입시더, 방에 담배 냄새도 나지만 구린내도 나고 영 아입니더.”

“허어! 무슨 냄새가 난다고 난리고?”

아들의 성화에 아버지가 못 이겨 외출하려는 내색을 비쳤다. 정수동은 재빨리 마산에서부터 결행하기로 했던 순서대로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확인하면서 아버지를 부축해 집을 나섰다. 대문도 따로 없어 언제나 그렇듯 쓰다 버려둔 리어카를 가로 막아 놓고 집을 나섰다. 의령에서 택시가 곧 왔으므로 아버지를 태우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을 하면서 보니 아버지 등은 벼만 앙상했다. 뱃가죽은 등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좀 많이 잡수셔야지. 이래 가지고 우짭니껴?”

“내 많이 묵는다.”

“오늘 점심은 보신탕으로 하입시더. 내가 자주 가는 보신탕집이 있는데 참 맛이 있습니더.”

“이 겨울에 무슨 보신탕이고?”

“아, 요새 여름이고 겨울이 어디 있습니껴? 차라리 겨울에 보신탕을 더 많이 묵는 답니더.”

그는 보신탕을 먹는다 핑계를 대고 아버지를 마산까지 택시에 태워 모셔왔다. 보신탕을 먹은 후 그는 이발을 하자며 그의 집 가까이 있는 이발관으로 갔다.

“이발은 무슨 이발?”

“혼자 사시는 노인이 더 깨끗이 해야 한답니더.”

아버지는 더 싫다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발을 마치자 그는 아버지를 택시에 태우고 곧바로 집 가까이에 노인요양병원으로 직행했다.

“여, 여기가 병원 아이가?”

“예, 맞습니더. 아부지가 혼자 일 년이나 계셨응 께 혹시 탈이나 난 곳이 없능가 진찰을 받아볼라고 모시고 온 깁니더. 병원에 온 김에 며칠 여기 계시이소. 그 추운 집보다 따시고 밥도 꼭꼭 챙겨 묵을 수 있을 거니 한결 편할 낍니더.”

그제야 아버지는 아들의 속내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의사 앞에 가서 앉았으면서도 불안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재빨리 입원 수속을 마치고 아버지를 병실로 모셔 갔다.

“아부지, 우리 집과 이 병원과는 바로 이웃이고 걸어가면 1분도 안 걸리는 거리이니 우리 집에 와서 쉬는 거라고 생각하고 며칠 쉬시이소. 마음 푹 놓고 말입니더.”

“야가 뭐라카노? 내 집 놔두고 와 병원에서 자? 당장 집으로 가자.”

“헤에! 며칠만 편하게 지내라 캉게네요. 방도 따시제 밥도 제때 나오는데 뭐 할라꼬 그 추운 집에 갈라 합니껴? 그라고 아부지가 조석 동자를 직접 해야 되는데 여기 계시문 다 편할 낀데······. 걱정 마시고 쉬시이소.”

그는 아버지를 붙들고 한참이나 설득하며 안심을 시켰다.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병실에서 노인들의 수발을 드는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잘 돌봐 달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 나오면서 정수동은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다. 그는 그 다음날 병원에 가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병원에 가니 아들을 잡고 늘어지며 집에 가자고 호령을 했다. 뭐라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아버지 손을 뿌리치고 도망을 치듯 병실을 나와야 했다. 그리고는 일주일쯤 지나서 병원에 갔다. 아버지 수염을 전기면도기로 깎으면서 어린아이 달래듯 달랬다. 고향집보다 병원이 여러 수백 배 따뜻하고 편하고 좋다고 수십 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다 도망치 듯 병실을 빠져 나오곤 했다.

아버지는 그가 갈 때마다 집으로 돌아가겠노라 고집을 부렸다. 그는 이런저런 말로 달래기도 하고 거짓말도 했다. 그러다가 병원에 가지 않았다. 대신 여동생들이나 아내가 자주 가서, 겨울만 지나가면 퇴원할 테니 그때까지 두어 달만 입원해 계시라고 얘기를 했다. 그럴 때면,

“수동이 당장 오라캐라. 그 놈이 날 여기다 처박아 놓고 달아나 삐맀데이!”

하고 야단을 쳤다. 아버지가 입원을 하고 어쩌고 하는 소식이 여동생들을 통해서 수환이와 수식이에게 전달이 되었을 텐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불똥이 그들에게 뛸까봐 그런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서너 달이 지나자 더 이상 집에 가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체념을 한 모양인지 아니면 병원 생활에 익숙해져서 집보다 편해 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일 년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매달 100만원이 어머니 아버지 병원비로 지출되었다. 그간 모아 두었던 3,000천만 원이 야금야금 줄어들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그러보니 병원비를 지난달도 이번 달도 내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 미안합니다. 내가 깜박 했어요.”

그는 급히 병원비를 들고 쫓아가 냈다. 돈을 받던 직원이 한 마디 했다.

“뭐, 아저씨야 바로 이웃에 사시는 것 우리가 아니까 걱정을 안했지만 요새 세상이 영 엉망입니다.”

“미, 미안 합니다. 설마 병원비 떼먹고 도망가는 놈이 있겠습니까? 대명천지에.”

“아, 아닙니다. 지금 우리 병원에 난리가 났습니다. 환자 보호자가 다섯 달째 나타나지 않습니다. 연락도 안되고요, 남겨놓은 전화번호도 휴대폰 번호도 다 불통이고요. 편지도 반송돼 오는데······.”

“그런 일도 있군요.”

“흔하지 않지만······ 이건 환자분을 가족들이 내다버린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 제 부모를 내버리다니요? 우짜다가 그런 일이!”

“이거 신판 고려장이고 유기(遺棄)입니다. 보호할 사람이 보호받을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게 바로 유기입니다.”

정수동은 병원을 나서며,

— 나도 아버지를, 어머니를 지게에 져다 심심산골에 내버린 그 옛날 그 자식이나 다름없는 거······아니었는지······.

하고 병원 직원이 하던 말을 되새겨보았다. 그러고 보니 더욱 막막한 심정이 되면서 한층 더 기가 막혔다. ****

(경남소설, 2010. 5호에 수록)

 

출처 : 지당 글마당
글쓴이 : 남전 南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