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조왕사 신돈 이야기 / 제7장 사구아 아구사
제7장 사구아師救我 아구사我救師 (2)
* 되찾은 왕의 활력과 반야 시침侍寢
관음암의 일을 거들고 있는 능우(能祐) 스님의 속성이 한씨로 신소봉의 매부 한준과 인척간이었다. 근시(近侍) 환관 신소봉은 이리저리 욕심내 궁리하고 있었다.
또 강성을의 딸 반야도 열일곱 살이라 마음대로 궁궐 출입이 가능한 사복시 부령 아비를 따라 비밀리에 입궁하면 될 것이므로 편조의 의도에도 합당하리라 여겼다. 언제든 신 내관이 통지만 하면 반야도 침방에 들어 왕을 모실 수 있도록 시침을 준비하라 했다. 신 내관은 제조상궁과 은밀하게 시침 준비를 했다.
편조의 비방은 효과가 있었다. 밖으로는 왕의 수태를 비는 국사의 축원 불사도 있었다. 왕의 양기가 살아나자 왕은 노국공주를 찾았다. 신소봉은 기회를 틈타 궁인 한씨와 선공시 부령 강성을의 딸 반야를 제조상궁의 도움으로 왕의 침방에 밀어 넣었다. 강반야는 숙부인 사복시(司僕寺) 부정 강거실의 안내로 궁궐에 들어오면서 궁녀 복장을 하고서 다른 궁인들의 눈을 피해 몰래 입궐했다.
왕도 양기가 이전과 같이 되살아나자 편조 비방의 효력을 시험하려고 신 내관이 밀어 넣는 강반야와 즐겁게 밤을 지냈다. 왕은 처음에는 반야가 궁인이라 여겼다. 내관으로부터 반야가 부령 강성을의 딸이며 사복시 부정 강거실의 질녀라는 말을 들었으나 관원의 딸이 궁인으로 입궁해 있는 줄 알았다. 상궁을 따라와 침전에 든 여인이 복색도 궁인이었고 여염집 처자가 궁에 들어올 리 없었기 때문에.
신 내관이 또 다른 궁인 한씨를 처소에 넣었을 때도 거절하지 않았다. 여인들이 수태해 아들을 낳기를 기대하면서.
왕은 궁에서 지내면서 어려서부터 예절에 익숙해 임금을 보자 주눅이 들어 몸이 경직된 궁인 한씨보다 여염집 처자로 분방하게 자란 강반야를 좋아하게 되었다. 왕은 강반야가 왕비 노국공주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게 된 것은 그녀가 연경에서 태어났고 공주처럼 활기가 있고 꾸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연경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니 공주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마마! 전 아무것도 몰라요.”
강반야가 다소 어리광과 아양을 부리며 나이 많고 지위가 임금인 남자를 겁내지 않고 마음을 얻으려고 했는데 그것 또한 왕은 흡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 왕비가 수태했다는 소문이 궁 안에 널리 퍼졌다. 왕비의 수태로 왕비와 동침하지 못하게 된 왕은 더욱 강반야를 자주 찾았다. 왕비의 임신 소식이 있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궁인 한씨와 반야의 수태 소식도 연달아 있어 신소봉이 비밀리에 왕에게 아뢰었다.
편조의 비방약 처방과 신소봉과 강성을이 꾸민 일을 누구보다도 눈치가 빠른 찬성사 이인임이 알게 되었다. 이인임은 내관과 친하게 지내 왕의 움직임을 환하게 알고 있었다.
신 내관의 침방일지 기록을 이인임이 슬쩍슬쩍 훔쳐봤으니 궁인 한씨와 편조의 질녀가 왕의 침방에 아무도 모르게 출입해 시침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보다 먼저 여인들의 수태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편조에게 아는 척했다.
“편조 대사님의 비방이 효과가 대단합니다? 왕비님도 궁인 한씨와 질녀 강반야도 수태를 했다니.”
편조는 이인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아끼라고 눈짓했다.
“아무렴요. 대사. 투기가 심한 왕비께서 아시면 당장 궁인이나 질녀를 붙잡아서 요절을 낼 겁니다. 그러니 숨겨야 합니다. 그러니 수태한 둘은 궐 밖 은밀한 곳으로 피신시켜야 합니다.”
“이 찬성사가 잘 알아서 조처해 주시지요. 소승은 아직 집도 절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니 피신처를 마련할 형편이 아닙니다.”
이인임은 신소봉과 의논해 아무도 모르게 궁인 한씨를 궁 밖 한준의 집안이 되는 집으로 숨겼다. 그곳은 바로 편조와 친한 능우 스님의 어머니 집이기도 했다. 강성을의 딸 반야도 궁궐 근처 집을 얻어 숨겼지만 왕이 언제든 몰래 찾아가도록 신소봉과 준비해 두었다.
신소봉은 이인임, 강성을과 상의해 두 여인을 피신시킨 다음 왕에게 아뢰었다.
“궁인 한씨와 선공시 부령 강성을의 딸 수태 소식은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감추겠습니다. 전하. 왕비마마나 혜비께서 아시면 천한 그들을 해코지할지 모르니까 궁 밖으로 보내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신소봉의 말에 왕은 고개만 끄덕였다. 두 여인의 일이야 차차 매듭을 풀 작정이라 그저 수태한 왕비가 왕자 낳기를 관심을 가지며 기대에 차 있었다.
세 여인의 잇따른 수태 소식은 결혼한 지 15년 만의 경사였다.
그런데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강짜와 태후의 명문대가의 집 딸 선호 때문에 지체 낮은 집안으로 불릴 궁인 한씨나 선공시 부령 강성을의 딸 반야가 수태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비밀로 하기로 하면서 사태가 꼬이고 말았다. 수태를 알았던 편조, 이인임, 내관 신소봉, 제조상궁, 강성을, 강거실 등 몇 사람 외에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결국 공민왕이 왕자 모니노의 출생 사실까지 공표하지도 태후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넘어갔으니 훗날 이성계 세력의 폐가입진(廢假立眞)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강씨 집안이 대단한 문벌이었다. 강반야는 노비가 아니라 번듯한 집안의 딸인 것이다. 후일 신돈의 이부동생이라며 역당으로 몰려 처형당한 선공시 판사 강성을의 딸이니 강반야는 편조의 여종도 아니고 첩도 아닌 조카뻘되는 여인이었다. 또 이성계의 둘째 부인이 강씨인데 편조의 동생 신귀의 부인과 형제간이었으니 고관대작을 지낸 명운가는 아니었지만 결코 강반야가 신돈의 여종이나 첩이 될 신분도 아니었다.
<창녕신문> 2023. 4. 10. 10면 연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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