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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시리즈4) / 제4장 행각승 편조의 길(4)

by 남전 南田 2022. 9. 30.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4장 행각승 편조의 길(4)

 

* 편조의 염불과 독경 소리

 

편조는 남쪽으로 향해 걸었다. 신라 선덕여왕 때(15:646) 자장 율사가 창건했다는 양산 통도사와 가락국의 수로왕이 세웠다는(수로 46) 밀양 만어사를 찾았다. 동해 용왕을 따르던 물고기들이 돌로 변했다는 돌강이 볼만 했다. 더 남쪽으로 가서 동래 금정산 범어사와 장유 화상이 창건했다는 김해 서림사와 동림사를 찾았다. 편조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전라도 지경으로 들어가 신라 때 창건했다는 남해 두륜산 대흥사, 달마산 미황사, 백제 때 창건됐다는 금강산 은적사까지 둘러본 다음 북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리산에 들러 성덕왕 때(23:7233)에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는 쌍계사와 골짜기 안쪽에 있는 가락국 수로왕의 7왕자가 성불했다는 칠불사를 찾았다. 칠불사 북쪽 고개를 넘어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華嚴宗을 선양하는 사찰인 구례 화엄사에 들러 한 달을 보내며 화엄경의 진수를 설법하는 자리에 참석하여 법문을 듣고 사경(寫經)을 하며 또 큰스님을 찾아 법어를 들으며 수행에 매진하였다. 옥천사가 화엄종찰이었으니 편조도 화엄종 승려로 우뚝 서고 싶었다.

 

화엄사를 나서자 편조는 곧바로 금강산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충청도를 관통하며 여러 절을 답사하였다. 경상도와 강원도 세 곳 근처에 있는 마대산 아랫마을에 당도했을 때는 일미암을 떠나 행각승으로 떠돈 지 1년 반쯤 되는 시기였다.

해가 질 무렵이라 베틀재란 고개를 넘을 수 없어 하룻밤 유숙할 곳을 찾아야 했다. 근처에 절이 없어 언덕 위에 있는 규모가 좀 큰 기와집을 찾았다. 마침 청상과부 집이었다. 과부는 한밤중에 그를 찾아와 동침하기를 원했다. 편조는 단번에 거절하고서 그 집을 나가려 하였다.

그런데 과부가 도리어 고함을 쳤다.

저 중놈이 지난밤에 안방에 들어와 날 능욕하려 했다. 당장 저놈을 잡아 멍석말이에 몽둥이찜질을 해서 내쫓아라!”

그 소리에 사내종들이 달려들어 그를 잡아서 몽둥이질하고서 대문밖에 내쳤다. 참 억울하고 기가 막혔으나 어디다 해명할 곳이 없었다.

편조는 청상과부 집에서 낭패를 당한 후 행각승으로 맨 처음 출발할 때보다 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과연 자신의 수행 과정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이 대감 집에서는 일자 무식꾼으로 치부돼 모욕을 당했으며 과수댁에서는 어떻게 처신했기에 거리낌 없이 알몸의 여자가 덮친단 말인가? 그저 하룻밤 잠자리를 위해 몹쓸 사람들 속에 들어간 것이 불찰이었다.

편조는 마대산 베틀재 산길을 걸으며 문득 화엄십찰을 신라 전역에 세운 의상 대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의상이 상선(商船)을 타고 당나라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하여 그곳 신도의 집에 며칠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 딸 선묘(善妙)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다. 그러자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설득 감화시켜 깨달아 보리심(菩提心)을 가지게 했다고 한다.

나도 의상 대사처럼 청상과부를 교화하여 선묘처럼 불심이 깊은 여인으로 변화시키지 못했구나. 아직 나는 어리석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잘 따르지 못했어.

그는 베틀재 꼬부랑 산길을 올라가다 너무나 심란하여 마침 고개 만댕이 넓은 풀밭이 있기에 가부좌하고 앉았다. 절로 입에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고 염불이 한숨처럼 튀어나왔다. 그는 바랑에서 목탁을 꺼내 두드리며 산 저쪽 골짜기까지 울릴 만한 큰소리로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전라도 어느 작은 절을 찾았다가 그곳 노스님 주지를 만났는데 불공을 드리면서 염불이나 독송하는 소리가 특이했다. 너무나 청아하고 맑으며 운율에 맞춰 목탁을 두드리는데 목소리나 장단이 멋지고 가락이 마치 전라도 소리처럼 듣기가 너무나 좋았다. 편조는 너무나 듣기가 좋고 감격스러워 당장 주지의 염불 소리를 따라 배우려 했다.

염불을 그냥 밋밋하게 하면 불사를 하러 온 신행 불자들이 그저 그만 흘려듣네. 역시 독경도 마친가질세. 염불을 운율에 가락을 붙여서 해 보게나.”

주지 큰스님. 정말 감동했습니다. 소승도 며칠간 머물며 스님께 창법(唱法)을 배우고 싶으니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게! 우선 고저와 장단을 알아야 하네.”

편조는 며칠간 그곳에 머물며 큰스님으로부터 염불 소리를 배웠다. 그 이후 길을 걸으며 틈만 나면 큰소리로 염불과 반야바라심다심경을 목탁 장단에 맞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처음에는 목청이 터지지 않아 소리가 탁하고 끊기고 고저가 장단에 맞지 않았으나 점점 좋아졌다.

풀밭에 앉아 오랫동안 산천이 울리도록 목탁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염불과 반야심경을 일심으로 염송(念誦)하니 한결 선비들의 조롱이나 과부의 유혹 따위는 잊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 염송을 하다 보니 지나가던 장사꾼이나 나무꾼이 다리쉼을 하려 하나둘 모여들어 기이한 광경을 구경하느라 그의 곁에 와 앉았다.

아따! 스님 염불 소리가 참 듣기 좋소.”

눈을 지긋이 내려 감고 소리를 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편조는 그제야 주위에 행인들이 여럿 앉아서 그의 염불 소리를 듣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는 좀 멋쩍었으나 고개를 두루 돌리며 인사를 했다.

여러분! 나무아미타불 이 여섯 자만 알고 가다 오다 틈만 나면 염불하면 죽어 좋은 세상에 갑니다.”

허어! 나무아미타불! 자꾸 소리하면 극락에 간단 말이오? 당장 스님 말을 들으니 절에도 가고 염불도 하고 싶소.”

소리가 아주 구성지고 우렁차고 듣기가 참 좋소.”

편조는 그들의 말에 조금 안위가 되었다. 더 열심히 염송 연습해서 불자들의 심금을 울리게 하고 싶었다.

소승이 여러분께 반야심경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반야심경은 600여 권이나 되는 불경입니다만 줄여서 외우기 쉽게 해 놓았지요.”

편조는 일단 반야심경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한 다음 목탁을 두드리며 다시 큰 소리로 염송하기 시작했다.

 

<창녕신문>에 연재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