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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6장 공민왕의 꿈 편조의 꿈(3)

by 남전 南田 2023. 3. 4.

 

영산 보림사의 탑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6장 공민왕의 꿈 편조의 꿈(3)

6장 공민왕의 꿈 편조의 꿈(3)

 

* 왕의 꿈, 편조와 만남

 

공민왕이 편조 스님을 만나는 계기가 된 것은 꿈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왕위에 오른 지 7, 8년쯤 되었을 어느 날이었다.

<고려사><고려사절요>에 편조를 만나기 직전 왕의 꿈 얘기가 나온다.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숨지기(13652) 몇 년 전의 일이라 기록되어 있을 뿐 명확하게 시기를 밝히지는 않았다.

恭愍王夢, 人拔劒刺己, 有僧救之得免.(고려사 권132, 열전45, 반역6, 신돈전)

어느 날 공민왕이 어떤 자가 칼을 빼어 자기를 찌르려 하는데 한 승려 덕분에 살아나는 꿈을 꾸었다.

왕이 꿈을 꾸니 어떤 사람이 칼을 뽑아 왕을 찌르려 하는데 어떤 중이 왕을 구원하여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고려사절요 권28 을사(1365) 14,

왕은 그 꿈이 하도 이상해서 이튿날 아침에 대비(명덕태후)에게 문후를 올리러 가서 꿈 얘기를 했다. 내관 신소봉(申小鳳)이 따라가서 듣고는 오늘 김원명의 소개를 받아 선공시 시승 강성을의 안내로 편조라는 고승이 입궐해 왕을 배알할 예정이라 속으로 예사로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으나 가만히 있었다.

지난밤에 과인이 이상한 꿈을 꾸었나이다. 흉몽인지 길몽인지 해몽해 주소서.”

대비는 웃기부터 하였다. 정신이 멀쩡하면서 중년의 왕이 아침 댓바람에 지난 밤 꿈 얘기를 꺼내다니! 대비는 조금 의아해하면서 왕의 얘기를 기다렸다.

과인을 죽이려 몽골군사가 달려들지 뭡니까?”

연경에서 10년간 큰 고초를 당하셨으니 전하 꿈에도 나타난 모양이요.”

그런데 놈들이 칼을 휘둘러 짐을 찌르려는 순간 어디선가 키가 크고 얼굴이 험상궂은 스님이 바람처럼 나타나더니 선장(禪杖)으로 놈들을 단번에 격퇴하였지 뭡니까?”

스님이 몽골군을 물리쳐 전하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흉몽이 아니고 길몽이요.”

그러잖아도 김원명 대장군이 득도한 큰스님 한 분을 데려온다고 했습니다.”

득도한 스님인가 보오. 전하에게 선몽하는 걸 보니.”

대비의 대답에 공민왕도 안도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김원명 대장군이 데려올 편조 대사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다. 김원명이 며칠 전 입궐하여 편조라는 고승이 금강산과 중국을 편력하면서 고승들을 만나 배우고 좌선 수행하여 득도했는데 최근 시중을 돌아다니며 불도를 믿으라고 권연을 하기를 강조하여 백성들의 인기를 크게 얻고 탁발 보시를 받아 고아와 여인들을 구제하고 있다고 소개했었다.

 

왕은 깜짝 놀랐다.

어어! 그대는!”

대장군 김원명과 시승 강성을을 따라 키가 크면서 비쩍 마른 편조가 내전에 입시하여 부복해 인사를 올릴 때 왕은 지난밤 꿈에 본 용모가 똑같은 스님이 나타난 것에 매우 놀랐다.

왕 곁에는 일찍 입시하여 있던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이인임(李仁任, 1312~1388)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인임은 편조가 왕사가 되고 개혁 정책을 펼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로 이때 큰 감명을 받아서 편조의 지지자가 되었다.

소승 편조가 전하를 뵈옵니다. 만수무강하옵기를 축원 드리옵니다.”

아아! 대사가…… 대사가 꿈에 현몽하더니 정말 꼭 그대로이구려?”

현몽을 하다니요? 전하의 꿈에 편조 대사가 보입디까?”

김원명이 의아해 물었다. 편조를 궁에 안내하여 갔던 동생 강성을은 엎드렸다가 이상한 왕의 말에 눈을 번쩍 떴고 내관 신소봉도 곁에 섰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침에 태후전에 따라가면서 왕의 꿈 얘기를 들은 바 있었으므로.

대사가 과연 과인을 구한 스님이로구려. 짐과 대사가 좋은 인연이 있소.”

소승이 원나라에서 수행할 때 조익청 대감을 따라가 전하를 뵈온 적이 있나이다.”

아아! 조익청과 함께 짐을 만난 적이 있다고? 그러고 보니 우리는 구면이구나.”

왕과 편조의 첫 만남은 연경 생활로 시작하여 중국 대륙을 종횡하며 수행했던 일, 연경 법원사에서 혜근과 함께 인도 선사 지공 문하에서 배운 일들을 얘기하니 공민왕은 아주 기뻐하며 편조의 득도를 인정해 큰스님으로 높이 모시겠다고 하였다.

왕은 편조의 행색에서 범인이 아니라 범접할 수 없는 고승에게서만 감지할 수 있는 높은 경지의 인품을 느꼈다. 스님은 아주 허름한 차림이었다. 누구나 왕을 배알하러 올 때면 좋은 옷을 입고 오는데 부복해 있는 스님의 승복은 낡을 대로 낡아 퇴색한 데다 언제 입었는지 땟국이 쪼르르 흐르는 차림이었다. 그런데도 태연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아 왕은 조금 당황했다. 그러나 꿈에 나타나 그를 구한 스님이라 믿으니 초라한 장삼을 걸친 모습에 오히려 존중하는 마음이었다.

편조가 낡고 퇴색한 승복을 입고서 임금을 배알한 것을 조롱조로 기록한 것은 당시 고승들의 일의일발(一衣一鉢) 검소를 알지 못한 자들의 헛소리라 하겠다.

<고려사> <신돈전>에는 편조(신돈)의 공민왕 알현의 역사적인 광경을 다음과 같이 조롱하듯 비아냥거리며 비하하고 있다. <고려사>는 비꼬는 어투로 펀조가 도를 깨우쳤노라고 큰소리로떠벌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침 김원명이 신돈을 알현시켰는데, 그 모습이 꿈에 본 승려와 흡사했다. 매우 이상히 여긴 왕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본즉슨 총명하고 사리에 밝았으며 도를 깨우쳤노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 모두 왕의 뜻에 맞았다.

왕이 평소 불교를 신봉한 데다 꿈에 현혹되어…….

왕과 편조의 첫 대면을 <고려사>에서는 불교에 심취한 왕이 꿈에 현혹되었으며 편조가 득도했노라고 과장해 자랑 큰소리쳤다면서 조롱과 비하로 일관하여 운명적인 둘의 중요한 만남의 의미를 희화화(戲畫化) 깎아내렸다. 그러나 그 이면의 진실은 모두 왕의 뜻에 맞았다.” 하는 구절 끝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

 

<창녕신문> 연재중 (2023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