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행각승 편조의 길(2)
* 오도재 산적을 만나다
그 시절 못 먹고 못 살아 산적이 된 자가 많았다. 또 지주나 주인의 등쌀에 못 견뎌 도망친 종이나 땅을 뺏긴 농사꾼도 있었다. 높은 고개거나 으슥한 고갯길에는 으레 그들이 작당해 지키고 있어 천왕재(창녕 고암과 밀양 청도 사이)란 고개에는 떼도적이 있어 행인이 천 명 모여야 내왕할 수 있어, 온정(부곡) 팔도고개란 데는 산적이 8명이 있어 십여 명 넘게 모여야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고 그런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는 산적 다섯이 있어 오도재라 하니!
“시주님들! 탁발하러 다니는 제가 가진 것이 뭐가 있겠습니껴?”
“뭐든! 가진 것 다 내놔라! 보따리를 뒤지고 탈탈 털어야겠어?”
“뭐가 없으면 네 불알 두 쪽이라도 내놔라. 불에 구워 먹게.”
“그러네! 너야 평생 장가를 안 갈 테니 그게 아무 쓸모가 없지 않겠어?”
한 녀석의 말에 다른 도적들이 웃었다. 그들은 편조의 등에 있는 괘나리 봇짐을 벗겨서 길바닥에 펼쳤다. 봇짐 속에서 돈이 될만한 물건이 없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냐? 침을 싼 쌈지로군. 침을 놓을 줄 알어?”
“아, 예. 조금 의술을 배웠습니더.”
그 말에 도적들이 반가워했다. 그들은 서로 의논을 하는 듯 저희들끼리 몇 마디 주고받더니 물었다.
“의술이 있다니 잘 되었다. 늬가 침을 놓아 우리 동생 다리를 고쳐주면 좋겠다.”
편조가 고개를 끄덕이자 산적들은 그들의 근거지로 삼고 있는 오도재 옆 골짜기가 있는 동굴로 데려갔다. 그들은 햇볕에 그을려 검게 되어 인상이 더 험악해 보이는 편조의 얼굴을 보고 웃었다.
“스님 상판대기를 보니 우리보다 더 도적놈 같어.”
“스님 그만두고 우리와 같이 지내지. 칼 들고 고개 만댕이에 나서면 사람들이 널 보자마자 찍소리 못하고 돈을 내놓고 벌벌 떨 거다.”
그중 아까 문자를 쓰던 조금 유식하고 온화해 보이는 자가 물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예! 창녕 옥천사에서 이제 경주 불국사로 가는 길입니더.”
“나는 계림(경주) 어느 양반댁 종으로 살다가 가족들과 야반도주해서 이곳에 머물게 되었지. 당초 산적질이란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그만 도적이 되었어.”
“양반댁이라면 지낼 만 했을낀데요?”
“무신 소리여? 종놈을 소 돼지처럼 부리는데! 아이들과 마누라를 데리고 수백 리 도망쳐 온 게 오도재였어.”
편조는 산적들의 소굴로 따라갔다. 오도재 깊은 골짜기에 좀 넓은 평지가 있는데 바로 그들의 산채였다. 거기에 작은 집들이 몇 채 띄엄띄엄 있었다. 다리를 다쳤다는 이름이 황새인 젊은이도 몇 달 전에 종 신세를 면해보려고 도망쳐 왔다고 했다. 서툰 솜씨로 행인을 위협하다가 도리어 바위에서 미끄러졌다고 했다.
편조는 젊은이의 다친 다리에 침을 놓고 쑥뜸을 뜨자 한결 고통이 나아졌다고 고마워했다.
“스님! 정말 고맙습니다.”
편조는 열흘 넘게 오도재 골짜기 산채에 머물면서 그곳 사람 중 병든 자를 진맥하고 치료하고 돌보며 구급약으로 쓸 수 있는 약초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 부처님의 큰 도리를 말해주며 불도를 믿으라고 권선하기도 했다.
십여 일 후 산채를 나서서 오도재를 내려오는데 자기 이름이 덕보라고 밝혔던 경주에서 종살이하다 식구들을 다 데리고 도망 나온 사내가 배웅한다면서 따라 나왔다. 덕보는 오면서 다른 산적들이 듣지 못할 만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스님처럼 절에 가서 살면 안 됩니까?”
편조는 덕보의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도망친 종을 받아줄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 일미암에라도 가면 될 듯했다.
“그럼! 내가 있었던 암자에라도 가서 행자승으로 일하면서 불도를 닦아 보겠소? 우리 스승님께서 유리걸식하는 사람들을 많이 구제해 주었으니.”
“이이고! 편조 스님! 고맙습니더. 사람들에게 도둑넘 소리 듣는 것보다 중넘 소리 들으면서 살면 더 좋지요. 황새 총각도 산적질 노릇 싫다고 하니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시오. 소개장을 써 줄 테니 찾아가시오.”
“스님은 경주에 가시거든 내가 살았던 이 대감 댁에 꼭 들려 같이 종살이로 고생하는 영감에게 안부나 전해 주소.”
덕보는 고개를 끄덕이는 편조에게 미소를 보냈다.
오도재를 내려간 편조는 며칠이 걸려 경주에 들어섰다. 오도재에서 경주로 가는 길에 절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곳에 들려서 주지나 큰스님을 만나 법어나 법문도 듣고 함께 예불도 드리다 보니 자연히 며칠씩을 보내게 되었다.
경주 경내에 들어선 그는 곧바로 불국사를 찾아갔다.
석가탑 다보탑 등 국보가 많이 있는 계림(鷄林) 불국사는 전해오는 《불국사 역대 고금 창기》에 의하면 신라 528년에 세웠다는데 그때는 규모가 작았는데 경덕왕 751년에 김대성이 크게 다시 지었다고 한다.
편조는 불국사 입구에서부터 난처한 일을 당했다. 큰 절의 위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입구에 선 스님부터 낡고 초라한 승복을 걸친 산적 같은 험상궂은 몰골의 행자승을 깔보는 듯 이것저것 내놓으라 하면서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겨우 그곳 스님들이 머무는 곳에 몸을 누이기는 한나절이 지나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창녕 옥천사가 화엄십찰의 하나라 하는 사실을 아는 주지 스님의 배려로 며칠이든 머물다 가라고 했다. 편조는 지나온 다른 절에서 하듯 새벽 예불부터 스님들과 행동을 같이하면서 큰스님들을 찾아가 심오한 법문을 듣고 깨우치려 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토함산 중턱에 있는 석굴암으로 올라갔다.
<창녕신문> 2022년 8월 10일자 연재분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시리즈4) / 제4장 행각승 편조의 길(5) (1) | 2022.09.30 |
---|---|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시리즈4) / 제4장 행각승 편조의 길(4) (1) | 2022.09.30 |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시리즈 4) / 제4장 행각승 편조의 길(1) (0) | 2022.07.30 |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제3장 편조, 아버지 신원경을 만나다(3) (0) | 2022.07.19 |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3장 편조, 아버지 신원경을 만나다(2) (0) | 2022.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