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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5장 수행길 개경과 연경(3)

by 남전 南田 2022. 12. 10.

제5장 수행길 개경과 연경(3)

*  개경 현화사와 원경 법원사 수행

 

신예의 난데없는 소리에 편조는 어안이 벙벙했다.

금강산 유점사에 좀 가야겠어. 내가 사찰들의 재산을 관장하기도 해 도감(都監)들을 주관하기도 하거던. 가서 몇 달만 있어요. ”

유점도감을 하란 말인가? 난데없이! 그곳이 승려가 사찰의 양식이나 재산을 맡아보는 곳이 도감 아닌가.”

유점사 사찰의 전답을 어떤 벼슬아치가 몰수했는데 왕명을 핑계로 돌려주지 않고 있어. 내가 그런 호소를 듣고 조사하려고 그들을 잡아 가뒀어. 잠시 유점사에 가서 그 일을 감당해야겠어.”

현직 유점도감이 있지 않은가?”

편조 네가 가서 뒷일을 수습했으면 해.”

편조는 신예의 부탁으로 갑자기 금강산 유점사로 떠났다. 몇 해 전 혜근 스님과 함께 유점사에 들러 며칠 머물며 고승들의 법어와 법문을 듣고 배운 바 있으므로 마음이 가벼웠다. 그는 조정이 임명하는 유점도감이란 직책을 받아 갔지만 큰스님의 경전 가르침을 받으면서 지냈다. 몇 달이 지나자 유점도감의 일이 마무리되어 편조는 개경으로 돌아왔다.

 

개경으로 돌아온 편조는 하루빨리 연경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오자 사찰을 관리하는 신예는 또 엉뚱한 소리를 했다.

잠시 현화사 주지로 가야겠어.”

현화사라니? 그 절은 임금의 원찰로 궁에서 관리하고 있잖은가?”

그래서 그러지. 지금 현화사에 주지가 없어.”

편조는 생각도 못 한 개경 시중에 있는 현화사 주지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유점사에 가서 지냈던 것처럼 몇 달만 지내면 된다고 신예가 장담했다.

편조는 복에도 없는 현화사 주지를 갑자기 맡아 일미사에서 같이 온 현조와 함께 갔다. 그곳에는 전에 낙산사에서 만났던 적이 있는 철관, 천정, 석온(釋溫) 스님이 있어 반갑게 맞이했다.

현화사 주지를 맡으면서 편조는 역사가 깊은 절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불자들을 많이 모이게 하려고 애썼다. 그의 특기인 염불 소리와 반야심경 독경은 절을 찾은 불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부처님 앞으로 더 다가서게 했다. 예불을 올릴 때 여기는 국찰(國刹)이라고 여인네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그는 스님들에게 주장하였다.

남녀가 부처님 앞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에게 오는 모든 이를 받아들였지요. 또 지공 선사께서 개경에 와서 감로사나 숭수사에 주석하면서 법회를 열 때 남자고 여자고 다 문수사리무생계를 주었다고 합니다.”

철관 스님이 찬성하고 나서자 다른 스님들도 신분 차별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현화사에서 불자들의 신분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개경에 널리 퍼져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되면서 현화사에는 불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웅전 예불에 여인들이 참여하게 된 것은 개경의 많은 사찰 중 최초의 일이었다.

편조는 자주 개경의 번화한 거리에 나가 큰소리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고 목탁을 치며 포교에 진력하였다. 그의 독특한 반야심경 독경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크게 찬탄을 하면서 현화사 주지임을 알고서 불자가 되려고 찾아왔다.

몇 달 후 혜근이 회암사에서 올라와 현화사에 머물렀다. 그런지 달 포쯤 지나니 신예가 원경에 간다면서 행장을 꾸리라고 했다.

 

신예 일행을 따라 편조와 혜근은 원나라 연경으로 갔다.

그 당시 원나라와 고려는 관원이나 상인 등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연경에는 유학을 온 선비들이나 승려들뿐만 아니라 몽고군 침략 때 잡혀 와 살게 된 고려 유민들도 많았다.

편조는 영산에서 데려온 강성을과 함께 신예의 누이 집에 갔다. 누이는 반가워했다. 편조는 매부 고용보를 만나 혜근을 인사시키면서 그가 원나라에 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잘 왔네. 잘 왔어. 며칠 연경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둘러 보지. 이 나라에는 고승도 절도 많으니 절 구경도 하고 내가 주선을 해서 황궁 구경도 시켜줄 거야. 인도에서 온 고승 지공? 어디 있는지 수소문해서 찾아가도록 해 주지.”

하고 반갑게 맞이하며 지공 선사가 있는 절을 알아서 그들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용보가 지공 선사가 법원사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역시 거리 구경을 안내하던 하인이 앞장서서 연경 외곽에 있는 법원사로 둘을 데려다주었다.

영산현에서 태어난 편조와 혜근은 1326년경 고려를 찾은 지공스님이 영축산 보림사 반야루에서 설법할 때 사람들이 부처님께서 다시 태어나 이곳에 오셨으니 어찌 찾아뵙지 않겠는가!”하며 열렬히 환영하며 설법을 듣고자 모여들었다. 그때 어린 편조는 옥천사의 주지 진묵대사를 따라서, 고려불교의 마지막 수호자로 성장할 여덟 살의 혜근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지공스님께 갔었다. 지공스님은 그때 보림사 반야루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고 무생계(無生戒)를 주었다.

혜근 스님이 연경 법원사로 가서 지공 선사에게 배우기 시작한 것은 충목왕 때(3: 1347)라고 전해 온다. 어릴 적부터 존경했던 인도승 지공을 만나 뵙고 감격한 편조와 혜근은 곧장 지공선사의 제자가 되어 심오한 설법과 반야심경을 비롯한 불경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일 년여 지났을 때 지공선사가 편조를 불렀다. 편조가 스승 앞에 경건하게 무릎을 꿇자 지공이 조용히 말했다.

큰 깨달음을 얻는 편조 너에게 더 가르칠 게 없구나. 이제 하산해 세속의 중생교화에 힘쓰도록 하라. 먼저 중원의 여러 사찰을 순력하여 불도의 경지를 넓혀라. 순력하면서 육왕사와 명주에도 가거라.”

지공이 가보라고 말하는 육왕사에는 석가모니상이 있으며 명주의 보타락가산에 관음보살이 주처(主處)하고 있다는데 그 두 곳을 순력 참례하라는 말씀이었다.

 

<창녕신문 > (2022. 11. 28) 연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