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남전과 함께
소설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7장 사구아 아구사(1)

by 남전 南田 2023. 4. 2.

게성천 절벽위에 있는 편조 신돈이 지은 일미사 강원터라 알려진 문암정

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7장 사구아 아구사(1)

- 대사는 과인을 구하고 과인은 대사를 구할 것이다.-  師救我 我救師

 

* 두타승 편조와 수태 비방祕方

 

요사스러운 중이라면서 그를 배척하고 질시했던 이승경, 정세운 등 두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편조는 금강산 유점사 적멸암에서 개경으로 돌아왔다.

고아와 부녀자를 구제하던 암자는 쓸쓸하게나마 문을 열고 있었다. 철관과 천정, 현조 스님이 암자를 지키고 있었는데 철관 스님이 암자 두 곳에다 반야암” “극락암이라 현판을 달아 놓아 현화사와 낙산사에 속하게 했기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편조는 전처럼 목탁을 들고 탁발승으로 다시 길거리로 나섰다.

두 번의 홍건적 침입으로 피란민이 된 사람들과 부모를 잃은 고아와 남편이 전사하자 의지할 데가 없는 부녀자들, 또 극심한 가뭄으로 살길이 막막한 이재민들이 개경으로 몰려들었다.

철관을 비롯한 스님들은 보시가 들어오는 대로 반야암과 극락암에서 큰 가마솥에 죽을 끓여 난민들에게 먹였다. 떡도 만들어 시중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나누어줘 허기를 면하게 했다. 두 곳 암자에 사람이 넘쳐나 또 다른 곳에 고아를 수용할 암자가 필요해졌다.

 

선공시 부령으로 궁궐에서 일하는 강성을이 어느 날 환관 신소봉에게 달려가 편조가 머리를 기른 두타승(頭陀僧)이 되어 얼마 전에 돌아왔다고 알렸다.

신 내관님! 편조 성님이 돌아왔소. 금강산 유점사의 깊고 깊은 적멸암이란 암자에서 그간 두문불출 수행하다가 왔지요.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자 묵언 수행 중 머리털까지 깎는 것조차 잊어버려서 몇 년 사이에 길게 머리가 자랐다고 합니다. 형님!”

허어! 두타승이 또 한 분 나타나셨군.”

성님이 오자마자 전처럼 거리로 탁발하러 나서서 난민 구제에 힘을 쏟아서 사람들이 크게 칭송하고 있답니다.”

허어! 진작 알려주지 이제야 말하나? 전하께서 편조대사를 만나고 싶어 하시네.”

이번에 슬쩍 귀띔하이소. 편조 성님의 비방이야말로 수태 효과가 확실하게 있다고요.”

신소봉은 강성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소봉은 강성을의 육촌인 전의시(典儀寺) 시승(5)으로 있는 강거실(姜巨實)과도 친해 강씨 집안이 명문세가는 아니지만 빠지지 않은 양반 가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강거실도 편조의 일미사 일을 강조하여 사실임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강성을의 말이 믿을 만하다고 신 내관도 생각하게 되었다.

강성을은 또 다른 욕심으로 편조의 비방이 효과가 있음을 강조했다. 만약 그의 의도대로 된다면 연경에서 태어난 딸 강반야를 왕에게 바칠 작정이었다.

사실 공민왕은 결혼한 지 십여 년이 넘었지만 아들이고 딸이고 왕손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10년이 넘자 모친 태후(공원왕후)와 대신들의 간청으로 후궁을 맞으라 했으나 혜비 역시 후사가 없었다.

왕비는 매사 적극적이고 밤이면 남편을 쥐락펴락 제 뜻대로 즐겼으며 투기(妬忌)가 심해 혜비나 궁궐의 궁녀를 넘보지 못하게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니 왕은 음기가 강한 아내를 만족하게 하려고 무리를 하게 되었고 그의 양기는 날로 쇠약해져 어느 날엔가 남자 구실을 못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신소봉은 큰 결심을 하고서 왕에게 편조의 수태 비방을 귀띔했다.

편조 대사가 원나라에 가서도 의서를 읽은 용한 의원이라 강성을 부령이 그랬습니다.”

 

편조가 입궐하자 왕은 반갑게 맞으며 먼저 그의 개인사부터 은근히 꺼냈다. 잘못하면 왕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진맥부터 했다. 그가 예상한 대로 왕의 진기는 완전히 소진되고 메말라 있었다. 왕이 물었다.

진맥하니 어떤가? 대사가 원경에 가서도 의서를 보고 연구해 웬만한 명의와 같다던데?”

신중하게 대답했다.

전하께서 하문하시니 소승이 힘껏 비방 약을 처방하여 올리겠습니다.”

짐은 왕비가 수태를 하기만 하면 대사를 보우처럼 국사로 모시겠소.”

, 아닙니다.”

국사나 왕사가 되어 조정의 일도 자문하고 거들어 주시오.”

편조는 일미사에서 했던 그대로 비방을 적어 신소봉에게 내밀었다. 신소봉은 비방을 보고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의시(典醫寺)에 명해 약을 지어 올리도록 하지요. 정말 편조 대사님은 명의로군요.”

침향과 산삼이 기력을 유지하고 노쇠를 극복하니 기혈 순환에 탁월하지요.”

하기보양(下氣補陽)의 명약이 침향이라 들었습니다.”

다행히 부처님의 가호로 약효가 나리라 생각이 듭니다만…….”

아아! 선공시 강 부령이 이야기하더군요. 반야라는 딸이 있다고요? 대사께서 조카딸 관상을 보고 아들 수태를 장담했다고요?”

허어! 조카 여식이 복을 타고 났지요. 허지만 부족합니다.”

강 부령이 그 딸을 전하께 바치겠으니 시침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디다. 제가 궐 안의 그럴듯한 궁인(宮人)도 물색하여 두 여인을 시험 삼아 전하께 시침하도록 하지요. 틈을 내셔서 수태가 용이한 지 제가 고른 나이 어린 궁인의 상을 보시지요.”

강성을의 생각은 그의 딸 반야를 신소봉을 통해 왕에게 들이밀 꿍꿍이셈이 있었다. 강반야가 수태해서 아들을 낳기만 하면 당연히 후궁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그래서 공주 외에 시험대상으로 궁인이나 그의 딸을 은근히 추천하도록 했다.

환관 신소봉은 눈치가 빨랐다. 편조의 비방으로 약을 지어 왕과 왕비가 복용토록 한 다음 궐 안에서 잡일을 하는 궁녀 중 열 대여섯 살 되는 어린 처자를 비밀리에 골라 놓았다. 그 궁인은 다름 아닌 신소봉의 매부 집안 누이 딸이었다. 그러니 신소봉도 강성을과 다름없이 자기 집안의 생질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창녕신문> 2023. 3. 27자 연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