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조왕사 신돈 이야기(시리즈 4)
제4장 행각승 편조의 길(1)
* 편조, 행각승의 길을 떠나다
진묵대사는 행각승이 되어 이 절 저 절 이곳저곳 다니며 깨우치겠다는 편조의 뜻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렵게 승낙하자 편조는 가벼운 행장으로 길을 떠났다.
먼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사전 준비 삼아 가깝고 낯설지 않은 창녕 고을 절을 몇 군데 찾아다녀 경험을 얻은 다음 멀리 나가 보고자 했다. 마라톤이라면 먼 코스를 달리려면 먼저 여러 번 장거리를 뛰어보는 준비 운동 격으로 체력과 기술을 습득한 다음 본 경기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야 하듯.
창녕 고을에 절이 여러 곳 있어 그곳부터 둘러보고 나서 명산대찰을 두루 찾아볼 작정으로 일미암을 나서자 북쪽 현청이 있는 창녕으로 향했다. 처음 방문지로 읍내에 있는 신라 때(810년) 지었다는 삼층석탑(국보 34호)이 웅장하게 서 있는 인양사(仁陽寺)부터 들렀다.
인양사는 지금은 폐사 되었지만 창녕읍내에 남아 있는 탑금당치성문기비(塔金堂治成文記碑; 보물 227호)의 비문에 의하면 읍내 넓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규모가 아주 큰 절로 보인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폐사되었는지 자세한 기록이 없다. 아마 임진왜란 때 소실되면서 그 역사도 사라지고만 듯하다. 그뿐만 아니라 비문에 의하면 인양사 주변에 봉덕사, 영흥사, 천암사, 보장사, 상락사, 대곡사, 원지사 등 742년 이전에 지었다는 사찰이 여러 곳 있었는데 그곳마저 지금은 폐사되고 내력도 전해오지 않는다.
편조는 인양사 근처 여러 절까지 며칠 돌아다니며 그 절들의 스님도 만나보고 사나흘 간 예불도 같이 올렸다. 또 주지나 큰스님의 법문이나 법어를 듣기도 하였다. 편조가 바로 인근 계성 옥천사에서 온 도반 스님이니 안면이 있거나 소식을 듣고 있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당시 수행하기 위해 행각승으로 세상을 떠돌아다녔던 스님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 만나서 그들의 경험담을 주고받으며 편조의 앞날을 격려해 주었다.
인양사를 비롯한 7곳 사찰을 순례한 편조는 창녕현 최북단에 있는 안심골 용흥사(龍興寺)와 대건사를 찾았다.
안심골(安心; 창녕군 성산면)은 비슬산 남쪽(높이 758m) 산록 일대의 넓은 평지로 지금은 빈 절터만 남아 있다. 옛날부터 이곳은 삼재팔난을 모두 면할 수 있어 피란지로 소문나서 안심골이라 했다지만 임진왜란의 병화를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선지 용흥사와 대건사의 역사는 사라지고 전해오지 않는다. 다만 팔방구암자가 있었다는 용흥사는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데 신라 때 창건한 절로 심적암, 은적암, 극락암, 각료암, 남암 등 암자가 여러 곳이 있었다고 한다. 폐사된 용흥사 절터에는 부도 2기와 수신인명상(獸身人面像) 등 석조물과 주춧돌 등이 지금도 흩어져 있고 이 절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은 인근 초등학교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편조는 용흥사와 대건사를 방문하여 그곳 승려들과 함께 예불도 드리고 독경도 하면서 열흘을 지냈다. 그러면서 큰스님들의 법어나 법문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흥사에서 종이를 많이 구해 묶어 “고승법문록(高僧法文錄)”이라 표지에 쓰고 휴대용 붓과 먹, 벼루, 먹물 통까지 구해 그때그때 들은 법어나 법문을 기록하기로 하였다.
아무리 기억이 좋아도 듣고 나서 조금 시일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었다. 여러 큰스님의 귀한 법문을 잘 기록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음미하고 배우며 따르겠다는 일념이었다. 또 노스님의 법문이 우리 말로 하지만 거의 한문투라 젊은 편조가 아직 한문 실력이 모자라는지라 경전의 글자나 어떤 말과 숙어는 한자로 옮겨 적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므로 되묻기가 일 수였다.
그 후 심적암을 비롯해 여러 암자에서 수행 중인 큰스님들을 만나 뵙고 심오한 법어나 법문을 듣고 배우며 보냈다.
마지막으로 비슬산 남쪽 700m 높은 산기슭 절벽에 의지해 있는 각료암(覺了庵)을 찾아 올랐다. 용흥사는 지금 폐사되었으나 이 각료암만 유일하게 만고풍상을 겪으며 암자로 현존하고 있다. 각료암에서 수행하고 있는 노스님 송고 대사는 처음 관룡사에서 스님으로 수계 받았는데 청룡암에서 수행하던 송허 대사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나하고 열흘은 같이 지내자. 행각승의 여정이 험난하지만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니라.”
각료암에서 열흘을 지낸 편조는 암자 북쪽 위로 난 절벽 산길을 허위 단심으로 올라서 해발 1,000m 비슬산 속에 있는 신라 헌덕왕(810년)때 창건되었다는 대견사(大見寺)를 갔다. 그 길은 절로 통하는 900m 이상의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산길로 대견재라 불리었다. 대견사에서 며칠을 머문 후 하산하여 수봉산 아래 연화사(蓮花寺)에 들린 후 동쪽으로 신라 때부터 합천에서 경주로 통하는 대로라는 마령재(馬嶺峙)를 넘어 창녕 땅을 벗어나 청도 풍각으로 갔다.
이제 창녕현 땅을 벗어났으니 낯선 풍경이나 인심을 만날 것이라 약간 불안도 하고 새로운 호기심도 생겼다. 지금부터는 이름이 난 큰 절을 찾아가리라 마음먹고 우선 불국사와 동해 바닷가에 있다는 감은사도 찾기로 했다.
경주로 가는 어느 험한 산길 고개를 넘다가 편조는 숲속에서 숨어 있다가 행인을 보자 나타난 산적 다섯을 만났다.
“야! 중놈아! 여게가 농림호걸 다섯이 있다고 오도재라 부른다. 늬 봇짐을 내려놓고 가거레이. 선한 일만 하는 중놈이니 목숨만은 살려주꾸마.”
스스로 오도재(五盜嶺)의 녹림호걸(綠林豪傑)이라니 편조는 그들이 들은풍월이 있는 자들이라 생각 들었다.
“그래! 우리 말을 들으면 죽이지는 않겠데이!”
도적들은 번쩍이는 칼을 휘두르며 그를 둘러싸고 위협했다. 그는 행각승 경험자들로부터 주의를 들은 말이 있어 침착하게 응대를 했다.
<창녕신문> 2022. 7. 26자 연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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