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2022년 12월 13일 <창녕신문> 연재분
제5장 개경과 연경(4)
* 중국 순력과 개경 귀환
지공 선사에게 더 배워야 하는 혜근과 헤어져 편조는 지공 선사의 가르침에 따라 중국의 명산대찰을 편력하기 위해 법원사를 나섰다. 중국에 올 기회가 자주 없는데 한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기도 했다. 광할한 중국 대륙의 명승과 사찰들을 찾아서 고승들의 법어나 법문을 보고 듣고 배우며 수행하려고 하였다.
편조가 중국의 명산대찰을 순력 수행하며 고승들을 만나서 배우겠다고 하자 고용보는 지방 관아에서 편조의 통행과 여정에 편의를 봐 주라는 황제의 옥새가 찍힌 통행증을 만들어 주었다. 신예와 누이에게서 노잣돈도 넉넉하게 받았다. 요즘 말로 하면 은행 수표로 원나라 어디서든 전장(錢場)에서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전표(錢票)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3년여 걸려 편조가 찾은 중국의 불문성지는 여러 곳이었다.
절강성 천태산 방광사와 혜명사를 비롯해 운남성 대리(大理) 감통사, 항주 법경사, 황산까지 찾아갔다. 또 감숙성의 타사마, 육왕사에서 석가모니상을 참배했고 자선사와 절강의 보타사를 찾기도 하였다. 편조의 일정은 중국을 이리저리 동서남북 발길 가는 대로 종횡하였던 것이었다.
서촉의 명산 아미산을 둘러 장안을 거쳐 북쪽으로 가서 감숙성 돈황을 찾아갔다.
돈황에 있는 석굴은 하남성 낙양 용문석굴, 산서성 대동운강석굴 등과 함께 중국의 3대 석굴이라 알려졌는데 곧 스님들이 수도 정진하는 사찰로 굴속에 많은 승려들이 불도를 닦고 있었다. 돈황 막고굴은 오래전 진나라 때부터 조성하기 시작해, 수, 당을 거쳐 원나라 대에 이르러 더욱 스님들이 많이 와서 700여 굴마다 수도하고 있었다,
편조는 굴 중 가장 크다는 굴을 찾으니 당나라 때 조성된 가장 큰 미륵대불(높이 34.5m)을 참배하게 되었다. 편조는 대불 앞에서 108배를 하면서 목탁을 두드리고 그의 독특한 염불 소리와 반야심경 독경을 경건하고도 우렁차게 소리했다. 주위에 있던 승려들이 그 소리에 놀라고 감동하여 서로 얘기를 나누었다.
“소승은 고려라 하는 나라에서 왔소.”
그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황하의 물길을 바라보고 이윽고 연경으로 돌아갔다.
연경의 누이와 신예는 집을 떠난 지 3년쯤 되어 편조가 돌아가자 누이는 그의 몰골이 떠날 때와 달리 삐쩍 마르고 얼굴도 반쪽이 된 듯해서 걱정했다. 매부 고용보도,
“고생이 많았군. 대국이라 천하를 다 돌아보자면 3년이 모자라기도 하지. 이제 집에서 쉬면서 몸보신을 하게나. 먹는 것이 영 부실해 그런 거야.”
하고 편조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도록 힘쓰라고 했다.
고려에서 올 때 함께 왔던 박소새의 아들 강성을이 궁궐에 일을 다니는데 혼인해 1년 만에 첫딸을 봤다고 했다. 편조는 누이의 말에 반가워하면서 강성을의 집을 찾아갔다.
“아이구! 편조 성님! 고생이 많았지요? 얼굴이 반쪽이 되었소.”
성을이는 편조를 반갑게 맞이하며 아내와 딸을 소개했다. 성을의 아내는 곱상스럽게 생긴 고려 여인으로 요리를 잘한다고 덧붙였다. 부인이 내어주는 첫딸도 편조가 안아보았다. 어머니 박소새의 손녀이니 친 질녀나 다름없으니 너무나 살가웠다.
“성님! 아이 이름을 아직 짓지 못했소. 이름 지어주고 가이소.”
편조는 그 말에 선뜻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가 틈나는 대로 염불과 함께 소리하는 불경이라 ‘반야’라는 말에 애착이 갔다.
“반야라고 하지. 불경에 반야심경이 있지 않아? 그 반야지. 정말 이 아이가 그렇게 크면 복을 받을 거야.”
“오오! 반야! 성님이 지어주는 이름이 아주 좋네요.”
반야가 강씨라는 성을 가진 양가(良家)의 딸이었다는 사실이 <고려사절요> 우왕조 기록에 나타나 있다.
공민왕 사후 아들 모니노가 임금이 되자 반야는 명덕태후를 만나 우왕이 그녀의 아들임을 호소하려 궁에 몰래 들어갔다가 죽임을 당했다. 반야의 입궁을 도운 친족 강거실(姜巨實)은 판사(정3품)였다. 친족이라 함은 8촌 이내의 혈족이니 강성을과 사촌이나 육촌으로 딸 반야는 강씨임이 분명하다.
그때 명덕태후는 강반야를 내치고 권신 이인임이 강에 빠트려 그녀를 죽였다. 몰래 입궁시킨 책임 물어 강거실을 목 베어 죽이고 궁 수비책임자 연성군 김현(金玄)을 유배 보냈다.
― 投般若于臨津 斬其族判事姜巨實 (고려사절요 제30권. 우왕 2년, 병진:1376)
― 마침내 반야를 임진강에 던져 죽이고 그 친족인 판사 강거실을 베었다.
편조는 법원사로 가서 지공 선사에게 배우고 있는 혜근을 만났다. 혜근은 3년이 지났는데도 그곳에 눌러있었다. 혜근을 만난 편조는 불도가 왕성해져서 나라의 정치를 불도 중심으로 되어야 국운이 융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크게 깨달았네. 돌아가면 ‘세속의 중생교화에 힘쓰도록 하라.’는 선사님의 가르침대로 불도를 더욱 전파하여야겠네.”
“편조 사형은 참선 수도보다는 포교에 힘을 쏟는 일에 관심이 많구먼.”
“며칠 전에 연경에 와 계시는 강릉대군을 뵙게 되었어. 대군을 호위하는 조익청이란 분 소개로.”
편조는 집 가까운 사찰에 갔다가 창녕이 고향인 조익청(曺益淸)이란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무관으로 강릉대군(기祺: 훗날 공민왕)의 호위였다. 편조는 대군을 만나서 중국 천지를 행각한 얘기를 하였다.
“장차 그분이 임금이 될 걸세. 그때 왕에게 내 뜻을 전해 쇠약한 국운을 회복시키고 싶네.”
법원사에서 한 달여 지공 선사 밑에서 수행하다가 편조는 연경을 훌쩍 떠나 고려로 돌아와 먼저 금강산 유점사로 입산했다.
편조와 달리 혜근은 1년을 더 지공 선사에게 배운 후 휴휴암과 자선사 등 중국 여러 곳을 편력하였고 개경을 떠난 지 11년 만인 공민왕 7년(1358년)에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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