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제4장 행각승 편조의 길(3)
제4장 행각승 편조의 길(3)
* 석불사의 좌선 수행
지금 국보인 석굴암은 그때는 석불사(石佛寺)로 불리었다. 석굴 안에 모셔져 있는 본존불상은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으로 흰 화강석에 조각했는데 높이 약 3.4m의 거대한 불상이었다. 석굴 중앙의 연꽃 좌대 위에 부좌(趺坐)하였고, 수법이 정교하며 장중웅려(莊重雄麗)한 기상이 넘치는 매우 보기 드문 걸작이라 소문이 났다.
편조는 본존불을 우러러보며 합장한 채 꼼짝을 못하고 온화하고도 자비로운 모습에 넋을 빼앗겼다. 그러다 108배가 아니라 그의 체력이 다할 지경까지 목탁을 치며 반야심경을 낮은 소리로 독송하면서 절을 올렸다. 5,000배를 시작했다. 마침 석불사 주지 큰스님이 올라오더니 5,000배를 시작한 그를 격려하기 위해서 같이 목탁을 치고 낭랑한 목소리로 경문을 독송하거나 염불을 했다. 그런데 지치기는커녕 큰스님의 독송에 오히려 힘이 솟았다.
절을 마치고 물러나 석굴 밖으로 나가니 절벽 아래에 산들이 깔렸고 멀리 동해의 짙푸른 바다가 보이고 바로 앞 낮은 곳에 있는 석불사가 보였다. 그는 석불사 주지를 찾아가 행각승 아무개라고 인사를 올렸다. 편조가 5,000배를 올리는 것을 목격하고 도와준 주지는 나이가 많은 노스님이라 뭐라 캐묻지도 않고 선뜻 그를 받아주었다.
“며칠이든 머물다 가게. 노납(老衲)이 오천 배를 올리는 스님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절하게 바라는구먼.”
“소승이 이제 며칠이 될지 모르지만 묵언 묵상으로 좌선 수행하고자 합니다. 자비롭고도 거대한 본존불 앞에서 깨달음을 얻고 싶습니더.”
“그러게. 그런데 묵언 묵상을 하더라도 공양을 거르지 말게.”
“며칠간은 공양도 끊고 부좌하여 수행하려 합니다.”
그리고는 도로 석굴 앞으로 돌아와 동해를 향해 석굴암 앞에 있는 반석 위에 앉았다.
좌선에 들어갔다.
반야심경과 화엄경, 다른 경전을 작은 소리로 독송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행자승이 올라와 공양 시간이라고 말했으나 입을 꾹 다문 채 손을 흔들어 거절했다. 묵언 묵상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 물론 공양도 거르고 며칠이든 석굴 안 본존불처럼 가부좌하고 지내고자 했다. 며칠이 지나도 배가 고픈 줄을 몰랐다. 간혹 일어나 샘터에 가서 물을 마시거나 본존불 앞에 가서 108배를 하며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예불을 올렸다.
석불사에는 편조와 같은 행각승이나 다른 절의 스님들이나 불자들이 석굴암의 본존불을 참배하러 끊임없이 찾아와 새벽 예불에 참석하거나 주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돌아갔다.
십여 일이 지나자 주지 큰스님이 올라왔다.
“이제 그치게! 송장 치는 게 겁나지 않지만은 절에서 죽어서야 돼나? 젊은 불제자는 이제 앞날이 많으니 기를 쓰고 득도하려고 하지 말게.”
큰스님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일어나 합장했다.
“밖을 보고 안을 다스리지 못하거나 위를 보고 아래를 못 봐 공과 색이 뒤섞이면 그 또한 현명하지 못하다네. 부처님께 절이나 올리게. 보아하니 속세의 인연은 죄업이니 담박 끊어라. 진정한 네 삶을 찾아내려 놓아라!”
“알겠습니다.”
그는 큰스님의 대갈일성 가르침에 따라 부좌 참선 수행을 끝내고 며칠간 노스님의 법어와 법문을 들으며 지냈다. 그러다 하산하여 불국사에 들러 주지 스님께 작별 인사를 한 후 동해로 내려갔다.
동해 바닷가 바닷물이 금당 아래까지 와서 출렁거린다는 감은사를 찾았다.
감은사(感恩寺)는 황룡사나 사천왕사와 함께 신라의 호국 사찰로 알려졌는데 682년(신문왕 2) 신문왕이 부왕 문무왕의 뜻을 이어 창건하였다고 한다. 마당에 선 삼층석탑 2기가 다 국보이다.
동해 바닷가 바닷물이 금당 아래까지 들어와 용이 된 문무왕을 기리고 있었다. 며칠 머문 후 황룡사와 사천왕사를 들러 그 길로 물어물어 오도재 산적 덕보가 종살이했다는 이 대감 집을 찾아갔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대감 집 솟을대문 간에 마침 늙은이가 빗자루를 들고 쓸다가 목탁을 두드리며 동냥을 구하는 편조를 맞았다. 편조는 늙은이에게 합장한 후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그의 속삭임을 들은 늙은이는 낯빛이 변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잡아 담장 곁으로 데려갔다.
“정말 덕보를 만나봤소? 도망을 가서 잘 사는지 궁금했소.”
“오도재란 고개에서 산적으로 살지요. 그런데 덕보가 영감도 만나보고 또 대감도 만나 뵙고 인사를 올리라 해서 왔소이다.”
“우리 나리는 스님은 통 만나지 않소. 어쩌다 동냥하러 오면 문전박대가 일 수인데? 나리는 스님을 우리 노비처럼 비천해서 상대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오. 그냥 과객들 방에 하루 유숙하고 가십시오.”
편조는 노복 영감의 안내로 과객들의 숙소로 갔다. 그 방에는 과객으로 온 선비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나타난 스님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태도로 편조를 대했다. 편조는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자는 척했다. 과객들은 저희들끼리 비아냥거리는 말을 주고받았다.
스승 진묵대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에 그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편조야. 심수무성(深水無聲)이라. 마음이 넓고 깊은 사람은 자신의 재주를 과시해 허세를 부리지 않으며 알아도 모른척하느니.”
훗날 공민왕의 왕사가 될 때 정적들이 두고두고 쓴 헐뜯는 말 중 으뜸이 일신재 문객들의 비아냥과 같았다. 그가 무식하기를,
―신돈은 눈으로 보아도 서를 알지 못했다.(目不知書) (고려사 열전45)
이튿날 일찍 이 대감 집을 나섰다. 늙은 노복이 떡을 한 보따리 가득 싸 주면서,
“스님! 지난밤 곤역을 치렀지요? 저 사람들 눈에는 스님은 미천하고도 보잘것없은 종처럼 여긴답니다. 부디 가시는 길에 편하기를 빕니다.”
편조는 웃으면서 합장하며 깊이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여러 번 말하고 작별했다.
<창녕신문> 2022. 8 .24 연재분으로 빠트린 부분 뒤늦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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