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6장 공민왕의 꿈 편조의 꿈(2)
* 권연(勸緣)에 힘쓰는 편조
편조는 개경 시중을 떠돌아다니며 권연하기에 열성을 보였다. 권연은 요즘의 포교 활동이라 하겠다. 권연(勸緣)은 불도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인연을 맺으며 보시하기를 권유하러 다니는 것을 말하는데 요새 말로는 포교요 전도 행위였다. 탁발승이기도 했다. 일정한 절이나 거처가 분명하지 않은 채 거리를 오가며 목청이 터져라 염불하고 독경 소리를 반복하며 부처님을 섬기라고 부르짖으며 다녔다.
그러면서 옥천사에서 배운 의술을 베풀기도 하였다. 병자들을 만나면 편조는 그 자리에서 침을 놓아 주거나 진맥을 한 다음 간단한 치료나 처방을 해 주었다. 의원 스님이 병든 자까지 무료로 치료해 준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의관(醫官)에 가지 못하던 가난한 병자들이 찾아 왔다. 금방 명의라고 소문이 퍼졌다.
편조의 초청 설법 법회가 여인네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 그가 어느 사찰에서 법회를 갖는다면 부녀자들이 많이 와서 그의 독특한 염불과 독경 소리에 열광하였다. 자연히 사람들 사이에는 나쁜 소문도 퍼졌다.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면 부정한 짓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고려 부녀들은 자유분방하여 방종해도 묵인해 주는 세태라 여인들이 편조의 인기에 영합해 다른 욕심으로 접근하려고 하기도 하였다.
또 길거리를 방황하는 고아나 여인네들이 너무나 많았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떠돌며 구걸하는 거지로 전락한 고아들이나 남편이 군졸로 전쟁터에 나갔다가 소식이 끊겨 생계가 어려운 부녀자나 심한 가뭄이나 홍수로 농사를 망친 농민들, 고관대작의 횡포와 갈취로 농토를 빼앗겨 종 신세가 되자 일가족이 개경으로 올라와 유리걸식 방황하고 있었다.
편조는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걸식하는 아이들을 구제하고 싶었다. 그러나 편조로서는 유리걸식하는 그들을 위해 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현화사 인근 집을 구해 고아와 여인네들에게 제공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추진하기로 하였다. 요즘 말로 하면 고아원이나 유랑민 보호소라 할 것이다. 일미사에서 올라온 현조와 혜조 스님 외에 현화사 주지와 천정과 철관 스님이 돕겠다고 나섰다.
그리고는 거리를 다니면서 탁발 보시하기를 권연해 생긴 재물을 절로 가져가지 않고 아이들과 여인네들에게 현화사 근처에서 죽을 쑤어 먹이거나 떡을 사서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그 일이 차차 소문이 나자 편조가 나가는 거리에는 거지 떼가 몰려들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던 중 편조는 개태사(開泰寺)에서 올라와 낙산사에 수행하던 그 당시 화엄종의 태두 설산 천희(雪山千稀) 대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으며 친하게 지냈다. 천희 대사는 현화사와 낙산사 주지를 만나 설득해 절 근처에 작은 집을 지어 그들을 수용하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지원해 줄 여유가 별로 없으니 크게 도울 수는 없소.”
주지들의 걱정에 편조는,
“소승이 탁발을 다니며 보시해 줄 몇몇 부잣집을 알아 뒀으니 도움을 받을 수가 있을 겁니다.” 하고 안심시켰다.
편조는 현화사와 낙산사 주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인근의 절 땅 두 곳에다 움막을 지어 고아와 여인네들을 받아드렸다. 고아들에게는 글을 가르치고 여인네들에게는 바느질, 수놓는 기술을 가르쳐 자립하도록 했다. 집 앞에다 극락암, 반야암이란 암자 현판을 달고 집 큰방에는 부처님을 모셨다.
철관 스님과 천정, 현조, 혜조 스님이 암자에 기거하면서 행자승들과 함께 일해서 편조의 짐을 덜어 주었다. 편조는 암자에 와서 도와주는 행자승들에게 화엄경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또 객승들도 모여들어 편조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다.
편조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옥천사에서 그를 가르쳤던 스승 진묵대사를 뜻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진묵대사가 탁발을 나갔다 하면 꼭 한두 명의 의지할 데 없는 불쌍한 고아나 여인네를 데리고 와 절에 살게 하고 불경을 가르쳤었다.
차차 고관이나 부잣집 마나님들의 보시가 크게 늘어 어느 정도 운영에 어려움이 없었다. 반가의 부인들이 암자에 드나들며 편조와 친밀하게 지내자 역시 여인들을 농락한다는 뜬소문이 무성하였다.
편조는 평소의 불국토의 꿈을 실현해 줄 공민왕을 만나지 못하고 여러 사찰과 거리를 염불하고 독경하며 떠돌기를 여러 해 했다.
그동안 암자 일과 권연, 좌선 수행으로 그의 몰골은 초췌해지고 말았다. 얼굴은 반쪽이 되었고 예전의 험상궂고 큰 퉁방울눈이나 네모진 턱이 쑥 들어가 보통 스님들처럼 온화하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다만 몸이 빼빼 마르고 야위어지니 키가 훌쩍 더 크진 느낌이었다.
그 사이 신예가 1355년 병을 얻어 죽었다. 사후 취성부원군에 봉해졌는데 다행스럽게도 기철 일당의 제거가 1년 후에 있었는데 그 위기를 모면하여 역적이란 소리를 듣지는 않았다. 만약 신예가 살아있었더라면 피바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편조가 개경 어느 작은 절의 법회에 참석하였다가 판도판서 김원명(金元命)을 만났다. 법회가 끝나고 나서 한눈에 나이가 지긋한 무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나는 판도판서 상장군인 김원명이라 하오. 편조 대사님의 설법을 들으니 너무나 감동해서 만나 뵙자고 했소.”
“아직도 고승들의 설법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부족하지요.”
“아니오. 내가 보기에 대사는 득도한 고승임에 분명하오. 그래서 전하께 모시고 가고 싶어졌소.”
김원명은 공민왕의 모후 명덕태후의 외척이었다. 김원명의 안내로 정궁인 연경궁(延慶宮)에 들어가 공민왕을 알현하게 된 때가 반원 세력의 처단이 일단락된 2, 3년 뒤였다. *
<창녕신문 2023. 2. 9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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